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불떡 볶음면. (1)
“그게 무슨 말이야? 사기를 당한 거야?”
“네. 시작 전에 형님에게 물어보고 확실히 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형님.”
“돈을 크게 잃은 거야? 얼마나 사기당한 건데?”
“그게 돈은 잃은 건 거의 없는데, 일본 라멘 아이디어를 그대로 빼앗겼습니다.”
“돈 사기를 안 당했다니 불행 중 다행이네. 준비하고 하는 시간을 빼앗긴 거긴 하지만, 어쩌겠냐. 그래서 그 꼴통 프랜차이즈에서 일본식 라멘집을 너 빼고 열어 버린 거야?”
“네. 그냥 저를 빼고 자기가 만든 거처럼 ‘꼴통 라멘’으로 가게를 열어 버리더라고요. 이런 프랜차이즈 관련 전문 변호사도 찾아가 봤는데, 음식을 만들 때 들어가는 레시피는 자체 개발한 특징적 소스가 없다면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포기 상태입니다.”
“제대로 뒤통수 맞은 거네. 처음 시작할 때 서류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게요.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제가 너무 사람을 믿었어요.”
“그럼 그 일본식 라멘은 봉지면으로 해서 팔 수는 없는 거냐? 같은 맛을 낼 수만 있으면 확 만들어서 뿌려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팔 수는 있겠지만, 생면으로 해야 하기에 그 면발 맛은 구현이 힘들 겁니다. 일본에서도 생면을 밀봉해서 팔긴 하지만, 그렇게 인기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네. 그냥 돈사기 안 당한 걸 다행으로 여기고 넘어가야겠네. 수업비네.”
“네. 하여튼 이거 때문에 요즘 뭘 해도 기운이 안 납니다.”
본래 머리가 약간이라도 좋은 사람들은 자신은 똑똑하기에 사기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사기당한 사람을 보면 ‘아니 딱 봐도 사기 같은데 그걸 속아?’ 하면서 머리가 나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본인이 사기를 당하게 되면 평소에 자신은 똑똑하다고 여겼기에 더 큰 충격을 받기 마련이었다.
똑똑한 자신의 프라이드가 깨진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우울해하고 더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도협이가 바로 그런 케이스 같았다. 멘탈에 제대로 상처를 입은 거 같았다.
“그럼 정신 좀 차린다는 생각으로 레시피 하나 만들어다오.”
“떡볶이 라면요?”
“그래. 그냥 떡볶이 라면이 아니라 엄청 매운 떡볶이 라면을 만들 거야. 너 대현 백화점 맞은편 골목에 있는 불 떡볶이 먹어 봤냐?”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엄청 맵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요리사들은 매운 걸 먹고 나면 다른 음식 맛을 아예 못 느낄 정도가 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매운 떡볶이를 잘 안 먹으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이야기만 듣고 맛을 보진 않았습니다.”
“그래? 흠. 그럼 안 되겠네. 엄청 매운 거를 만들려면 누구한테 레시피를 부탁해야 하려나.”
“레시피 정도는 제가 해드려도 되긴 한 데, 그 불 떡볶이집의 소스를 사는 건 어떤가요? 그 집이 엄청나게 매우면서도 맛이 있으니깐 사람들이 오는 거잖아요. 그냥 그집 소스를 돈 주고 사고, 그 비율에 맞춰서 스프화하면 될 것 같은데요.”
“오오! 그렇게 레시피를 사고, 파는 게 가능한 거야?”
“네. 안 파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의 맛집에서는 그렇게 소스 제조법, 된장국 끓이는 법들을 팝니다. 막국수나 냉면의 경우에는 면 뽑는 법도 파는걸요.”
“오 신기하네. 근데 웃기네. 레시피는 저작권이나 특허 도움을 못 받는다면서 그런 거래는 또 되는 거야?”
“권리금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법적으로는 보호받지 못하는 돈인데, 분명히 주고받고 하는 거니깐요.”
“권리금이나 요리법에 대한 노하우 금전 거래는 왠지 우리나라에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네. 응? 잠시만.”
권리금이나 비법 소스의 거래를 생각하다 보니 이것도 금방 프랜차이즈가 가능할 것 같았다.
“도협아. 만약에 내가 그 불 떡볶이집에서 비법 소스 제조법을 샀어. 그리고 그 소스를 가지고 프랜차이즈로 전국에 체인점을 내게 되면 어떻게 되냐?”
“음. 이건 변호사한테 상담을 받아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애초에 처음 소스를 살 때 프랜차이즈를 할 거라고 사면 되지 않을까요?”
“오오. 그렇네. 돈을 더 주더라도 그렇게 사면 구두 허락을 받은 거라 법적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네.”
“그게 아니면, 그 불 떡볶이 골목에 가게가 몇 개 있잖아요. 거기 있는 가게들 소스를 다 사서는 섞으면 되죠. 그러면 다른 가게의 소스 그대로 프랜차이즈를 하는 게 아니니 법적이나 도의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여러 개의 섞은 소스는 우리의 노력도 들어간 것이라 자체 개발한 것과 같은 거니깐요.”
“이야! 이거 왠지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거랑 같네.”
“그렇긴 한데, 그래도 모르니깐 요식업 프랜차이즈 관련 변호사를 한번 만나서 문의해 보세요.”
“그래야겠다. 그럼, 만약 된다고 하면 네가 떡볶이 프랜차이즈 한번 해 볼래?”
사기를 당해서 꿍해 있는 거보다는 자기가 뭔가를 해 보겠다고 설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제가요?”
“그래. 너 가게 하고 싶어 하잖아. 괜히 양아치 같은 프랜차이즈 사장에게 휘둘리기보다는 그냥 네가 처음부터 하면 되지.”
최도협도 이야길 듣고 보니 땅기긴 했다.
별도의 소스 개발 없이 비법 소스들을 몇 개 사고 거기에 재료 한두 가지를 추가해서 소스를 만들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형님. 이걸 처음부터 프랜차이즈로 할 생각 없이 단일 매장으로 하죠. 처음부터 크게 잡으면 안 될 거 같아요.”
“크하하하. 한번 당하고 나니깐 이제 정신 좀 차린 거 같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생각해보니 그때 진짜 뭐에 홀렸던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케이. 일단 소스 구매하고 할 테니깐 즉석 제조 봉지 스타일이랑 단일 매장이랑 같이 한번 추진해보자. 엄청 매운 음식이 호불호가 있지만, 그에 반해서 매니아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판매되겠지.”
***
“불 떡볶이 소스를 사신다구요?”
“그래 이서야. 변호사에게 문의해 보니깐 2곳 이상의 업장 소스를 구매해서 섞으면 독창성이 인정되어 나중에 그 업체에서 법적으로 소송이나 그런 걸 못한다고 하더라.”
“소스를 산다라. 그럼, 돈은 얼마까지 내실 건데요?”
“5천만 원에 3곳을 한번 해 보고 안 되면 2곳이라도 소스를 사는 걸로 하려고. 그 정도 돈이면 팔 거 같냐?”
“흠. 저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긴 한데 한번 들어 보실래요?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고, 돈은 천만 원 정도밖에 안 들 거 같은데. 한번 다른 방법 써보실래요?”
“그게 어떤 방법인데?”
“그 가게에 알바로 들어가서 어깨너머로 소스 배워 오는 거죠. 불 떡볶이 골목에 있는 다른 집들도 다 그렇게 원조집에서 소스를 배워서 독립한 거예요.”
“야 무슨, 산업 스파이냐?”
이럴 때의 이서를 보면 확실히 합법과 불법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그런 사고방식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이 나랑 비슷한 성향인 것 같기도 했다.
세금도 탈세와 절세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듯이 이 아르바이트 잠입 방법도 합법과 불법의 사이에 걸치고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사회 통념상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불법의 범주에 들지 않는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 나오는 것은 용인이 되었다.
오히려, 그렇게 눈치껏 배웠다고, 센스 있고,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 한국 사회였다.
이 방법이 실패하더라도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했다.
“좋아. 그러면 거기에 일 시킬 사람은 구할 수 있겠어? 가게 3곳에서 어깨너머로 소스 빼 오면 한 곳당 500만 원씩 준다. 그 정도면 되겠냐?”
“그 정도라면 하겠다는 애들 많을 것 같네요. 그럼 한 달만 기다려 보세요.”
이서는 하루 정도 전화를 이리저리 돌리고 하더니 문현동 불 떡볶이 가게에 알바로 4명이 취업했다고 알려줬다.
***
“고추는 태양초, 청양고추, 하바네로, 태국과 베트남의 프릭키누 고추가 들어가고 켑사이신과 사과, 배, 감초, 팔각, 마늘, 생강, 파, 양파, 후추 3종, 계피, 귤껍질, 설탕, 미원, 다시다, 물엿, 꿀이 들어가네요.”
한 달 후 이서가 내민 자료에는 불 떡볶이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가게별로 쓰이는 재료가 같더라도 납품받는 브랜드는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재료였다.
이서의 말대로 원조 집에서 어깨너머 배우고 창업을 했다는 게 맞는 거 같았다.
물론, 정확한 비율은 없었지만, 각 가게에서 사용되는 브랜드까지도 사진으로 다 찍어서 정리되어 있기에 쉐프들이나 연구원들이 비율을 맞추고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이서야, 그런데, 너 무슨 특수부대 출신이거나, 군필이고 하는 그런 건 아니지? 아님, 남산 밑에 대공분실에 있었다거나 하는 그런 이력이라도 있어?”
“남산요? 서울은 몇 번 안 가봤는데요.”
“모르면 다행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다 알아낸 거야? 아무리 거기서 일을 한다고 해도 한 달인데.”
“뭐, 다 돈이죠. 애들이 거기서 서빙도 하고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소스 배합할 때랑 쓰레기 버릴 때 분리수거 정리하면서 그냥 재료가 다 보이는 거죠.”
그러고 보니 들은 적 있다.
유명한 쉐프도 다른 집의 양장피가 너무 맛있어서 그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통을 다 뒤져서 뭐가 들어가는지를 알아냈다고 하면서 그런 노력이 있어야 쉐프가 될 수 있다고 썰을 풀었던 걸 들은 것 같았다.
“이서야 그 친구들에게 돈 바로 입금해주고 보너스로 50씩 더 줘라. 진짜 수고했다.”
“오! 그래도 돼요? 애들 엄청 좋아하겠네.”
“그 친구들에게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고 해라.”
“당연하죠.”
들어가는 재료들을 일일이 다 구매해서 매제와 쉐프들을 불러들였다.
“라면 형식이긴 한데, 떡볶이 떡을 별첨 봉지에 넣어서 주는 거로 생각 중입니다.”
“떡 볶음면인 거군요.”
“네. 떡볶이가 엄청 맵기 때문에 라면 사리를 추가해서 먹는 그런 느낌의 라면을 추구합니다. 제가 그렇게 먹었을 때 가장 맛있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레시피를 한번 뽑아 보겠습니다.”
쉐프들은 매운맛이 통각이 주는 아픈 맛이라고 했는데, 그 통증에 대한 방어기제로 도파민과 엔돌핀이 분비되어 스트레스를 풀게 해 준다고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호르몬 작용에 민감한 여자들이 매운맛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런 과학적인 내용도 라면 봉지에 인쇄해야 할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녹는 맛! 마케팅으로 쓰기에 좋을 것 같았다.
***
“스타 코퍼레이션에서 또 뭔가를 하려는 거 같습니다.”
“스타 코퍼레이션? 거긴 어디야?”
“실장님이 주목하라고 하신 곳 있잖습니까? 거산의 하청 업체로 지자체 라면 만들었다는 곳이요.”
용심의 신중서 실장은 요즘 치고 올라오는 업체였기에 직원에게 관찰을 맡겼다는 걸 떠올렸다.
“아! 그래그래.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지. 그런데 뭘 하는 거 같다고?”
“네. 새로운 라면을 만드는 거 같은데, 뭔가 좀 특이해서 말입니다.”
“뭐가 특이한데? 새로 공장을 크게 짓는 것도 있고, 매운맛 라면을 만들려는지 고추들을 엄청 사들이고 있습니다.”
“매운맛 라면?”
고추를 엄청 사들이고 있다는 말에 신중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