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SOC 사업. (2)
“임 대표님 정말 놀랐습니다. 훈센 총리의 막내아들인 훈 마니는 외국인에 대해서 엄청 배타적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친분을 만드신 겁니까? 따로 만나는 자리가 있으면 저희도 좀 불러주십시오.”
신화은행 인도차이나 사업부의 팀장 심현기는 훈센 총리의 아들과 친해진 것이 부럽다며 소개를 부탁했다.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저 훈 마니 와의 약속을 잘 지키려고 했고, 그걸 훈 마니가 좋게 봐줘서 일을 주려는 거 같습니다. 헌데 소문이 엄청 빠른 거 아닙니까?”
훈 마니 에게는 군대에서 날림으로 받은 수계증(受戒證)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같은 불가의 제자라고 부풀린 것이 제대로 먹혔으니 챙겨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한국 건설사들이 해외 공사 수주에 목말라 있다 보니 스타 건설이 도로 건설을 맡아서 하게 될 거라는 소문이 빨리 퍼졌습니다.”
“아직 공사 규모나 금액이 확정도 안 되었는데 그렇다는 말 입니까? 캄코시티 일도 있어서 시행사를 구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가 보군요.”
“그때는 위에서 해 먹으려고 했던 법조계 사람들에게 당한 거라 한국에 제대로 기반이 있는 이번 일과는 다르지요. 듣기로는 경조건설과 한아건설이 관심을 넘어서 실무진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김독수 전무는 일일이 알려주는 타입이 아니라 몰랐는데, 두 곳이 나선 것 같았다.
“헌데, 임 대표님. 이번 공사를 하게 되면 공사비 관련으로 해서 어디를 이용하실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골든타워42 때는 콘세도 저축은행을 이용하셨던데, 콘세도의 조건을 알려주시면 그 이하로 어떻게든 맞춰 드리겠습니다.”
“허허. 아직 공사 계약서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엎어지면 어쩌시려고요.”
“그건 그렇지만, 미리 생각해둘 여지는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신화은행은 동남아 쪽 실적이 부족한지 내게 엄청 매달렸지만,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콘세도 측과 얽힌 것이 많다 보니 아마도 이번 도로공사도 함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도대체 콘세도 측에서 어느 정도로 대출을 해주기에 그렇게 거래처를 안 옮기시는 겁니까?”
심현기 팀장은 우리와 콘세도 저축은행과의 얽히고설킨 일을 모르다 보니 아쉬워하며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심현기 팀장의 조건을 들었기에 콘세도 저축은행의 김조일에게 닦달할 수 있었다.
“아니 임 대표. 이 조건은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우리는 0.3% 밖에 수익을 못 얻는다고. 말이 0.3%지 실제로는 마이너스 손해 보면서 대출을 해줘야 하는 조건이잖아.”
“신화은행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 만큼 손해를 떠 안아 가면서 대출해서 실적을 올리려고 하는 겁니다. 완전 열려있던 캄보디아 은행환경이었던 만큼 그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진짜 상도의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 손해 보고 대출을 해주라니.”
“그럼, 신화은행으로 갈까요? 그래도 나름 신현이와의 의리 때문에 계속 콘세도 저축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끝을 낼까요?”
“아니, 그게 무슨. 이렇게 또 극단적으로 결정을 하면 안되지. 우리 사정도 좀 봐주고 해줘. 진짜 너무하잖나.”
“사정은 많이 봐드렸지요. 지금 골든타워42에 근무하는 우리 직원들 월급 계좌를 여기서 다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 인원만 3천 명이 넘지 않습니까. 그리고, ATM기 설치나 지점 설치도 좋은 자리를 드렸으니 거기서 얻는 수익이 꽤 될 거 아닙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건 모르겠고요. 일단 저희 쪽에서는 최대한 배려를 해주고 있는 상황이니깐 신화은행에서 제시한 대출 조건으로 해주십시오. 미리 이렇게 알려주고 하는 것만 해도 충분하게 봐주고 있는 겁니다.”
“에휴.”
김조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그렇게 월급 계좌를 유치해서 얻는 이득의 대부분을 건설 공사 대출 건에서 토해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도로공사가 시작하게 되면 관련 업체들의 금융거래도 자연스레 유치할 수 있게 될 터이니 새로운 수익원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콘세도 저축은행도 인력을 충원하고 준비에 들어 갔다.
***
“이쪽은 경조건설의 최문성 부사장이고, 이쪽은 한아건설의 안창건 사장. 이쪽은 거산 건설의 이수창 부사장님.”
신화은행에서 들었던 대로 건설사에서 사람이 왔는데, 김독수 전무도 거산 건설의 부사장과 같이 왔다.
“다들 캄보디아에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전무님은 안 오셔도 되는데 왜 오신 겁니까?”
“이야 벌써 구박하네. 나야 여기에 먹을게 많다고 해서 왔지. 도로공사는 건설하고 난 이후도 참 중요하거든.”
멤버들이 모이자 훈 마니가 보내준 서류를 검토 했고, 사업 규모와 컨소시엄 구성에 대한 실무이야기가 진행 되었다.
훈 마니 측에서도 건설국 차관과 국장들을 보내줘서 프로젝트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토지 수용 문제가 있기에 예산은 변동 가능하지만, 11억 달러(약 1조2천억)규모의 공사입니다. 건설비를 위해 한국계 은행인 콘세도 저축은행과 캄보디아의 로열 은행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될겁니다.”
건설사는 한국의 건설사 4곳과 캄보디아의 건설사 1곳이 참여하는데, 그 한 곳이 바로 훈 마니의 크메르주식회사였다.
그리고, 실무적인 이야기 끝에 나온 황금알을 주워가기 위해 훈센 총리 정부의 실세들을 모아두고 브리핑을 했다.
***
11억 달러 규모의 도로공사와 그로 인해 프놈펜까지 바로 이어지는 인프라는 프놈펜과 이 일대의 활기를 줄 것이라고 입을 털어댔다.
항만과 고속도로가 있으면 세계적인 크루즈 선을 타고 온 서양의 관광객들이 프놈펜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예상을 내놓았다.
물론, 그런 관광 인프라에 우리 호텔과 컨벤션 센터, 아직 있지도 않은 골프장까지 잘 버무렸다.
“그리고, 저희는 고속도로만 건설 하고 끝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유료도로이기에 돈을 받는 진·출입 요금소도 있어야 하며, 180km에 이르는 거리이기에 그 중간에 쉴수 있는 휴게소도 있어야 합니다. 다음 사진.”
한국의 멋들어진 휴게소를 보여주고 식당과 현대화 된 화장실도 보여주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을 맡아줄 주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도로 파손이 일어났을 때 수리하고 관리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보수 공사에도 고정 인력이 배치가 되어야 하기에 훈 마니 님의 크메르주식회사를 주축으로 하는 ‘캄폿 고속도로 주식회사’를 설립하시는걸 제안 드립니다.”
훈 마니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국가에서 도로를 건설하면 당연히 그 도로는 국가에서 관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도로의 관리를 사기업이 한다는 것에 놀랐다.
“이런 형태로 사기업에 관리를 맡기는 것이 국부의 유출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 사진을 봐주십시오.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도로입니다.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제때 보수가 되지 않아, 아스팔트가 깨지고 색이 없어질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방치가 되고 있습니다.”
비교를 위해 한국의 신대구 고속도로 사진을 올려주었다.
“한눈에 봐도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잠시만, 한국의 도로는 본래 인프라가 다 만들어진 상황에 추가로 만들어진 도로이니 비교하는건 안 맞을 것 같은데.”
훈센 총리의 장남인 훈 테니 였다.
“그렇다면 가까운 나라의 이 사진을 보시면 바로 비교가 될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고속도로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의 도로를 찍은 사진이었다.
“이 아래 도로는 정부가 만들고 관리하는 도로이며, 이 위의 고가도로는 저희가 제안 드리는 민자유치로 건설된 고가도로입니다. 다들 자카르타의 교통체증이 얼마나 심한지 아실 겁니다. 교통량이 엄청나지요. 하지만, 이 두 도로를 보면 확연히 그 차이가 보이실 겁니다.”
고가도로 밑의 일반 도로는 쓰레기가 아무 곳이나 떨어져 있었고, 포트홀도 몇 개나 있어 보였다.
더구나 도로를 구분하는 선도 오래되어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자로 만들어진 고가도로는 검은색의 아스팔트가 제대로 깔려 있었고, 깨끗했다.
“한국은 이미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기에 이런 민자도로를 깔아도 일반 도로와 구분이 잘 안되긴 합니다. 하지만, 같은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를 보면 이 민자도로의 장점이 확연히 보이실 겁니다. 공무원들도 돈을 받지만, 그들은 급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자도로를 관리하는 ‘주식회사’의 직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해고당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도로의 관리가 차이가 나게 됩니다.”
앞에 나서서 민자도로의 긍정적인 면만을 이야기 하는 게 사실 살짝 부끄러웠다.
그 민자도로를 건설한 이후 돈을 빼먹는 것이 국부를 사라지게 한다는 단점은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놈들이 해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해서, 요금소와 휴게소를 운영하고, 도로의 관리를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캄폿 고속도로 주식회사’의 설립을 제안 드리는 바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 했으니 나랏돈 빼먹는 사업의 내부 구조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돈을 빼먹을 수 있는 거라고 느꼈을 터였다.
“이 ‘캄폿 고속도로 주식회사’는 그럼 몇십 년이고 유지가 되는 건가?”
장남인 훈 테니가 물어 왔는데, 질문의 의도가 살짝 애매했다.
몇십 년 수익을 내고 국가에 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영구히 계속 주식회사를 굴려 돈을 벌수 있는 것인지 어느것을 물어 보는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한국은 20년에서 30년까지 유료도로에서 얻는 수익을 가져가고 이후로는 국가에 기부채납 하는 형태로 기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처럼 그냥 그대로 민자 사업체가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캄보디아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식회사의 구성에 대해서 이야길 하면 되겠군. 훈 마니 저쪽엔 얼마를 주려고 했지?”
“저야 전체 공사비에서 이득을 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방식의 구조를 만들어 올지는 몰랐기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부채납 한다는 것은 없이 그냥 영구히 가지도록 하지. 우리 삼 형제가 30%씩의 수익을 가지고 10%를 주식회사가 수익으로 가져가도록.”
10% 작다고 하면 작고, 크다고 하면 큰 금액 이었다.
하지만, 훈센 총리의 삼 형제들이 실제 ‘캄폿 고속도로 주식회사’를 관리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관리하는 관리 주체에서 휴게소와 요금소를 운영하게 된다면 수익금 10% 이상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초반에 저들에게 30%씩 90%를 다 주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훈 마니님의 크메르 주식회사와 세부적인 부분을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브리핑이 끝나고 고위층들이 돌아가자 김독수 전무가 먼저 다가와 옆구리를 찔렀다.
“다 먹었네. 이런 꿀통이 있을 줄 알았다면 나도 동남아에 진출을 해야 했는데. 휴게소 운영권 하나만 주라.”
“캄보디아 휴게소에서 이득이 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일단 이걸로 시작을 했으니 다른 것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가 확정되고, 발주 서류가 오고 가자 자연스레 수용되는 토지 문제가 발생할 터였다.
지금은 그 문제를 챙겨야 할 때였다.
그리고 토지 수용을 하면서 보틀링 공장부지와 골프장도 챙겨야 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전무님도 좀 필드에서 뛰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