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바로 이거다!
이정복 시장은 이종민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해운대 라면처럼 전국 마트나 편의점에서 팔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오직 인천에서만 파는 지역 특산품으로 해야 좋을지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익사업으로 돈을 벌기보다는 인천에서만 구매 가능하다는 유니크 성에 무게를 두기로 한다.
관광 상품화 연수를 위해 시의회 사람들과 일본에 갔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어느 지역에서만 파는 지역 명물, 특산품이 있었다.
말차나 양갱, 오코노미야끼 같은 것들이 지역 특색을 가지고 그 지역에서만 팔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을 다녀올 때는 무조건 그 특산품을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한다고 했었다.
그런 말차나 양갱과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오직 인천에서만 파는 짜장라면이 있다면 지역 특산품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관광진흥과에서 올린 서류도 생각이 났다.
며칠 전 6시 우리 고향에 나왔다며, 산청군에서 한방 라면을 지역 특산품으로 팔고 있다는 서류였다.
그 산청군의 한방 라면도 바로 이 스타 라면이라는 업체에서 맡아서 하고 있었다.
이미 실적이 있다면 인천시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예상하는 사업 비용은 얼마 정도이지?”
“산청군의 예를 들면 초도 생산량은 300만 개이며, 레시피와 상표권이 모두 다 포함된 패키지 형태입니다. 추가 변경되는 조건에 따라 약 30억 정도가 소요됩니다.”
300만 개면 인천시민들에게 1개씩 다 돌릴 수 있는 양이었고, 관광객들에게 이걸 판매한다면 그만큼의 수익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600만 개로 하지. 300만 개는 시민에게 300만 개는 관광상품으로. 다만, 내가 먹어보니 뚜렷한 특색이 없었어.”
“별첨 된 고추기름을 넣어도 그랬습니까?”
“그래. 인천의 짜장면은 바닷가기 때문에 해물이 풍성하다고. 해물을 좀 더 넣어서 해물 맛이 났으면 좋겠어.”
“물론, 가능합니다. 사업비만 주신다면 다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짬뽕도 추진하지. 짜장을 먼저 해 보고 반응이 좋으면 인천 해물짬뽕도 추진하도록 하자고. 관광 진흥과의 최민기 과장이 이 일을 책임지고 담당하세요. TF팀을 만들어야 할 것 같으면, 선거전에 미리 만들어야 할 거야.”
“네. 그 전에 구성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
“최 과장님. 해물을 넣은 새로운 맛의 짜장면을 만들려면 몇천만 원이 들어가게 됩니다. 계약 전에 그렇게 먼저 진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맛을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맛에 맞게 생산라인을 구성하는 데 돈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럼, 레시피 맛 수정은 3번까지 수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서 MOU를 먼저 맺읍시다. 레시피 통과되면 정식 계약을 하고, 생산 후 1차 초도 분이 납품되면 사업비를 다 입금하는 것으로 하지요.”
이종민 실장은 계약의 전 단계로 MOU 서류까지 받아들게 되자 자신이 맡은 첫 일을 무사히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실장님. 퀘스트 달성했습니다.”
“그래. 진짜 게임처럼 퀘를 달성했네. 하하하.”
“그럼 퀘 보상은 뭡니까요?”
“한잔하러 가야지! 내일 산청으로 내려가야 하니깐 오늘은 좋은데에. 가 있으려나?”
이종민은 제약 영업을 하던 습관처럼 좋은 데로 가자고 말을 하려다 말을 돌렸다.
영업을 따내었다고 양주 한잔하고 아가씨를 불러 노는 것이 어떻게 보면 기본 같았지만, 이제 영업의 기본을 배운 김민욱에게는 그게 독이 될지도 몰랐다.
그저 맛있는 한식집에서 제대로 밥을 먹었고, 간단하게 성공을 축하하곤 일찍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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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들 덕분에 인천시에서 이걸 정식으로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가 올 수가 없습니다.”
차이나타운의 기념품을 파는 어르신들게 들려 일일이 그 동안 고마웠다고 음료수를 사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특히나 가장 먼저 짜장라면을 팔아주겠다고 했던 장노인에게 김민욱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에헤이, 그럼 이거 납품은 어디서 받아야 하는 거야? 따로 업체 없어?”
“이게 아직 정식 계약 전이라 계약하기 전까지는 판매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 인천시에서 짜장면이 나오게 되면 저기 편의점에서도 파는 제품이 되는 거야? 편의점에서 팔게 되면 우린 말짱 황인데.”
“그게, 일단은 인천 시청이나 관공서에서 판다고 합니다. 편의점이나 마트는 결정 난 게 없다 보니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에이. 아쉽네. 이걸로 좀 재미를 봤는데.”
“그럼, 이거 말고 다른 데서는 안 파는 그런 라면이나 짜장 없어?”
“산청군에서 나오는 라면이 있는데, 그건 산청군이 떡 하니 박혀 있어서 인천에서 파는 것은 힘들겠지요?”
“산청? 경남 산청? 거기 이름이 박혀 있으면 안되지. 그냥 한국 라면 코리아라면 같은 건 없어? 그런 게 있어야 해외여행 온 외국인들에게 팔 수가 있지.”
“한국 라면요?”
“코리아 라면요?”
기념품 가게 사장님의 말을 들은 이종민과 김민욱은 서로 눈을 마주 봤다.
둘 다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마음에서 울리는 말은 같았다.
[바로, 이거다!]
“그거 나오면 바로 여기로 들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런걸 만들어야 양놈들에게 팔아서 외화도 벌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런걸 만들어 오라고!”
“네. 어르신 그럼. 최대한 빨리해서 다시 한번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여길 지켜 주십시오.”
“건강한 건 되는데, 지키는 건 경찰이 해야지. 하하하. 젊은 친구들도 건강하게 다음에 보세나!”
이종민과 김민욱은 어르신들과 인사를 하곤 바로 고속 도로로 올라탔다.
이종민은 축구 생각을 했다.
82개 군청에서 나오는 라면이 2부리그의 축구와 같다면 특별시와 광역시에서 나오는 라면은 1부리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국 라면이나 코리아 라면으로 나라의 이름이 들어가는 거라면 리그가 아닌 월드컵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축구 리그의 인기가 별로 없는 나라라도 월드컵 때는 자기 나라의 팀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월드컵 대표팀이 국내에서 친선전을 해도 사람들은 빼곡하게 경기장을 채웠다.
바로 그 월드컵 국대와 같은 라면이 바로 한국 라면, 코리아 라면일 거라고 생각이 되었다.
내수는 물론이고, 수출까지 가능한 그런 라면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한국에서만 파는 태극기가 새겨진 한국 라면을 판다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기념하기 위해 라면을 집어갈 터였다.
반응이 좋다면 전 세계의 한국계 마트나 가게로 수출이 될 수도 있었다.
“실장님 참 웃기네요. 이사님과 라면을 준비하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했을 때는 이런 아이디어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기념품 가게 어르신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내셨을까요?”
“그게 짬밥이지. 차이나타운에서 몇십 년 동안 기념품을 팔았으니 어떤 게 바로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지.”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며 산청으로 내려왔고, 퇴근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임건호 이사와 김이서에게 바로 이야기를 했다.
“수출도 할 수 있는 한국 라면, 코리아라면이라...”
두 사람에게 이야길 듣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대한항공도 대한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깐, 한국 라면이나 코리아 라면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영문 이름도 KOREAN AIR잖아요.”
나름 해돋이 해맞이 상표 문제 이후 공부를 했는지 이서가 전례가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의견을 내놓았다.
“대한항공은 케이스가 좀 달라. 대한항공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는 민간기업이 아니라 공기업이었어. 정부 기관이다 보니 KOREAN AIR란 이름을 쓸 수 있었고, 그걸 안진그룹에서 받아가서도 고치지 않아서 그대로 그 이름을 쓸 수가 있는 거야. 우리는 그런 게 불가능해.”
“아아,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도 안 되는 거군요.”
김민욱은 상표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소리에 실망했다.
“그래 정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지. 하지만, 꼼수는 있지. 내가 전에 이거 보여줬지?”
건호는 서랍 구석에 있던 패키지 포장을 꺼내었는데, 지금과는 조금 다른 디자인의 해운대 라면 봉지였다.
“여기 봐봐.”
“해운대...인(人)! 라면요?”
“하하하. 그래. 처음 해운대 라면을 만들 때 혹시나 상표권이 나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서 해운대 인 라면도 같이 등록을 했었어. 이 한국 라면, 코리아 라면도 그렇게 꼼수를 써야지.”
“한국인 라면으로 등록을 하고 이렇게 ‘인’ 자는 작게 하는 거군요.”
“그래. 그렇게 하면 한국 라면, 코리아 라면이 가능하지. 자 그럼 이거 추진하기 위해서 무슨 맛으로 할지를 정하자고. 일단 밥부터 먹자!”
***
[한국 라면 컨셉 회의!]
매제인 최도협은 물론이고 라면 연구소의 직원까지도 모여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우선은 한국의 기본 맛인 매운맛을 기본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외국인들이 사 가는 것이니 맵지 않은 맛을 기본으로 해야 할지부터 난관이었다.
“칠곡에 공장이 있었을 때는 물론이고 이쪽 산청으로 와서도 외국에서 돈 벌러 온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라면이 나올 때마다 시식을 하고 리서치를 받아 둔 게 있습니다.”
총 213명의 외국인들에게 받은 결과지였는데, 다들 매운맛에 호불호가 강했다.
멕시코나 베트남, 태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자국에서도 고추를 먹기에 매운맛인 용심의 심라면을 맛있어 했지만, 몽골과 우즈벡, 러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은 매워서 심라면을 싫어했다.
몽골사람이나 러시아 쪽의 사람들은 컵라면류를 좋아했고, 담백하거나 느끼하게 마요네즈나 치즈를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에 온 원어민 선생들에게도 시식을 부탁하고 자료를 받았는데, 북미 사람들도 남미계가 아니라면 다들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흠. 극과 극이구만. 매운맛에 노출된 사람들은 매운맛을 좋아하는데, 고추를 안 먹는 외국인들은 다 싫어하니 어느 기준에 맞춰서 만들어야 할지를 모르겠어.”
“그래도 매운맛 아니겠습니까?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매웠다고 하는 것이 그냥 그저 그런 라면 맛보다는 오래 기억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반대로 너무 매워서 불쾌한 이미지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흠. 그럼 고춧가루를 스프에서 빼고 별첨 가루 스프에 고춧가루 양념을 넣어 제공하는 건 어떨까요?”
매움의 강도를 먹는 사람이 조절할 수 있게 별도로 제공하자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정답에 가까웠다.
“두 종류를 만드는 건 안 되는 겁니까?”
“두 종류를?”
“네. 매운맛과 안 매운맛으로 나눠서 파는 겁니다. 한국 라면은 매운 라면, 코리아 라면은 안 매운 라면으로 파는 겁니다. 그러면 별첨 스프로 맛을 만들기보다는 구매할 때 바로 선택을 할 수 있으니 더 편하지 않을까요?”
“흠. 그게 맞는 거 같은데. 매운 것과 안 매운 것의 라인업을 만들면 알아서 두 종류를 다 살 거니깐 이게 더 좋은 거네. 좋아. 이건 투 트랙으로 가보자고.”
매운맛은 회사의 연구실이 레시피를 짜기로 했고, 맵지 않은 맛은 호텔에서 외국인들을 더 상대해본 최도협이 만들어 보기로 했다.
“형님. 거산에서 제가 나오는 CF를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주위에서 다들 가게를 하라고 난리입니다.”
회의를 끝내고 나서는데 매제가 따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