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이상한 나라에 오다. (2)
콘세도 홀딩스 아니 이제는 콘세도 저축은행의 김조일이 안내한 빌라는 2층짜리 빌라였는데, 건물이 옆으로 엄청나게 길었다.
“20명이 묵을 수 있는 빌라를 준비했습니다. 회의실과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있습니다. 휴식할 수 있는 수영장도 있고, 바비큐장도 기본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청소나 정리의 경우에는 따로 메이드가 오니 호텔과 같을 겁니다.”
편하게 회의를 하고 업무를 볼수 있는 공간까지 있으니 호텔이나 레지던스에 묵는 거보다는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짐을 좀 풀고, 신현이에게 업무 보고를 좀 받아야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잠시 자리 좀 비워 주십시오.”
“네. 그게 당연하긴 한데, 부연 설명이 좀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우선 좀 빠져주시겠습니까?”
아들이 걱정되는 건지 아니면 아들을 감시하려는 건지 김조일은 최대한 몸을 비비적거리다 빌라를 나갔다.
짐도 풀지도 않고, 김신현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왜 여기에 있으신 거고, 저축은행까지 설립하신 건 또 뭐야? 네가 한번 이야기 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휴우…그게 말입니다.”
***
김신현은 임건호에게 그랩 캄보디아의 사장으로 지명되자 신이 났었다.
자신이 이제까지 꿈꾸었던, 있어 보이는 IT 사업가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선은 수도인 프놈펜에 사무실을 설립했고, 현지 교민과 현지인을 고용해서 말레이시아에서 했던 것처럼 기사식당과 무료 보급 스마트폰으로 드라이버를 확보하려고 했다.
기사식당을 오픈할 가게를 찾고, 캄보디아 사람들이 자주 먹는 볶음밥과 볶음국수를 메뉴로 정할 때까지만 해도 말레이시아처럼 금방 캄보디아를 석권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캄보디아는 한국과는 달리 이동통신사에 가입해서 전화를 쓰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캄보디아에선 가게에서 파는 유심카드를 사서 끼워 쓰는 거고, 그 용량이 다 되면 충전 카드를 사서 쓰는 선불제만 있다는 말이지요?”
“네 맞습니다. 한국처럼 후불제 요금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획하신 것처럼 스마트폰을 캄보디아 드라이버들에게 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통신사에서 묶어서 가입을 시키는 것도 안 되는 겁니다.”
현지 교민으로 채용된 박형태는 캄보디아 사람들 자체가 신용이 없는 사람들이라 후불제 요금 자체가 없다고 했다.
김신현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럼, 8개인가 있는 통신사들은 그 유심칩이 팔리는 거와 용량 충전 카드에서 나오는 수익만 보고 기업을 운영하는 겁니까?”
“네. 이게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월 고정 비용으로 통신비가 나가는 것 자체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런 충전 금액에 따라 핸드폰을 쓰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나 말레이시아처럼 통신사에 가입해서 월정액을 내는 요금제를 만들어 달리는 건 아예 불가능할까요?”
“거의 불가능 할 겁니다. 정부의 통신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안될 겁니다.”
“골치 아프군요. 우리가 스마트폰을 준다고 해도 기사들이 다른 유심을 싸게 사서 넣어 쓰면 그냥 스마트폰만 날아가는 거겠군요.”
“네. 선불제 사용이 기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통신사에 따라 전화가 안되는 지역도 있다 보니 대부분의 택시 기사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유심을 2~3개씩 들고 다니며 사용을 합니다.”
“권역별로 잘 터지는 통신사로 유심을 바꿔가면서 해야 하는 거군요.”
“네. 그러니 말레이시아에서 했던 스마트폰을 통한 드라이버 확보는 불가능 할 겁니다.”
박형태의 말을 듣고 보니, 답이 없었다.
스마트폰 무상 제공을 통한 드라이버 확보 자체가 안된다면 기사들을 모아 저렴하게 식사를 제공하는 기사식당도 손해를 보며 운영할 필요가 없었다.
“답이 보이지 않네요. 답이.”
임건호에게는 맡겨만 달라고 했지만, 시작부터 암초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김신현은 이동통신 가입을 2만 대 해줄 수 있으니 월정액을 받는 후불 요금제를 만들어 달라고 여러 통신사를 돌아다녔는데, 다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캄보디아 통신사를 찾아 다니면 다닐수록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시발. 웃기는 나라네. 어떻게 된 게 자국 통신사가 없는 거야.”
이동통신 가입자 수 1위이자 4G 서비스 실시 일자가 가장 빠른 통신사가 Viettel사의 메폰(Metfone)이었는데, 회사 이름을 듣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 점유율 1위 회사는 베트남 이동통신사였다.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이동통신망을 다른 나라 업체가 맡고 있다는 게 웃겼다.
“아니, 베트남하고는 옛날부터 전쟁도 했고, 1970-80년대에는 10년 동안 점령도 당했다고 하드만. 왜 베트남 이통사가 47%로 1위 점유율인 건데? 이해를 할 수가 없네.”
베트남과의 전쟁으로 정권이 무너지고 10년 동안 고생을 했는데도 멀쩡하게 베트남 업체가 영업을 하게 놔두는 것도 신기했다.
2위로 24%의 점유율을 가진 CamGSM사의 모비텔(Mobitel)은 유럽의 회사였고, 3위로 18%의 점유율을 가진 Latelz사의 스마트 모바일은 중동과 아프리카의 다국적 통신사인 Timeturns의 자회사였다.
물론, CamGSM사에는 캄보디아 현지 기업인 로열그룹의 지분이 들어있다고는 하지만, 21세기 산업에 가장 중요한 이동통신 시장을 외국업체들이 다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김신현이 보기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랩 드라이버들을 빠르게 확보할 방법이 없어지자, 효율이 없겠지만, 광고판을 내 걸고 가입을 받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돈을 쓰기 위해 계좌를 보는데, 본래 스마트 폰 2만 대를 구매하는데 쓰여야 할 40억이 보였다.
‘돈을 이렇게 묵혀두는 게 안 좋은데.’
신신현은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 싶어 고민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핸드폰을 나눠 주었듯이 택시를 아예 기사들에게 운행하게 하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이 되었다.
핸드폰이 매개가 되듯이 중고차를 매개로 드라이버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차는 핸드폰처럼 자기 마음대로 유심을 돌려가면 쓸 수 없을 것이기에 핸드폰 구매 요금으로 차를 사고 오토바이를 사서 드라이버를 확보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교민들과 현지인들을 써서 분석을 해보니 가능성이 보였다.
캄보디아에 방문하는 외국인의 대부분은 프놈펜에 도착해서는 씨앱립으로 가는 것이 50%가 넘었고, 마찬가지로 씨앱립 공항에 내린 외국인들도 프놈펜으로 움직이는 게 절반이 넘었다.
즉, 캄보디아의 교통 수송량의 절반이 수도인 프롬펜과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앱립을 오가는 것이었으니 거기에 택시를 투입하기만 하면 절반의 교통량을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구매하기로 한 자금의 절반을 써서 중고차를 구매하고 택시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맞는 방법 같았다.
김신현은 사업 전환을 위한 사업구상기획서를 만들어서 임건호에게 올리려고 했는데, 사업 구상 제안을 하면서도 괜히 걱정이 되었다.
처음 만들어 보는 사업 구상이다 보니 허점이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제대로 서류나 그런 것을 만든 것인지도 걱정이 되었다.
해서, 김신현은 아버지에게 사업 구성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했다.
***
“예? 아버지가 바로 오신다고요?”
“그래. 네가 보낸 사업 구상서를 보니 허점이 많아. 특히나, 일본에서 중고차를 들여오는 부분은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더라. 지금 일본 중개 매매상에게 구매 의사를 타진해서 차를 언제 받을래? 내년에 받을래?”
“그럼, 어떻게 중고차를 가져와서 택시로 만들어야 하는 건데요?”
“캄보디아 중고 자동차 상에게 택시로 쓸 차량을 다 털어서 사 오고, 대수가 부족하면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에서 다 사 와야지. 그리고, 차를 받아올 때도 금융적인 문제에 너무 허술해. 한국에서도 차량 인도금 먼저 주고 차를 못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 그래서 아빠가 온 거다.”
김신현은 아버지가 이런 부분을 도와주겠다고 온 것이 든든했다.
해서 자신이 그간 알았던 인맥들을 소개해주었고, 김조일은 아들 일을 도와주면서 캄보디아의 금융계가 허술하다 못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캄보디아 통신부 차관 소쿰 삐아크를 만났을 때 제안을 듣게 되었다.
“미스터 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그랩이라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자리를 잡았고 혁신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투자금을 가지고 우리 캄보디아에 오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정부의 차관이 고맙다고 하고 있으니 차관을 소개해준 김신현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혁신적인 서비스에도 카드 결제라 든지 은행 통장이 쓰이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지요. 그래서, 신성전자와 함께 가상계좌를 통한 결제 툴(Tool)을 준비중입니다.”
“흐음. 그건 이미 늦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자국의 로열그룹도 그러한 서비스를 만들어서 막 런칭을 했습니다. 윙(Wing)이라고 아시지요?”
김신현은 물론이고 김조일도 알고 있었다.
워낙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열그룹이 이 ‘윙’이라는 전자지갑으로 개인들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윙을 더 보급하기 위해 이제까지 열려있던 은행업을 닫아걸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말이 왠지 아이러니 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이기에 그게 가능할 것도 같았다.
“지금 몇백만 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뒤를 봐줄 수 있으니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지급 보증금 규모만 맞추어 준다면 은행업은 신고제로 바로 등록이 될 겁니다. 아마, 마지막 신고 은행이 될 수 있겠지요.”
고쿰 삐아크 차관의 말에 김조일은 머리에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은행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는데, 은행을 해보라고 판을 깔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로열그룹의 압박으로 인해 신고제인 은행이 허가제로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허가제가 된다면 당분간은 은행 설립이 아예 불가능 해질 겁니다. 로열그룹을 막을 테니깐요.”
“그럼, 차관님의 은혜는 어떻게 갚아 드려야 할까요?”
“저도 이제 몇 년 후면 은퇴를 하기도 하고, 제 아들과 같이 은행에서 일을 해보고 싶군요.”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이번 주 내로 결론을 내리고 서류를 접수해야 할 겁니다. 로열그룹의 끗맹회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계시지요?”
“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내일 연락 드리겠습니다.”
김조일은 확답하지 않고, 김신현과 물러났다.
***
“신현아 기회다. 한국에 가면 돈을 줄 테니까 너네 회사 자금 좀 빌려 쓰자.”
“아버지 미쳤어요? 그러면 공금횡령이에요.”
“내가 돈이 없냐? 지금 캄보디아에 돈이 없을 뿐이잖냐. 이번 주가 지나면 은행 업 설립 허가가 안 난다고 하잖냐. 지금 융통해서 쓰고, 한국에서 돈 들여와서 주면 되는 거 아니겠냐?”
“그게 도박해서 돈 따고 다시 넣겠다는 말이랑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거랑 다르지. 넌 인마 지금 규정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장이란 자리는 그렇게 규정에 다 맞게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니야. 임기응변으로 융통성 있게 처리해야 할 때가 더 많은 자리야. 특히나 외국에 나와 있을 때는 더 그런 능력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그런 권한 외의 일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아예 받지 못했다고요.”
“쯧쯧쯧 인마 그런 건 알아서 하는 거지. 일단 그랩 자금을 융통해 쓰고 내가 한국에서 돈을 들고 오마. 그게 뭐하면 이번 택시 건처럼 그랩의 보급을 위해 은행을 먼저 만들게 되었다고 작업을 치면 되는 거지. 은행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어? 진짜 이건 기회야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