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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52화 (52/203)

052. 특산 라면을 제안하다. (1)

“허일도 군수의 제안이 나쁜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문성철 대표에게 회의에서 오고 갔던 말들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손해를 보면서 소량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일단 다행입니다. 오히려 한몫 잡을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행이긴 한데, 결국 세금이라는 게 좀 걸린달까. 군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니 총 사업 규모는 얼마 정도라고 하던가요?”

“아직 그런 예산까지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엿듣기로는 군청 예산이 수십억이 있다는 건 들었습니다.”

“군민이 35,000명밖에 안되는 작은 군인데, 쓸 수 있는 예산이 수십 억이라...”

문성철 대표는 가뜩이나 열악한 군청의 세금을 우리가 받아먹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제가 군수님을 한번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치적 쌓기용으로 3만 개 정도 생산해주고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문 대표는 나와는 다르게 한몫 잡을 수 있는 ‘건’으로 이걸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이 손해 보더라도 눈먼 나랏돈을 아껴보겠다는 것이었다.

“문 대표님. 잠시만요. 제대로 교육을 받았고, 어느 정도 성공한 경영인의 올바른 가치관에서는 문 대표님의 그 생각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허일도 군수가 문 대표님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허일도 군수의 스펙은 훌륭했다.

지역 사학 중 가장 유명한 형남대학교 사범대학을 나와 아무 문제 없이 공무원 생활을 했고, 이후 지역 유지였던 부모님의 의원 자리를 받아 지역의 유지이자 정치인이 되었었다.

그리고, 군수가 되어 지역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스펙으로만 보면 지역이 키운 인재 중의 인재였다.

하지만, 대학교도 집에서 등하교가 가능한 형남 대학교를 나왔고, 줄곧 이 지역에서만 성장을 했기에 그 시야가 넓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지역 유지의 아들로서 늘 지역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 삶을 살아온 그의 가치관이 문성철 대표와 같을 수는 없었다.

임건호의 말을 들은 문성철도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몇백억을 가진 여유 있는 사람이 되다 보니, 괜히 세금을 뜯어먹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문 대표님. 대표님이 허일도 군수에게 가서 세금 아낄 수 있게 손해를 감내하겠다고 이야길 해도 허일도 군수가 고맙다고 하겠습니까? 아마도, 다른 생산업체 알아보고 해서 어떻게든 해 먹으려고 할 겁니다. 이번 선거에서 떨어지면 끝이니깐 최대한 많이 당기려고 할 겁니다.”

“휴우. 그렇긴 한데...”

“우리 대신 다른 놈이 뜯어 먹을 바에는 우리가 뜯어 먹고, 그 수익의 일정 부분을 다시 산청군에 돌려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장학재단이라던지 노인복지를 위한 기부라던지 다른 방식으로 세금을 돌려줄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임건호의 말에 고민하던 문성철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누가 되든 먹어 치울 눈먼 세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조건이 있습니다. 총 수익의 50% 이상은 산청군에 되돌려주도록 합시다. 임 이사가 동의하면 산청군 라면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수익의 50%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은 문 대표의 입맛에 맞춰줘야 할 것 같았다.

“좋습니다. 우리가 돈도 있고, 가오도 있는데 못할 건 없지요. 수익의 50%는 산청군에 투자 혹은 기부하도록 하지요.”

“좋습니다. 그럼 라면 레시피부터 만들고, 이름과 디자인을 만들어서 사업제안서를 군청에 내어 보도록 합시다.”

***

해운대에 사무실을 얻었고, 될 수 있으면 직원들을 산청으로 부를 일을 없게 하려고 했지만, 산청군에서 일을 진행해야 했기에 김민욱과 김이서를 불러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서야 산청군 관련으로 특산으로 유명한 게, 쌀, 인삼, 약초야?”

“네. 쌀은 농지가 많아서 생산량이 많습니다. 그리고, 산양삼이라고 불리는 산에서 기른 인삼과 산청군 산지에서 재배되는 약초들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사님. 그럼, 쌀라면 어떨까요? 아니면 쌀국수? 군에서 주는 쌀국수를 저는 나름대로 맛있게 먹었었거든요.”

이서의 설명을 들은 민욱이는 바로 쌀라면을 꺼내 들었다.

“아! 그거? 사각형 용기 맞지? 그러고 보니 멸치육수로 해서 나름 맛은 있었는데. 그거 시중에서도 팔아?”

“네. 이사님. 군에서 나름 인기가 있다 보니 시중에서도 팝니다.”

“그런데, 그거 호불호가 있지 않았었나? 행군 후에 용심 육개장 먹을래, 쌀국수 먹을래 했을 때 대부분이 육개장을 선택했던 거 같은데.”

“그게, 군대다 보니 뜨거운 물이 제대로 보급이 안 되는 상황이 많았지 않습니까? 육개장은 꼬불 라면이다 보니 좀 덜 익어도 먹을 수는 있었는데, 쌀국수는 물이 안 뜨거우면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호불호가 좀 있었습니다.”

“역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잘 아네. 그럼, 일단 쌀국수 베이스의 라면으로 하나 써두고. 산청 쌀라면, 혹은 산청 쌀국수로 명명해둬. 인삼은 그 특유의 맛 때문에 힘들겠지?”

“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 인삼 특유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어필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갈비탕에 같이 나오는 수삼 한뿌리를 일부러 꼭꼭 씹어 먹는 사람을 많이 봤거든요.”

“이서 네 말처럼 내가 그래. 갈비탕에 나오는 수삼, 전복은 약이라고 진짜 꼭 챙겨 먹는다니깐. 그럼, 인삼 라면은 갈비탕 국물 베이스에 인삼 향을 첨가한 건강 라면 이미지로 잡아 보자.”

“이사님. 인삼 라면이 건강해지는 라면이라고 어필은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건강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인삼 라면을 먹지 않고 그냥 밥을 차려 먹지 않을까요.”

“민욱이 너 말도 맞네. 건강 생각해서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라면을 안 먹고 밥을 먹겠지. 하지만, 그래도 산청 인삼 라면으로 하나 적어둬. 명분 때문이라도 넣어두어야 해.”

“네. 그럼, 약초인데, 이건 한약 맛으로 가야 하는 걸까요?”

“인삼처럼 ‘약초 맛이 뭐다!’라고 떠올리는 맛이 사람들에게 있을까?”

건호의 말에 이서나 민욱이가 약초의 맛이 뭘까 떠올렸지만, 뚜렷하게 약초 맛의 이미지가 없었다.

“그럼, 둘 다 쌍화탕 맛은 알지?”

“아! 그게 약초의 맛인가요? 보약의 느낌이 나는?”

“그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약, 몸에 좋은 약초의 맛은 바로 그 쌍화탕의 맛이라고 여기면 될 거야. 하지만, 쌍화탕 라면이라고 하면 식욕이 나냐?”

이서와 민욱이가 쌍화탕과 라면을 떠올려보더니 오만상을 썼다.

“전 절대 안 먹을 것 같은데요. 진짜로 줘도 안 먹을 것 같아요. 감기에 걸러서 먹어야 한다고 해도 그냥 안 먹고 약 먹을 거 같아요.”

“저도 벌칙 게임 같은 느낌이라 절대 안 먹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실 너희들은 이미 다 음식에 넣은 걸 먹어봤을걸.”

“네? 쌍화탕이 들어간 라면을 먹어봤을 거라고요?”

“그래. 너희들 알게 모르게 다 먹어봤을 거야. 복날 되면 삼계탕 먹으러 가지?”

“네. 더운 여름을 나려면 기력을 차려야 한다고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삼계탕을 내기도 하고, 그때가 되면 삼계탕 피크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 삼계탕에 쌍화탕이 다 들어가 있어.”

시중에 파는 삼계탕에 쌍화탕이 들어가 있다는 말에 둘 다 깜짝 놀랐다.

“삼계탕은 국물 색이 흰색이잖아요.”

“쌍화탕도 실제 검은 갈색 병에서 컵에 부어보면 완전히 검지 않아. 그리고 거기에 들어간 숙지황이 그 검은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갑자기 약초에 대한 것이 나오기 시작하자 둘 다 숙지황이 뭔지 몰라 검색을 했다.

“좀 잘한다는 삼계탕집에서는 검은색을 내는 숙지황을 빼고 작약, 당귀, 대추, 천궁, 건강, 감초, 계피, 마늘, 인삼, 황기 가 다 들어가. 다만, 그 양이 작아서 잘 모를 뿐이지.”

“헐. 진짜네요. 이사님 말처럼 검은색을 낸다는 숙지황을 빼고는 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네요. 간이로 한약 삼계탕을 끓일 때는 쌍화탕을 넣는 게 꼼수 레시피로 있네요.”

“그래서 이 약초 라면은 삼계탕 스타일의 국물로 가는 거지. 용심의 곰탕맛 라면이 가지고 있는 흰 국물 라면의 비율을 뺏어 올 수 있다면 성공할 수도 있을 테고.”

“오! 그러면 진짜 약선 스타일인데요. 인삼보다 더 건강해지는 느낌의 라면이 될 것 같아요.”

“그렇지? 그럼, 이건 산청 약초 라면이나 산청 한방 라면 같은 이름으로 적어 둬.”

“산청에도 약초를 거래하는 약령시(藥令市)가 있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약초축제를 한다고 하던데, 그 축제와 어울리는 것은 이 라면일 것 같아요.”

“이서 네 말대로 연계가 확실히 쉬울 수 있지. 일단, 지역 특산물 3개로 연구소와 쉐프들에게 맛을 만들어 달라고 해보자고. 이 레시피 건은 김민욱 대리가 연락해서 미팅 일자 잡고 해줘.”

***

그렇게 사업 제안을 위한 레시피를 만들고 있는데, 산청군 지역생활부의 이정모 부장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군청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우리 공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이거 한번 보십시오.”

“음. 사업제안 양식인가요?”

건호에게 건네준 서류는 군청 공무원들의 유니폼과 작업복과 관련된 납품 제안서였다.

“이 양식 보시고 그대로 하시면 되는데, 여기 보시면 ‘원단 및 재봉 공정의 50% 이상 산청군의 제품과 공장에서 생산하도록 한다’는 항목이 있지요?”

“네. 보입니다.”

“이걸 산청에서 나는 음식 재료를 50% 이상 쓴다는 것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음. 밀가루가 산청군에서 생산이 됩니까? 아니, 생산이 된다고 해도 단가를 못 맞출 것 같습니다. 라면 원재료의 60% 이상이 밀가루인데, 이건 절대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아, 그게 그런가요? 밀가루가 그렇게 다 수입이 되어야 하는 거군요. 햐, 이럼 곤란한데.”

이정모 부장은 곤란하다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했다.

“그냥, 이 항목을 빼면 안 되는 겁니까?”

“절대 빼면 안 됩니다. 그게 군청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자본이 타 시도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넣어둔 것입니다. 우리 군 내에서 돈을 쓰도록 하자는 그런 의지가 담겨 있는 항목이지요. 그래서 이 항목이 없으면 군의회에서 예산 통과가 안 됩니다.”

“헌데, 라면 만드는 밀가루는 국내산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거의라고 하면 될 수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면 5% 미만의 확률이라고!

친자 확인해서 95% 불일치가 떠서 남의 자식이라고 결과가 나오면 5% 정도는 내 자식일 수 있다고 할 거냐고!

속에서는 열 천불이 났지만, 그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럼, 혹시 군에서 쌀 수매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쌀은 우리가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합니까? 밀가루로 만드는 라면이 안 된다면, 쌀라면이나 쌀국수로 만드는 건 가능합니다.”

물론, 쌀라면이라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가는 쌀가루는 30~40% 정도였다.

나머지는 감자 전분을 넣어 밀가루와 비슷한 탄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아! 쌀은 당연히 우리 군에서 수매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언제든지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수매된 쌀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고 하지만, 수매가 자체가 1kg당 거의 1500원대였다.

밀가루와 단순 비교하면 2배 가격이었다.

그걸 싸게 준다고 해도 수매가 보다 저렴하게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시중에 출시되어 있는 쌀가루로 만든 라면은 그렇게 또 비싸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꼼수가 있었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길쭉한 안남미를 사서 쌀라면을 만들기에 국제 곡물가에 따라서는 밀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쌀을 섞어서 만든다면 단가도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안남미로 하려면 먼저 국내산 쌀로 만들면 힘들다는 밑밥을 깔아둬야 했다.

“헌데, 국내산 쌀로 만들게 되면 단가가 2배 이상 뛰어 버립니다. 그러면 라면의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군요. 미국에서 수입되는 밀가루 가격이 워낙에 저렴하니...흠. 그럼, FM대로 하는 거 말고, AM으로 처리를 하는 방법도 알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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