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지상파 언론은 무섭다.
김민욱은 서울에서 오픈하는 세 번째 마트였기에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비해 일이 수월할 것이라 여겼다.
이것은 김민욱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에서부터 서울까지 14번째 마트였으니 이런 생각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 평상시와 같다는 생각을 해서일까, 요리쇼 팀원들도 방청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줄을 섰음에도 아무것도 못 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처도 미흡했다.
그래서 기껏 생각한 것이 마트 주차장에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실제 방송이 시작되고, 방송 요청 사항으로 라볶이가 만들어지고, 한정 수량 배달로 라볶이가 배달이 되자 밖에서 보던 30여 명이 또 난리를 피워댔다.
“아니, 방송뿐만 아니라 요리쇼를 보면 뭘 만들어 준다고 하드만, 안 준다고? 지금 장난해?”
“요리사가 해 주는 걸 먹을 수 있다고 했단 말이야!”
김민욱이 나서서 원래 선착순 30명이었다고 이야길 했지만, 50대 연령인 어르신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 그런 건 모르겠고. 분명 우리가 줄 서 있을 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먼저 이야길 해줬어야지!”
생떼를 쓰는 어르신들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세워 애초에 더 줄을 못 서게 하는 것이 맞긴 맞았기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김민욱은 어쩔 수 없이 마트에서 판매 중인 라볶이 컵라면을 제공하기로 했고, 기분이 더 상하지 않게 요리사의 상징인 조리모를 쓴 보조 요리사에게 일일이 어르신들에게 라볶이를 먹으실 수 있게 뜨거운 물을 부어주게 했다.
그렇게 라볶이를 먹을 수 있게 되자 어르신들은 잠잠해졌는데, 문제는 그렇게 라볶이를 받아먹는 모습에 지나가던 이들도 달라붙어 라볶이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는 여기서 한 시간이나 줄을 서서 받는 건데, 당신들은 뭐길래 그냥 받으려고 하는 거야?”
“뭐래? 무료로 나눠 주는 거구만, 왜 상관없는 네가 콩 놔라, 배 놔라 하는 건데? 네가 여기 직원이야?”
“우리는 줄을 섰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공짜로 얻어 먹으려는 놈이 무슨 말이 많아!”
“뭐? 노오옴? 이 쟈식이 너 몇 살이나 처먹었어?”
“먹을 만큼 먹었다 왜? 내세울 게 나이밖에 없는 거냐? 나이 많이 먹어서 좋겠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꺄아악!”
“싸움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니, 사실 이런 말싸움이 있는지도 김민욱이나 사람들은 몰랐다.
갑자기 두 명이 뒤엉키더니 땅바닥을 굴렀고, 싸움이 나자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둥글게 둘러서서 구경하기에 바빴다.
김민욱과 직원들이 급하게 두 사람을 뜯어말리고 했으나 이미 한 명은 입안이 찢어졌는지 피를 입에서 흘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코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말리지 마! 이거 놔! 내가 저 새끼를 그냥 박살을 내버릴 거니깐!”
“너 인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말리는 사람 없었으면 내년 오늘이 네 제삿날이야 새꺄!”
겨우 뜯어말리기는 했으나 두 사람은 서로 욕을 하며 언제든지 다시 싸울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왜애애앵~! 다들 비켜서세요!]
두 사람을 겨우 진정을 시키고 있는데, 경찰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왔다.
‘아, 좃되었다. 망했다.’
김민욱은 개판이 된 이 상황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싸움하던 두 사람을 찍은 이들의 핸드폰도 너무 많았기에 뭐를 어떻게 막아 보겠다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결국, 마트 책임자로서 싸운 두 사람과 함께 파출소로 갔고, 서로가 고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하고 좋게 좋게 마무리는 되었다.
***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지금 이 앞에서 싸움이 났다고요?”
최도협은 채팅창에서 올라오는 글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인터넷에 떴다고요? 경찰차도 왔다고요? 그걸 다들 어떻게 아는 거예요? 방청객으로 못 들어온 분이 밖에서 방송하고 있다고요?”
경찰차까지 왔다면 심각한 일이라 요리쇼 방송을 접고 나가볼까 했지만, 현장을 맡고 있는 황일환 팀장이 그대로 진행하라고 했다.
채팅을 보며 이야길 하고 있으니, 싸운 사람들과 김민욱 실장이 경찰차를 타고 간 것 같았다.
“네? 마트 담당자가 경찰서 다녀오는 거니깐 두부 음식으로 가자고요?”
채팅창에서 경찰서 다녀온 이후엔 뜨끈한 두부에 볶음 김치 싸 먹으면 최고지! 하는 드립이 나오자, 두부전골부터 마파두부까지 두부 요리로 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트에 있는 두부로 마파두부를 하고, 흰 두부에 올려 먹을 수 있는 볶음 김치를 볶았다.
요리가 다 되어 갈 때 김민욱이 돌아왔고, 두부를 먹이며 방송에 세웠다.
“시청자분들이 두부를 꼭 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잘 해결되었나요?”
“네. 서로 감정이 상해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서로 인정하고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돌발사태에 놀라셨을 요리쇼 애청자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자 그럼, 경찰서 다녀왔으니 두부 드시지요!”
두부로 된 음식 4개를 억지로 다 먹이며 그날 요리쇼 방송은 잘 끝이 났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싸움하는 영상이 돌기 시작했고, 다음 날 저녁 뉴스에 보도가 될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도 넘은 인터넷 생방송! 싸움 중계까지 버젓이 이루어져.]
“어제, 관악구에 위치한 모 마트의 오픈 행사로 요리쇼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경품 관련으로 방청객 간의 싸움이 있었는데, 그 싸우는 모습이 그대로 인터넷에 생중계가 되었습니다.”
모자이크가 된 영상이 나왔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의 남자들이 욕을 하며 나뒹구는 영상이 그대로 보도가 되고 있었다.
욕을 하는지 말보다도 삐- 하는 소리가 더 많이 나왔는데, 결국 경찰이 오고 하는 모습으로 자료화면이 끝이 났다.
“이런 싸움 장면이 그대로 인터넷 생방송으로 중계가 되었습니다. 미성년자들도 볼 수 있는 방송에서 이런 폭력적인 장면이 그대로 전송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경찰서에 다녀온 관계자를 희화화(戲畫化)하여 요리쇼 방송에서 두부를 먹이며 이런 장면들을 유머로 여겼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모자이크가 된 영상이 나왔는데, 최도협이 마파두부를 김민욱에게 떠먹이다 흘리고 하는 장면이 나왔다.
흘린 것을 주워 먹이는 장면이 모자이크되다 보니 왠지 강제로 먹이는 모습으로 보였다.
“어린이들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방송을 보지 못하게 시청 가능 연령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터넷 방송은 19금 성인 방송을 제외하고는 다른 연령 제한이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빠른 입법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 KBC 장공대 기자였습니다.”
***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와 카톡에 임건호는 운전 중에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이서였다.
“집에 간다고 운전 중인데 왜? 무슨 일 있어?”
“스타 마트와 요리쇼가 8시 뉴스에 나왔어요.”
“뉴스?”
뉴스에 나왔다는 말에 갓길에 급히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우는 와중에도 전화와 카톡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김민욱의 전화와 톡도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서야 뉴스에 안 좋게 나온 거야?”
“네. 지금 스타마트 싸움으로 실시간 검색어가 올라갔어요.”
“싸움? 스타마트에서 싸움이 났었어? 일단 내가 좀 파악해보고 민욱이한테 전화해 볼게. 고마워.”
전화를 끊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를 보니 스타마트 싸움, 요리쇼 싸움으로 실시간 검색어가 올라가 있었다.
대충 기사를 보고 올려진 영상과 거기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일단 우리 회사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줄을 세울 때 방청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있었지만, 서로 그냥 싸운 것이라 우리에게 불똥이 튀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찍어 올린 건 우리 방송이 아니라, 구경 와서 못 들어가고 있던 다른 BJ잖아. 왜 우리 마트에서 싸운 걸 강조하는 건데. 이씨.”
싸움 영상에서 모자이크되지 못한 스타마트 간판과 요리쇼의 안내 베너 같은 게 나왔지만, 이거로는 뭔가 크게 잘못될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실시간 검색어에 스타마트나 요리쇼가 올라가 있어서 도움이 될 거 같았다.
바로 민욱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욱아 뉴스 봤냐?”
“네. 사장님. 죄송합니다. 방청객 관리를 잘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지금 실검에 올라와 있을 때 바로 작업 하나 더 하자, 오늘 도협이나 한근오 쉐프 일정 알고 있어? 영상팀 황팀장 스케줄은?”
“오전에 방송 있는 걸로 알고 있고, 토요일 저녁에는 다들 일정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되었어. 내가 도협이랑 전화해 볼 테니까 관악구 스타마트에 다시 방송 준비를 해줘.”
“네? 다시 방송을요? 지금 여론이 안 좋은 거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상남자는 이럴 때 일수록 어그로 끄는 거지. 실검에 스타마트 싸움, 요리쇼 싸움이라고 올라오니깐 바로 도협이랑 한근오 쉐프가 요리로 싸우는 거로 방송가자. 일단 내가 도협이랑 연락할 테니까 영상팀 황일환 팀장한테 연락해서 방송 준비 빨리하라고 해줘. 그리고, 미리 이렇게 준비를 해놓도록 해...”
김민욱은 상남자는 어그로를 끈다는 말이 괜히 마음에 걸렸지만,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가 있을 때 그 실검과 같은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한다면 확실히 유입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1시간 만에 영상팀과 두 명의 쉐프가 관악구로 오자 바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어제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뉴스에 나오게 된 스타마트 요리쇼입니다!”
방송 이름을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있는 ‘스타마트 싸움, 요리쇼 싸움’으로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사람이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랐고, 최도협과 한근오가 서로 요리 싸움을 하겠다고 요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딱 20분에게만 싸움의 결과로 나오는 요리를 대접하겠습니다. 이번엔 진짜 칼같이 20분 한정으로 모십니다. 싸움하실 분은 오시면 안 됩니다!”
김민욱이 나서서 이야길 하자 이게 또 어그로를 끌어 버렸다.
-싸움 구경하러 가자!
-진짜 싸움한다고?
-요리쇼로 싸우는 거라고.
-아냐, 찐따들이 가게 되면 또 싸움 날 거야.
-안양 운화초 양발닌자 김희종이 싸움하러 간다. 다들 구경 입장료 들고 와라!
-미아리 캡짱 전설의 야간 국딩 강건마도 참가예정.
-거기서 옥수수 팔아도 됨?
갑자기 요리쇼보다는 어그로 장난처럼 되어 가는 채팅방이었고, 김민욱은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뉴스에 나와서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서 그런지 방송에 참여한 인원이 9천 명이 되어 갔다.
유튜브의 방송 채팅이 버벅거릴 정도였기에 방이 터질까 봐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밤 11시가 넘었음에도 스타마트에는 50명 이상이 모였는데, 대부분이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김민욱은 임건호가 이야기했던 대로 되는 것 같자 신기했다.
어그로를 끌기 위해 방송을 요리 싸움으로 하게 되면 유입이 많을 것이고, 분명 다시 현장으로 오라고 하면 인터넷 방송 BJ들이 대거 올 거라고 했었다.
“테이블에 쭉 앉으시면 됩니다! 바로 음식 나갑니다!”
미리 테이블을 준비해서 마트와 외부 주차장에 설치해 두었기에 BJ들을 쭉 앉혔다.
그러곤 푸드 딜리버리로 주문한 음식들을 바로 깔아주었다.
“이렇게 급박하게 여러 BJ분들이 오시더라도 푸드 딜리버리 어플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렇게 음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마음껏 드시고, 요리쇼 구경을 재미있게 하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대충 40여 명의 BJ로 각 채널에 500명씩만 잡아도 2만 명이었다.
유튜브에서 요리쇼를 보는 9천 명이 있었으니 3만 명 이상에게 푸드 딜리버리 어플과 스타마트, 요리쇼를 홍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니 어제 낮에 서로 싸움을 해준 어르신들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최도협 쉐프와 한근오 쉐프의 요리 싸움 승자는 푸드 딜리버리 홈페이지에서 투표로 결정되오니 사이트에서 많은 투표 부탁드립니다! 투표하신 분 중 30분을 선정하여 푸드 딜리버리 상품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30분에게만 상품권을 드리겠습니다! 진짜 30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