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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100화 (100/181)

〈 100화 〉 Love is an open door (2)

* * *

한 번 흐른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고 했던가.

그토록 느리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눈 깜짝할 새 흘러 어느덧 녹음이 샛노랗게 물들었고,

마침내 가을이 왔음을 온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올 것이라는 걸 깨달을 무렵. 에반은 자신의 방에서 한 편지를 읽고 있었다.

[너를 사랑하는 아서 프리드가.]

“사랑은 무슨.”

그 입가에 지어진 것은 조소, 편지의 내용을 이미 한 차례 확인했기에.

에반이 그 편지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감상이란 그저 이 뒤틀린 가정에 대한 비웃음뿐이었다.

처음에는 이 낡은 편지가 의미하는 것이 그저 연락의 단절이라 생각했다.

아서 프리드라는 사람이 죽었기에 연락할 수 없었을 뿐이라고.

허나 그 본질은, 그저 연락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 아니던가.

사락­

누렇게 뜬 편지지의 포장을 벗겨내 속지를 꺼내자, 조금도 변색되지 않은 새하얀 종이가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빼곡히 적혀져 있는 글씨들. 서툰 글씨체라 생각했건만,

사실 일부러 서툴게 적었던 것을 알아차린 에반이 쓰게 웃었다.

아서 프리드, 에반 프리드의 아버지­ 허나 에반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일 뿐이지 않던가.

게다가 원래의 에반 또한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리라.

아니, 어쩌면 서로 증오하는 관계였을 지도 모를 거라고 에반은 생각했다.

스윽, 손가락에 묻는 잉크는 없었으나 그 서툰 글씨체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춤을 추듯 휘어진 글씨들 사이에 저 홀로 각진 것을 유지하는 문자들.

‘용언.’

그 글씨를 보자 잠깐 머리가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에반은 마나를 끌어올려 제 정신에 간섭하려는 무형의 기운을 곧바로 털어냈다.

아마도 이 기운이 제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자신이 용혈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닐까.

세뇌의 내용을 떠올린 에반은 편지를 덮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절멸에 협력하라.’

에반 프리드가 왜 죽을상을 하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만약 완벽히 세뇌된 것이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정신을 유지했다면,이 세뇌에 도무지 따를 수 없었을테니까.

혹여 내가 원작에서 에반 프리드의 이름을 보지 못했던 것은 이 탓이 아닐까.

에반 프리드라는 기사는 이미 절멸에 합류했고,

유리스 공작령은 3년 전 나타난 질병에 의해 이미 괴멸 가까이 몰렸을 테니까.

허나 그런 일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런 일이 터지기 전에 자신이 에반 프리드에 빙의했으니까.

어쩌면 기적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큼이나, 꽤나 적절한 시기가 아니던가.

자신이 에반 프리드가 된 시기는. 그때 빙의했기에 아이린이 더 이상 뒤틀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질병을 막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빌테인을 저지할 수 있었다.

원작과는 확연히 다른 구도, 이제 남은 것은 스칼렛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지금 상황 자체는 절멸의 적인 자신과 제국에게 꽤나 여유로운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상당수의 흑마법사를 죽이고, 또한 절멸의 전력 또한 상당수 깎아냈다.

말로릭, 빌테인, 거기에 로만 공작가까지.

아직 한참 남았다고도 볼 수 있으나, 어찌 보면 지금처럼 긍정적인 상황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스칼렛 테라제인.”

원작 여주의 이름을 잠시 읊조린 에반은, 이윽고 편지를 다시 서랍에 집어넣으며 눈을 감았다.

어쩌면 원작 여주와 가장 근접한 답을 알고 있는 건 황제가 아닐까. 아무래도, 슬슬 황제를 만나러 가야 할 듯 했다.

#

“아가씨는?”

이제는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에반의 모습에 로페나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아주 둘이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지 않았던가.

그런 것을 도대체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고개를 젓던 로페나가 입을 열었다.

“잠깐 나가셨어요. 아마 곧 돌아오실 거예요.”

“그래?”

“그런데 도대체 전에는 어떻게 참고 살았어요? 볼 때마다 껴안고 막...아무튼, 요즘 들어서 너무 심해진 것 같아서요.”

“...조금 그렇긴 한가?”

“조금 그런 게 아니잖아요. 보는 사람이 얼마나 무안한 줄 알아요?”

로페나의 투덜거림에 에반은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은 조금 자제하려고 해도, 아이린이 도무지 자제할 줄을 모르는데.

표정 없는 인형 같은 얼굴을 지녔음에도, 속에 타오르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뜨거운 정열이라.

에반 또한 그런 것을 쉬이 억제할 수 없어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런 게 싫은 것도 아니고.’

보는 로페나야 괴롭겠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그래도 되는 사이인 것을.

보기 싫은 사람이 피해줘야지, 당사자들은 자제할 생각이 달리 없었다.

그걸 눈치 챈 로페나는 에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윽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약혼식 날짜는 아직이에요?”

“...글쎄, 그런 걸 하려면 일단 집안일을 해결해야 하니까.”

집안일,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상견례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자신의 가문이 절멸과 엮어져 있었으니 그런 것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니던가.

제 손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벤다는 게 어떻게 비춰질까.

그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식을 올리기에 애매했다.

적어도 프리드나 하탄, 둘 중에 하나를 처리하든가.

아니면 스칼렛 테라제인에 대한 일을 처리하든가. 이 둘 중 하나는 이뤄져야 조금 여유를 지닐 수 있으리라.

허나 에반은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마스터에 오른 지금 자신을 상대할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할 만하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아마도 말로릭이 완전한 상태로 강림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자신을 상대할 만한 흑마법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어쨌든, 축하드려요. 두 분 언제 사귀나 했는데, 이제 진짜 연인 사이네요.”

“고마워. 그런데, 어째 다들 알고 있던 눈치던데.”

“모르면 바보죠. 리제 언니는 곧 일 그만 둔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냐.”

어쩐지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에반은 그저 허탈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어차피 곧 잊을 터였다. 자신에게 중요한 건 아이린이었고, 리제야 뭐. 알아서 잘 살지 않겠는가.

조금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에반은 리제에게 아무런 의미조차 두지 않았던 터였다.

자신에게 연정을 품은 수많은 여자들 중 그저 하나였을 뿐, 에반은 곧 리제를 머릿속에서 잊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로페나는 그런 에반을 질렸다는 듯 바라봤지만, 이내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곧 아가씨가 돌아올 시간이었으니, 얼마 뒤에 펼쳐질 광경을 떠올리며 나갈 구실을 떠올릴 뿐이었다.

찻잎을 따온다고 할까. 아니면 잠시 크리스 경을 보러 간다고 할까.

이런저런 핑계를 떠올리던 와중, 방문이 열리며 아이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피곤한 듯, 약간 퀭한 얼굴의 아이린이 눈 밑을 쓸어내리자. 그것을 본 에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잠을 못 주무신 겁니까.”

“아, 에반.”

소파에서 일어난 에반을 본 아이린은 이윽고 활짝 웃어 보였다.

요즘 들어 조사할 것이 있어 피곤했는데, 그 얼굴을 보자 절로 피로가 풀리는 것만 같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에반을 끌어안아 가슴팍에 얼굴을 가져다 댄 아이린은,

이윽고 얼굴을 넓직한 가슴팍에 비벼대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너무 늦게 왔네요.”

“잠시 확인할 것이 있는 터라, 조금 늦었습니다. 서운하십니까?”

“...조금은요.”

이렇게나마 조금 오래 있고 싶은데, 그렇기엔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렇게 있다가 또 잠시 뒤면 저녁이었으니, 잘 때에는 헤어져야 하지 않은가.

그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애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린은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아이린은 조용히 에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키는 또 왜 이렇게 큰 건지. 까치발을 들어도 잘 닿지 않는 입술에 아이린이 입술을 삐죽였다.

“언제 나한테 말 놓을 생각이에요?”

“말을 놓아주길 바라십니까?”

“아니...이제는 꼭 기사랑 공녀가 아니라, 다른 사이도 맞잖아요. 남들이 보기엔 조금 사이가 안 좋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반말, 반말이라. 에반은 아이린의 말을 듣고 조금은 진지하게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호위 기사로 지내면서 아이린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워낙 편한지라,

이제 와 반말을 쓴다한들 어색하게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반말을 한다고 해도 로페나에게 하는 것이 전부이지 않던가.

에반의 허리를 끌어안은 아이린이 조용히 그런 에반을 바라보자,

에반은 이윽고 그런 아이린을 다시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아가씨의 기사인데, 다른 이들이 보기에 기강이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말해요. 전부 잡아 가둘 테니까.”

“...조금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요즘 들어 소설 속 악녀의 모습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걱정에 다시 아이린을 살폈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얼굴에 에반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저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변했을 뿐, 아마 방금의 말도 장난으로 했으리라.

그런 모습에 로페나는 입을 가린 채 눈살을 찌푸렸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서로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시선을 마주치고, 사소한 것에 웃음을 터트리고.

결국 아이린이 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붙어있는 걸 보다 못한 로페나는 찻잎을 따오겠다며 황급히 방을 나가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꽤 바쁘신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직접 조사하느라 꽤 바쁜 거죠. 어지간한 업무는 아버지가 처리하고 있으니까요.”

“...공작 각하 말씀이십니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에반을 불렀다고 들었는데, 혹시 무어라 한 건 아니죠?”

“별 말씀 없으셨습니다. 그냥...”

­만약 아이린이 울고 있으면 자네 탓으로 간주하겠네.

­눈이 조금이라도 붉어져 있으면 그대로 기사단을 이끌고 갈 거야.

“덕담을 조금 해주셨을 뿐이죠.”

덕담이란 말을 들은 아이린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덕담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니던가. 에반의 표정을 보아하니 분명 또 무어라 했을 것이 분명했다.

잠시 제 아버지의 대한 증오를 떠올리던 아이린은, 애써 그런 마음을 진정시키며 웃어 보였다.

“그랬다면 다행이네요.”

“그런데, 직접 조사하시는 거라면. 역시 절멸입니까?”

에반의 물음에 아이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린의 손에 깍지를 끼던 에반이 자세를 바로 잡으며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절멸을 직접 조사한다는 것은, 아마도 하탄과 관련된 일일 테니까.

“황제 폐하께서 에반을 불렀으니, 제가 조금은 그 의도를 파악해둬야겠죠.”

그렇게 말한 아이린은, 이내 쓰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알아낸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그나마 알아낸 몇 개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고요. 황태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아무래도 황제 폐하께선 에반에게 직접 얘기할 생각인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정보를 통제할 정도라면.”

“어차피 곧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전해드릴 말씀도 있었으니까요.”

“전해드릴 말이라면?”

아이린의 말에 어깨를 으쓱인 에반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가문이 흑마법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저는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말에 눈을 크게 뜬 아이린은, 이윽고 눈살을 찌푸리며 에반을 바라보았다.

여태껏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프리드 가문이 흑마법사와 연관이 있다, 라.

그것이 가능성이 영 없는 얘기는 아니었으나, 조금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허나 에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떤 증거가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린의 시선에서 그런 의문을 읽어낸 에반은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온 편지의 내용, 그리고 테오라드 경의 도움을 받아 읽어낸 용언까지.

용언으로 자신을 세뇌하려 했다는 대목에서 아이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에반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지금은 괜찮은 거죠? 괜찮다고 말해요. 어디 아프진 않나요? 머리가 어지럽거나 그런 건­”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린에 가슴팍에 안겨진 에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얼굴 전체에서 느껴지는 터라,

그 어느 때보다 곤란함을 느끼는 에반의 얼굴을 어느덧 새빨갛게 붉어져 있었다.

귓가에서 울리는 심장소리가 꽤나 컸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붉어진 얼굴을 가린 에반이 거리를 벌리자 아이린 또한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는 괜찮아요...! 에반이니까...”

조금 굳게 다짐했는지, 눈을 질끈 감은 아이린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반이라면...만져도 괜찮아요.”

“...음.”

에반은 구태여 그 말에 답하지 않았고, 어색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감싸기 시작했다.

만져도 된다. 에반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생각을 지우려 애썼지만,

애석하게도 아까 얼굴에 닿았던 부드러운 촉감이 부각되는 현상만 일으킬 뿐이었다.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반이었다.

“...아이린.”

“네...에반.”

“그런 말을 들으면 제가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잘 모르겠...네요. 직접 알려주는 게 아니라면.”

직접, 이라. 아이린의 당돌한 발언에 에반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나중에는 어쩌려고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

정식으로 교제한지 이제 겨우 한 달이었다. 이런 것이 1년이 되고, 몇 년이 흘러간다면...

조용히 한숨을 내뱉은 에반은, 끓어오르는 혈기를 억누르며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래서, 아까 황제 폐하에 대해 조사한 것 중 특별한 건 없었습니까?”

“...아, 조금 특이한 게 하나 있긴 했어요. 여태껏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귀족 가문이었는데. 이번 조사 과정에서 이상하게 얽히는 곳이 하나 있더군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가문 말입니까.”

“맞아요. 테라제인...이라고 했었나, 남부에 있는 시골 귀족 가문인데. 절멸과 관련된 조사에서 이따금 눈에 띄더군요.”

테라제인, 그 이름을 들은 에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자 아이린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에반은 그런 아이린의 반응보다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이윽고 조심스럽게 에반이 제 궁금증을 입에 담았다.

“혹시, 그 테라제인이라는 가문에 스칼렛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인이 있습니까?”

“스칼렛...아마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혹시 아는 사이에요?”

“...하.”

에반은 조용히 탄식을 흘렸다. 지금까지 조금의 단서도 잡히지 않았던 원작 여주.

이제야 그 갈피가 잡히는 듯 해서,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무언가에 조용히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이린이 자신을 매우 서늘한 눈빛으로 보고 있음을 에반이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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