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연인인 듯, 연인 아닌 (4)
* * *
“아가씨.”
닿지 않았다. 아니, 닿았음에도 그녀는 무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등을 돌린 그 모습에 한숨을 내뱉는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쉬이 다가가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음이 상한 이유, 그리고 저토록 불안해하는 이유.
그 이유가 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나는 그저 아이린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할 기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 탓이었다. 인정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그녀의 불안이 내 탓이라는 점이었다.
유독 내가 다치는 것에 민감한 그녀가 아니던가.
게다가 이번에 한 번 크게 다치고 돌아왔으니,
다시금 흑마법사 토벌을 도와달라는 황태자에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전부 아이린을 위한 것이라한들, 그녀의 기분이 어떠할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너무 섣불리 움직인 것일까. 허나 하탄의 일까지 어찌 내가 예측한단 말인가.
말없이 등을 돌린 아이린은 여전히 무어라 말할 기색이 보이지 않아서, 그저 한숨을 내쉰 채 그 뒷모습을 힘없이 바라볼 따름이었다.
“...왜 따라왔어요. 전하와 마저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제야 들린 목소리에는 조금의 생기도 섞여있지 않았다.
무채색, 그 목소리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회색과 검정이 뒤섞여 오로지 차가움만 느껴지지 않을까.
하여 멍하니 아이린을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걱정돼서 따라왔습니다. 표정이 안 좋으셨으니까요.”
“걱정, 걱정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돌아 본 아이린의 표정은,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비아냥거리는 듯 옅게 미소를 지은 아이린이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느껴지는 한기에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고 말았다.
화를 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를 내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그녀는 분명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설렘을 느꼈을 만큼 가까이 좁혀진 거리에서 느낄 수 있던 건 그녀의 분노였다.
절제되다 못해 차갑게 벼려진 분노. 그 싸늘한 푸른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하고, 이내 헛웃음을 흘린 아이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렇게 걱정한다고 얘기해놓고선, 결국 흑마법사를 토벌해야한답시고 가겠죠. 그렇지 않나요?”
“아가씨께서 가지 말라 하신다면, 가지 않”
“거짓말하지 말아요.갈 거잖아요.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흑마법사가 유리스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핑계로. 이전에도 그랬지 않나요? 3년 전, 그대의 생일날. 제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가지 않았나요.”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할 수 없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가 전부 옳은 말이었기에, 또. 어쩌면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그녀를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파들거리며 떨리는 눈썹이 보였다. 눈동자에 얽힌후회를 보았다.
내게 화를 내는 것을 후회하면서도, 혹여 내가 다칠 것을 걱정하며 억지로나마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입 안에서 쓴맛이 감돌았다.
차라리 나를 때리기라도 했으면 나으련만,
주먹이 하얗게 물들 만큼 꽉 쥔 채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 입술을 짓씹었다.
부드러운 살이 씹혀 피가 새어나오고, 그 비린 맛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대를.”
차오르는 숨 때문 일까,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을 꾹다문 아이린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얼마나 걱정하는지 모르고 있어요. 에반은.”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모를까. 나를 바라볼 때면 초조해지는 그녀의 시선을.
흔들리는 눈을 내가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 또한 그녀를 두고 가고 싶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사선(死?)을 거치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아갔던 것이, 그녀에겐 그저 걱정을 키워나가는 일이었던 것일까.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그녀에게 어떠한 말을 해줘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릿속,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것뿐이라.
그녀의 몸이 서서히 돌아가는 것을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따라오지 마세요.”
차츰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어봤지만, 결국 닿지 않았다.
그렇게 힘없이, 허공을 움켜쥔 손이 아래로 떨어질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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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가웠다. 봄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이나 싸늘한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몸에 닿아 흩어지고, 이내 그 한기에 몸을 움츠린다.
어두워지는 하늘, 차츰 황혼이 짙어지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그저 정한 곳 없이, 단지 한 사람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뿐이었으니까.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것만 같은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지난 일임에도, 아까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그에게 그토록 화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그저 순간 욱하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내내 신경 쓰였다.
조금은 더 순화해서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더 부드럽게...그렇게 전할 수 있었는데.
자신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인 에반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저 억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린 아이나 부릴 법한, 그런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린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흑마법사와 싸우는 것은 그일 텐데, 그런 그에게 화를 낸 자신이 그저 유치하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크게 다쳤다가 돌아온 사람이었다. 늘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왔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조금이나마 더 솔직하게 대해주면 좋을 텐데.
아프다고, 힘들다고. 자신에게는 그렇게 말해준다면 좋지 않을까.
욕심이었으나, 몇 년 동안 품고 있던 바람이기도 했다.
그가 다쳐서 돌아와 붕대를 감쌀 때면 뒤에서 입술을 짓씹었다.
다음부터는 다치지 말라며, 허울뿐인 약속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하.”
그게 전부라는 사실이 우스워서, 가만히 서서 허탈하게 웃었다.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정작 그의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한 채 화만 내는 자신이.
황궁의 어디인지도 모를 벽을 짚으면서, 그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생각했다.
촛불이 아른 거리는 벽, 그 앞에 훤히 비치는 달빛. 익숙한 풍경이었다.
수정궁에서 보았던 풍경과 비슷하지 않던가. 허나 그 끝에 에반이 없을 거란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와는 달랐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뺨에 닿았다.
조금 더 그에게 좋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허나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자신을 붙잡으려 다가온 에반을 밀어낸 것은...우습게도 자신 스스로 한 일이었다.
충동, 충동적으로 행한 일이었다. 조금 생각해보면 순간 감정이 치밀어 오른 것은 여러 기억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황태자가 했던 말, 흑마법사의 토벌을 도와달라는 말.
3년 전에도 들었다.
에반이 황태자와 만나서, 흑마법사를 처리하는 것을 돕겠다는 말을 벽 뒤에 숨어 듣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이후 3년 동안, 에반은 수많은 흑마법사들과 싸워왔다.
구태여 이번 일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꽤 많았다. 가슴에 있는 훈장에 꽃잎이 무려 10개나 채워지지 않았던가.
처음엔다치지 않았다.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며 뿌듯하게 웃던 에반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던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다음. 팔뚝을 살짝 베인 에반이 멋쩍게 웃으며 돌아왔다.
괜찮겠지.
이번에만 그런 것이겠지. 다음에는 다치지 않겠지.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흑마법사와 조우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에반이 지닌 채 돌아오는 상처는 점점 늘었고, 커져갔다.
처음에는 그저 얕게 베인 상처. 그 다음에는 어깨가 파이고,
피를 머리에서 흘린 채 돌아오고. 처음에 지켰던 약속은 그저 허울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다쳐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던 에반은 항상 자신에게 얘기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배를 뚫리고, 어깨가 파이고, 온 몸에 피를 칠한 채 돌아오면서도 하는 말은 늘 같았다.
괜찮다니, 그 말을 어찌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단 말인가. 괜찮지 않았다.
그도,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자신도. 시간이 흐를수록 에반도 강해졌지만, 오히려 입고 오는 상처는 더욱 커졌다.
그러다가 그가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자신이 무슨 감정을 품을 지 조금도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와 만나 있었던 모든 일들이 물거품처럼 부서지리라.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숨 또한 차올랐다.
무거운 숨을 토해낸 채, 그렇게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갔다.
점점 커져가는 달빛을 향해.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혹시나 에반이 저 앞에 있지 않을까 하는 미묘한 기대감을 품어봤다. 거짓말처럼 그가 저 앞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지난 수정궁에 있을 때처럼, 달 아래에 그가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또각.
허나 에반은 없었다.
텅 빈 발코니, 사람의 기척하나 없이 찬바람만이 맴도는 공간엔 여지없이 적막이 흐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허탈한 나머지 헛숨을 들이켰다가, 이내 내뱉으며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참으로 야속한 하늘이었다. 자신을 조롱하듯,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이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이런 하늘을 에반과 함께 볼 수 있다면. 떠오른 상념을 지우며, 다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
허나 생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잊을 만 하면 떠오르는 녹안에 헛웃음을 흘린다.
“하아...”
보고 싶었다.
심장이 아려올 만큼,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감이 차오르는 마음이 무엇인지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연심이라는 것을, 그에게 오는 수많은 편지를 태우며 느낀 조바심이 사실은 질투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토록 화를 낸 것이 아닐까. 그가 위험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 것보다는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해주기를 바랐기에 그리 철없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
...변명에 불과했다. 자신이 한 말에 에반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을 늘 배려하고 위해줌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 말했으니,
어찌하여 화가 나지 않겠는가. 발코니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들려오는 왈츠 소리에 그 힘이 더해진다.
에반이 이루어낸 공을 치하하기 위해 열린 연회, 분명 에반 또한 그곳에 있으리라.
자신의 호위 기사를 향해 구애를 보내는 수많은 영애들,
그를 생각하자 또다시 저도 모르게 감정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영애들의 행동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 했다.
자신이 그 옆에 있었더라면 막았겠지만, 이렇게 홀로 나와 있는 나머지 무엇을 한단 말인가.
차라리 거짓말처럼 에반이 이곳에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연회에 싫증이 나 자신을 찾아 그가 이곳까지 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말도 안 되지.’
망상에 불과했다. 이루어질 확률이 극히 적은, 그저 자신에 바람에 지나지 않는 망상.
그는 연회에서 다른 이들의 축하를 받을 것이었고, 자신은 이렇게 홀로 남아...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지 않겠는가.
바람이 찬 나머지 저도 모르게 팔을 움켜쥐었다.
이제 곧 여름인데, 어찌 이리 바람이 찬 것인지. 에반에게 잘 보이고자 입은 드레스는 조금 얇은 편이었다.
그렇게 팔을 움켜쥐며, 천천히 등을 돌리려 했을 때.
턱.
어깨를 붙잡은 손길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았단 말인가. 허나 그 온기가 익숙했다.
닿자마자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편안함에 놀라기를 잠시, 이내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날이 춥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에반의 얼굴이었다.
옅게 미소 지은 채, 자신이 두르고 있던 망토를 어깨에 걸쳐준 에반이 입을 열었다.
“왜 여기에 혼자 계십니까. 연회를 연다는 말을 듣지 못하신 겁니까?”
“에반이 왜, 여기에.”
“제가 연회 같은 거 즐기지 않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순간 머리가 멍한 나머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그 갈피를 잃고 말았다.
에반이 왜 여기에? 자신이 바랐던 것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이 환상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눈가를 매만지다가,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에반의 모습에 작게 입술을 벌렸다.
“...화 안 났어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마저도 너무 놀란 나머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아주 자그맣게 퍼진 목소리에 에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그가 이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왜 화가 납니까. 제가 그리 속이 좁아 보이셨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그 모습에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진다.
자신은 그렇게나 가슴이 복잡했는데, 에반은 사실 그에 대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걸까.
다행이었지만, 그가 이렇게 와서 좋았지만. 그걸 구태여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아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그대를 위해 연회를 열어주셨는데, 이렇게 나오면 어떡해요. 돌아가세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진심입니까? 그리 말씀하시는 것 말입니다.”
“......”
진심일리가 없지 않은가. 마음 같아서는 가지 말라며, 이 곳에 남으라며 그를 붙잡고 싶을 따름이었다.
허나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에반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는 그 녹안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했다.
자신이 그토록 화를 냈음에도 여전히 웃는 그 미소가 불편했다.
하여 시선을 돌리자, 에반이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있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정궁 때의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곳으로 향했는데. 마침 여기에 계시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미소 지은 에반의 모습이 달빛에 비춰져 반짝였다.
금색의 머리칼에 빛이 닿아 부서지고, 황홀하리만치 빛나는 에반의 얼굴에 잠깐.
그렇게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가 짓는 미소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새삼스레 기뻐서, 피어오르는 열을 숨기고자 조심스럽게 제 볼을 쓰다듬었다.
“왜 찾아왔냐고 물으신다면...간단합니다.”
“간단하다니. 그게 무슨...”
“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번에도 그 말을 들었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어쩐지 너무도 새롭게 들리는 그 말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내뱉는 모습이 얄미웠다.
자신은 이토록 그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그런 말을 쉬이 던진 채 조금의 미동조차 안하는 그 모습이 거슬렸다.
허나 그럼에도 그런 그가 좋아서,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 그에게 들킬까 고개를 숙였다.
달빛이 제게 닿아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살며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