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그대에게 (2)
* * *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 평소보다도 드높은 하늘은 점차 가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리는 듯 했다.
쏟아지는 햇살은 정처 없이 떠돌다 이내 자그마한 틈 사이를 파고드니,
이윽고 에반의 방 창문으로 새어 들어간 빛이 아이린의 눈에 쏟아졌다.
원래라면 잠을 옅게 자는 아이린이었으나,
그날따라 유독 깊게 잠든 아이린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팔이 저린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새근거리며 숨을 내쉬는 아이린의 모습을 본 에반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눈을 뜨고 얼마나 놀랐던가. 아직도 머리맡에 놓인 얇은 팔을 잠시 쳐다본 에반은,
조용히 웃으며 자신을 바라본 채 누워있는 아이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렇게 있으면 안 건드릴 거라 생각한 건가.”
자신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닐까. 괜스레 피어오른 걱정에 에반이 얕게 한숨을 흘렸다.
나름 남자인데...이렇게 옆에서 편히 자고 있으면 어떡하나.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을 믿어준다는 생각에 조금 기쁘기도 했다.
어차피 건드릴 생각도 없었으니, 평소와는 달리 완전히 상쾌한 몸 상태에 에반은 조용히 기지개를 켰다.
참 예쁘게도 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가의 영애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녀만 이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얌전히 자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와서,
에반은 입을 가린 채 다시 아이린의 옆에 조용히 몸을 뉘였다.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이마를 매만지며, 살짝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새하얀 이마, 천천히 내려간 손가락이 날카롭게 선 콧등을 훑었다.
잡티하나 없는 뺨은 손가락으로 누르자 움푹 들어가서,
살짝 자국이 남을 만큼 힘을 준 에반이 아이린의 입꼬리를 잡아 당겼다.
“아가씨, 안 일어나실 겁니까?”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이리 깊게 잠들다니. 창문의 커튼을 걷어낸지 오래였지만,
도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린을 바라보는 에반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걸 로페나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분명 아이린이 방에 없으면 기겁해서 찾아올 텐데...
새벽이라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라, 분명 이곳에 있는 사용인들이 일어난지 한참 지나지 않았을까.
아이린을 여기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부터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뭐...’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만약 이런 것으로 왈가왈부할 일이 생긴다면 그저 아이린의 손 한 번 잡아주면 되는 것이고.
잠시 그런 생각에 흐뭇하게 웃던 에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엇하나 끼워지지 않은 아이린의 손가락, 아직까지 제대로 된 고백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고백이라.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드러누운 에반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평생에 단 한 번 있을 기회였다.
그런데...이런 쪽에는 여태껏 관심을 둔 적이 없는 터라,
고백에 대해 생각하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 뿐이었다.
탁자 한 구석에 놓인 제비꽃을 발견한 에반이 조심스럽게 꽃병을 들었다.
꽃을 주는 건 어떨까. 너무 진부하진 않을까.
주변에 연애에 대한 조언을 구할 사람...황태자의 얼굴을 떠올린 에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이긴 했지만, 그가 난봉꾼이라는 것을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스칼렛에게는 순애보를 쌓는 그였으나 이전까진 여럿 여자와 소문이 잔뜩 나지 않았던가.
요즘엔 조금 잠잠해졌지만,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간 아이린에게 몹쓸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리라.
상념을 지운 에반은 다시 누워있는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사실 굉장히 애매한 관계였다.
공식적으로 연인이라 선언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약혼이 깨졌다는 것만으로 아주 약간의 간극을 좁혔을 뿐이었다.
“...공작은 사실상 허락한 상태고.”
장인어른이라 불러도 좋다 했던가. 지난번 연주회에서는 갑작스레 불같이 화를 내길래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여자를 보면서 입을 해벌레 벌렸다고 했나. 그 오해를 푸느라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
오해를 푼 뒤에는 다시 괜찮아졌지만.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노라 맹세했던 기억을 떠올린 에반은 어깨를 한 차례 으쓱였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고백뿐이라, 미래가 막막한 나머지 에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허나 이리 급히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던가.
다시 아이린을 보며 누운 에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일어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늦잠을 자는 성격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늦게까지 잠든 모습을 보자 의외의 일면을 본 것 같아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한편으론 고작 자는 모습을 보며 이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길게 늘어진 속눈썹을 건드리던 에반은 이윽고 아이린의 숨소리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움찔거리며 떨리는 팔, 살짝 벌어진 눈꺼풀 사이에 드러난 푸른 눈동자를 본 에반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아이린은 자신의 앞에 있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꿈인가? 자고 일어나니 에반이 앞에 있다니...종종 이런 꿈을 꾸곤 했지만,
오늘따라 유독 생생한 꿈에 아이린은 흐물거리는 입꼬리를 당긴 채 해맑게 웃어보였다.
“헤헤...에반...”
마치 인형처럼, 에반을 끌어안은 아이린은 에반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향을 맡고, 그 까슬까슬한 붕대의 감촉을 느끼고...
‘감촉?’
아이린의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꿈이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서서히 자각하면서,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에반의 시선을 보곤 그제야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황급히 에반의 몸에서 떨어진 아이린은 다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방황하는 눈동자가 갈 길을 잃은 채 데구르르 굴렀다.
“...잊어요.”
에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들었던 아이린의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아이린을 빤히 쳐다볼 따름이었다.
헤헤...에반...
“그, 방금은”
“잊어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돌릴 것이라고, 아이린의 애처로운 목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워 맴돌았다.
물론, 에반은 방금의 그 일을 잊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평생토록 기억 속에서 간직하리라.
에반의 기억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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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태 자체는 꽤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잠 한 번을 편히 잤을 뿐인데, 이렇게 상처 대부분이 치유될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슬슬 붕대를 풀어도 되지 않을까. 황제가 불렀다는 것이 조금 거슬리기도 했으니,
나는 어제의 그 얘기를 마저 하기 위해 아이린을 돌아보았다.
아직까지 침대에 앉아있는 아이린은, 내가 고개를 돌리자 다시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 잠꼬대 좀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무어라고 그리 부끄러워할까.
“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계속 그러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몰라요.”
아까의 일을 조금도 잊지 못했는지, 고개를 푹 숙인 아이린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런 상태라면 아무래도 제대로 된 얘기는 하지 못하겠지.
황제에 대해 여러모로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나는 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생각하며 책상에 턱을 괸 채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로페나가 걱정할 겁니다. 슬슬 나가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반이 나가면 되잖아요.”
“...여기 제 방입니다. 아가씨.”
아이린은 그 말을 듣자 나를 힐끔 바라보곤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나저나 로페나에겐 무어라 둘러대야 할까.
여태껏 아무 난리도 나지 않은 걸 보면 아이린을 찾고 있거나, 아니면 내게 있으리라 짐작한 것이 아닐까.
...로페나가 단단히 오해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단둘이 낮에 들어가 다음 날 아침에 나오다니.
누가 봐도 오해할 상황이 아니던가. 로페나에게 무어라 변명할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아이린의 손목을 잡아 그대로 침대에서 일으켰다.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린을 계속 여기에 둘 수는 없었으니까.
아이린은 내게 손목을 잡히자 화들짝 놀라며 벗어나려 했지만,
내가 놓지 않자 이내 체념하며 애써 무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조금은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졌다.
“이거 놔요.”
“그러죠.”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십니까?”
“아, 아니에요.”
아이린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윽고 내가 놓은 손목을 보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나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쓸데없이 날카로워진 감각이 이럴 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스웠지만,
아이린이 중얼거린 내용은 생각보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막 침대에 눕힌다고 그랬는데...”
“그거 누가 그렇게 말한 겁니까?”
듣다보니 순간 어안이 벙벙해서, 아이린이 그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침대? 이런 말을 아이린에게서 듣게 될 줄은 생각치도 못했는데.
내가 적잖이 놀라 입을 벌리자, 아이린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로, 로페나가 알려준 거예요. 제게 도움을 준다고 그래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 들으신 것 같습니다.”
로페나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듯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린은 그 말에 속아 넘어갔을 것이 분명하고,
잠시 지끈 거리는 머리를 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죽을 끓이러 와서 누운 것까지 로페나가 조언해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직접 끓여온 사람에게 무어라 할 수도 없으니, 나는 애써 웃으며 아이린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음부터는 로페나의 말은 듣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이제 슬슬 나가시죠. 조금 뒤에 복귀하겠습니다.”
복귀라는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뜬 아이린은, 내 붕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복귀라뇨,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다 나은 것 같습니다. 한숨 푹 자고 나니 완전히 괜찮아지더군요. 아가씨 덕분입니다.”
사실 그저 핑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오늘 복귀할 생각이긴 했다.
단지 조금 혼자 나가서 찾아볼 게 있었으니, 이제 아이린을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린은 그런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수긍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섰다.
“조금 이따 봐요.”
“알겠습니다.”
문이 참 오래도 닫히지 않아서, 나는 피식 웃으며 문을 닫아주었다.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조금 뒤에 다시 만나지 않겠는가.
방 밖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했으니 아마 잘 돌아갔으리라.
아이린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뒤,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길게 숨을 내뱉었다.
뭐라 해야 할까. 단 하루 같이 있었을 뿐인데, 묘하게 방이 허전한 기분이었다.
고작해야 한 사람만 사라진 데다, 그 사람은 잠깐 여기 있었던 것뿐인데도.
이런 허전함을 느낀 게 얼마만이더라. 묘한 감정에 휩싸여서,
나는 그 허전함을 잊기 위해 책상을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잘 정리되어 있던 책을 굳이 꺼내 다시 꽂아 넣고,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높이별로 분류하여 다 꽂고.
잘 닦아진 책상을 걸레로 다시 닦고,
낡은 목검을 한데 모아 구석에다가 박아둔 뒤에야 조금 마음이 정리되는 듯 했다.
“하아.”
몸에 감겨진 붕대를 풀자 완전히 깔끔해진 몸이 드러났다.
여태껏 회복이 더뎠던 이유는 그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이린의 향이 그대로 벤 셔츠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대로 단추를 잠근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걸 입고 땀을 흘린 것도 아니니 하루 정도 더 입는 것은 괜찮으리라.
‘그나저나 황제라.’
황제와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게 황태자의 전언이었으나,
황태자가 평소 말하는 걸 생각해보면 거의 확실하게 황제와 만나게 될 터였다.
만나게 된다면 일단 가장 걱정인 게 아스칼론이지 않을까.
원래라면 초대 황제 알라르가 다뤘던 검. 당연히 황실에서 그 소유권을 지니려 할 테니까.
하지만 아스칼론을 그들에게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알라르가 들었다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나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게 아스칼론이었으니까.
만약 빌테인과 싸울 때 아스칼론이 없었더라면 조금 더 싸움이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가고일로 테오라드 경과 황태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을 테고.
흑마법사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로만을 토벌하면서 절멸의 기세를 한 층 꺾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아직 그들이 세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지 않던가.
붉은 달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리고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원작 여주에 대해서도.
원작 여주는 원작이 시작되기 이전의 과거가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저 평민 출신이었고, 운좋게 입양되어 귀족이 되었다는 언급만 있었을 뿐.
그것도 변방에 있는 이름 모를 가문이라 간혹 그녀가 귀족이라는 것에 놀라는 이들도 있었다.
스칼렛 테라제인, 수소문 했음에도 아직까지 찾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원작 여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지만,
요즘 들어 그녀에 대해 미묘한 감각을 느끼는 것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걸 황제는 알고 있지 않을까.
구태여 황제가 스칼렛을 견제한 이유가 소설 속에 나오지 않았으니,
그를 만난다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참 남았네.’
지난번에 황태자가 말하기로, 하탄도 흑마법사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하지 않았던가.
스칼렛이야 그렇다 쳐도, 절멸을 완전히 끝내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제는 말로릭이나 빌테인 정도는 쉬이 처치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리라.
그래도 이전보다는 수월하리라.
내가 정식으로 마스터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면 호위 기사가 아닌 제국의 마스터로써의 권한을 받게 되니까.
제국이 보유한 절멸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도 조금 더 파헤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내가 속한 가문인 프리드에 대해서도.
허나 상념은 금방 흩어졌다.
방 안을 가득 메운, 코를 계속해서 찔러드는 장미향에 정신이 흐트러진 탓이었다.
아이린이 여기서 자고 난 뒤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침대에 그 향이 가득 베어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이 방에 계속 있으면, 아마 내가 만족할 만큼 생각하기는 힘들겠지.
의자를 책상에 집어넣으며 조용히 방문 밖을 살폈다.
아이린이나 로페나에게는 이 외출을 그리 들키지 않고 싶었으니까.
들키면 민망한 것은 둘째치고 나름 생각해둔 것도 전부 무너질 테니.
로페나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로페나의 입이 가볍다는 것은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복도에 나있는 창문 너머의 하늘은 참 푸르렀다.
비가 내리는 것이 끝나 완전히 말끔하게 갠 하늘에 이따금 구름이 드리워,
그 사이를 뚫고 세상을 물들인 새하얀 빛이 포근하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날도 좋고, 새들은 지저귀고.
...반지 사러 가기에 딱 좋은 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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