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극단적인 맛.
“이런 스타일은 좀 아닌 거 같은데.”
부산에서 나름 유명한 의료 도매 시장인 평화시장과 진 시장에 왔으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단체복이나 회사 유니폼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몇 군데 있었음에도 다들 중공업 현장에서 입을 것 같은 작업복 위주의 옷만 있었다.
물론 창고에서 상자 까대길 치는 일을 할 때는 이런 옷이 딱이었기에 몇 벌 구매를 했고, 안전화도 저렴하기에 추가 구매를 했다.
하지만, 마음 편히 입고 출퇴근 할 수 있는 평상복 스타일의 근무복은 없었다.
“거산에 있었을 때 입었던 유니폼은 어디서 샀던 건지 알아?”
“거산은 국내 브랜드 디자이너 업체랑 계약을 맺어서 치수별로 납품을 받는데요.”
“디자이너? 헐. 어쩐지 때깔이 다르다 했다. 이런 작업복에서도 대기업은 차이가 나네. 우린 인원이 적으니까 디자이너에게 맡기진 못하고, 백화점에서 브랜드로 하나 집어서 사자.”
평화시장에 주차했던 차를 빼서 가까운 대현 백화점을 가려는데, 뭔가 방송 촬영이 왔는지 골목길이 왁자지껄했다.
뭔가 싶어 살펴보니, 떡볶이를 먹는 걸 찍고 있었다.
“아, 스게! 코와이!”
“난데고레 코와이네!”
“오, 일본에서 뭔가 촬영을 왔는가 봐요. 저 매운 떡볶이집 엄청 매울 텐데.”
이서의 말마따나 일본 연예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까지 쏟아내고 있었는데, 그런 고통스러운 모습을 사람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다.
“저 집 한국 사람이 먹어도 엄청 매운데, 일본 애들 내일 화장실 갔을 때 새로운 지옥을 보겠네요.”
“저 떡볶이가 그 정도로 매워?”
“네. 불 떡볶이라고 하는데, 입에 넣자마자 불에 데인 거처럼 매운 게 확! 치고 올라와요.”
“헐. 그렇게 매운데 장사가 되는 거야? 속 다 버리는 거 아닌가?”
“대표님 저 집 모르세요? 엄청 유명한 집이에요. 장사도 엄청 잘 되고요.”
“그래? 난 내가 안 먹어서 몰랐네.”
일본 연예인들은 매워서 난리를 피우면서도 떡볶이를 억지로 입안에 넣었는데, 몇 번 씹더니 도저히 못 참고 떡볶이를 뱉어내고는 흰 우유를 마구 마시기 시작했다.
“다메! 다메! 크아앗!”
오바를 하는지 우유를 얼굴 전체에 다 들이부으면서 난리를 치는데, 너무 매워서 정신없는 그런 모습에 다들 재미있다고 웃어댔다.
한국 사람이고 일본사람이고 간에 매워서 정신없어 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충분했다.
계속 보다 보니 불 떡볶이집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무려 5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평상시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고 하는지 빨리 먹고 갈 수 있게 서서 먹는 테이블까지도 있었다.
극단적인 맛을 싫어 했기에 떡볶이는 먹어도 매운 떡볶이는 안 먹었었다. 하지만, 장사가 잘되는 모습을 보니 괜히 한번은 먹어 보고 싶었다.
얼른 대현 백화점에 차를 주차하곤, 매운 떡볶이 골목으로 왔다.
아직까지 일본 애들이 방송을 찍고 있었기에 그들을 피해서 가장 한가해 보이는 떡볶이집에 들어가려 했다.
“사장님 그 집 아니에요. 저 집으로 가야 해요.”
이서가 나를 끌고는 다른 집으로 들어왔는데, 거기나 여기나 별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모 떡볶이 2인분, 튀김 1인분 주세요.”
“쿨피스랑 큰 우유도 하나씩 주세요”
내가 시킨 것에서 빠진 걸 이서가 주문했는데, 진짜 그렇게 맵나 싶었다.
가게 벽을 보니, 속병이 날 수 있다고 우유부터 먼저 먹으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고, 속병이 나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안내문도 쓰여 있었다.
저런 걸 보니 괜히 겁이 더 나긴 했고, 그에 반해서 얼른 먹어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겼다.
“네 나왔습니다.”
일단 떡볶이를 들어 냄새부터 맡았다.
킁킁킁!
“햐. 이거 고춧가루 엄청 매운 거 쓴 거 같은데, 냄새만 맡아도 매운 냄새가 풍겨 나오네.”
“아마, 캡사이신이 들어가서 그럴 거예요.”
이서가 떡을 하나 집었는데, 일반적인 떡볶이 떡이 아니라 큰 떡국 떡이었다.
나도 일단 떡부터 하나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음. 쩝쩝. 매콤한 맛이긴 한데, 그렇게 매운 건 아닌 거 같은 데에. 어어. 아! 왔다. 아아! 이거 오오!”
처음에 씹었을 때는 그냥 매콤한 맛인가 했는데, 4번 정도 씹자 혓바닥을 태우는 듯한 매운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곤,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매운맛이 입, 코를 거쳐 머리로 올라갔다.
“와아 이거, 혈압 오르는 건가.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진짜 장난 아닌데. 크윽. 너무 매워!”
입안이 화끈거리던 게 퍼져 머리 위로 매운맛이 올라가자, 왜 아까 일본인들이 맵다고 말을 동동 굴리며 왔다 갔다 하며 가만히 있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아아 미치겠다.”
나도 아까 그 일본인이 했던 것처럼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고, 쿨피스를 입에 머금고는 혀를 진정시켰다.
“이서야 넌 괜찮냐?”
“흐아! 저도 매긴 한데, 못 먹을 정돈 아니에요.”
“와 미쳤다. 이거 먹고 진짜 속이 괜찮은 거야? 와 대단하다.”
“대표님 그런 말이 있어요. 스트레스를 받아서 쌓여있는 사람일수록 매운맛을 잘 못 느낀다는 말요.”
“그럼 나는 스트레스가 없어서 매운 걸 엄청나게 느끼는 거야? 넌 스트레스가 많아서 매운맛을 잘 못 느끼는 거고?”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런 연구결과가 있데요. 스트레스가 쌓여서 속에서 막 터져 버릴 것 같은 울분이 쌓였을 때 매운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데요. 매운맛이 대신 열을 올려줘서 스트레스를 해소한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건 진짜 맵다!”
이서의 말을 듣고 가게로 오는 손님들을 한번 보니 확실히 특성이 보였다.
봉지 포장을 해가는 사람들은 주로 주부 같았고, 우리처럼 가게에 들어와 먹는 사람들은 근처 귀금속 매장의 여자직장인들 같았다.
다들 맵다며 ‘햐아 햐아!’ 거리면서도 잘 먹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라면 사리 하나요!”
“야 네가 떡볶이 2인분 다 먹은 거 같은데 라면 사리가 또 들어가냐?”
“이렇게 마무리를 해 줘야 한다고요. 잠시만요.”
이서는 후다닥 가게를 벗어나 편의점에 가더니 치즈 가루를 사 왔다.
그리고 나온 라면 사리를 떡볶이 양념에 잘 비비고는 위에 치즈 가루를 솔솔 뿌렸다.
“이렇게 한번 드셔 보세요. 맛이 다를 거예요.”
나도 치즈를 좋아했기에 포크로 스파게티처럼 돌돌 라면을 말아 먹어봤다.
“오오! 맛이 순해졌는데. 이야 이거 맛있다.”
“그렇죠? 이렇게 라면 사리 넣고 하니깐 적당하죠? 5개 가게 중에서 라면 사리 해주는 곳은 여기 밖에 없어요.”
“이야 너 자주 먹으러 오는가 보구나. 그러고 보니 집이랑도 가깝기도 하네. 아아, 그렇네. 아까 스트레스가 많으면 매운 걸 먹고 푸는 거라 했지. 이서야 미안하다. 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사장님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거 없어요. 그냥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잖아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는···. 그래서 퇴근하면서 여기에 들려서 매운 불 떡볶이를 많이 사가거든요.”
“난 진짜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이 매운 걸 즐겨서 먹다니.”
“나중에 퇴근 시간에 한번 보면 다들 집에 가서 매운 거 먹고 스트레스 풀려는지 직장인들이 많이들 사가요.”
“그래?”
그러고 보니, 남자들의 최애 음식이 제육볶음, 돈까스, 국밥일 때 여자들의 최애 음식은 떡볶이, 닭발, 곱창이라고 했다.
이 매운 떡볶이 골목을 살펴봤을 때도 여자들이 확실히 더 많았다.
여성 호르몬에 매운맛을 원하는 그런 것이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불 떡볶이라는 게 여기서만 파는 거야? 다른 데는 없어?”
“저기 저 집이 원조이고,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다른 집들도 들어선 거예요. 그러면서 서로 경쟁해서 더더더더 맵게 떡볶이를 만들다 보니 다른 지역의 불 떡볶이는 좀 싱숭생숭한 느낌이에요.”
“역시 뭐든 경쟁이 붙어야 하는 거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지금 라면 업계의 1위는 용심의 심라면이었다.
80년대 후반에 나왔을 때 매운맛으로 라면계를 평정했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매운맛이라고 후하~ 거리며 먹었지만, 그 매운맛에 사람들이 길들었는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었다.
결국, 국민 라면에 오르며 90년대를 넘어 지금 2011년까지도 라면 매출 1위를 찍고 있었다.
“이서야, 넌 용심 심라면 먹고 스트레스를 풀 생각은 안 해봤어?”
“심라면은 조금 맵긴 하지만, 그렇게 맵지가 않아요. 그 정도로는 안 될 걸요.”
“그래? 그럼 그것보다 매운 라면은 없고?”
“틈사이라면이 하나 있긴 해요.”
“아, 틈사이라면! 확실히 심라면보다 매웠지. 틈사이라면 판매율이 좋았던가?”
“틈사이라면은 편의점 PB상품이었어요. GL25시 편의점에서 필도 라면에 주문생산한 건데, 그게 편의점에서 1위 매출 찍었었어요.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팔 거예요.”
“그래? 그럼 이거 매운맛에 대한 수요는 확실히 있다는 거네. 그것도 심라면보다 더 매운맛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일단 너무 극단적인 맛을 싫어해서 잘 안 먹지만, 오늘 보니 이런 극단적인 매운맛을 찾는 수요가 의외로 많은 듯했다.
“그런데, 매운 것을 국물 라면으로 먹는 건 좀 호불호가 있어요. 국물만 맵고, 라면 면발은 안 매우니까요.”
“그렇네. 그러면 아예 물을 적게 해서 자박하게 끓여내는 건? 떡볶이처럼 국물 없게 끓여낸 매운 라면이면 떡볶이의 느낌도 날 것 같은데.”
“그렇게는 안 해 먹어 봤어요. 근데, 이런 불 떡볶이처럼 맵게 라면 사리를 할 수 있다면 사 먹어 볼 것 같아요.”
이서의 말에 삘이 왔다.
“이서야 빨리 일어나라.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가 아니다. 사무실 들어가자.”
“아이참 사장님. 이러니깐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 거거든요.”
“야 떡볶이 더 사 줄게 허리업 허리업! 무브무브!”
***
사무실에 바로 들어와서는 기존에 있는 라면을 자박하게 끓여서 떡볶이처럼 되는지 실험을 했다.
하지만, 그냥 괴상한 짠맛의 라면이 되었고, 떡볶이 근처의 맛도 아니었다.
“라면 맛 자체가 소금과 간장 베이스로 간을 하기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아예 스프 조성 자체를 고춧가루 형태로 가야 떡볶이 맛을 낼 수 있다는 거겠네.”
“그렇지요.”
일단 기존의 라면 스프로는 안된다고 나오자, 바로 매제에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고추장 가루요? 고춧가루가 아니라 고추장 가루 맞지요?”
“그래. 떡볶이 라면을 한번 해 볼까 하는데, 고추장을 가루로 만드는 게 가능한 거야?”
“가능하지요. 그리고 이미 시판되어서 나와 있습니다.”
“그래?”
매제는 전문 조리점에서 쓰는 고추장 가루가 있다며 알려주었고, 그런 가루로 떡볶이를 한다고 했다.
“단체 급식에서 고추장을 직접 퍼 넣어서 하는 곳도 있지만, 고추장 가루로 하면 용량 g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서 단체 급식 쪽에서는 꽤 많이 씁니다.”
최도협은 업장 전문 소스류를 취급하는 가게를 알려주었는데, 진짜 3종류의 고추장 가루가 시판되고 있었다.
일단 이 3개를 다 주문해놓고는 매제에게 일식 라멘 프랜차이즈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물었다.
“그냥 프랜차이즈 안 하기로 했어요. 그때 형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진짜 가게 아무나 하는 거 아닌 거 같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 꼴통 감자탕이랑 순대국밥 사장이랑 무슨 일이 있었어?”
“네. 진짜 우리나라는 사기꾼들이 살기 좋은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