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스타 페이. (2)
테홍 피오우(郑鸿标 정홍표)는 콸콸한 성격으로 소문이 나 있지만, 그것도 옛말이었다.
나이가 1930년생으로 80살이 넘다 보니 이제는 말을 아껴 하고 있었는데, 방금 말한 겁을 그만 주라는 발언을 한 이후로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정 어르신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다들 중국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여기에 와 주셨습니다. 그럼 중국의 은행들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로 내려올 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데닐리 탄이 인쇄된 제안서를 돌렸다.
“가칭 ‘스타페이’를 만들어 먼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주도권을 잡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넘어오더라도 힘을 쓰지 못하게 막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 페이를 만들어 선점하자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이미 개척되어 점유하고 있는 스타페이가 있다면 후발 주자로 들어오는 중국의 페이들이 쉽게 끼어들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 그랩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물론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으로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확장되는 속도를 보셨듯이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교통과 배달 시장을 장악해 나갈 것입니다.”
그랩의 사장인 데닐리 탄이 다른 동남아시아 진출 계획서도 돌렸다.
“그랩이 동남아 시장의 교통과 배달 시장에 안착을 하고, 그 결제에 스타페이가 쓰이게 된다면 자연스레 선점 효과가 일어날 것이고, 뒤늦게 들어오는 중국의 페이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미리 선점한다라. 그게 확실히 가능한가? 알리바바와 위챗 아니 텐센트를 막아낼 수 있나?”
테홍 피오우는 말레이시아에서 그랩 택시나 그랩 푸드가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스타 코퍼레이션과 그랩이란 신생 회사들이 중국 본토에서 내려오는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을지가 염려가 되었다.
아직 제대로 보여준 것이 몇 가지 없기 때문에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정 어르신의 염려는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걸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를 따로 도와줄 곳이 한 곳 더 있습니다.”
“거기가 어딘가?”
“아직 공식적인 발표를 낼 수 없기에 엠바고를 지켜주실 것이라 믿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로 한국의 신성전자입니다.”
아직 신성전자와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신성전자가 함께 한다고 뻥카를 날렸다.
“흠. 신성전자가 이 일에 참여할 이유가 있나?”
페이류는 금융 쪽의 일이기에 뜬금없이 신성전자가 참여한다는 말에 테홍 피오우는 의구심을 나타내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저가의 중국산 폰에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기본 어플 앱으로 탑재가 되어 출시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결제 시스템을 가진 저가의 핸드폰이 나오게 되면 신성전자도 피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신성 전자도 선제적 대응을 하기 위해서 같이 하기로 한 것입니다.”
“중국의 저가폰의 확산을 막아내기 위한 방안이라는 거군.”
“거기에 겸해서 페이 기능을 신성의 핸드폰에 넣게 되면 그 페이 기능 때문이라도 차후 기기를 변경할 때 다시 신성의 핸드폰으로 바꾸겠지요.”
“왜 신성전자가 여기에 참여하려는지 알겠군.”
이 Pay 사업에 신성전자가 끼어들 타당한 이유를 알게 되니 다들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최고의 전자 반도체 회사가 도와주고 우리들이 함께 한다면 본토 자본이 쉽게 들어와서 점유율을 늘리지 못할 테지. 좋아. 우리 퍼블릭 뱅크는 이 연합에 참여하도록 하지.”
“우리 메이뱅크도 참여하겠네.”
“홍룡뱅크도 연합에 함께 하겠어.”
“UOB뱅크도 함께 하겠습니다.”
테홍 피오우가 먼저 참여를 선언하자 모두가 참여하기로 했다.
한고비를 넘긴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연합은 어떤 방식으로 같은 배를 타게 되는 건가?”
“가칭. ‘스타페이’란 회사를 설립하게 될 겁니다. 여기 모여주신 화교 자본의 은행에서 30%의 지분을 가지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신성전자에서 30%를 가지게 됩니다.”
“그럼 나머지 40%를 그쪽이 가지나?”
“운영사인 스타 코퍼레이션은 30%를 가지게 될 것이며, 상징적으로 그랩이 1%를 가져가게 될 겁니다. 나머지 9%는 사업 진행 중 오픈 투자를 위해 남겨둘 생각입니다.”
지분율까지 알려주자 테홍 피오우는 물론이고 다들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3개 세력 중 두 곳이 연합하면 한곳을 쉽게 몰아낼 수 있는 단순한 지분 구조이니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4개의 은행이니 각자 8%씩 32%의 지분을 우리에게 배분해 주길 원하네.”
수장과 같은 테홍 피오우가 먼저 이야길 하자 다른 곳도 눈치를 보곤 고개를 끄덕여 각자 8%의 지분에 동의했다.
데닐리 탄이 가지는 1%까지 해서 33%가 화교 자본이 되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지분에 따른 투자 금액은 신성전자와의 협의가 확정된 이후 그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스타 페이의 본사도 싱가포르로 하지.”
“네. 그리고, 제대로 된 회사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메이뱅크 본사 건물의 사무실을 빌려 쓰기로 했습니다.”
“오케이. 스타 페이의 업무는 여기 이석건 실장이 준비를 하게 될 거야. 중국 쪽에서 Pay 시스템을 분석해서 개발하는 팀과 한국에서 근무하는 개발팀,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개발하는 팀까지 3개의 개발팀이 돌아가게 될 거야.”
신규 개발자를 더 채용하여 서로 연계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고, Pay 시스템과 각 은행이 연계되는 부분도 협의를 해야 했다.
업무분장과 구조적 시스템에 대한 설계를 맡기곤 한국으로 향했다.
뻥카로 쳤던 신성 전자를 이제 진짜 설득해야 했다.
***
“안녕하십니까? 다시 서비스해 드릴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네?”
비행기를 탔을 때 평소 듣는 스튜어디스의 멘트가 아니라 다른 응대 멘트에 뭔가 싶었다.
“예전 인천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승객님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네? 아아, 혹시 캐비어 때문에 일어났던 그때 그 일인가요?”
“네에. 맞습니다. 그때 승객님이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감사를 못 드렸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한국으로 가시는 비행시간 동안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나는 그냥 일어났던 해프닝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그런 해프닝을 기억하고 감사하다고 하니 그때 나섰던 것이 잘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 나섰기에 김신현을 만날 수도 있었고, 예쁜 여자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대우를 해주겠다고 하니 불의를 참지 않고 나선 것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오는 것 같았다.
“그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샴페인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캐비어는 없죠? 그때 이후로 캐비어를 비행기에 안 싣는다는 그런 내규가 생기고 한 거 아닙니까?”
“호호호. 그런 내규는 없습니다만, 비행편에 따라 캐비어 유무가 달라지다 보니 오늘 싱가포르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캐비어가 없답니다. 대신에 체리가 올라간 크림치즈 케익이 정말 맛있는데, 그걸로 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 그걸로 주세요.”
이제까지 비행기를 타면서 한국 항공사의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에서 받은 응대 서비스들은 모두 다 친절하고 좋았었다.
하지만, 오늘 받는 서비스는 확실히 달랐다.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서비스를 받다 보니 대우받는다는 느낌이 확실히 체감되었다.
“샴페인을 더 드릴까요? 싱가포르에는 자주 다니시는 가요?”
몇 번의 서비스 응대를 받고 했는데, 갑자기 개인적인 질문을 해왔다.
“일 때문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자주 다니지요.”
“저도 이제 미주 노선에서 아시아 노선으로 바뀌었는데, 자주 뵐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네요.”
“아...네...”
스튜어디스는 자주 볼 수 있어 기쁠 것 같다고 말을 하며 접힌 종이를 건네주었는데, 뭔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도, 다른 사람들이 볼까 싶어 얼른 종이를 받아 챙겼다.
그리고 몰래 종이를 보니 연락처와 짧은 메모가 있었다.
좋은 인연인 것 같아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 시간이 맞으면 시원한 음료수를 대접하고 싶다는 메모였다.
이런 메모를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나린이라고 하는 27살의 파란 유니폼을 입은 예쁜 여자가 먼저 연락처를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 임건호 아직 죽지 않았어!
신성전자를 스타 페이에 참여시키는 것을 설득해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그런 스트레스가 한 번에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계속 달리기만 했구나 하는 생각에 근래에 이런 잔잔한 감정의 변화로 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봤다.
이렇게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던 적이 근래에 없었다.
이런 작은 감정의 자극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려 버리자 적당한 기분전환이 지금 내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기업 회장들이 관리를 받는데도 대머리가 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애인을 여러 명 두고 야단법석을 피우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여자로 푸는 것이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 같았는데, 단순한 육체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만나 느끼는 이런 알콩달콩한 감정의 교감이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들이댄 것이 아니라 들이받히다 보니 왠지 더 기분이 좋기도 했고, 설렘이 가득한 비행이었다.
이런 설레는 감정을 놓치기가 싫었다.
그래도, 돌싱이라는 것이 있다 보니 티를 내지 않았고,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자 간단히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
“선배님. 그 사람에게 연락 없어요?”
이나린은 비행이 끝나고, 지상 업무를 마친 후 귀가하려는데, 같이 비행한 후배가 물어왔다.
“이상하네. 분명 결혼반지도 없었고, 서비스하면서 핸드폰 하는 걸 확인하니 휴대전화기에 가족사진이나 애들 사진도 없었는데. 왜 연락을 안 하는 거지. 스튜어디스에게 연락처 받는 일 진짜 귀한데.”
“뭐 바쁘겠지.”
이나린은 후배에겐 그냥 쿨하게 이야기하고 집으로 향했지만, 승무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전화번호를 건넨 것인데, 연락이 없으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0대의 성공한 기업가로 보이는 사람이었으니 이미 가정이 있거나 애인이 있어서 연락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마음을 접어야 하나 싶었다.
까똑!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이제 연락 드립니다. 시간 되는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 임건호]
이나린은 연락이 왔다는 것이 기뻐서 바로 답을 했고 한참이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한참 후 보내온 카톡을 보곤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건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신성전자에 들어가는 자료와 서류를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늦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카톡으로 연락하는 것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카톡으로 이야길 주고받았고, 여자와의 카톡에 젊어진 기분이 들어 활력이 다 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기분을 내는 것도 이혼남이라는 허들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쪽에서 이해를 해줘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카톡으로 이혼남인 것을 이야기했고, 그래도 만나볼 의향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러고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카톡이 오곤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에이 씨이 그냥 일이나 하자.”
신성전자 관련 일만 계속하니 답답해서 중국쪽 진행 사항을 보고 있으니 동생에게 가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