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39화 (39/203)

039. 내부자. (2)

“이게 뭐야? 빛 좋은 개살구였어? 라면 판매 대금이 매출로 잡히지 않고, 30원대의 유통관리비만 받고 있다고? 현 부장.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왜 우리 회사가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는 거야?”

현영인에게 보고를 받은 이재영 상무는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도 이게 진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교차검증까지 했고, 상품 판매 관리부의 서류까지 확인했습니다.”

“햐아 참. 이게 진짜라고? 재미있네. 어떻게 이런 구조로 돌아가는 거지? 아니, 이렇게 돌아가게 놔뒀다고? 대기업인 거산이 납품 업체의 시다 짓을 하고 있을 줄이야.”

이재영 상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도 김독수의 작업일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 라면 봉지에 있는 요리사가 김 전무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김독수 전무와는 관계가 없고. 입안자인 임건호 차장의 매제라고 합니다. 친인척 납품 비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은 되는데, 금품거래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임건호? 아! 전에 비즈니스 빌딩 건 입안해서 독사에게 실적 가져다준 그놈? 차·포 떼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옮기게 했을 텐데. 아, 여기가 거기구나.”

“네. 묫자리라고 말라 죽으라고 보냈는데, 이렇게 새로운 걸 만들어 내었습니다. 해서 다시 식품 사업부로 김 전무가 끌어 올릴 것인지 알아봤는데, 인사과에서는 김독수 전무 쪽에서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김 전무와 끈이 끊어진 건 아닐 거야. 아마도, 이 라면 건을 알았으니 놔둬 달라고 했겠지. 그럼, 이놈이 문제였네.”

이재영 상무는 같이 올라와 있는 임건호의 인적 사항을 다시 봤다.

“동문 후배에 딱 우리 쪽인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똘똘한 놈이란 말이지.”

이재영 상무도 인재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나, 시키지 않아도 이런 일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줄을 잡은 놈이었으니 어떻게 치울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게 계약 서류입니다. 보시면 2년 계약으로 해서 해운대 라면을 납품받아 판매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계약서는 정상적인 것 같은데.”

“판매 관리 수수료에 대한 부분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계약서에는 상표권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응?”

현영인 부장의 말에 이재영 상무도 문제를 알아차렸다.

“그럼, 2년 후 계약이 끊어지면, 해운대 라면이라는 이 이름도 그냥 날아갈 수 있다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2년 동안 푼돈을 벌며 우리가 키워준 상품이 다른 회사 제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안 되지. 해운대 라면 상표권자는 누구야?”

“임건호 차장의 여동생이 상표권 출원자로 되어 있습니다.”

“햐 이거, 김독수 전무 작업이 아니라, 이 새끼가 회사 이용해서 돈 빨아 먹으려고 한 거였네. 햐 이거 뭐 하는 새끼야. 이 새끼도 부모 잡아먹는 독사 새끼야?”

“내부자 말로는 회사 다니며 딴 주머니를 차려고 이렇게 일을 한 거 같은데, 본인도 이 정도로 대박이 날지는 몰랐다고 합니다.”

“햐. 이거 애매하네. 아니지, 아니야. 임건호 이 새끼가 빨아 먹으려고 작업한 거지만, 이걸 그대로 김독수에게 덮어씌울 수 있겠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과 야합을 했다고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문제는 이 해운대 라면인데. 비리를 들춰내어서 조사를 받게 하면 브랜드 가치가 손상이 올 수 있다고. 그러면 기껏 경쟁이 치열한 라면시장에 진입한 것도 다 날아간다고.”

이재영 상무는 어떻게 해야 최고의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친인척 납품에 대한 비리를 잡아내 임건호를 치더라도 ‘해운대 라면’이란 상표권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공론화를 시킨다면 오히려 회사로서는 손해였다.

“우선은 수풀을 건드려서 독사부터 몰아보지.”

김독수 전무가 이름처럼 독사로 불리며 적의 다리를 물어 죽게 한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독사의 다리를 잡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독사는 물론이고 뱀에겐 다리가 없다는 걸 이재영 상무는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

“오빠! 대박이야! 도협 씨에게 고정 프로그램이 생겼어.”

“고정 프로그램? 어떤 건데? 어디 채널인데?”

라면이 인기를 얻으며 판매가 잘되고 있었고, 호텔에서도 일품 요리화된 라면 이벤트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 방송국의 아침 프로그램에 간혹 섭외되기도 했고, 지역 행사장에서 요리 시연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은 일회성 단발 출연이 전부일 뿐이었다.

헌데, 고정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다고 하니 건희가 저리 좋아할 만했다.

“종편 방송인데, ‘부엌을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야. 편성도 이미 잡혔데, 10월 첫째 주부터 방송하고.”

“요리하는 예능이구나.”

“응. 일반 집 부엌에 있는 재료들로 셰프들이 20분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

“오! 도협이 혼자 나가는 게 아니라 여러 요리사들이 나오는 거구나.”

“다이스 키친의 최영호 셰프랑, 쉐라튼 출신의 나목호 셰프도 나오고, 미슐랭 스타 셰프인...”

건희는 신이 나서 여러 요리사들의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요리계열 쪽으로는 문외한인 건호는 그게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이건 알 것 같았다.

이태리 요리 전문은 매제 혼자라는 것이었다.

유명세 때문인지 다이닝 레스토랑 셰프들이 4명이었는데, 4명 모두 프랑스 요리 전문이었다.

그 외에 중식, 일식, 한식 요리사가 1명씩이었고, 이태리 요리는 매제 혼자였다.

프랑스 정통정찬 요리와 한·중·일 그리고 이태리 전문 요리사이니 4:4로 경쟁을 하는 그런 프로그램 같았다.

그리고, 이걸 바꿔 생각해 보면, 국내의 이태리 요리 셰프 중에서는 가장 지명도가 있는 셰프가 최도협이라는 말이었다.

“이게 다 형님 덕분입니다.”

“뭘 그저 자네가 열심히 했으니 이런 결과가 따라오는 거지. 그런데, 방송도 나가고, 호텔 이벤트도 계속일 건데 바빠서 결혼식 미뤄야 되는 거 아니야?”

“아차! 그렇네요.”

“난 10월에 결혼식 하고 싶은데...”

“일단 방송 나가고 일정 조정할 수 있겠지. 뭐. 결혼식은 하루면 되잖아. 신혼여행은 12월에 가도 되는 거고.”

“근데, 오빠. 라면 수익금은 언제 나오는 거야? 400만 개 가까이 나갔다며? 와 통장에 그 판매 대금 몇십억이 딱 꽂히면 진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데.”

“아서라, 너 변비라서 몸 무겁잖아.”

“아 진짜 또 더러운 이야기 하지. 그래서 언제 들어오는 건데?”

“아직 돈 들어오려면 멀었어. 마트나 편의점에 물건이 나갔다고 바로 팔리는 것도 아니고, 그 정산도 보름이나 1개월 혹은 분기 별 정산일 때도 있어.”

“헐. 엄청 오래 걸리네.”

“그리고, 그 대금이 거산에 정산되면 다시 거산의 정산 일정에 맞춰서 우리에게 입금이 되는 거야.”

“와, 물건 파는 것도 유통망을 거치니깐 진짜 오래 걸리게 되네.”

“어쩔 수 없어. 그리고 돈이 들어온다고 해도 다 햇살 식품으로 들어가야 해. 계속 추가 생산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어. 한 11월, 12월이 되면 그때는 돈이 진짜 통장에 쌓이겠지.”

“그럼, 우리 12월에 결혼식 선물 알지?”

“뭘 알아. 꺼져. 그리고, 도협이 얼굴 마사지도 해주고 관리나 단디해 줘라.”

***

“이 영상은 오늘 아침 자 뉴스입니다.”

[이른 여름 더위로 인해 해운대 해수욕장에 피서객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다만, 공식 개장 전이기 때문에 안전 관리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임원회의실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른 더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이야, 이젠 해운대에도 비키니 입은 사람이 많구만. 그래서 이재영 상무도 저기 놀러 가고 싶다는 건가?”

“그게 아닙니다. 저기 파라솔 아래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십니까?”

“보이는군. 뜨거운 여름에 라면이라 이열치열인가 보군.”

“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임원 여러분들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 파란색 컵라면은 우리 회사가 판매하고 있는 라면입니다.”

“우리 회사가 파는 라면? 우리 거산이 라면도 팔았었나?”

“네. 우리 거산의 로고가 들어가 있는 라면으로 올해 초 출시 이후 400만 개 이상 팔리고 있는 상품입니다.”

“400만 개? 엄청 많군.”

“그렇게 많이 팔렸는데도, 우리 회사에 라면이 있는지를 몰랐군.”

“라면을 먹지 않다 보니 몰랐는데, 우리 회사의 라면이라면 한번 먹어봐야겠구먼.”

“1년에 한국에서 소비되는 라면은 약 40억 개입니다.”

“인구의 80배나 팔리고 있군.”

“네. 그 40억 개 중의 400만 개니 0.1%입니다. 0.1%라고 하면 별거 없어 보이지만, 임원분들도 모를 정도로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전체 시장의 0.1%을 점유했다는 말입니다. 이제까지 라면 업계에 뛰어든 회사들의 초기 6개월 성과를 상회하는 성과입니다.”

“그럼, 광고 마케팅비를 지원해주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티비 광고를 제대로 해줬다면 그 이상의 점유율도 가능합니다.”

“그럼, 이 라면의 광고비 책정 때문에 이 뉴스 영상을 보여 준 것인가?”

“그것도 있지만, 그 전에 이 해운대 라면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 뉴스 영상을 보여 드린 겁니다. 김독수 전무님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갑자기 이재영 상무가 김독수 전무를 부르자, 임원들은 ‘아, 또 뭔가 있구나.’ 하는 눈치를 챘다.

물론, 김독수 전무도 이재영 상무가 뉴스 영상을 보여주고 라면 이야기를 할 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했다.

“해운대 라면은 봉지면과 소컵라면, 대컵라면해서 3종류가 있으며 개당 평균 가격은 350원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종별 구분 없이 한다면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이 라면을 유통 판매하고 있는 상품 판매 관리부에는 약 14억 원의 매출이 기록되었겠군요. 맞습니까?”

“이걸 매출로 잡는다면 그렇게 봐야겠지요.”

“네? 그렇다면 이게 매출로 안 잡힌다는 겁니까? 왜 그런 겁니까? 혹시, 납품 업체와의 커미션이라던지 아니면, 다른 이익을 얻기 위해 우리 매출로 못 잡는 겁니까?”

“이재영 상무님은 이 건을 다 알고 있으면서 저에게 물어보시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부끄럽다고요? 제가요? 하하하. 아니, 제가 왜 부끄럽습니까? 오히려 부끄러워하셔야 하는 건 김독수 전무님 아닙니까?”

서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을 하니 임원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후계자파와 외파의 싸움이라는 게 바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독수 전무님은 이 라면을 생산해서 우리에게 납품한 ‘해운대 라면’이라는 업체와 별도의 거래가 있으신 거 아닙니까? 그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거래를 하신 김 전무님이 부끄러워하셔야 하는 겁니다!”

“어떤 거래가 오갔다고 하는 것입니까? 명확하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사실 확인 없이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문제가 되실 겁니다.”

“우리가 이 해운대 라면을 직접 생산해서 팔았다면 이 매출이 다 우리 것이 되었을 터인데, 왜 신생으로 작은 회사를 차려 제작 납품하게 했는지가 궁금한 겁니다. 이 매출과 수익은 그대로 납품 회사에 가고, 우리는 개당 30원의 유통관리비만 받고 있습니다.”

이재영 상무는 서류를 앞으로 던졌다.

“이 서류는 상품 판매 관리부의 회의록입니다. 우리 거산은 1997년 이미 라면 생산에 대한 것을 검토했었습니다.”

몇몇이 서류를 보자, 진짜 1997년도에 회의록에 라면 출시에 대한 내용이 있었고, 공장 준설 첫 삽을 뜨기 직전까지 진행이 되어 있었다.

“그때는 IMF로 인해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왔다고는 하지만 IMF 때와는 상황이 다르고, 지금의 거산은 그때의 거산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생산을 해서 판매해야 했을 일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재영 상무의 말에 다른 임원들은 이미 회사에 준비가 되어 있는데, 왜 회사에서 하지 않고, 납품을 받아 푼돈만 벌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겼다.

이 상무의 말처럼 그 업체와 뒷거래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참으로 웃깁니다. 이런 상황이 되도록 내몬 것이 바로 이재영 상무인데, 오히려 이것을 제 탓으로 하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파벌 문제로 인해 이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이 그쪽 파벌이지 않습니까?”

김독수는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이재영 상무와 후계자 파벌 때문이라고 이야길 하니 임원들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했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여기 계신 임원들도 다들 아십니다. 상품 판매 관리부의 이창모 부장이 그쪽 파로 넘어갔다는 것을요. 그러니 김덕수 전무와 이창모 부장이 이 작업을 한 게 아닙니까?”

“답답하군요. 눈물 많은 이창모 부장이 왜 우리 파로 넘어왔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여기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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