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가게를 부탁해! (2)
“성균관 스릴러에서 나왔던 그 배우잖아. 이름이 뭐더라.”
“안녕하세요. 김가영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지! 김가영!”
강대희의 어머님은 드라마에서 봤다며 어찌 이리 예쁘냐며 김가영의 손을 잡아 어루만졌다.
“그럼, 이 처자랑 우리는 제주도에 놀러 가는 것이여? 우리가 제주도에서 노는 것도 찍어야 하지 않어?”
“아, 아버님 여행가셔서 찍는 건 여행사 직원분이 찍어주시기로 하셨고요. 김가영 씨는 여기서 손님들 접객을 할 예정입니다.”
“그럼 나도 남아서 일을 하고 싶어지는디.”
“이 영감탱이가 무슨 헛소리야. 우린 이제 빠져주면 되는 거예요. 어서 갑시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아버님을 어머니가 귀를 잡고 끌고 나가시자 본격적인 방송 회의를 하게 되었다.
“실제 녹화 날에는 한근오 쉐프가 요리쇼를 같이 진행을 할 겁니다. 그래야 홍보가 좀 더 될 테니깐요. 가게를 부탁해는 그런 요리쇼와 가게 운영이 합쳐진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개그맨 강대희는 출연진과 스태프, 촬영 장비들이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것을 보자, 인터넷 방송이 이 정도나 되는 건가 하며 놀랐다.
“그런데, 촬영을 정말로 2박 3일 내내 하는 건가요?”
김가영은 촬영 시트나 기획서를 보니 2박 3일간 진짜 제대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난감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정은채 실장도 있었고, 인터넷 방송이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섭외에 응했는데, 촬영이 힘들 것 같았다.
물론, 모종의(?) 다른 이유도 있었기에 온 것이었지만, 2박 3일 꼬박 촬영을 진짜 다 해야 하는지 걱정부터 되었다.
“아, 촬영기간은 2박 3일로 했지만, 실제 가영 씨가 촬영하는 시간은 점심, 저녁 시간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이외 시간은 촬영이 없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일손이 부족할 때는 저희 스탭이 바로 투입이 되니깐 일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총괄 PD라는 팀장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김가영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지 않았다.
영화판에서도 금방 찍는다, 몇 컷 안 남았다, 조금만 하면 된다 하는 공수표가 횡횡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혹시 가영 씨는 오토바이를 못 타시지요?”
“오토바이요? 타 본 적은 있는데, 제가 몰아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갑자기 오토바이는 왜요?”
“아, 그게 홀 서빙이 포지션이지만, 분량을 위해서 출연자분이 배달도 가주셨으면 해서요.”
“저 자전거는 잘 타요. 그런 배달이라면 자전거도 되는 거 아닌가요? 자전거로 배달하시는 분 전에 봤었어요.”
“네. 자전거로도 가능합니다. 그럼, 자전거로 배달하실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배달을 가서 고객과 이야기도 하고 배달을 시켜 먹는 그런 이야기도 해주시면 됩니다. 강대희 씨도 그렇게 배달을 나가실 수 있습니다.”
“저는 오토바이 잘 탑니다 하하하. 그런데, 황 팀장님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 촬영 목적이 휴머니티를 위한 것인가요? 주문 앱 홍보를 겸한 감동 예능 그런 겁니까?”
“네. 맞습니다. 사실, 제가 방송에서 원하는 건 가게의 매출 증대와 홍보효과도 있지만, 음식을 집에서 해 먹지 않고, 주문해서 먹는 사람들의 사연을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합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치킨을 시켜 먹는 것에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간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고, 부모가 맞벌이를 해서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음식을 시켜주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뭔가 사람 사는 맛이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강대희도 생각해보니 단순한 식사로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지만, 그 주문 한 건 한 건마다 사연이 없는 주문은 없을 터였다.
“그런 사연들 중에서 슬픈 사연이 있을 수 있고, 즐거운 사연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사연에 강대희 씨나 김가영 씨가 공감해 주시고 하는 것이 주 콘텐츠가 될 겁니다.”
“어떤 의도의 방송인지 알겠네요. 이해했습니다. 그럼 내일부터죠?”
“네. 오늘은 대충의 메뉴를 보시고, 쉐프 분들이 오늘 맛보기 음식을 해주실 건데 그걸 먹어보며 분량을 좀 뽑겠습니다.”
물론, 그런 맛보기 음식을 먹고 난 이후로는 청소 전문 업체와 함께 가게 조리실과 홀의 대대적인 청소가 있을 예정이었다.
***
“어플에 베너로 노출되는 건 11시부터이니 준비를 해 주시고요. 가영 씨가 가게 밖을 한 번만 쓸어주세요.”
방송촬영을 한다고 가게를 대대적으로 청소한 것을 알기에 무슨 청소를 또 하는지 김가영은 의아해했는데, 자신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가 청소를 하자 청소를 시킨 황 팀장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냥 단순히 청소를 위해 빗자루로 몇 번 쓸었을 뿐이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던 것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나가던 이들의 고개가 이상한 각도가 될 때까지 김가영을 보기 위해 목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선을 받은 김가영은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동대문역의 등대와 같은 등대 국수예요. 한번 드시고 가세요.”
“아이고 이거 분명히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출출하네. 이봐 저기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가자고.”
“그럴까? 그렇지 않아도 나도 국수가 당기는 참이었어.”
“저 집 무조건 맛집일 거야. 그런데, 일하시는 분이 어디서 많이 본분 같은데.”
김가영의 미모에 홀리듯이 국수 가게로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이 막 시작한 요리쇼 방송에도 나왔다.
- 와, 저 집 맛집인가 본데, 11시인데, 사람들이 10여 명이 줄을 서서 들어오는데.
- 저기 예전에 한번 가봤는데, 그렇게 대박 맛집은 아니었는데.
- 엇! 김가영 아냐?
- 김가영이 가게 알바를 한다고? 그렇다면 나도 줄 서서 갈 수 있어! 지금 출발합니다.
- 엇? 요리쇼인데, 저긴 지금 바로 주문이 된다고? 그럼 바로 주문할까.
- 직접 가서 먹으면 김가영 볼 수 있잖아. 최쉡도 보고 난 지금 등대 국수 간다.
당장 가게로 오겠다는 사람들부터 요리쇼인데, 지금은 그냥 바로 배달 주문이 된다며 주문을 하는 이들까지 금세 포스기에서 주문이 들어왔다고 알리는 효과음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30건 되면 일단 주문 들어 오는 거 끊고 갑시다! 밖에 빠른 친구들 다 도착했지?”
“네. 기사들 대기하고 있습니다.”
“최 쉐프님! 요리쇼 방송에 배달 주문하는 친구들 중에 사연 있는 친구 있으면 그 사연도 좀 써서 주문해 달라고 해주세요!”
방송 분량을 뽑기 위해 어떻게든 사연이 필요했고, 그런 어필을 요리쇼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실제 방송에서는 이런 부분을 모두 다 편집할 예정이었다.
“와! 부모님이 하시는 거보다 훨씬 더 빨리 국수가 나오는데요.”
강대희와 김가영은 홀 손님들과 배달 주문을 쳐낸다고 정신이 없었다.
당장 촬영에 필요 없는 영업팀 과장이 앞치마를 두르고 홀 서빙을 도왔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빠른 친구들의 박무영 팀장도 대기 손님 관리와 배달 관리를 대신 맡아주고 있었다.
“응? 사람이 이렇게 많이 왔어?”
지자체와 위생, 조리 자격증 관련 사업을 협의하고 오니 등대 국수 가게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황 팀장. 이렇게 손님이 많으면 사연 듣고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거 아닌가?”
“매장에 직접 오는 손님이 없을 것 같아 일부러 김가영 씨에게 가게 밖에 나가 있도록 했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몰렸고, 요리쇼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몰려서 정신이 없습니다. 가게를 중지시키고 배달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안되지. 그러면. 사연으로 휴머니티를 추구해야 되는 건데, 그런 사연을 못 잡으면 그냥 장사하는 프로그램이잖아. 그럴듯한 사연이 있는 배달 주문이 오면 김가영 씨랑 강대희 씨를 보내요.”
“그럼, 오프라인으로 온 손님은 어떻게 합니까? 다들 김가영 씨를 보러 왔는데요.”
“흠. 이렇게 합시다. 비치 엔터에 있는 다른 여자 연예인을 불러서 홀을 지키게 합시다. 일단, 예쁜 여자가 있으면 어느 정도는 무마될 겁니다.”
바로 정은채 실장에게 연락해서 지금 가게에서 촬영을 도와줄 수 있는 여배우들이 있으면 보내 달라고 했다.
“대표님 이거 어떻습니까?”
황일환 팀장이 주문 들어온 영수증을 보여주었는데, 주문 요청 사항에 쓰여있는 사연을 보고는 느낌이 바로 왔다.
“일단 가영 씨랑 대희 씨 준비시켜서 바로 가세요. 얼굴 팔려도 되는 내가 일단 가게에서 일하고, 정은채 실장이 2명 데리고 바로 온다고 하니깐 어떻게든 될 겁니다. 가서 분량 뽑아오세요.”
나도 앞치마를 쓰고 가게에 투입되었고, 그러는 사이 김가영과 강대희는 빠른 녀석들 슈트와 헬멧을 쓰고 배달 준비를 했다.
김가영은 박무영 팀장의 뒤에 타서 강대희와 같이 움직였다.
그 뒤로 황일환 팀장을 위시한 메인 촬영 팀들이 따라붙었다.
***
배달지가 빌라였지만, 8층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고, 401호 문 앞에 놓여 있는 물건들을 보곤 김가영도 주문한 손님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한위 님. 푸드 딜리버리입니다! 국수와 김밥, 만두 주문 하셨지요?”
강대희가 벨을 누르고 손님을 만나 촬영을 허락받기까지 김가영과 스태프들은 뒤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강대희가 웃으며 스태프들에게 손짓했다.
“김가영 씨 아시지요? 같이 왔습니다.”
“저도 요리쇼 보고 있었어요. 진짜 주문은 하고 했지만, 이렇게 찾아오실지는 몰랐어요.”
김가영은 자신을 보고 웃어주는 사람이 어른이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었기에 서 있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춘 다음 웃어주었다.
“같이 먹기 위해 음식을 더 가지고 왔어요. 우리 같이 밥 먹어요.”
김가영의 친절한 말에 이한위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녜예. 여, 영광입니다.”
“저기 선생님 저도 있습니다만. 제가 여기 있다는 거 잊어버리신 건 아니시죠? 저도 같이 밥 좀 먹어요! 하하하.”
강대희의 말에 다들 웃었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높은 식탁에 들고 온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스태프들도 고정 카메라를 준비한다고 한참을 바쁘게 움직였다.
“제가 몸이 이렇다 보니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기가 힘들거든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게 경사면을 만들어 두고 했지만, 보통의 식당에서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 먹기가 힘들어요.”
“아, 혼자서 가는 것도 힘들지요?”
“네. 뭘 먹으려고 하면 혼자서는 힘드니 가족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가족들의 시간도 뺏어야 하고, 돈은 돈대로 더 들고 먹고 나서도 스트레스만 더 쌓이더라고요.”
이한위의 말에 다들 동감했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혼자서 휠체어를 몰고 가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쉽게 걸어 나가서 먹고 들어 올 수 있었지만, 장애인은 그런 쉬운 식사도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배달 어플이 생겨서 저는 정말 좋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도 1인분만 배달이 되고, 여러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여러 개를 시켜서 기사님에게 받기만 하면 되니 정말 너무 편합니다.”
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이야길 하는 이한위의 말에 황일환 팀장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가게를 부탁해 방송을 만든 숨어있는 의도를 은근히 유도하기도 전에 먼저 이야기를 해 줬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나지 않은 이한위와 강대희, 김가영의 대화도 음식점에 대한 품평과 편리함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회사 차원에서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이 되었다.
더불어, 방송국이 좋아하는 휴머니즘도 만족했으니 편성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세 명이 대화를 하며 식사를 끝내자, 세 명이 같이 사진을 찍었고, 다 같이 빌라 지하에 있는 재활용장에서 일회용품을 분리수거 하는 모습까지도 촬영을 끝냈다.
그리고, 다시 가게로 돌아가는데, 가게 앞에는 여전히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엇? 저분들은 또 누굽니까?”
강대희는 청바지에 붉은색 앞치마를 입고, 배달 기사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여자를 보곤 눈이 번쩍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