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제트핑크. (2)
“건희야. 이거 콘티 바꾸고 하는 과정도 혹시 찍었어?”
“요즘은 CF나 뮤지비디오 비하인드 컷도 유튜브에 올리는 시대라 당연히 다 찍었지.”
“좋아. 그거로 CF 전체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CF도 바로 진행하자. 그리고, 제트핑크와 3년 정도 전속 모델 계약하면 얼마 들겠냐?”
“전속 3년? 많이 비쌀 건데. 이번에만 해도 지면광고에 CF, 행사해서 20억이었잖아.”
“돈을 더 줘도 되니깐 전속 3년 계약 알아봐. 완전 전속이 힘들면 쇼핑몰 관련 업종만 안 하는 조건의 전속도 괜찮아. 100억 넘게 주더라도 우리에게 그 이상 안겨 줄 거야.”
“흠. 100억까지 줘야 하는 건지 좀 의구심이 들지만, 나도 이번에 본 게 있으니 한번 협의해 볼게.”
[…시선을 돌려 클릭해봐! 클릭! 클릭!…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담아! 쇼퍼백에!]
1차 편집본을 보고 감이 왔던 것처럼 제트핑크가 찍은 쇼퍼백 광고가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공중파에서 방송되었다.
그리고, 제트핑크를 좋아하는 팬들은 난리가 났다.
이제까지 제트핑크가 했던 광고는 많았으나 이런 자연스러운 컨셉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CF 말미 화면 아래쪽에 정말 작게 CF 송은 즉석에서 미사와 제인이 만들었다는 문구를 넣었는데, 이런 것에 팬들은 환호했다.
이 CF 송도 제트핑크의 정식 곡으로 인정을 하는 팬들도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노래가 나왔다며 CF 방송이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른다는 팬들의 반응을 보니 제트핑크를 섭외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 만에 회원 수가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 판매자 등록도 2만 명이 넘었습니다.”
보고를 하는 정윤이도 신이 난 것 같았다.
“일 주문건수는?”
“어제 2천 건이 넘었습니다. 금액으로는 1500만 원이 넘었는데, 좀 아쉽죠.”
“1500만 원? 그렇다면 건당 단가는 7~8천 원대네.”
주문건수에 비해서 금액이 초라했다.
하지만, 주 가입대상이 돈이 없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연령대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몇 년 후 이들이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경제력이 생겨 전자제품이나 가격이 나가는 물건들을 사게 된다면 건당 출고 단가도 급상승하게 될 터였다.
그런 미래세대를 계속 유치해 나간다면 자연스레 동남아시아 쇼핑몰 헤게모니를 쇼퍼백이 가져오게 될 것이었다.
“메인 페이지에 노출하는 ‘아시안 걸스’에 대한 반응은 어떤데?”
“거산에서 재고 덤핑으로 들고 온 거라 한국산 치고 가격대가 저렴해서 판매는 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이 열리고, 자체 생산 SPA 옷이 깔리게 되면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레일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뽄독 인다 쇼핑몰(Pondok indah mall)에 아시안 걸스 매장을 열기로 했는데, 아예 매장에서 메이크업까지 한번에 하는 멀티샵 형태로 간다고 했다.
“택배나 전산 쪽으로는 문제없지?”
“서버나 사이트는 한국에서 작업하는 인력도 있고, 인도네시아 파견 인력도 있어서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택배 KAD는 인력문제가 있습니다.”
“인력문제? 구인이 힘든 거야? 아님 퇴사율이 높은 거야?”
제트핑크가 입고 사진을 찍은 파란색의 KAD 유니폼을 사고 싶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는데, 택배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되었다.
“박종일 사장님이 사람을 구인할 때 무조건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고집하다 보니 구인에 조금 힘이 듭니다.”
“고졸도 잘 없는 거야?”
“네. 인도네시아나 태국은 조금 더 나은 축에 들지만, 필리핀이나 캄보디아 라오스 쪽은 고졸 인력을 구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고 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고졸만 되어도 고급인력이 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택배 재고 관리에 바코드 기기로 찍고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고졸 이상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채용 조건을 고졸로 했는데, 그래서 구인이 힘들다고 합니다.”
“바코드기를 제대로 다루는 게 핵심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가 보네.”
일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사람을 더 쓰는 것인데, 학력 부족으로 바코드 기기나 PC 같은 기기를 제대로 못 다룬다면 오히려 그런 직원들이 효율을 떨어트릴 터였다.
“인건비가 좀 더 올라도 되니깐 문제없이 돌아가게 채용 조건을 올리라고 전해 주세요.”
***
“리나수낙 씨 핸드폰인가요? KAD택배입니다. 메이크노 지점에 주문하신 택배가 도착해 있는데, 언제 찾으러 오실 수 있는가요?”
큰 눈을 굴려 가며 전화 통화를 하는 미사는 인도네시아어에 능숙하지 못해 쓰여 있는 문구를 그대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오늘 갈 수 있다는 말에 빨리 와달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럼 이 리나수낙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네 기다리면 되는데, VLOG 스타일로 KAD에서 일하는 제트핑크를 연출해 주시면 됩니다.”
“음 그럼 택배 상자를 옮겨 볼까요?”
미사는 날짜별로 메이크노 지점에 도착한 택배를 정리했고, 받아 간 택배 송장을 정리하며 간단한 사무 일을 했다.
“왔어요!”
지점 밖으로 사람이 왔다는 소리에 미사는 급히 택배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인도네시아 특유의 컬러 히잡을 쓴 중학교 3학년인 리나수낙은 갑자기 안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자 놀랐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꿈에서나 그리던 제트핑크의 미사가 있었기에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릴 정도였다.
그런 리나수낙을 미사가 잡아주었고, 띄엄띄엄하지만 인도네시아 말로 기다렸다고 말을 하자 리나수낙은 그냥 울어버렸다.
“아니 좋아해야지 울면 어떡하잔 거야?”
“그게, 이런 대도시도 아닌 곳에 제트핑크가 올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쇼퍼백에서 살 때 우리 제트핑크가 이렇게 찾아올 거라고 했잖아.”
“그게 진짜인 줄 몰랐죠. 진짜인지 손 만져 봐도 되나요?”
미사는 팬의 손을 잡아줬고, 택배를 건네주며 포옹까지 해주었는데, 그런 모습에 또 리나수낙이 울어 버리자 현장은 웃음과 눈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 제트핑크가 준비한 선무을~.”
CF처럼 아시안 걸스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다 담아 왔다며 상자를 내밀었는데, 16살인 리나수낙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다.
이런 눈물의 이벤트는 인도네시아 4곳으로 흩어진 멤버들에게서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택배를 받는 아이들은 다들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자카르타에 몇천만 명이 모여 살고 있지만, 여전히 종교와 가부장제 아래 있는 인도네시아 지방 소녀들은 순수했고, 그런 순수한 열정이 모여 굳건한 팬덤이 되는 것이었다.
제트핑크 멤버들이 직접 팬에게 택배를 건네주고, 선물을 주는 영상이 공개되자 인도네시아는 당연했고, 태국과 베트남 등 다른 동남아시아에서도 열광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곳에는 언제 올지 기대를 했다.
자연스레 그 기대가 쇼퍼백의 가입과 구매로 이어졌고,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의 대도시를 잇는 택배 물류망도 늘어나는 물량에 따라 쉽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에서의 KAD 택배 이벤트는 마무리가 되었어요. 그리고 다음 달에는 제 고향 태국, 11월에는 베트남으로 이어질 거예요. 우리 그때 봐요~.”
제트핑크 멤버들의 다음 달에 보자는 영상 인사에 자국 멤버가 있는 태국에서 환호를 보내었다.
그리고 그만큼 회원가입과 판매 건수가 늘었고, 쇼퍼백 내에서 다음에는 어떤 아이돌에게 택배를 전달받고 싶은지 투표를 진행하자, 회원가입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한류 가수가 직접 와서 택배를 전해 주고 선물을 받는 그런 기적이 자신에게도 찾아올 거라 기대를 하며 가입을 했다.
그렇게 두 달 반 만에 회원 수가 350만 명을 넘겼다.
***
싱가포르에 막 도착한 장용 사장은 기분이 언짢았다.
얼마 전 동남아시아에 생긴 쇼퍼백이란 회사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가장 좋은 외벽광고 자리에 쇼퍼백 광고가 붙어 있는 모습이 아주 기분 나빴다.
“저 광고자리 계약이 끝나면 우리가 받기로 한 거 아니었어?”
“네. 그래서 저희도 알아봤으나, 계약이 끝나서 그랩 광고 대신 저게 붙은 게 아니라 그랩과 저 쇼퍼백이 같은 회사이기에 광고가 단순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데, 싱가포르 사람들은 참 일을 못 하는 거 같아. 저런 걸 하나 처리 못 하니.”
장용 사장은 기분이 더 나빠졌다.
중국이었다면 다른 회사의 광고가 걸려있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광고로 바꿔 걸었거나 그 옆자리에 새로운 광고판을 붙여서라도 광고를 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정도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가 싱가포르에는 없었다.
“새로 생긴 쇼퍼백이 300만 명의 회원을 유치했다고? 그게 확실한 거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눈에 보이는 광고를 많이 하긴 했지만, 광고를 보고 다 가입했다면 올해 인수한 라자다(LAZADA)는 회원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서야 했다.
“더미(dummy) 회원 아냐? 데이터만 존재하는.”
장용 사장은 후발 업체인 쇼퍼백이 더미 회원을 생성해 가입시켜 그런 회원 수를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했다.
“저희도 그런 꼼수를 부려 언론을 이용한 광고를 하는 것이라 여겨 여러 방향으로 알아보았으나 진짜였습니다.”
라자다에서 전략운영팀장에 있다 이번에 부사장이 된 마이클 황은 가공의 회원이 아닌 실존하는 회원들이라고 결과서를 내놓았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단 삼 개월 만에 300만 명의 가입을 받아 낸 거야? 원래 쇼퍼백 사이트는 25만 명의 회원이라고 하지 않았어? 3달 동안 어떻게 하루에 3만 명씩 가입을 시켰냐고?”
라자다는 1년 가까이 700만 명의 회원에서 정체 중이었는데, 후발 주자가 1년도 안 되어 절반까지 치고 올라왔으니 장용 사장으로서는 혈압이 오를 일이었다.
“한류를 탔기 때문입니다.”
“한류?”
“네. 쇼퍼백의 CEO인 레이리 바스턴이 한국 혼혈이고, 쇼퍼백을 인수한 스타 코퍼레이션의 대표도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장점으로 한류를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황은 PT를 띄었는데, 한국 아이돌은 물론이고 배우를 활용해서 쇼퍼백이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었다.
“단순히 제트핑크를 활용해서 재미를 보기도 했지만, 2차, 3차로 다른 아이돌과 드라마로 인기 있는 배우들, 코미디언들까지도 섭외해서 쇼퍼백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이클 황의 보고를 받은 장용은 이 보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한류는 이미 끝이 났거나 인기가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라자다도 지지부진한 회원가입을 늘리기 위해서 이 한류를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황은 흥탄소년단을 불러들여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대형 콘서트를 해야 한다고 제안서를 올렸다.
하지만, 장용은 고개를 저었다.
50억 규모의 예산으로 자카르타와 호치민에서 콘서트를 열어주는 것이 과연 라자다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가진 것이었다.
특히나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에선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한국 아이돌을 부르는데 50억씩 돈을 써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제안은 불가합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에드센스에 좀 더 예산을 더 배정하세요.”
“SNS와 구글의 광고 방법은 이제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유명한 아이돌 그룹으로 추진하세요. 그게 라자다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