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191화 (191/203)

191. 전쟁 (4).

“소매점 반품이 이렇게 많으면 어쩌자는 거야! 납품의 70%가 반품이 되면 이거 누가 책임질 거야?”

“발주오류가 난 거야? 왜 이렇게 많이 남았어?”

“영업일 잘못 알고 물건 넣은 거야? 재고 관리 왜 이래?”

남한유업과 융그레우유 대리점의 개인 사장들은 갑자기 급증한 재고에 난감해했다.

보통 이쪽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유제품의 진열과 판매관리를 마트 직원들이 다 하는지 알지만, 실제 마트와 슈퍼의 판매관리 사원은 마트 직원이 아니라 협력사라고 하는 유제품 대리점에서 파견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한 곳의 유업체 소속의 파견이거나 작은 유업체 3~4곳이 묶여 한 명을 파견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렇게 파견 나온 직원은 마트 직원처럼 마트의 온갖 일을 다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판매 부진과 재고 관리 불량의 화살이 파견직 직원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음 행사를 해도 가격이 비싸서 안 사 가요.”

“아니, 가격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왜 비싸다고 안 팔린다는 말이야? 그럼 전주나 저번 달에는? 그때의 50%도 안 팔렸잖아. 근태 확인해 볼까?”

대리점 사장들은 파견 직원이 일을 못 하거나 일을 하지 않아서 판매가 부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억울해하는 파견직 직원과 몇 시간을 마트에서 확인하자 파견 직원이 하는 말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SG마트에서는 가격파괴 우유를 안 파네.”

“그러게. 직원에게 물어도 없대. 스타 마트 먼데 거기까지 차 타고 가야 하나.”

“마트까지 안 가도 되더라고, 푸드 딜리버리 어플로 가격파괴 우유도 배달이 되더라고.”

“그러면 배달 수수료 붙는 거 아냐? 그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건데.”

“구매금액 5만 원 이상은 무료야. 다른 쌀이랑 라면이랑 해서 구매하니 편하더라. 그리고 멸균우유도 6개 6천 원 하더라고.”

“멸균우유까지 산다면 배달 수수료가 있어도 이득이네. 집에서 받을 수도 있고, 그게 편하겠다. 그냥 가자.”

이렇게 마트를 빠져나가는 손님을 보는 대리점 사장은 열 딱지가 났다.

유통기한이 나흘이나 남았음에도 30% 할인 스티커를 붙여 물량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그렇게 할인을 해도 가격파괴 우유보다 비싸다고 외면을 당했다.

같은 1등급 원유로 만들었는데, 가격에서 천 원 이상 차이가 나버리니 판매가 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떠안아야 하는 손실을 계산해 보니 미칠 것 같았다.

아마, 가격파괴 우유나 멸균우유가 눈앞에 있었다면 때려죽였을 터였다.

요구르트나 기타 유제품은 그대로 판매가 되었지만, 매출의 중심인 흰 우유의 판매가 바닥을 치니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장으로서는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답이 나올 수 없었고, 본사나 총판에 대책을 세워 달라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각 지역 총판과 대리점에서 항의가 들어오니 유업체들도 대응을 시작했다.

“그러니깐 대리점주들은 다년간의 판매 데이터로 어디에서 얼마 정도 판매되는 것이 잡혀 있기에 발주를 했는데, 80% 이상 흰 우유가 판매되지 않으니 난리가 난 거라는 거야?”

남한유업의 서진석 부장은 읽던 문서를 책상에 던지며 냉소적으로 되물었다.

“네. 이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총판에서도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총판에서 70%나 줄여서 흰 우유 주문 발주를 한 거야? 이거 발주 취소시키고 기본 발주 물량 그대로 밀어 넣어.”

“네? 그러면 재고 부담을 총판이 다 떠안게 됩니다.”

“떠안게 된 총판은 알아서 대리점에 부담을 나눠서 지게 하겠지. 두 달만 버티라고 해. 그럼 해결된다고.”

서진석은 두 달이면 스타 마트가 고개를 숙이고 LT그룹에 찾아갈 것으로 생각했기에 무조건 손실을 버티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늘 그래 왔듯이 손실은 본사가 책임지지 않고, 총판과 대리점에게 손실을 떠넘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려진 공문에는 이번 사태는 일시적인 것이며 대리점과 총판의 발주량은 10% 이상 줄일 수 없고, 단가 하락도 없다는 본사의 운영 방침이었다.

이런 일방적인 본사의 대응에 대리점주들은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갑을 관계였으니.

***

“아니 시발 무조건 버티라고 하면 어쩌자는 건데. 대리점 월세를 대신 내주던지 아니면, 가격이라도 내려줘서 고통 분담이라도 해 줘야지 무조건 버티라고 하면 버텨지냐고.”

충남에서 남한우유와 들우유 대리점을 운영하는 박민교는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충남의 여러 유업체 대리점 사장들이 모여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뾰족한 답이 없었고, 술자리로 이어져 술만 마시는 것이었다.

“월세 때문에 죽겠네. 니기미.”

“민교 자네는 지역 우유인 들우유도 같이 납품한다고 겸용 계약서 썼지?”

“네. 촌이다 보니 독점 대리점이 아닙니다.”

“그럼, 살길이 있네.”

“네? 살길이 있다고요?”

“그래. 우리는 직할시 구역이라 단독 계약이라 다른 우유를 받아서 팔 수가 없지만, 자넨 다른 메이커 우유 받아도 되는 계약이잖아. 잘 팔린다는 가격파괴 우유를 자네도 받아서 팔어.”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런데, 그거 가격파괴 우유가 허용해 줍니까? 스타 마트랑 그 어플로만 판다고 하던데요.”

“그게 스타 음료에서 나오는 음료수 계약을 하면 우유까지 다 묶어서 대리점 계약해 준대.”

“진짭니까?”

“그래. 우리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자네라도 살아야지.”

제품 단가가 낮다 보니 마진 자체가 낮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판매를 늘려야 했다.

그리고, 스타 음료에 전화를 해서 대리점 계약을 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계약을 했고, 계약 이튿날부터 가격파괴 우유를 납품받아 지역 마트에 납품을 시작했다.

박민교 사장처럼 독점 대리점이 아닌 대리점의 경우에는 다들 스타 음료와 대리점 계약을 했고, 우유와 음료를 직접 받아 유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타 마트의 물류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으로 상품들이 퍼져갔는데, 물론 대리점 마진 문제가 있기에 스타 마트와 같은 가격으로는 유통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추가 마진을 붙여도 타 유업체 우유보다 저렴했기에 대리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이 넘어가자 유업체 대리점 업주들은 손실을 버티지 못해 서울 본사에 상경 시위를 계획했다.

행동을 취하기 전 발주 물량을 조절하게 해 주던지, 아니면 가격파괴 우유처럼 가격을 새로 정해 달라는 소원수리(訴願受理)를 유업체 본사에 마지막으로 올렸다.

***

“무시해. 한 달만 더 버티라고 해. 스타 마트 놈들이 못 버티면 알아서 무너질 거야.”

중간에 낀 총판과 대리점들이 죽어나고 있지만, 버티면 이긴다는 생각에 남한유업의 서진석 부장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신문기사들은 어떻게 되었어?”

“지역 일간지에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외국산 멸균우유에 대한 기사가 3건 나왔고, 가격파괴 우유로 인해 기존 우유 대리점이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가 2건 올라왔습니다.”

“기사 반응은?”

“그것이….”

허정환 실장은 종이 신문으로 된 기사만 보여 주었는데, 온라인 기사에는 우윳값이 너무 비싸다는 댓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에 서진석 부장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뭐 반응 알만하네. 그래도 계속 그런 기사 올리라고 기자들에 술 좀 먹이고 해. 누가 버티느냐의 싸움이야.”

“하지만, 부장님 손실이 너무 큽니다. 한 달 더 버티게 되면 작년 영업이익이 다 날아가게 됩니다.”

“그럼, 상반기 원유 쿼터를 하반기에 몰아서 받겠다고 해서 원유 받는 쿼터 일정을 조절해.”

“네?”

“생산 쿼터잖아. 총 쿼터 중에서 지금 사정이 안 좋으니 상반기에 원유 받는 걸 줄이겠다고 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생산되는 원유는 다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젖소는 젖을 그렇게 마음대로 줄였다가 늘였다가 할 수가 없었기에 허정환 실장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젖 짜는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린 1년 원유 쿼터만큼만 받으면 되는 거잖아. 지금 힘드니 하반기에 다 받겠다고 해.”

“….”

허정환 실장은 서진석 부장의 방을 나왔지만, 낙농업자들에게 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원유 쿼터제를 만든 이유가 과잉 생산되는 우유를 줄이기 위해 안정적으로 원유의 생산량에 따른 가공계획을 짜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분기마다 다르게 원유를 받게 된다면 그사이에 생산되는 원유는 그냥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그 쿼터 분량을 채우기만 하면 되었지만, 연속성이 필요한 낙농업 특성상 이렇게 쿼터를 임의대로 변경해 버리면 그 피해는 낙농업자들이 다 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허장환 실장은 받아온 원유로 치즈나 버터 등의 다른 유제품으로 생산할 수 있게 원유를 돌렸지만 채 일주일도 못 버텼다.

이미 한국에서 유통되는 유가공품의 70% 이상을 외국산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해를 보며 치즈 생산을 할 수도 있겠지만, 비싼 단가의 우유로 만들어진 유가공품이 가격 경쟁력이 있을 턱이 없었다.

‘어쩌면 임건호 그 사람 말이 맞을 수도 있어. 유통을 정리하고 낙농업 생산 시스템을 뜯어고쳐서라도 우유 단가를 낮춰야 해. 그래야 외국산 유가공품과 싸울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 생기지.’

지금의 한국 유업체들로서는 낙농업 선진국인 유럽과 호주, 캐나다, 미국을 이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허정환 실장도 임의대로 원유 쿼터를 변경하여 낙농업자들에게 받아오는 원유의 양을 줄이라고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산 통보를 받은 낙농업자들은 어이가 없었다.

젖소의 젖은 계속 짜야 하는데, 원유를 유가공 업체에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니, 쿼터제 물량을 하반기에 다 몰아서 받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젖소를 다 죽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이가.”

“어르신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위에서 그렇게 해라고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원유 배송 기사도 낙농업자인 노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지만 답이 없었다.

하지만, 받아 가지 않는 원유를 그대로 하수구에 버리며 넋이 나간 모습을 하는 노인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명함을 하나 꺼내었다.

“여기로 연락을 해보세요. 제가 명함 줬다고 하지는 말고요.”

“여기가 어딘데?”

“버려지는 우유를 받아주는 곳입니다.”

“이거 시발, 남한 우유에서 작업 치는 거 아냐? 원유 못 받아 가겠다고 하면 다 버리니깐 그걸 또 따로 싸게 받아 가려고 이렇게 하는 거 아냐?”

원유 배송 기사는 선의를 베푼다고 명함을 줬는데, 이렇게 욕을 들으니 황당했다.

하지만, 그만큼 유업체들이 낙농업자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기에 변명할 수가 없었다.

“저희가 아니라 스타 음료 쪽입니다. 거긴 쿼터제 때문에 원유가 없어서 난리랍니다. 한번 연락해 보세요. 물론, 절 때 제가 명함 줬다거나 알려줬다고 하면 안 됩니다.”

노인은 신신당부하는 운송기사의 모습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결국 버리게 될 거 반값이라도 주면 원유를 다 넘겨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스타 음료는 원유 연동제 가격 그대로 가격을 준다고 했고, 운송기사가 갈 것이라고 했다.

그제야 노인은 운송기사에게 욕을 한 게 미안했고, 자신과 같이 원유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낙농업자들을 스타 음료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

“아니, 스타 마트 이 새끼들은 우유가 어디서 계속 나오는 건데? 30만 톤 아니었어?”

LT그룹의 심재일 상무는 계속 가격파괴 우유가 유통되고 있다는 데서 이상함을 느꼈다.

“유업체들이 했듯이 배정받은 30만 톤을 지금 다 모아서 생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놈들 하반기에는 어쩌려고 그런 거지.”

“그냥 버티는 거 아니겠습니까? 언론에서 슬슬 냄새 맡고 기자들이 나서려고 하니깐 상반기에 분란 터트려서 쿼터제를 없애려고 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한 달만 더 버티면 된다는 거네. 기자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이미 주요 언론사 데스크 쪽으로 손을 써두었습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올려도 데스크에서 막아줄 겁니다.”

심재일은 이런 한국의 언론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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