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Diminuendo (1)
* * *
연회장에 들어서기 직전, 우리는 황태자와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꽤나 비장한 표정을 지은 황태자는,
이윽고 옅게 한숨을 내뱉으며 우리를 향해 눈썹을 까딱였다.
그도 긴장한 것이겠지. 우리가 단순히 탄신연의 축하 무대만을 위해 온 것이 아님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 제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전부 와 있네. 소가주의 아버지도, 그리고...빌테인 공작도 말이지.”
“자리를 뜨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왔나 보네요.”
“솔직히 말할까. 나는 로만이 흑마법사와 관련이 없었으면 좋겠네.”
그렇게 말한 그는, 이윽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머리를 뒤로 넘기며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아내었다
. 그의 마음은 이해하고 있었다. 로만이 흑마법사라면,
단지 절멸을 처리하는 게 아닌 제국의 전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간다는 것이니까.
물론 그럼에도 주변 나라보다는 압도적인 전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차라리 그대들의 예상이 틀리고, 그 아티팩트에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고 연주만 하고 넘어갔으면 해.”
“이해합니다.”
“...그대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네. 오늘도, 그리고 오늘 이후로도. 이렇게 말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지금 당장 믿을 수 있는 건 유리스 하나뿐이니까 말이야.”
한차례 쓰게 웃은 황태자는, 연회장 무대로 향하는 문을 툭툭 두드리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여러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당연한 것이리라. 단지 호위 기사인 나나,
아직 정식으로 가주 승계를 받지 않은 아이린보다 황태자인 그가 짊어지는 것이 훨씬 많을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로만이 흑마법사와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터라.
차마 그에게 로만이 흑마법사와 관련되지 않을 거란 얘기는 하지 않았다.
로만의 행보나 증거 몇몇들은 이미 5대 가문이 흑마법사에게 물들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잘 될 겁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피식 웃은 황태자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연회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 그러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만약 로만이 흑마법사와 연관된 것이 밝혀진다면, 토벌까지 얼마나 걸릴까.
어쩌면 곧바로 토벌전이 시작될 수도 있었다.
흑마법사에게 준비 시간을 길게 주는 것만큼 위험한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묘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허나 애써 무시한 채, 표정 관리를 하며 연회장으로 향했다.
끝의 시작이 보인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연회장의 무대를 밟았다.
#
에반 프리드라는 기사는 어쩌면 이 제국에서도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유리스 소가주의 호위를 맡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여러 특징 자체가 모두의 관심을 충분히 끌고 있었다.
마스터에 근접했다는 실력, 그리고 본 드래곤을 처치하여 대륙에 퍼진 명성. 거기에 그의 외모까지.
“어머.”
수많은 영식들이 있었고, 나름 괜찮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 연회장의 침묵을 깨며 등장한 한 기사만큼 영애들의 눈길을 이끄는 이들은 없으리라.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한 쪽으로 움직이는 시선에 한 귀족이 헛웃음을 흘렸다.
꿀이 한껏 맺힌 꽃이 벌을 유혹하는 모양새와도 같지 않은가.
얼굴을 붉힌 채 탄성을 내뱉는 영애들이 수십 명이었다.
치마를 움켜쥐고, 어느새 자신의 치장을 바로잡으며 머리를 매만지는 이들 또한 수십이었다.
간혹 그와 눈이 마주쳐 찻잔을 떨어트리는 일도 있었으니,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된 상황에 아이린이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 에반에게 관심이 끌릴 거란 걸 알았지만,
생각보다도 시선을 절제하지 못하는 멍청한 이들이 꽤 많지 않은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도록, 에반을 보지 않도록 일부러 가장 괜찮은 드레스를 골랐건만.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아 불만스러울 따름이었다.
“......”
게다가 에반의 태도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남들을 잘 쳐다보지 않는 그가 어째선지 오늘따라 주변에 시선을 던졌다.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채, 자신에게도 잘 짓지 않던 눈웃음마저 지은 광경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눈이 가늘어진다. 불만어린 시선이 그에게 향했지만,
에반은 여전히 자신에게 환호하는 영애들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고 있었다.
도대체 그가 왜 그러는 것일까. 여러 생각이 이어졌지만,
이윽고 자신을 향해서도 웃어주는 얼굴을 보곤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녹색이었고,
여전히 마음이 편해지는 시선이 아니던가.
고요했다. 아니, 시끄러운 소리가 오가는 연회장이었음에도 이렇게 둘이 서있는 공간만큼은 조용하게 느껴졌다.
서로의 호흡소리가 들릴 만큼, 서로의 손가락이 악기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만큼이나 고요한 이 공간에서 아이린의 시선이 에반과 맞닿았다.
‘...흠.’
아이린의 시선이 생각보다 부드럽다는 것을 깨달은 에반은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일부러 다른 영애들에게 시선을 보내준 건 로만에게 보내는 하나의 신호가 아니던가.
에반 프리드는 아이린 유리스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린으로 자신을 자극할 수 없음을, 구태여 이렇게라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불안했다. 솔직히 말해서, 로만을 토벌한다고 나서는 건 자신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건 아이린의 안위였다.
혹시 자기가 없는 사이에 아이린을 노리지는 않을까. 여태껏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건 단지 흑마법사들을 자신이 모두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린을 만나기 전에 모두 죽였으니 아이린을 어찌 노리겠는가.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한다고 무언가 달라지겠냐마는, 그만큼 미약한 희망에라도 무언가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린이 표정이 나름 괜찮으니 다행이라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런 의문을 담으며, 에반의 손가락이 천천히 건반에 닿았다.
두웅
건반의 첫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연회장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모든 소리가 한 곳으로 모인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이 세계에 존재한 적도 없는 생상스의 음악이 연회장을 휘젓고 있었다.
기기긱
잔잔한 서주에 맞춰 울리는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순간,
에반은 아이린의 심리를 짐작하곤 피식 웃어 보였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 앓고 있던 것일까.
단순히 선율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소리에서 미약한 짜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허나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지금 당장은 왜 그러는지 밝힐 순 없었지만,
로만과의 싸움이 끝난 뒤에는 전부 얘기할 수 있을 테니까.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다시, 포르티시모.
연습할 때와는 달리 격렬하게 치고 나가는 내 연주에 아이린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예고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그녀가 이 템포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시선을 보낸다.
그대로 연주하라며, 스스로의 페이스를 유지하라 얘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론도, 격렬해지는 연주에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연주란,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청자라면 모를까,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입을 맞추기 마련이었다.
입이 아닌, 음악으로 말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선율 속에서 맞닿은 시선,
처음에는 불만 어린 시선으로 에반을 쳐다보는 아이린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고 있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이었다.
이 무대에 오로지 단 두 사람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품고 있는 감정, 하고 싶은 이야기 모두를 이 음표의 향연 속에 담는다.
반복되는 론도, 에반은 이어지는 연주 속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아이린과 자신은, 이 단계에 와있는 것이 아닐까.
반복되어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이 듣기만 하더라도 짜릿한 선율은 언제 들어도 새로운 감흥을 주지 않던가.
이 세상에는 없는 음악이었고, 오직 자신만이 아는 음악이었다. 아니, 이제는 아이린 또한 알고 있으리라.
에반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손으로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모든 주의는 아이린을 향해 있었다.
자신들의 관계를 이 음악으로 표현했을 때 ‘론도’라면, 이어 카프리치오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허나 그럼에도 지루함을 주지 않으며 종래엔 무엇보다도 화려한 이 곡처럼 될 수 있을까.
‘...그건 아직 모르지.’
로만을 잡는 것은 어쩌면 단지 시작일 수도 있었다.
소설 속에서 나오지 않았던 흑마법사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원작 여주가 등장한 뒤로는 그녀 또한 견제해야 하지 않던가.
끝의 시작, 카프리치오소를 맞이한 연주에 점차 분위기가 경쾌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중주에서 급변한 곡에 놀랐던 이들도 지금은 선율에 취해 하나같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자신들의 연주를 지켜보는 로만 공작을 바라본 에반이 조용히 호흡을 내뱉었다.
어쩌면 기우일지도 모르나, 그와 시선이 닿는 순간 느껴진 것은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를 벨 수 있을까? 분명 이전에도 저런 눈을 본 적이 있었지만, 가롯과는 느낌이 달랐다.
보는 순간 온몸이 저릿해지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눈동자.
계속해서 시선을 마주했다간 연주를 망칠 것 같아 시선을 돌리자 꽤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가롯 유리스, 이번 탄신연에 이례적으로 참석한 그가 에반에게 주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꽤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무엇에 화가 난 건지 알 수가 없어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저번에는 자신에게 그리 친절하게 굴었으면서, 그 사이에 무엇이 마음에 안 들어 저런단 말인가.
다시 피아노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연주는 어느덧 막바지에 치달아,
아이린의 손에서 바이올린이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시선은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생각대로 되어 에반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연주였다.
아이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어찌 되었든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 연주가 끝난 뒤가 더욱 중요했다.
아이린 또한 연주의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연주 이후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카심 백작이 만들어준 아티팩트, 그걸 사용하기 위한 순간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 거울에 정말로 로만 공작이 담긴다면.
아이린은 에반을 바라보았다.
이전 같았다면 자신에게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다고 말했을 텐데,
어쩐지 여태껏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마디 한 적이 없었다.
지키지 못할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얘기했던 그가, 이번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이유.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가 홀로 저주를 파훼하기 위해 떠났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엔 그때보다도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허나 말릴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그토록 무리하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마음이 무거웠다. 늘 에반이 싸울 때 기다렸던 자신이었으나,
이번엔 더욱이 그 기다림이 길어질 듯 했다. 어쩌면, 그 기다림이 영원할 수도 있으리라.
연주를 끝난 뒤에도 아이린은 여전히 에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품속에 지닌 아티팩트를 생각하며, 이 아티팩트가 사용된 뒤를 떠올렸다.
“에반.”
“네?”
에반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는 있는 걸까.
살짝 맺힌 땀을 닦아주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조용히 웃은 아이린이 고래를 저어 보였다.
“...아니에요.”
그라면 잘 해낼 것이었다. 언제나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서. 아이린은 무대 아래로 향했다.
품속에 있는 아티팩트가 조용히 떨렸다.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은 신중했다.
자연스럽게 주변 귀족들과 인사를 하면서,
이어 자신의 치장을 확인하기 위해 손거울을 꺼내 보여야 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하면 될 것을, 파르르 떨리는 손을 본 아이린이 옅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 되어서야, 잘 되려는 일도 망치지 않을까.
한숨을 한차례 내쉬며,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진 에반을 눈에 담았다.
자신의 아버지와 마주한 그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쩐지 난처한 듯 보이는데, 혹여 아버지가 무어라 얘기한 것이 아닐까.
마음이 꽤나 편안해졌다. 에반의 존재는 자신에게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곁에 없었더라면, 지금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아버지는 죽었을 거고,
흑마법사가 계속 나타나 공작령은 폐허가 되었을 터였다. 그래, 그가 없었다면 그랬으리라.
허나 에반은 자신의 곁에 있었고, 아이린은 조심스럽게 손거울을 꺼내들었다.
아까와는 달리 떨리지 않는 손, 자연스럽게 얼굴을 비춘 손거울은 아이린의 뒤쪽에 있을 로만 공작을 비추었다.
그리고, 거울에 한 순간 파문이 일었다.
“...아.”
푸른빛을 띄는 손거울 표면에 자그마한 물결이 치고,
이내 그 속을 확인한 아이린은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의 모습을 깔끔하게 담고 있는 거울 속에,
로만 공작의 모습이 뒤틀려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만 공작을 감싸고 있는 거뭇한 그림자,
그리고 보랏빛의 눈동자은 분명 하나를 가리키고 있지 않던가. 피어오르는 걱정에 아이린이 침음을 삼켰다.
로만 공작이 흑마법사와 관련 있다는 것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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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이 보여준 아티팩트를 확인한 나는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예상하고 있기도 했고, 어느 정도 각오를 다진 뒤였으니까.
나를 바라보는 아이린의 시선이 묘했지만, 그것보다 신경쓰이는 게 황태자의 반응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곤 그저 뺨을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 가장 충격 받은 것은 아마도 그가 아닐까.
내가 쓰게 웃자,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황태자가 아티팩트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빌어먹을. 로만이 흑마법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거군. 확증을 얻어냈어.”
“...최대한 빨리 토벌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알고 있네. 다만, 믿고 싶지 않을 뿐이지.”
잠시 고개를 젓던 황태자는, 우리를 향해 옅게 웃은 채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누가 보더라도 심적으로 꽤나 지쳐 보여서, 아무래도 슬슬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토벌에 대한 계획이 수립될 때면 불러주시죠.”
“...그래. 나중에 보는 걸로 하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은 걸세. 테오라드 경이나 황제 폐하나, 이미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마도 일주일 안에 시작되지 않을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다가오자 살짝 긴장되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복잡한 마음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황태자가 어느새 사라지고, 그렇게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보는 그 때에.
아이린이 내 손을 붙잡으며 조용히 내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말 안 하나요?”
“무얼 말입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린은, 이내 나를 쳐다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맞잡은 손이 살짝 떨려서, 이내 그녀가 무언가에 불안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이유라면...아마도 곧 있을 로만 토벌 때문이 아닐까.
일부러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라며, 이번만큼은 멀쩡히 돌아오겠다는 말을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말이요."
내가 그렇게 그녀에게 말한다면, 그건 아마도 거짓말이었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로릭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더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에게 거짓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옅게 웃으며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건 약속할 수 없었기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약속한다.
...돌아온 뒤에는, 로만과의 싸움이 종식된 뒤에는.
아이린에게 할 말이 꽤나 많지 않던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린을 향해 환히 웃어 보였다.
분명히 모든 게 잘 될 터였다.
아마도, 분명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