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졸부집 막내 아들.
지분 투자가 아닌, 자회사 개념의 투자계약을 하자는 말에 스카이는 아무렇지 않게 여겼지만, 데닐리 탄은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스카이는 본래부터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지만, 데닐리 탄은 실패하긴 했어도 이루어 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분 투자가 아닌, 지분 관계의 자회사가 되라는 말에 와닿는 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만들었던 마이텍시가 그랩 택시로 이름이 바뀌는 것은 그리 큰 타격이 없었지만, 다른 회사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는 형식은 자신의 회사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으니 정색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투자를 내 개인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 코퍼레이션에서 하는 것이었기에 두 회사를 지분 관계의 자회사로 가는 것이 나는 맞다고 보는데.”
어떻게 보면 통첩(通牒)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데닐리 탄은 말이 없었다.
데닐리 탄은 마음속으로 자책을 하고 있었다.
결국, 투자를 벤쳐 투자회사에서 받지 못했기에 이렇게까지 상황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마이텍시의 투자 제안서를 보니, 얼마나 준비되지 못했는지도 깨달았다.
임건호를 만난 이후 시야가 넓어지다 보니 마이텍시의 단점들이 너무나 잘 보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했던 마이텍시가 임건호를 만나 그랩 택시가 되며 제대로 된 사업으로 진행될 수 있는 계획이 만들어졌다고 느꼈다.
속으로는 지금의 사업제안서를 가지고 벤쳐 투자사로 가면 투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랩 택시에서 그랩 카, 그랩 바이크까지 이어지는 장기 계획을 보면 사업의 아이디어가 이제는 자신이 다 만든 것이라고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공동의 아이디어였고, 계획이었다.
그런 공동의 사업에 투자까지 한다면 지분 관계의 자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그렇게 크게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다만, 벤쳐 투자회사에서 투자를 받아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제시된 제안을 거부한다면 상황이 나빠질 것은 임건호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자본이 있고, 이미 같이 만든 기획서가 있으니 임건호가 사람을 세워 먼저 말레이시아나 동남아에 진출을 해 버린다면 뭘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제시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자회사화하는 것에 동의하겠습니다.”
데닐리 탄은 스스로 고삐를 차기로 결정을 했다.
“옳은 판단을 해줘서 고맙군. 한국으로 같이 가서 법적인 문제를 정리하고, 바로 일을 시작해 보자고.”
“그럼 저는 언제 일을 그만두면 됩니까? 저도 한국에 같이 가야 하는 거 맞지요?”
능글맞게 이야길 하는 스카이와 데닐리 탄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니 그림이 그려졌다.
둘에게 각각 사업을 맡기기보다는 먼저 어느 정도 계획과 일정이 짜여 있는 그랩 택시에 둘을 같이 집어넣어 일을 시켜보는 것이었다.
화교 집안의 상류사회는 테닐리 탄이 맡고, 중국에서 나고 자라고 미국에서 구르며 영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스카이는 직접 택시 기사를 만나서 활동하는 영역으로 일을 맡기면 좋을 것 같았다.
“우선은 다 같이 말레이시아에서 2~3달을 같이 해보자고, 기획 단계에서 보이지 않는 문제가 또 생길 수 있으니 잔잔한 방향 수정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보강해서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자고.”
그렇게 일의 선후 문제를 해결하고, 데닐리 탄에게 지분 51%를 보장해 주었다.
그리고 투자사인 스타 코퍼레이션이 40%를 가지고 9% 지분은 개방해 외부 투자를 받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데닐리 탄은 지분을 51% 보장해 준다는 소리에 만족해했다.
스카이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데 나흘이 걸렸고,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세 명이 탔다.
“클래이도 그만두고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고?”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가족이 있다 보니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려 보름 정도 후에 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같이 일해보자고 열심히 부채질을 했거든요. 하하하.”
아마도 스카이가 창업을 해서 성공하는 일에 대한 자랑이나 뽐뿌를 엄청나게 클래이에게 넣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 다 동양인인 거보다는 백인이 한 명 정도 끼면 글로벌하게 보이기도 해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엇? 그때 그분 아니세요? 미국으로 올 때 그때 도와주셨잖아요.”
뭐지 싶어 보니 미국으로 올 때 비행기에 같이 탔었던 젊은 친구였다.
“아, 그렇네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같네요.”
미국으로 올 때 옆자리의 진상 기업인 옆에 있던 졸부 아들로 추정되던 친구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는데, 데닐리 탄의 옆자리였다.
비행기 출발까지 30분 정도 남았기에 스카이나 데닐리 탄과 내 자리에서 이야길 했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한국에서 이야기할 정리를 둘에게 시켰다.
그리고, 데닐리 탄이 서류를 보며 스카이와 일 이야길 하는 모습에 옆자리 사람인 김신현은 뭔가 부러웠다.
보름 전 미국으로 올 때 졸부집 아들이라는 모욕을 들었어도 말을 하지 못한 것은 진짜 그 사람이 낮추어 불렀던 졸부 집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한국의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에 편하게 살고 있고, 미국의 형에게 올 때마다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며 돈을 편하게 쓰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늘 뭔가가 부족했다.
형을 따라 아버지의 부동산업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은근한 형의 견제도 있었고, 일단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나열하여 어떻게든 부동산을 팔아 치워야 하는 부동산 중개인의 일이 자신과 안 맞는 것이었다.
보통의 졸부 집 자식들이라면 그런 집안의 풍족함에 돈을 쓰러 다니기 바쁘겠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아버지와 형을 보고 컸기에 그렇게 놀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옆자리에서 서류를 보며 검토하는 데닐리 탄의 모습이 부러웠다.
멋들어진 정장과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은 아버지의 부동산 중개인들과 외향이 같았다.
하지만, IT 관련으로 서로 이야길 하며 서비스에 대해 논의하는 그런 있어 보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특히나 스카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자신과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눈에 더 보이니 그런 부러워하는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꿈꾸던 직장인의 모습을 이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용기 내어 이야기를 건네었다.
“저기 사장님. 일전에 도와주신 일도 있기에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되십니까?”
“오늘은 도착한 날이라 호텔에서 쉬기로 해서 특별한 일정은 없습니다만, 그때 그 일이 큰일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건호는 뭔가 계속 들러붙으려고 하는 느낌이라 선을 그었다.
이렇게 이야길 하면 보통은 그냥 알았다고 물러날 터인데, 이 친구는 끈질겼다.
“그럼 묵으시는 호텔이 어디입니까? 저도 거기에 묵으며 식사를 꼭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밥을 꼭 사 주겠다고 이야길 하는 모습에 뭔가 간절한 느낌도 있는 것 같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같이 가시죠. 서울 광장 앞 프라자 호텔입니다. 따로 일행이나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 없으면 저희 회사 차로 이동하시죠.”
“그, 그래도 됩니까?”
김신현은 회사 차를 같이 타자는 말에 주차장에 자기 차가 있었지만 따라나섰다.
이제는 비서 실장이 된 사촌 동생 이석건이 직원들 이동용으로 굴리는 카니발을 몰고 마중 나와 있었다.
그리고, 카니발에는 전면 랩핑으로 푸드 딜리버리 로고가 뒤덮여 있었다.
“아! 푸드 딜리버리 알고 있습니다. 거기 대표님이십니까?”
“하하하. 네. 그때 비행기에서 진짜 서로 어디의 누구라고 밝혔으면 재미있었겠지요?”
“그, 그렇겠네요.”
김신현은 그날 대기업 사람으로 보이던 진상 아재가 신분을 까고 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아찔했다.
푸드 딜리버리가 지금 떠오르는 기업이긴 해도, 대기업에는 아직 못 미치는 벤쳐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배짱 있게 신분을 까보라고 하며 강하게 나갔던 임건호의 모습에 뭔가 모르게 동경이 되었다.
자신은 그런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일구어낸 기업이기에 저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나도 그런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프라자 호텔에서 도착하여 대충 옷만 갈아입고,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그리고, 그제야 명함을 건네며 서로 통성명을 했다.
건호는 왜 이렇게 식사를 같이하고 싶어했는지가 궁금해서 먼저 물었다.
“그게, 부러워서요.”
“부럽다고요? 제가요?”
“네. 저는 직업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나 대기업 간부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강하게 나가는 그런 게 좀 부러웠습니다.”
직업이 없는데, 천만 원이 넘는 퍼스트 클래스로 미국을 들락거린다고? 하는 생각과 동시에 진짜 졸부집 아들인 건가 싶었다.
“일이야 뭐, 집이 잘살면 안 해도 되지 않습니까? 저 같으면 집이 잘살았다면 놀고먹었을 겁니다.”
“그래도 되지만, 제 돈이 아니죠. 자기 손으로 세우고 경영하는 사업체가 있다는 게 너무 부럽습니다.”
“집에 돈이 있으면 그냥 작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작게 요식업을 하거나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런 요식업은 또 좀 그래서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도 좀 그렇고...”
이야길 듣고 보니 대충 알 것 같았다.
졸부 아들로 추정되는 이 친구는 그럴듯하게 정장입고, 멋지게 회사 생활을 하는 IT사무직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아니지, 직장인이 아니니, 있어 보이는 IT 사업 병에 걸린 거 같았다.
이런 병은 직접 차려서 돈을 좀 까먹어봐야 병이 치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냥 졸부 아들이니 밥이나 얻어먹고 말자는 생각을 하다, 왠지 이 친구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물론, 이 친구가 원하는 IT 사업 병에 딱 어울리는 일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일부러 스카이와 데닐리 탄과 영어로 사업 이야길 했다.
은근히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한 정보를 흘려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김신현 씨는 제가 하는 이런 배달 음식 대행 서비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IT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는 본래 있던 시장에서 수수료를 받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기업이라고 욕을 하기도 하지만, 핸드폰으로 바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건 IT산업의 긍정적이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신현 씨의 기준에 맞는 것 같습니까?”
“제가 직접 배달을 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김신현의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진짜 곱게만 커와서 일반 사람들의 일이나 그런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름 선하게 성장한 것 같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저 아직까지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부잣집 아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푸드 딜리버리와 같은 사업체를 만들려고 하는데, 한번 같이해볼 생각이 있습니까?”
김신현은 깜짝 놀랐다.
사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영어로 오고 가는 말을 듣고, 자신도 그런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며 IT산업의 진화를 끌어내는 그런 일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같이 해볼 생각이 있냐고 하니 고개가 절로 위아래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저도 함께할 수 있다면 같이 하고 싶습니다.”
“그럼 임원 자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투자자문으로 들어오는 조건이 될 겁니다. 새롭게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개척하는 자회사에 투자하실 수 있겠습니까?”
김신현은 같이 하려면 투자를 하라는 말에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