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앉아서 돈 벌기. (2)
“영업을 게임으로 생각하라고요?”
“그래. 영업은 노가다 RPG 게임이야. 요즘은 무슨 게임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때는 일본에서 나온 JRPG 게임을 많이 했어. 드퀘라고 알아?”
“이름은 들어본 거 같습니다.”
“요즘도 후속작이 나오긴 하는데, 한국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긴 해. 헌데, 우리 때는 그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했어. 필드에 나가서 몬스터와 만나서 싸우고 사람을 만나서 퀘스트를 얻고 하는 게 신세계였거든.”
“와우도 비슷합니다. 사람들 만나고 퀘스트 하고 하는 건 같습니다.”
“전혀! 안 비슷해 달라. 와우에 비하자면 드퀘는 그냥 노가다야. 필드에서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몬스터를 만나서 계속 싸워야 하는 노가다 게임이야. 그런데, 그런 노가다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알아?”
“몬스터를 잡았을 때 주는 아이템 때문 아닙니까?”
“그래 맞아. 아이템, 레벨 업 같은 보상! 필드에서 이동이 힘들 정도로 몬스터와 만나서 싸우다 보면 레벨업하고 아이템 모으는 게 재미있었어”
“보통은 어느 순간 되면 노가다라고 다 싫어하는 거 아닌가요?”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난 달랐어. 계속 몬스터들을 잡다 보면 처음에는 8번을 때려서 잡던 놈들도 어느 순간이 되면 한방에 다 죽더란 말이야. 내가 장비 모으고, 레벨 업을 해서 강해진 거라는 말이지. 영업도 마찬가지야. 여기가 차이나타운 필드인 거야.”
이 실장이 갑자기 차이나타운이 게임 필드라고 하니 김민욱은 어이가 없었다.
“잘 봐. 어제 갔었던 여락원 중국집에서 짜장을 먹고 인천 짜장라면을 비치해서 팔자고 했을 때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바로 나가라고 했잖아.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되었어?”
“이야기라도 들어 줬습니다.”
“그래. 그거야. 게임하고 같다고. 어제는 NPC와 만나긴 했는데 바로 쫓겨났고, 오늘은 그래도 NPC와 인사라도 하고 이야기라도 했잖아. 게임의 레벨 업과 같아. 계속 들려서 만나고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레벨업 시키는 게 바로 영업이야. 그럼, 우리 퀘스트는 뭐겠냐?”
“인천 짜장을 가게에 비치시키는 거겠죠?”
“그래. 몇 번 만나고 친해져야 우리 퀘스트가 달성될까?”
“아마도, 만랩이 되어야 되겠네요.”
“그래. 드퀘든 와우든 영업이든 같은 거야. 계속 노가다하는 거. 그리고, 그 퀘스트 달성을 하면 보상이 오는 거. 어때 퀘스트 하러 갈래?”
“네. 실장님. 이미 파티 맺고 여기 필드로 왔잖아요.”
“하하하. 그래 우리가 파티였지. 가자.”
하지만, 그렇게 짜장 파티를 맺고 퀘스트에 도전했던 두 사람은 나흘 넘게 퀘스트를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게임으로 생각해서 영업을 즐기라는 말이 맞았는지 김민욱도 퇴짜맞는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웃을 수 있었고, 어떻게 하면 NPC와의 친밀도를 올려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까로 영업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사장님. 돈도 먼저 주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팔리면 그때 수수료 20% 떼고 주시면 됩니다. 여기에 비치해두고 팔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 중국집에서 짜장라면을 파는 게 어디 있어. 자기 살 떼먹는 거지. 자기 살 떼먹는 일을 우리가 왜 해?”
“사장님. 1984년도에 짜파게티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렇게 말이 나왔지만, 그때도 중국집의 매출이 줄어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아 됐고, 일 없으니깐 나가봐요. 그리고 여기 와서 밥 먹어줘서 좋긴 한데, 이렇게 귀찮게 계속하려면 이젠 안 왔으면 좋겠네.”
이제 오지 말란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결국 오늘도 퀘스트 실패였다.
“이봐 젊은이. 내가 밥 먹으러 올 때마다 그 인천 짜장면을 들고 와서 영업을 하는데. 그걸 꼭 중국집에서 팔아야 하는 거야?”
“아닙니다. 어르신. 꼭 중국집에서 팔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우리 가게에 한번 놔두고 팔아 보지. 이야기한 거처럼 선불로 돈 낼 필요는 없는 거지?”
“네. 그런데, 어르신은 무슨 가게를 하시는 겁니까?”
“요 옆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고 있어. 따라와 봐.”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집도 많았지만, 외부 관광객들을 위한 2~3평짜리 작은 기념품 가게도 있었는데, 노인은 그런 가게의 주인이었다.
“저기 염주 옆에 한번 쌓아놔 봐.”
노인의 말에 김민욱은 염주 옆에 자리를 마련해서 인천 짜장면을 보기 좋게 쌓았다.
안으로 들어갔던 노인은 택배 상자에서 뜯은 거 같은 사각형 종이를 들고 와서는 매직으로 대충 휘갈기듯이 글을 써서 라면 앞에 세워 뒀다.
[인천에서만 파는 인천 짜장면. 기념품으로 가성비 상타치. 5개에 2500원! 와 싸다!]
마치 지렁이가 구불러 가는 듯한 필체로 쓰인 홍보 문구는 뭔가 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
“아니 쌤들 미친 거 아냐? 차이나타운에 왜 수학여행을 오는 건데? 중국집 구경이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왜 중국집만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수학여행을 와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청나라 조계지랑 일본 조계지가 저기에 있데. 그리고 그때 지어진 일본식 건물도 있다는데.”
“그런 건 일식집 가도 다 있거든.”
“중국집, 일식집 구경하러 수학여행 오는 거 진짜 노 이해다 노 이해.”
입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떠들어 대었지만, 장소만 정해주고 자율적으로 돌아다니게 한 수학여행이다 보니 반장이나 나름 조사를 하고 온 아이들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경을 했다.
“그런데, 여기 기념품은 뭐 파냐? 집에 엄마한테 사줄 거 하나 사야 하는데.”
“차이나타운이니깐 탕후루?”
“우리 엄마가 애냐? 나도 설탕 쳐 발린 건 안 먹는데 울 엄마가 먹겠냐?”
“그럼, 오! 저기 기념품 가게 있네. 저기 가서 고르자.”
한 명이 수학여행 기념품을 사기 위해 움직이자 또 애들이 우르르 몰렸는데, 기념품 가게에는 중국산으로 보이는 불상이나 공자상, 부채, 도장, 염주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진짜 할배들만 좋아하는 기념품을 팔고 있네.”
“그러게, 살 거 없는데. 엇? 저건 뭐지. 가성비 상타치 기념품? 야 저거 봐봐. 인천에서만 파는 거래. 저거 본 적 있냐?”
“인천 짜장면? 처음 보는 짜장면인데, 진짜 인천에서만 파는 건가?”
“가성비가 진짜 좋네. 2500원짜리 기념품이면 진짜 싸네. 먹을 수도 있고.”
“그러게. 어디서 나온 거지? 스타라면? 너네 아냐?”
“알지 스타 겜 몰라?”
“야이 띠바야 게임 말고, 라면!! 이거 중국산 아냐? 아, 마데인 코리아네. 그럼 오케이지.”
“일단 가성비 좋아서 난 하나 사본다. 2500원이면 진짜 가성비 기념품이다.”
“나도 하나 살래. 아저씨 이거 하나요!”
중국산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기념품들은 사실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다 비슷하게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인천에서만 파는 인천 짜장면이라고 하니 집에 들고 가기 좋은 지역의 특산 기념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다들 한 봉지씩 챙겨 들었다.
그리고 짜장면이 팔리는 것을 본 다른 기념품 가게 사장들도 인천 짜장면을 가판대에 올려두기 시작했다.
[인천에서만 파는 짜장면! 여행 기념품으로 최고예요!]
***
이정복 시장은 오늘도,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정춘이란 중국요릿집에서 인천지역 청년회 모임에 참여하여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야, 이게 진짜 기념품 중에서는 최고 가성비인 거 같다.”
“그러게, 난 두 봉지 10개 샀어.”
어디의 교복인지는 몰라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금색으로 부들대는 봉지를 들고 다녔는데, 그걸 본 이정복 시장은 아이들이 뭘 저리 사 들고 다니는지 궁금했다.
저게 뭔가 싶어 살펴보다 보니 기념품 가게 매대마다 금색의 비닐 패키지의 인천 짜장면이 놓여 있었다.
“김 보좌관 저거 전에 본 그거 맞지?”
“네. 맞습니다. 그때 지역 특산 짜장면을 팔자고 했던 그 사람들 물건입니다.”
“그런데, 저걸 왜 기념품 가게 상인들이 파는 거야? 그리고, 왜 애들이 다 한 봉지씩 들고 있는 거고?”
이정복 시장은 술에 알딸딸하게 취해있었지만, 매대 위에 놓인 짜장면을 봤고, 택배 박스를 대충 뜯어 쓴 것 같은 가격표를 봤다.
[...최고의 가성비 기념품 ‘인천 짜장면’...]
기념품 판매대마다 비슷하게 쓰여 있는 문구를 보고 이정복 시장은 술이 확 깨는 거 같았다.
한잔하고 나온 중국집 공정춘에 들어가 물었다.
“원 사장! 저기 밖에 기념품 상인들이 파는 저 인천 짜장면 저거 때문에 매출이 떨어지거나 했어?”
“네? 아아, 인천 짜장면요? 저게 팔리는지 이제 한 일주일 된 거 같은데 매출 변화는 그리 크게 없는 거 같은데요.”
“뭐? 그게 말이 되는 거야? 짜장면집 앞에서 짜장라면을 파는데. 매출이 안 떨어지다니?”
“에이 시장님. 우리 집 짜장 드셔보셨지 않습니까? 저런 짜장라면이 우리 집 짜장이랑 비교가 됩니까? 그리고 저런 짜장라면에 밀려서 매출이 떨어지는 중국집이라면 문을 닫아야죠.”
이정복 시장은 공정춘 사장의 자부심 가득한 말에 혼자서 쇼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중국집을 하는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자기 혼자만 중국집을 걱정해서 인천 짜장면을 터부시했던 것이었다.
헌데, 저리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다 한 봉지씩 사갈 정도라면 경쟁력이 충분히 있는 것 같았고, 관광 상품화시켜 자신의 업적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정춘 가게를 나와 기념품 가판대를 접고 있는 주인에게 물었다.
“인천 시장 이정복입니다. 이 짜장면이 기념품으로 잘나갑니까?”
“아이고! 시장님! 이거 몰라뵙고 인사를 먼저 못했네. 아, 글치 이 짜장면이 요즘 이 거리에서 제일 잘나갑니다. 전국에서 근대거리역사관이나 차이나타운 옆 조계지를 보러 수학여행을 오는데, 애들이 다 기념품으로 한 봉지씩 사 들고 가고 있습니다.”
“그럼 마진은 어떻습니까?”
“한 봉지 팔면 500원 남는데, 나름 짭짤합니다. 아니지, 그냥 앉아서 놔두기만 하고 몇만 원 버는 겁니다. 물건을 직접 가져다주니 우리는 앉아서 팔기만 하는 거라. 꽤 좋습니다.”
박스떼기 가격표에 쓰여 있는 거처럼 가성비 기념품으로 이만한 특산품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비서 내일 이 사람들...이름이 뭐였지?”
“그게 저도 잘...”
“스타라면에 이종민이!”
짐을 정리하던 기념품 사장이 크게 외쳐줬다.
“아예 사장님 감사합니다. 김 보좌관. 내일 거기 연락해서 한번 보자고 하세요.”
***
대회의실에 이종민과 김민욱이 PPT를 하고 있었다.
“저희가 직접 찍은 영상입니다.”
단체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이 여기저기 인천을 돌아다니다, 기념품 가판대 앞에서 고민을 하다 인천 짜장면을 집어가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설문지를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렸다.
“인천에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관광기념품에 대한 설문을 했습니다. 인천 하면 떠오르는 관광기념품이 있느냐고 물으니 전혀 없다가 89%였습니다. 차이나타운의 호빵이나 탕후루 같은 중국에서 유래된 군것질거리가 뒤를 이었고요. 그래서 어떤 기념품을 사 갈 거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사가지 않는다고 선택한 사람이 92%였습니다.”
팩트 폭행에 인천시 관광진흥과의 최민기 과장은 고개를 숙였다.
“왜 아무것도 안 사가냐고 물으니 다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념품들이 다 중국산 같아서 사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전통공예로 만들어지는 기념품들도 있긴 있었으나, 다들 그런 공예품은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국산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인천 짜장면은 국내 생산이며 인천에서만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관광객들에게 선택을 받았습니다.”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고 해운대 라면이 나왔다.
“1년에 5천만 개를 판 해운대 라면은 이제 전국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운대 라면처럼 반드시 전국구로 팔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인천시에 가장 필요하고 부족한 관광 특산품으로만 팔아도 그 값어치 이상의 결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