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75화 (175/203)

175. 중국 중심의 문제.

“그렇다면 중국에서 유명한 아이돌 그룹으로 추진하세요. 그게 라자다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장용 사장의 말을 들은 마이클 황은 속에서 ‘미친 새끼!’라는 말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아 내었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쾌속소년대나 주걸륜 같은 인기 있는 가수의 콘서트를 추진해 보세요. 이 제안 건은 그걸로 마무리합시다. 다음.”

일주일에 사흘 동안 싱가포르로 와서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었기에 마이클 황의 뒤로도 보고서를 든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래서 장용은 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마이클 황은 회의실을 나오며 그렇게 줄 서서 보고하는 이들을 봤다.

‘라자다는 이제 더는 미래가 없다. 망하지는 않겠지만, 내리막길만 있겠지.’

비싼 돈을 주고 회사를 인수한 알리바바의 생각을 마이클 황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라자다를 인수하여 6억 명이 넘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석권하게 되면 알리바바와 라자다가 아마존을 누를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미 성공한 모델인 알리바바의 모델을 이식하기 위해 알리바바의 장용 사장이 매주 와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시장을 제대로 모르는 장용 사장이 라자다의 운영을 무조건 알리바바식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으니 앞으로 생길 그 불협화음이 뻔히 보일 뿐이었다.

마이클 황은 짐을 정리하며 그간 했던 업무보고서를 다시 봤다.

라자다를 인수한 후 장용 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라자다를 지금까지 크게 만들어 준 쇼핑지원금을 없애는 것이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내어야 할 배송비를 라자다가 대신 내어주는 형태의 쇼핑지원금이었기에 무료배송을 라자다에서 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류비용이 비싸기에 배송비를 부담스러워하는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물론, 이 방법이 라자다를 알리바바에 팔리게 만들기도 했다.

쇼핑지원금에 들어간 누적 손실금이 9천억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쇼핑지원금이 있었기에 판매자와 구매자를 라자다에 유치할 수 있었고, 1년 총 거래 금액이 10억 달러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장용 사장은 회사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쇼핑지원금 제도를 없애 버렸으니 거래 건수나 매출이 얼마나 떨어지게 될지 내년 보고서를 보는 게 두려울 것 같았다.

아마도 1년 후 결과를 보고 장용 사장이 큰소릴 치며 난리를 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런 장용 사장을 생각하자, 한류를 적극 활용하여 날아오르고 있는 쇼퍼백의 구인공고가 생각났다.

마이클 황은 잠시간 생각하다 짐을 챙겼다.

그는 사직서를 남겨두고, 라자다를 떠나 쇼퍼백으로 이직을 했다.

이런 이직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장용 사장은 이것이 위기인지 모르고 있었다.

아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알리바바에서 라자다를 인수한 이후 알리바바는 프랑스 국적의 피에르 페르노를 CEO로 세웠었다.

글로벌 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이클 황이 보았듯이 모든 결제는 장용 사장이 싱가포르에 왔을 때 이루어졌고, 프랑스인 피에르 사장은 그냥 허수아비였다.

장용 사장은 자신과 손발을 맞춰 보았던 알리바바 출신 간부들을 중국에서 데려왔고, 그런 간부들이 있기에 알리바바와 라자다로 아마존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같이 라자다로 온 중국 간부들은 중국보다 못한 동남아쯤이야 하는 마인드로 라자다를 내려 볼 수밖에 없었고, 기존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라자다의 직원들과는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쇼핑지원금을 없애서 세이브된 금액을 페이스북과 에드센스에 더 집행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JNW 택배사에게 배를 더 늘려달라고 압박을 넣으세요.”

알리바바의 관리자들은 동남아시아의 웹광고 요금이 중국보다 훨씬 저렴했기에 SNS와 구글 광고에 의존했는데, 이 방식이 알리바바의 성공 방식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의 에드센스는 이미 알리바바의 승승장구하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페이스북은 영업용 마케팅 통로가 되어버려 순수한 사용자를 찾기가 힘들어져 버렸고, 구글 에드센스 광고는 이제 그냥 붙어 있는 광고로 생각해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었다.

동남아시아의 웹 환경이 중국과 다르다며 기존 직원들이 말을 해야 했지만, 초기 몇 번의 의견을 내어도 무시되던 일을 겪었기에 이제는 그냥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었다.

“띠우앵 퇴사하기로 했다고?”

“그래. 다음 주 퇴사야.”

“이거 그러면 CM(Category Manager) 쪽은 다 나가는 거 아닌가? 너는 왜 나가는 건데? 너도 중국식 사고방식 안 따른다고 욕을 들은 거야?”

띠우앵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직원들 특성을 무시하는 알리바바의 관리들에게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베트남 기업들에도 있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업무처리 방식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라자다의 팀 운영 방식이 집단 리더십 방법이었잖아. 팀원들 간에 의논하고 이야길 해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방법 말이지.”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하향식으로 그냥 뭘 하라고 내려오니깐 계속 여기 있다가는 그런 하향식 명령에 길들어져 버릴 것 같거든. 그런 환경에서는 내가 능동적으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질 것 같아서 미리 이직하려는 거야.”

“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너도 '거기'로 가는 거야?”

띠우앵은 대답하지 않고, 씨익 하며 웃어줬다.

“오케이 그럼 우리 이주 후에 또 보자고.”

“이주 후? 아, 그럼 너도?”

“그래 나도. 하하하. 다 런 하는 거야.”

“그럼, 마지막 회의를 즐기러 가볼까나. 이주 후 거기서 보자고.”

띠우앵은 뭔가 라자다를 떠나는 동지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래서 그런지 하향식으로 내려오기만 하던 회의 방식이 싫었지만, 이번에는 웃으며 회의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쇼퍼백의 무료배송도 결국은 우리 라자다가 했던 쇼핑지원금 제도와 같다고, 우리가 그렇게 몇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듯이 저쪽도 택배 회사 좋은 일만 시키고 적자에 허덕이게 될 거라고.”

알리바바 출신 장이싱은 지금 쇼퍼백이 무료배송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그 한계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쇼퍼백은 라자다와는 다르게 자체 택배 회사를 운영해서 그 부담이 쇼핑지원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나서서 바로잡아 주는 직원이 없었다.

***

제트핑크와 여러 한류 스타들로 인해 6개월 만에 쇼퍼백의 회원 수가 600만 명이 넘어갔고, 하루에 택배 물량이 3만 건 이상 쏟아지자 박종일 사장이 힘들다고 찾아왔다.

“대표님께 연락하지 않고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했으나 이 건은 연락드릴 수밖에 없네요.”

박종일 사장은 중국에서 LT마트 지사장으로 봤을 때와 비교해서 10kg 이상 빠진 모습이었는데, 지금 맡은 택배 개척 업무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간이 교육 센터를 하나 만들어 주십시오.”

“교육 센터요?”

“네. 제가 단순한 물류 작업을 하는 직원도 다 고등학교 졸업한 이들로 고집했다는 걸 들으셨을 겁니다.”

“네. 비서를 통해 구인이 어렵다고 해서 대우를 좀 더 올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안 되던가요?”

“단순하게 각 지점으로 가는 트럭에 쌓는 일은 사실 힘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트럭으로 물건들이 가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 인력이 부족합니다.”

“음. 그런 분류 작업은 기계가 해 주는 것 아닌가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서 바코드가 찍히고 각 지역으로 자동 분류가 되는 거 아닙니까?”

“한국처럼 전자기기 인프라가 제대로 깔려 있다면 그런 자동화가 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도 초창기에는 손을 쓰는 수기 송장이 많았듯이 여기 송장은 95% 이상이 다 손으로 쓴 수기 송장입니다. 자동 분류가 안 된다는 겁니다.”

“아아.”

이제야 KAD에 인력이 부족하다고 했던 것과 고졸 이상을 고집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기 송장은 일일이 주소를 사람이 확인해서 수기 코드를 기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효율도 안 났을 터였다.

“대형 판매자의 경우에는 송장을 뽑는 프린터나 영수증 기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1~2년 이상 걸릴 겁니다. 해서 그때까진 일일이 사람이 해야 하는데, 이런 일에는 고졸 이상이 무조건 맡아서 해야 합니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영어로 쓰인 송장도 있고, 자국 언어로 쓰인 송장도 있을 터였다.

그런 것을 보고 일일이 전산 등록과 지역 코드를 써넣으려면 고졸 이상이 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고졸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지방 도시의 경우에는 구하기가 힘이 듭니다. 해서 그런 주소를 보고 써넣을 수 있는 것을 배우고 하는 교육을 우리가 직접 했으면 합니다.”

“읽고 쓰는 것이라면 3~4일 가리키면 될 것도 같네요. 교육 센터를 만들어 보죠.”

“그 교육에 윤리와 도덕도 넣어야 합니다. 안전 규칙이라던지 하는 것도요. 한국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배웠을 도덕이나 직업윤리가 없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흠. 과정을 만들어 가리키긴 하겠지만, 20살 넘은 후에 가리키는 게 의미가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동남아에는 아예 학교에서 그런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제대로 대학교육을 받은 동남아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기본적인 행동규범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구요.”

“박 사장님이 살이 이렇게 빠진 이유가 다 있었군요.”

“하하하. 날도 덥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사실 교육 센터를 대표님께 부탁드렸지만, 이걸로 잘될까 하는 의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양분된 동남아의 교육환경에 조금이라도 우리 교육 센터를 나온 이들이 생긴다면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윤리와 도덕, 그리고 실무에 쓰이는 교육과 안전 교육을 한다고 해도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일주일 교육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많다면 이건 나라의 문제였다.

자원이 있지만, 동남아시아의 발전이 느린 것도 자식들에 대한 교육 욕심이나 개념이 부재한다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처럼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개념도 거의 없는 곳이 동남아였다.

그제야 캄보디아의 마니 훈센이나 인도네시아의 관료들이 내가 학원을 차리고 직업 교육을 하는 것을 좋게 보고 혜택을 주려고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옛날 식민지처럼 경제적으로 빨아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혜택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행동을 보였기에 그들 입장에서는 나를 대우해주는 것이었다.

“대표님. 어떻게 보면 한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한류 드라마, 아이돌을 등에 업고 이득을 보았으니 그 받은 이득을 이런 교육이나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도 한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KAD 택배를 개척하며 현지인들과 부대끼다 보니 박종일 사장은 중국 LT 마트 지사장일 때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간단한 교육이라지만, 한국식 교육도 한류가 될 수 있겠지요. KAD 택배뿐만 아니라 그랩 드라이버를 위한 운전면허와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위한 기본 IT기기 교육까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늘어나는 물량을 보면 블루버드의 블루 트럭만으로는 물량 감당이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 KAD 자체 운송 트럭을 도입해야 합니다.”

“흠. 트럭 소요 건은 문서로 올려주십시오. 그럼 최대한 반영해서 구매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종일 사장의 요청으로 일주일 정도 교육을 해주는 교육기관 설립을 알아보았고, 대현자동차에서 나오는 메가트럭의 대량 구매도 문의를 넣었다.

“대표님 대현자동차에서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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