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6시 우리 고향.
서울의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쁜 얼굴의 여자 사람이었지만, 시골에서, 그것도 며칠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시래기 말리는 작업을 해서 그런지 그냥 예뻐 보였다.
“여기서 잘 말려진 시래기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아, 그...그게 군에서 특산품으로 만드는 한방 라면의 재료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리 정해진 대로 인터뷰를 하는데, 어색해지지 않게 메소드! 메소드! 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며 대답을 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 젊으신 거 같은데, 시골에서 이렇게 30대가 농업에 종사하는 걸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저도 이렇게 예쁘신 분은 처음 보는 거 같습니다.”
“어머나 좋아라! 멜리사 봐봐! 내가 더 예쁘잖아!”
대본에 없던 이야기를 내가 했음에도 리포터는 순발력 있게 잘 넘어 가줬다.
“저도 서울에 살았는데, 시골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습니다. 산청군에서 하는 라면 사업이 없었다면, 저도 이곳으로 내려오지 않았을 겁니다.”
“라면요? 끓여 먹는 그 라면 이야기하는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산청군에서 나는 이런 식자재로 군에서 라면을 만들었는데, 그 덕분에 젊은 저도 이곳으로 올 생각을 했습니다.”
“와! 대단한데요. 젊은 사람들을 시골로 와서 살 수 있게 일자리를 만든 것이 대단합니다.”
“그런 라면 캐나다에도 없어요. 대단해요.”
“그렇죠. 캐나다에는 라면이 없죠. 하하하.”
작가가 써준 대본을 같이하며 다 같이 웃었는데, 짜인 각본대로 이야기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웃겨서 더 크게 웃었다.
“그럼, 이 말린 시래기를 따라 산청군의 자랑인 한방 라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따라가 볼까요? 출바알~!”
그렇게 비닐하우스에서의 촬영이 끝이 나고 태양 식품 제조 공장으로 가서 촬영을 다시 시작했다.
자동설비에서 라면 면이 튀겨져 움직이는 배경으로 촬영을 했는데, 다들 멸균 복을 입었다.
“나 이 한방 라면에 한방이 총을 쏠 때 그 한방인지 알았어. 그래서 이 라면 먹으면 총에 맞은 거처럼 치명적인 맛이 올 거라 생각했어.”
“역시, 멜리사 엉뚱해요. 주먹 한 방 원펀치라고 생각 안 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멜리사. 한방 라면을 위해 이곳에서 사는 거 어때요?”
“음. 저기 젊으신 오빠랑은 가능해요! 매일 이런 라면 먹을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오빠 솔로에요? 마누라 있어요?”
이건 각본에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멜리사의 어눌한 한국말을 따라 했다.
“마누라 없어요. 솔로에요.”
“그럼 되었다. 멜리사 여기서 살게요.”
갑자기 멜리사가 안겨 오는 돌발 상황에 안을 수도 없고 밀어낼 수도 없어서 그냥 매너 손으로 버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벙한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자 그럼, 대표님. 이 라면의 장점을 설명해 주세요.”
“에. 산청군에서 특산품으로 나온 이 한방 라면은...”
문성철 대표도 카메라 앞에 서서 그런지 평상시의 젠틀한 이미지를 잃어버리고 어버버거리며 정해진 대로 인터뷰를 했고, 리포터와 캐나다 외국인인 멜리사에게 라면을 건네주는 것으로 방송 촬영을 마쳤다.
“어이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군청에서 나온 이정모 부장은 6시 우리 고향 촬영팀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현장을 맡은 FD에게 봉투를 챙겨줬고, 따로 스태프들이 먹을 수 있게 라면 상자째 촬영팀의 차량에 실어줬다.
그렇게 촬영팀이 떠나고 군청의 사람들과 태양식품 제조 사람들이 나타나니 리포터가 엄청나게 미녀로 보이던 ‘군대병’이 사라졌다.
“임 이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진짜 메소드 연기였어요. 시골의 젊은 총각이 백인 여자가 안기니 굳어 버리는 그 표정이 압권이었습니다.”
“찐따 같았죠? 하하하.”
“이사님 덕분에 방송이 나름 재미있게 나갈 것 같습니다. 저도 며칠 집에 못 들어갔는데, 결과가 좋을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정모 부장은 촬영팀이 오는 며칠 동안 제대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준비를 했는데, 낙후된 자신의 고장을 위해 열정을 쏟아낸 것이었다.
***
[이정모 부장님. 정말 방송 때문이 아니라 한방 라면 맛있습니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있습니다. 삼계탕을 먹고 몸보신하는 거 같습니다. 진짜 건강한 맛입니다.]
문자에 이어 사진도 전송이 되었는데, 덩치 큰 남자들이 냄비를 둘러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 사진이었다.
“좋았어!”
이정모 부장은 방송 촬영팀의 FD가 보낸 문자와 사진에 기분이 좋았다.
이 문자가 입에 발린 소리라고 할지라도 FD나 직원들이 최대한 신경을 써주겠다는 그런 의미로 보여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촬영을 위해 지방으로 다니실 때 드실 수 있게 라면을 더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라면이 정식으로 출시되면 사 먹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맛이 있어서 직접 사 먹겠다는 문자에 이정모 부장은 다음날부터 한방 라면을 팔 수 있는 TF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네? 군청에 직원을 한 명 파견해 달라고요?”
“6시 우리 고향이 방송이 되면 주문 관련해서 연락이 엄청 올 겁니다. 그때 주문을 받고 하는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물론, 인건비 부분은 군청에서 부담을 합니다.”
본래 300만 개를 생산한 이후 군청에서 판매를 하고 남는 것은 거산의 유통망을 통해 처리를 하려고 했었다.
헌데, 군청도 나름의 유통 채널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서 나름대로 판매를 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군청 홈페이지에서 바로 링크된 지역 특산물 판매 쇼핑몰이 있었는데, 거기에 한방 라면을 올려 팔겠다는 것이었다.
“홈페이지에서 판매가 되는 것도 있겠지만, 임 이사님도 알다시피 6시 우리 고향 시청자들은 연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홈페이지에서 주문하는 게 힘들 겁니다. 아마 대부분이 전화로 주문을 할 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태양 식품제조에서 그런 주문 전화를 받고 발송 업무를 해줄 직원 한 명을 좀 보내 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지만, 갑자기 없는 직원을 보내줘야 하니 난감했다.
“이서야, 군청에서 임시로 일할 친구 없어? 라면 판매관리 하는 일이고. 직(職)은 우리 소속이야.”
“당분간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죠?”
“그래야겠지.”
“음. 그럼 제가 아는 애 부를게요. 저랑 같이 살면 되고, 근태관리도 제가 할게요.”
“땡큐! 이서가 최고다!”
***
“오 시작한다.”
중간 광고가 없는 KBC1 채널의 특성상 뉴스 다음에 바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내가 방송에 나온다고 이종민과 김민욱까지 다 모여서 시청을 했다.
스튜디오에서 몇 명이 이야길 하고 어디 지역에서 뭐가 좋다며 한참을 수다를 떨더니 현장 리포터를 연결한다며 각 지역에서 찍은 프로그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장수마을로 유명한 경남 산청에서 전해온 소식인데요. 라면 하면 인스턴스 음식인데, 바로 이 라면을 먹고 건강을 지키는 분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김민희 리포터 나와주세요~!]
“네. 건강하고는 멀 것 같은 라면이 오히려 건강하게 해준다고 해서 찾아왔는데요. 바로 이겁니다. 산청 한방 라면!”
여자 리포터의 방정맞은 진행과 캐나다 백인인 멜리사의 좌충우돌 시골 기행기가 나오며 한방 라면에 들어가는 재료를 찾는 순서가 되었다.
“와! 진짜 이렇게 보니깐 이사님 영농 후계자 포스가 나는데요. 마그마 모자가 압권인데요.”
그리고, 가까이 붙은 여자 리포터를 힐끔거리는 모습과 공장에서 멜리사가 안기며 개그를 할 때 어버버 거리는 모습까지 영판 시골 영농후계자의 모습이었다.
“큰일이네 내가 봐도 찐따 같잖아.”
메소드 연기가 너무 과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순박한 영농 후계자가 재료를 납품해서 라면을 만들고 있다는 스토리는 티비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왠지 모를 믿음을 주었다.
“이야! 이거 김민희 리포터가 먹는 것을 보고 저도 궁금했는데, 정말 몸에 좋은 삼계탕과 약초의 맛이 나는데요.”
“맞아요. 그 약초의 냄새도 딱 정당해요. 정말 몸에 좋은 걸 먹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군청에서 방송국에 얼마를 줬는지는 몰라도, 스튜디오에서 직접 라면을 끓여 먹으며 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름 세련되게 차려입은 중년의 연예인 패널들은 여러 미사여구를 써가며 국물맛이 좋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군수님이 진짜 방송국에 힘 많이 쓰신 거 같네요.”
***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상경했던 정승훈은 고향 산청을 떠나온 지 15년이나 되었었다.
명절에나 가끔씩 고향인 산청에 내려갔었는데, 채널을 돌리다 우연찮게 자기 고향인 산청군 송경리의 모습이 보이자 채널을 멈추었다.
산자락에 펼쳐진 밭에서 생산되는 배추와 무는 여전했다.
그리고, 무청을 잘라 시래기를 만드는 모습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부모님을 도왔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다 귀향해서 라면 공장에 시래기를 납품하는 일을 한다는 젊은 농군을 봤는데, 젊은 나이에 시골로 내려갔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이었다면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송 스튜디오에서 패널들이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을 보니 괜히 출출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이 한방 라면을 드시고 싶으시죠? 헌데, 안타깝게도 이 한방 라면은 산청군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고 해요. 지역 특산품이기 때문에 군청 홈페이지와 전화로만 구매가 가능하세요. 여기 아래로 안내되고 있는 번호로 연락하시면 구매가 가능하십니다.”
정승훈은 바로 전화기를 들어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 뚜 뚜 뚜!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알림음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산청에서 판매되고 있는 말린 시래기와 라면을 20봉지 구매했다.
고향 산청의 약초 내음이 섞여 있는 건강한 라면이라는 생각에 빨리 택배가 도착하길 빌었다.
그리고, 괜히 부모님도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방송에서 장수지역으로 산청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는 부모님이 생각난 것이었다.
“어 엄마, 테레비에 우리 동네가 나오더라고, 그래서 전화해 봤다. 몸 아픈 데는 없재? 그래 나는 게안치.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엄마도 그 한방 라면이라는 거 묵어봤나?”
***
군청에서 전화 주문을 받던 이서의 친구 김영은은 밤 9시가 되어도 퇴근을 하지 못했다.
방송을 군청 직원들과 다 같이 보고 있으니 그때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지역생활과의 모든 직원들이 다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 주문 전화가 밤 9시가 넘어서도 계속 오는 것이었다.
더구나 전화로 주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라 목소리를 크게 해서 수기로 받아적는다고 힘들었다.
그렇게 주문 받은 수기를 다시 타이핑으로 쳐서 주문을 확정하면, 군청 창고에 쌓여 있는 라면을 직원들과 함께 택배로 보내었다.
이런 판매량이 매일 김이서에게 보고되었고, 임건호도 그 자료를 보았다.
“하루에 1~2만 개씩 팔아서는 힘들겠는데.”
6시 우리 고향 방송이 나간 이후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있긴 했지만, 이런 판매량으로는 절반 가까운 라면들이 유통기한을 넘길 것 같았다.
거산에 연락을 해서 전국으로 판매해 달라고 유통 계약을 맺어야 할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괜히 우리가 먼저 연락을 해서 우리가 이런 지역 라면 작업을 하고 있다고 먼저 알리기는 싫었다.
산청군이 아니라 전국 광역시급으로 지역 라면을 하나 더 따낸 이후로 거산과 접촉을 해야 했다.
거산이 뛰어들더라도 먼저 앞서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
“이사님. 그런데, 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요.”
이서가 군청의 매출을 정리하며 궁금한 게 있다고 물었다.
“뭐가 이해 안 가는 건데?”
“이 상표권 있잖아요? 이걸 왜 지방 자체 단체에 넘겨야 하는 거예요? 그냥 우리가 들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