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롤 모델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3)
비보호 좌회전으로 빗물에 미끄러진 차는 검은색 카니발이었는데, 도로 옆 화단을 올라타서는 가로수를 들이박고 멈춰 서 있었다.
다행히 인도에는 사람이 없어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
“괜찮습니까?”
헬멧에 달린 영상카메라를 확인하곤 구호 조치를 하려는데, 운전석에서 험상궂은 떡대가 내렸다.
‘아, 텄구나. 텄어.’
일단 다친 곳 없이 멀쩡하게 나오기도 했고, 나보다도 더 강해 보이는 사람이었기에 뭘 돕고 하는 미담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내 뒤에 차를 세우고 내린 한동욱 팀장도 ‘아, 이건 아닌 듯’하며 다시 차에 타려고 했다.
“아씨!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아, 목이야!”
카니발 뒷좌석 문이 열리며 여자 두 명이 내렸는데,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내렸음에도 뭔가 빛이 확! 나는 것 같았다.
“어, 어? 혹시, 배우 김가영 씨 아닙니까?”
“맞아요. 근데, 지금은 아파서 뭐가 안 되겠네요.”
오른손으로는 목 뒤를 잡고, 왼손으로는 코 밑을 가리며 혹시나 사진을 찍히지 않을까 두리번거렸다.
그러곤, 몸이 아픈지 쭈그려 앉았다.
일반 사람이 했으면 절대 예뻐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지만, 여고생 때 데뷔해서 한때 국민 여배우라고 불리었던 30살의 김가영이다 보니 그런 모습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
“야! 넌 여기 남아서 처리하고, 가영이랑 내가 타고 가게 빨리 택시나 잡아!”
험상궂은 떡대는 같이 내린 다른 여자의 호통에 두말 않고 택시를 잡았고, 김가영과 여자는 금세 사라졌다.
“단순한 빗길 미끄럼 사고인데, 이걸로 되겠어? 김가영도 벌써 가버렸고. 우리도 다른 데로 가지.”
“아닙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헬멧에 소니 액션캠 이리 줘보십시오.”
차에서 내린 한동욱은 여기저기 전화와 카톡을 보내고 있었는데,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곤, 소니 액션캠을 핸드폰과 연동해서는 영상을 확인했다.
“됐습니다. 이거면 됩니다. 일단 인터뷰하셔야 합니다.”
“무슨 인터뷰?”
“그게 있습니다. 하하하.”
시간이 지나자 어디선가 렉카가 왔는데, 동시에 종편 채널인 MBV에서도 취재 차량이 왔다.
“한 팀장. 진짜 김가영이야? 어디 있는데?”
“이미 택시 타고 갔고, 로드만 남아 있습니다. 차량부터 찍으세요.”
“에이. 차만 나오면 뭘 해. 주인공이 없는데, 혹시 블박에 찍혔어?”
“사고 나는 건 블박에 찍혔고, 김가영이 차에서 나오는 건 소니 액션캠으로 찍혔습니다.”
“어디? 보여줘 봐!”
“에헤이. 일단 딜을 좀 하시지요.”
한동욱은 기자와 함께 차에 들어가 이야기를 했고, 같이 나온 카메라 기자는 견인되는 차량을 찍기 바빴다.
“자 그럼, 퀵서비스 기사님. 이쪽으로 오셔서 인터뷰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헬멧은 벗으시고, 머리가 눌러졌으니깐 좀 다듬으세요.”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니 카메라 기자도 뭔가를 들었는지,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이나 배경도 신경 써서 위치를 잡아줬다.
“사고가 나는 걸 보고 도와주러 왔더니 배우 김가영이 내렸다고 하는 말을 해주시고, 목덜미를 다친 것처럼 손을 짚고 내렸다고만 해주시면 됩니다. 애드리브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동욱을 보니 시킨 대로 해라고 고개를 끄덕였기에 그대로 인터뷰를 해주었다.
기자들은 우리에게 받은 영상으로는 부족한지 도로 인근 상가의 CCTV까지 이리저리 다니며 찍어갔다.
“대표님 되었습니다. 오후 5시에 하는 연예 프로그램에 나올 거랍니다.”
“방금 인터뷰한 이게 종편 티비에 바로 나온다고?”
“네. 운이 좋았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는 노인분을 돕는 퀵서비스 기사의 모습을 블랙박스 제보영상처럼 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연예인이 알아서 사고를 내어주니 진짜 운이 좋았습니다.”
“허허. 많이 다친 거도 아니고 빗물에 미끄러져서 사고 난 건데 이게 종편 방송에 나올 정도가 된다고? 난 그게 안 믿어지는데.”
“충분합니다. 그냥 김가영의 차량이 교통사고 났다면 인터넷 찌라시로 그냥 돌고 말았을 테지만, 블랙박스와 CCTV에 사고 난 게 그대로 찍혔고, 대표님 액션캠에 김가영이 목 잡고 내린 게 그대로 나오니 방송을 탈 수 있는 겁니다.”
“그럼 이제 끝난 거야?”
“네. 이제 온라인 작업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
“네 김 기자님. 5시 15분에 두 번째로 나온다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송 확정이 났다고 연락이 오자 한동욱은 되었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민지 씨 우리 대표님이 태양 식품제조 쪽에 임원으로 아직 계신 거지요? 산청에 있는. 거기에 아직 사무실이 있는가요?”
“네. 태양에 임원 등재되어 있고 하신데, 라면 사업 정리하면서 사무실을 빼고 책상만 그냥 하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요?”
“아닙니다. 일단 산청으로 한번 다녀와야겠네요.”
한동욱은 급하게 차를 몰아 산청으로 내려갔고, 방송 전에 산청에 있는 가게에 자릴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게 이름이 보이게 해서 MBV 채널의 연예계 뉴스를 핸드폰으로 녹화하기 시작했다.
[MBV 단.독.속.보입니다. 오늘 정오 즈음에 배우 김가영 씨의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지며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는데요. 현장 영상 보시겠습니다...]
카메라 기자가 화단을 올라타고 있는 카니발 영상을 보여주었고, 블랙박스 영상과 CCTV 영상으로 빗물에 미끄러져 사고가 나는 영상을 몇 번이고 보여주었다.
[아유- 단독 사고라도 가로수를 저렇게 들이박고 사고가 난 거라 다치지는 않았는가요?]
[사고 후 뒷좌석에서 내리는 김가영 씨의 영상도 있습니다. 저희 MBV 단.독.영.상.입니다.]
카니발의 차 문을 열고 나와서 목과 입을 가리며 길가에 쭈그려 앉는 모습을 보자 남자 패널들은 많이 다쳤으면 어떡하냐고, 난리를 쳤다.
[...큰 소리가 났기에 큰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김가영씨나 매니저들은 큰 무리 없이 움직이셨습니다. 목을 잡고 내리셔서 목 디스크가 오셨을까 봐 걱정이 되네요.]
임건호 대표의 인터뷰도 정상적으로 나왔다.
방송 패널은 MBV 단독영상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하며, 매니저의 잘못도 아니고, 빗물에 미끄러진 것이니 봄비에 노면이 미끈거리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며 이야길 했다.
“...되었다.”
MBV 뉴스가 나간 이후 10여 분이 지나자 속보라고 기사들이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에휴, 기레기 새끼들. 그대로 복사 붙이기로 기사 막 올리네.”
그래도 개중에는 김가영의 기획사에 입원을 했는지 스케줄을 진행했는지 확인 취재를 하고 올리는 기자도 있었다.
산청에 있는 PC방에서 작업 칠 글을 준비하는 동안 신문기사가 커뮤니티로 퍼져나가는 게 보였고, 이후 30여 분이 지나 6시가 넘으니 실시간 검색어에 ‘김가영 교통사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연예인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는 대쿠 사이트에도 글이 올라오고 실시간 인기 글이 되는 걸 보자 미리 가입해둔 계정으로 댓글을 썼다.
〈와! 김가영 사고 난 거 인터뷰한 사람 우리 동네 옆 옆집 사시는 분임. 저분 엄청 부자이심.〉
⌞무슨 개소리야. 엄청 부자인데, 왜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건데? 너네 동네 평균 임금이 아프리카 오지 급임?
⌞아, 부자 맞다니깐. 이게 댓글로는 안되고 내가 글 새로 판다.
【우리 동네 아저씨인데, 진짜 몇천 억대 부자 되신 분이 계심. 그분이 방금 티비에 나오셨음.】
사진.
①②③
1번 사진이 3년 전 사진이고, 2번 사진이 저분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임. 3번은 오늘 MBV 연예 뉴스에 나온 거 폰으로 찍은 거임.
이분이 1번 사진처럼 우리 동네(산청)에서 무청 농사 하셨던 분인데, 엄청 부자 되었다고 해서 개천에서 용났다고 했었음.
근데, 오늘 저기 티비에 나오셨음.
그래서 엄청 신기해서 글 써봄.
⌞아니, 부자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오토바이 배달일 하는데 무슨 부자? 님 동네 평균 연봉이 1년에 100만 원임?
⌞아 답답해. 이 아저씨 3년 전에 6시 우리 고향에 나왔을 때가 1번 사진 때임 그때만 해도 그냥 농사하시는 분이었음. 근데, 무슨 라면 공장 세우고 마트 한다고 하더니 부자 되신 거임.
⌞이 사진 3개가 다 같은 사람이라고? 농사했을 때가 제일 옛날 사진이라고? 흐미 세월 거꾸로 사시는 거야? 근데, 부자는 뭐로 부자인데? 달걀 많아서 알부자야?
⌞나도 연예인 교통사고 인터뷰 보고 엇, 옆집 아저씨다 해서 찾아보니깐 지금은 푸드 딜리버리랑 스타마트 대표이사로 되어 있더라. 산청 촌 동네에서 연 매출 2천억 대 기업 사장님이 된 게 신기해서 글 써봄. 회사 이름은 광고 같아서 안 밝히고 싶은데, 다들 계속 물어보니깐 밝힘.
⌞응? 배달기사 하시는 게 아니고 저 배달하는 회사 대표라고?
⌞대표이사가 배달일을 한다고? 그게 말이 됨?
⌞나도 몰라, 배달일하니깐 저기 교통사고 봤다고 인터뷰하는 거겠지.
그렇게 여러 명이 댓글을 달고 하다 보니 회사 이름을 검색해서 기업 정보를 본 사람이 있는지 관련 정보도 올라왔다.
[헐. 매출액이 2천억이 넘고 자산이 몇백 억대라는데. 진짜 개천에서 용이 난 거 맞네.]
⌞개천 용 사업가네.
한동욱이 열심히 댓글을 달고 있으니 실시간 인기 게시물로 대쿠 사이트의 1페이지에 노출이 되었다.
그리고, 인기 게시물이 되자 PC를 끄고 핸드폰으로 다시 한동욱이 글을 올렸다.
【헐. 미쳤다. 개천 용 사업가라는 사람. 이 사람 진짜 배달 라이더 맞음. 투잡이라고 우리 사무실 와서 일하고 가고 했다.】
⌞진짜? 인증 없으면 뭐다?
“새끼들 이럴 줄 알았다.”
한동욱은 미리 찍어 두었던 관악구 빠른 친구들 사무실 전경 사진과 테이블에서 찍은 사진을 인증용으로 올렸다.
⌞이분 매주 투잡으로 배달일하러 온다고 왔었는데, 사진 보고, 홈페이지 사진 보니깐 우리 회사 사장님이었다. 개 소름. 일 늦게 한다고 욕 박았었는데, 나 짤리는 건가. 살려 주십쇼 ㅠ.ㅠ
⌞헐 뭐임? 언더커버 보스 그거를 한 거임?
⌞와 지린다. 자기 회사에 직원들 일 잘하고 있는지 직접 배달 라이더 뛰는 대표이사라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장이 있구나.
⌞와 이 사람 입지전적인 사람이네. 글 보고 찾아봤더니 대단한 사람이다. 봉급쟁이 출신으로 저기까지 올라간 거네. 진짜 개천 용 사업가 버전이다.
“휴우.”
여기까지면 되었다.
사람들이 찾아본다고 들어올 홈페이지에 봉급쟁이로 시작해서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잘 보이게 해두었으니 알아서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와서 퍼갈 것이었다.
대쿠 사이트에서 실시간 인기 글로 올랐으니 자연스레 여러 커뮤니티로 퍼질 터였고, 직장인들의 롤 모델이 되기 위한 첫 단계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것이었다.
***
“가영아 이거 봐봐.”
“아 왜? 목 아파서 고개도 못 들겠는데 뭘 보라고?”
“아까 MBV 연예 채널에 인터뷰했던 배달기사 있잖아.”
“그래 있었는데 왜? 그 사람 헬멧에 있던 액션캠을 끄라고 해야 했는데, 아 짜증 나.”
“그 사람이 푸드 딜리버리의 회사 대표래.”
“그게 무슨 말이야?”
“자 이거 봐. 인터넷에 도는 글인데, 회사 대표가 언더커버 보스처럼 배달일을 몰래 하고 있다는데.”
김가영은 목이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돌려 태블릿의 글을 보기 시작했다.
“흠. 근데 이게 무슨 상관이야?”
“이것도 인연이라는 거지. 36살의 매출 2천억 대의 기업인과 네가 자연스레 엮인 거잖아. 너도 시집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