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연결고리. (1)
호수를 끼고 있는 체라스 레이크 밸리의 집 근처 도로 양옆으로 고급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차만 보면 100여 명은 온 것 같았다.
집으로 들어가니 진짜 영화에서나 보던 이브닝 파티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과 깔끔한 턱시도나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잔뜩 있었다.
건호는 이런 모임이 처음이었기에 데닐리의 부모님께 인사를 하곤 샴페인 잔을 들고서 이리저리 기웃 거리 는 것이 전부였다.
데닐리 탄이야 화교 3세이기에 이런 가족 간의 파티가 늘상 있는 일이었고, 미국인인 클래이는 미국식 가든파티가 생활이었기에 크게 긴장한 것 없이 음식을 먹고 잘 돌아다녔다.
스카이도 중국 북경대 출신이라 그런지 이런 사교적인 모임을 많이 겪어 본 모양새였다.
“신현이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너도 이런 파티 처음이지?”
“아닌데요. 저도 아버지 따라서 이런 사교모임에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다들 나이가 있는 사람들만 있고, 젊은 애들이 없네요. 어떻게 해 보지는 못해도 눈요기는 해 보고 싶었는데 거의 멸종 단계네요.”
그러고 보니 끼리끼리 모이는 상류층일수록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서로 인사를 시키고 인맥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그들만의 리그에서 만나서 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기에 상류층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이런 파티에 다닌다고 했었다.
헌데, 김신현의 말처럼 젊은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젊은 애들이 다 외국에 공부하러 나갔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랬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는 다들 외국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거든요. 방학 때나 신년 초에만 파티모임에서 젊은 친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데닐리의 말을 들으니 클래스가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꼈다.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죠.”
데닐 리가 소개해주는 사람은 50대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머리카락이 주변머리만 남아 있었지만, 검은색의 연미복에 검은색 리본 넥타이를 매고 제대로 격식을 차리고 있었다.
“홍릉그룹의 곽치엔 아저씨입니다.”
데닐리 탄이 소개를 해주니 인사는 하지만, 사실 누구인지도 몰랐다.
“한국식으로 하면 홍룡그룹이라고 해야겠지요.”
“아, 홍룡뱅크?”
“네. 맞습니다. 홍룡그룹의 곽렁찬 대표의 조카분으로 부총재이십니다.”
홍룡그룹은 말레이시아의 재벌 순위 5위 기업으로 금융재벌이었다.
부총재라는 게 어느 직급인지는 몰라도, 가족 경영이 기본인 화교들의 특성상 회장의 조카이니 뭔가 한자리를 하는 사람일 터였다.
“아버지와 대학교를 같이 나오신 동기라서 저도 몇 번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더 큰 다음에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대출받을 자격이 되었다고 하시네요.”
데닐리 탄은 기분 좋게 웃었는데, 아버지나 윗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분은 YTL 그룹의 여 차이람 아저씨입니다.”
“이분은 Berjaya 그룹의 로빈 탄 아저씨입니다.”
데닐리의 소개로 몇 명을 더 소개받고, 한국의 푸드 딜리버리 대표라고 나를 소개하며 그랩 택시를 데닐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이야길 했다.
그리고, 일일이 사람들의 얼굴과 회사를 기억하기 위해 고생을 했는데, 명함을 서로 주고받지 않아서 더 힘들었다.
데닐리 탄의 말로는 이런 가족들의 모임에서는 명함을 주고받는 것이 결례라고 했다.
그래서 모임 중간중간에 소개받은 회사와 이름 특징을 폰에 기록했는데, 그러면서 소개받은 회사를 검색해보니 다들 말레이시아의 재벌 그룹들의 혈족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낀 것이 말레이시아는 화교의 나라구나 하는 것이었다.
재계 순위 10위까지만 보았을 때 통신업 1위인 Maxis를 소유한 아난다 크리슈난이나 광산업으로 재벌이 된 탄스리 사이드 목타르란 2명을 빼고는 다 중국계 화교였다.
말레이시아의 국민 구성에서 중국계는 2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경제계를 중국계들이 다 잡고 있으니 말레이계 사람들의 우대정책인 부미푸트라라는 것이 있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
이틀 후 아침 회의에서 데닐리 탄은 중요한 안건이 있다고 회의를 소집했는데, 엉뚱하게 대출 건을 들고 왔다.
“대출과 투자를 받자고?”
“네. 사업 단계에서 검토하기로 기존의 택시업체들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을 넘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유버가 미국에서 대성공을 하고 유럽에 진출했을 때 각국의 법적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유버를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은 택시회사들이었다.
택시 기사들이 시위를 하고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자, 정부에서 유버를 막아 버리는 나라들이 나오기 시작했었다.
택시회사와 기사들의 생존권 문제도 있었지만, IT기업의 플래폼에 대중교통이 종속되면 안 된다고 판단한 정치권의 똑똑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랩 택시와 그랩 카를 시작했을 때 최대한 트러블 없이 확장과 보급에 신경을 쓰기로 했었다.
나중에 우리에게 법적 제재를 가하게 되면 교통이 마비되기에 법적 제재를 하지 못할 정도로 확장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 확장에 이어 안전고리를 2개 더 달았으면 합니다. 홍룡 은행에서 천만 불까지 대출을 해 준다고 합니다.”
이미 신성의 한성훈 부장에게도 말레이시아 재벌들을 끼고 사업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기에 이 대출 건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담보나 이자는?”
“지분을 담보로 잡고 5.8%의 이자입니다.”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출이라는 것이 찝찝할 뿐이었다.
당분간 흑자 전환이 불가능한 상황이 뻔하게 보였으니 그 이자 변제금만 해도 아까울 터였다.
“투자도 있다면서?”
“네. Berjaya 그룹에서 투자를 하고 싶어 합니다.”
“버자야에서? 이틀 전 모임에서 그렇게 이야기가 오고 간 거야?”
“네. 부모님은 물론이고 다들 그랩 택시와 카를 가족 사업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게 위험을 분산하는 방법이자 망하지 않는 방법이니깐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화교들의 나라나 마찬가지인 말레이시아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말레이 재벌들의 투자나 대출 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확실히 안정적일 터였다.
하지만, 밥그릇은 하나인데, 여러 곳에서 숟가락이 들어와서 떠먹으려 한다면 본래 밥그릇의 주인인 내가 먹을 게 줄어들 판이었다.
안정적으로 가되 적게 먹어야 할지, 아님 화교들을 배척하고 위험하게 가야 할지 판단을 해야 했다.
그리고, 처음 말레이시아로 올 때 그랩에 출자한 100억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시장을 장악하기까지 들어가야 할 자본이 필요하긴 했다.
“대출은 홀딩. 투자는 데닐리 네가 가진 본인 지분과 투자를 위해 남겨둔 9% 안에서만 받는 걸로 하지.”
“그럼, 홍룡 은행도 대출이 아니라 투자를 해달라고 한번 협상해 보겠습니다.”
데닐리 탄은 상장했을 때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51% 지분에서 얼마를 떼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말레이시아 재계 7위인 YTL그룹만 해도 형제들과 자손들이 지분을 다 나눠 가지고 있기에 그 인맥으로 오히려 더 굳건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데닐리의 입장에선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Berjaya 그룹을 우선했으면 하는데.”
“그게 이유가 있습니까?”
“2단계 전략에 가장 중요한 키(Key)를 버자야가 들고 있는 거 같거든. 그래서 홍룡이나 다른 그룹보다는 버자야에 더 비중을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2단계 전략은 그랩 푸드와 그랩 바이크였다.
버자야 그룹은 말레이시아 내에 스타벅스와, 웬디스 버거, 파파존스, 코스웨이, 크리스피 도너츠 같은 식음료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기에 2단계 전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흠.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버자야 그룹을 우선으로 두겠습니다.”
***
버자야를 우선순위로 두라는 말에 데닐리는 버자야에 7%의 지분을 주고 90억의 투자를 받았고, 홍룡은행에겐 5%의 지분을 주고 60억의 투자를 받았다.
여유 있던 9%와 데닐리 자신이 가지고 있던 3%를 넘겨주고 투자를 받은 것이었다.
투자금이 들어왔기에 2단계로 진행을 했는데, 가장 먼저 쿠알라룸푸르 번화가와 요식업이 많이 몰려 있는 교차로 스트리트에 그랩 푸드 & 바이크 사무실 4곳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쓰던 방식을 수정한 전략이었는데, 영업사원이 일일이 가게를 찾아가 영업을 하기보다는 사무실로 찾아와 가게를 등록하게 한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영업사원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신용카드 결제나 포스기(POS)를 제대로 보급할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그랩 푸드에 가게를 등록하고 싶으면 찾아오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 가게 접수와 더불어, 그랩 바이크에 드라이버로 등록받는 업무도 이 사무실에서 처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스마트폰 개통도 가능하게 유 모바일의 직원도 대기시켜서 3가지를 동시에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번잡하고 정신없어서 안 하겠다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평상시 관공서든 어디든 이 정도의 번잡함과 혼란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겐 평균적이었다.
그리고 이 가입자를 받는 일을 맡은 김신현은 매일이 짜증과 혈압을 올리는 트러블의 연속이었고, 욕을 입에 달고 살수 밖에 없었다.
“아, 시바 짜증나네. 못 배운 놈들 일일이 가르쳐도 쳐 알아 듣지를 못하고, 겨우 알아 들은 것도 다음 날이 되면 까먹고. 환장하겠네.”
교육 수준이 낮다 보니 스마트 폰 사용법을 알려줘도 제대로 콜 의뢰를 받아서 처리하는 사람이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지만, 김신현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도 그랩 바이크의 드라이버가 늘어나지 않는 것에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랩 바이크 기사들에게도 스마트 폰을 무료로 지급해야 합니다. 그래야 드라이버를 금방 모을 수 있습니다.”
김신현은 임건호에게 그랩 바이크의 드라이버들에게도 핸드폰을 줘야 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길 했다.
“바이크는 안돼. 바이크는 차량번호처럼 등록되지 않은 바이크가 많다 보니 스마트 폰만 먹고 도망쳐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레이시아에서 들고 싱가포르나 캄보디아에 가서 핸드폰만 팔아도 20만 원을 벌 수 있기에 그렇게 바이크 드라이버로 등록하고 난 이후에 도망치면 답이 없어. 그랩 택시도 그렇게 도망치는 사람이 있는데, 바이크는 더 할 거야.”
“하지만, 진짜 스마트 폰을 들고 있는 애들이 몇 없다니깐요. 스마트 폰은 또 비싸서 할부로 당겨서 애들이 사는데 겁을 내구요.”
“가장 좋은 건 한국처럼 퀵서비스 기사사무실을 두고 그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빌려주는 중간 업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거야.”
“그걸 우리가 차려서 수수료 먹으면 안 됩니까?”
“그러기엔 우리가 일할 사람이 없어. 네가 한번 고민해봐.”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 하부 쪽으로 보내서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였다.
김신현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뭔가 꼼수가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임건호에게 따로 술을 한잔 먹자고 이야길 했다.
왠지 임건호는 답을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