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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71화 (71/181)

〈 71화 〉 별 하나에 그대 (3)

* * *

탁,

“...후우.”

문을 닫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농담조로 애기한 것이겠지만, 왜 그리 진지한 표정으로 미래를 얘기한단 말인가.

아직 약혼도 파기하지 못했는데, 공작이 되어서 그리 성급히 얘기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나야 그가 그런 태도로 나오는 것이 기껍긴 했다. 만약 그가 반대했다면...

순조롭게 일이 성사되기 전에 큰 장벽에 가로막히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장인어른이라, 그런 말을 들으니 어째 부담감이 점점 커져서.

결국 공작과 얘기하다 도망치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위라는 표현을 듣지 않아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한 번 죽고 살아나서인지, 확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적응하는 것은 아무래도 꽤 오래 걸리지 않을까싶었다.

“그나저나...”

아이린이 내 얘기를 그리 많이 했다니, 역시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최근 들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쩍 유순해진 것도 그렇고,

유독 내 앞에서는 화려한 장신구를 많이 착용하지 않던가.

쌍방,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시기였다.

한 번도 누구를 좋아해보지 않은 터라, 내게 고백하고 저들끼리 싸우는 사람들을 곧잘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저리 필사적인 것일까.

단지 스쳐가는 감정 따위가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채원이나 지수도...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그런 기분을 느꼈기에 그리 말한 것이겠지.

이 간질거리는 감정은 사람을 그 감각에 중독되게 만든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이따금 그 감정에 파묻혀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잠시 간질거리는 뺨을 긁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겨 아랫 층으로 향했다.

이전에 말했던 계절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것저것 할 얘기가 꽤나 많았다.

#

틱­

코르셋을 조이는 소리가 들려오길 잠시, 갑작스레 울린 줄 끊어지는 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코르셋의 줄이 끊기다니, 평소엔 잘만 차던 것이 왜 갑자기 이런단 말인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자, 로페나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끊어진 코르셋의 줄을 바라보고 있었다.

“줄이 낡은 거니?”

“아니요...이건 줄이 낡은 게 아니라, 그냥 아가씨 몸에 안 맞아서 끊어진 것 같아요.”

그 말에 안색이 새하얘진다. 최근 들어 밥을 그리 많이 먹지 않았는데,

맞지 않는다는 건 혹여 살이 쪘다는 소리일까. 입술을 살짝 깨물며 로페나를 빤히 바라보자,

고개를 가로저은 로페나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살이 쪘다는 소리가 아니라요. 그...가슴이 조금 커지신 것 같은데요.”

“가슴?”

“네, 등이나 허리는 잘 조여지는데, 가슴 부분만 가면 줄이 끊기네요. 다시 주문해야 할 것 같아요.”

“......”

천천히 입가를 가린 채, 조용히 등을 돌려 로페나의 시선을 피한다.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면서, 툭툭. 그렇게 볼을 두드린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떠오른 에반의 얼굴에 갑작스레 열이 피어올랐다. 왜 이런 상황에 그의 얼굴이 떠오른단 말인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열이 달아오른 얼굴을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식혔다.

이제 곧 있으면 에반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몇 분 안 되어 돌아오리라.

전에 있던 것보다 조금 커다란 코르셋을 착용하며, 평소보다 조금 화려한 드레스를 꺼내 입는다.

“오늘은 이거 입으시려구요?”

보랏빛의 드레스, 평소 입는 수수함과는 거리가 꽤나 멀었지만.

오늘은 이 드레스를 입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부풀어 오른 숄을 매만지길 잠시,

이윽고 악세서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무엇을 착용해야 할까.

수많은 악세서리 중에서도 단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에반이 선물해주었던 것이었다.

그 세이렌이라는 호숫가에서, 자신의 생일이라며 선물을 주지 않았던가.

자신이 살짝 눈길을 주었던 것을 그 때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괜스레 올라가는 입꼬리를 이번에는 가리지 않은 채, 조심스레 그 사파이어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는 것이 에반이 아니던가.

그에 비해 자신은...솔직히 말해 에반에게 무언가를 해준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늘 그에게 리드 당하고, 무엇 하나 할 때마다 그에게 휘둘리지 않았던가.

“흠.”

혹여 여자관계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많았던 것은 아닐까.

애초에 호위 기사로 오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몰랐으니,

괜스레 피어오르는 걱정에 눈이 가늘게 뜨였다.

생각해보면, 그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이 너무 능숙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도회에 갈 때마다 그를 노리는 영애들이 한가득이었고,

아직도 그에게 오는 편지를 곧바로 태우고 있긴 했다.

허나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 걱정 없이 내버려두기엔, 에반이 다른 이의 관심을 꽤나 많이 받는 편이었으니.

그래서 이번 계절제는 자신에게 중요했다. 이 한쪽으로 쏠려버린 균형을 자신에게 돌이킬 기회.

평소에 에반에게 한없이 휘둘리고, 또 그에게 약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에게 휘둘릴 수 없었다.

주도권을 쥐어서, 평소 에반이 자신에게 하는 행동들을 그대로 돌려준다면?

꽤나 괜찮은 생각이 아니던가. 자신에게 휘둘리는 에반이라,

그저 잠깐 떠올렸을 뿐인데도 기분이 좋아져서, 찻잔을 가볍게 쥔 채 허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가씨, 오늘 표정이 조금 진지하시네요.”

“이제 곧 계절제잖니.”

“기사님이랑 같이 가시기로 했죠? 전 작년에 가서 올해는 저택에 있으려구요.”

“그러니?”

조금은 유치할지 모르지만, 로페나와 그가 함께 있는 것도 그리 탐탁치 않았다.

제아무리 동생같이 생각한다한들, 과연 언제까지 그것이 지속될지는 모르는 일.

로페나 또한 에반에게 별 감정이 없는 것 같긴 했으나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시간을 때우길 한참, 아무 내용 없는 종이를 만지작거리자 이내 저 멀리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자신의 집무실을 향해 걸어올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기에,

옷매무새를 정돈한 채 문이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늘 똑같은 일상, 똑같은 생활에 새로움을 더해주는 사람.

이윽고 들어오는 자신의 호위 기사를 바라보며,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늘.

허나 구태여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아직은 그렇게까지 말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언젠가는...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날이 오리라.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

오늘따라 아이린의 기분이 꽤나 괜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은 미소를 띈 그녀의 얼굴이라, 따라 옅게 웃은 채 고개를 숙여 보였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정작 로페나는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는 눈치고.

잠시 그런 아이린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그녀의 귀걸이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걸이 바꾸신 겁니까? 전에 끼던 것보다 나아보입니다.”

“...그래요? 그냥 한 번 바꿔본 건데, 어울린다니 다행이네요.”

알아주어서 기쁜 것일까, 곧바로 피어오르는 홍조를 보며 살짝 고개를 주억거린 채 그렇게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이 공간에 드나든 것도 어언 4년인가.

내 방보다 이 장소가 편한 것이 조금 우습긴 했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길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만약 아이린이 가주가 되어 3층의 그 공간으로 올라간다면, 꽤나 어색하게 느껴지겠지.

탁­

입 안 가득 번지는 다즐링의 향에 눈을 지그시 감는다.

탄산 음료를 즐기던 예전과는 달리 이젠 차라는 문화에도 꽤나 익숙해져서,

물보다 차를 자주 마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제 나도 나름 귀족 같이 보이지 않을까?

저번 무도회에서 춤을 출 때도, 내가 적어도 아이린 보다는 잘 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괜스레 떠오른 그 때의 기억에 웃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해요?”

“저번 무도회 때 일이 떠올라서 말이죠.”

무도회라는 말에 아이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발코니에서 춤을 추긴 했지만, 정작 그녀의 춤은...솔직히 잘 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으니까.

일부러 탁, 소리가 날 만큼 찻잔을 세게 내려놓은 그녀는. 이윽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춤은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그렇죠.”

그리 답하자, 아이린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뾰로퉁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거두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으나, 내가 보기엔 미세하게 다르다고 해야 할까.

허나 그런 아이린의 기분도 곧 풀릴 것이 뻔하니, 구태여 걱정할 필요까진 없었다.

내가 아이린에게 오늘 할 얘기는 계절제에 관한 것이지 않은가.

설령 다른 얘기에는 무관심할 아이린이어도, 이 얘기만큼은 귀를 기울일 것이 뻔했기에 차분하게 차를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이번 계절제 말입니다.”

최근 시간이 비면 황궁에 찾아갔지만,

그와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계절제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행사를 제외하곤 전부 직접 알아내야 했으니,

적어도 축제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휘적휘적 다니는 것보다는 미리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에 모았던 정보가 마침 오늘 전부 완성이 되었다.

이왕이면 조금 시간을 아껴서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쪽이 더 괜찮을 테니까.

하여 계절제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그 말에 움찔거린 아이린이 내 쪽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계절제라면 이미 얘기가 다 끝나지 않았나요?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설마 못 가게 되거나 그런 건­”

“그럴 리가요. 애초에 제가 꺼낸 얘기가 아닙니까.”

만약 이 약속을 깬다면 가장 나쁜 사람은 아마 나겠지.

내가 한 말에 다행이라는 듯 옅게 한숨을 내뱉은 아이린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럼 갑자기 계절제 얘기는 왜 꺼낸 거죠?”

“무작정 다닐 수는 없으니, 혹여 꼭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준비해온 지도를 탁자에 펼치자, 그 지도에 시선을 둔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지도에 적혀 있는 것들은 계절제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지점들,

원래라면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공작이 흔쾌히 건네준 덕에 이렇게 쓸 수 있었다.

“...음.”

지도에 적힌 행사 전부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하루 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시간만 행사를 즐기는 것이니까.

아마도 고작해야 몇 개만 겨우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허나 그것을 고르는 게 꽤나 고민이 되는 건지,

지도를 한참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린의 모습에 웃음이 살짝 새어나왔다.

“고민 되십니까?”

살짝 흘러내려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귓가 뒤로 넘기며 그리 말하자,

내 손을 힐끔 바라 본 아이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개 정도는 내가 정한 걸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에 지도 한 구석을 손가락으로 짚자 그걸 본 아이린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타우트?”

“여름의 계절제에서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혹여 이게 무엇인지 모르십니까?”

“글쎄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럼 직접 가셔서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아가씨 올해로 성인식을 치르셨으니...아마 여기에 참가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스타우트, 쉽게 말하자면 술과 관련된 행사라 할 수 있었다.

겨울이 끝날 무렵 수확하는 재료로 빚은 과일주들을 전부 마시기 위해 벌이는 행사였으니까.

그것이 계속 계승되어 여태껏 남아 계절제의 주요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내가 꼭 가고 싶은 행사 중 하나였다.

취중진담이라는 것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니, 어쩌면 그녀의 속마음을 이번 기회에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만약 그녀의 속마음이 나와 정말 같다는 확신을 얻는다면, 이제 슬슬 결심할 때를 결정해야 했다.

몇 년 동안이나 질질 끌고 있는 이 지루한 관계의 끝을.

그리고 새로운 관계로 다시 시작해야겠지.

“성인...?”

성인이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 무슨 상상을 하는 것이 빤히 보였다.

허나 오해를 정정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상상하다 실망을 하는 걸 보는 것도 꽤 즐거우리라.

어쨌든 그 스타우트에 자그맣게 표시를 한 뒤,

다른 행사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축제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한참 동안 나누었다.

이걸 나름 데이트라 할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그녀와 단둘이, 사무적인 목적 없이 이렇게 나가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지 않던가.

지난 번 세이렌에 들렸을 때보다도 더욱 즐거운 추억이 되었으면 했다.

로만과 싸우기 전 가지는 마지막 여유이기도 했으니까.

스윽­ 슥­

그렇게 지도에 펜으로 여러 지점을 표시하다가,

문득 아이린의 손이 꽤나 가까운 곳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것 같은 거리.

허나 아이린은 그걸 알아채지 못했는지 그저 지도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서,

조용히 손을 움직여 아이린의 손을 툭, 하고 건드렸다.

툭.

손이 닿자마자 마주치는 시선에 미소 짓는다.

“...로페나 있잖아요.”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되묻자, 눈을 가늘게 뜬 아이린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저 손을 건드린 것뿐인데, 그 의미를 무엇이라 해석한 건지.

그렇게 가늘게 뜨인 눈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윽고 피식 웃으며 아이린의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자그마한 손, 그러자 흠칫 놀란 그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누,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괜찮습니다. 아가씨만 조용히 하신다면.”

“......”

내 손 안에서 열심히 꼼지락 거리는 아이린의 손을 꽉 쥐었다가,

이내 깍지를 낀 채 그대로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애쓰는 모습이 귀엽게만 보여서,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귀여우십니다.”

그러자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내 손을 놓은 아이린이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힘겹게 입술을 달싹 거렸다.

허나 뻐끔거리며 벌어지는 입에서 들리는 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라,

뺨을 긁적인 채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귀엽다는 말이 싫으십니까?”

“그런 게 아니잖아요. 지금...왜 하필이면...손을 잡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여기서 더 놀리면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까.

마음 같아선 공작과 한 얘기를 언급하며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긴 했다.

공작이 스스로 장인 어른이라 불러도 좋다 얘기 했다고 전하면, 과연 아이린이 무슨 표정을 지으려나.

그래도, 그건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어도 충분하리라.

"무얼 그리 부끄러워하십니까. 이제 익숙해지셔도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런 거에 익숙해져요. 제가 에반 처럼 경험이 많은...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경험이 많다고 하신겁니까?"

그럴 리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이린이 처음이 아니던가.

도대체 무얼 보고 그리 오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고개를 저어 보이자 아이린이 의심스러운 듯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내 업보란 생각이 들어서, 이내 그 시선에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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