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순조롭게 (5)
* * *
첫 아이를 쌍둥이로 가지게 된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자신은 아무런 대답도 내뱉을 수 없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떠올린 에반은 허공을 보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하나로도 감당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나는 게 현실인데, 쌍둥이라니.
“쌍둥이면 아마 이란성일 거래요.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우와.”
에반의 옆에서 총총거리며 돌아다니던 로페나가 키득키득 웃어댔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했던가. 당연히 조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애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바보가 되는 게 두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럼 태어날 아이들은 자신을 뭐라고 부를까? 이모?
살짝 나이들어 보이는 그 호칭에 눈살을 찌푸린 로페나는, 에반을 슬쩍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분이 어때요? 이제 애 아빠잖아요.”
“...좋은데, 조금 무겁네.”
얕은 숨이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하늘에 떠도는 구름 조각이 바람에 잘게 부서져,
사라진 구름을 빤히 쳐다보던 에반이 그제야 어깨를 으쓱이며 허탈하게 웃어보였다.
무거웠다. 덜컥 찾아온 아이란 존재가 기쁘면서도,
과연 잘해줄 수 있을지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게다가 아직 난관 하나가 남지 않았던가.
공작의 존재를 떠올린 에반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에반의 생각을 알아차린 로페나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에반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마 다들 쉬쉬하고 있을 거예요. 공작님이 알면 기사님을 어떻게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설마 죽이기까지야 할까.”
“혹시 모르죠. 눈 돌아가서 기사님 잡아 가둘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라, 에반은 몸을 부르르 떨며 로페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공작이 그렇게 하면 아이린이 막아주지 않을까...?
이제는 정말로 장인 어른이 될 사람이었으니, 만약 붙잡으려 한다면 얌전히 붙잡혀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여태껏 공작이 조용히 있다는 게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에반은, 로페나를 보며 혹시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설마, 아직 공작 각하께서 모르시는 건가?”
“모르시죠. 알면 기사님 여기에 못 있어요. 진지하게 황궁에 며칠 사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 아무도 말씀 안 드린 거야?”
“굳이 드릴 필요 있나요? 뭐 원래라면 알려드리는 게 맞긴 한데...공작저 사람들 전부 이걸로 시끄러워지는 걸 굳이 원하지 않아요. 다 아가씨랑 기사님 응원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공작님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도 뻔하구요.”
아무런 일도 없던 것이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공작에게 아이린의 임신을 알리지도 않았다는 말에 에반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물론 자신이 곤란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린의 아버지인 사람이 아직 임신을 몰라도 되는 건가?
‘내가 말해줄 이유도 없긴 한데.’
나름 공작이 딸을 챙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에반은 침음을 삼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신이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알려주러 갔다가 눈이 돌아간 공작에게 멱살을 잡힐 수도 있는데 무엇하러 간단 말인가.
그럼 스스로 알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일까.
만약 아이린이 아이를 낳은 뒤에야 공작이 알게 된다면...
꽤 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에반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하려구요? 제가 생각해 놓은 게 조금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이름? 벌써 그걸 정해도 되는 건가. 아직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는데.”
“이란성 쌍둥이면 아들 하나 딸 하나잖아요. 미리 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생각해 놓은 이름이 뭔데?”
임신을 알게 된지 고작 하루가 됐건만, 도대체 언제 이름까지 생각해둔 건지.
에반이 로페나를 바라보자, 눈을 크게 뜬 로페나가 주먹을 꼭 쥔 채 입을 열었다.
“제가 들었는데요. 요즘엔 시우라는 이름이 유행이래요. 여자한테 제일 인기가 많은 이름이 시우라는데요?”
“시우?”
아들의 이름은 그럼 시우 유리스가 되는 건가.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름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린과 함께 얘기하고,
언젠가는 공작과도 얘기를 나눠봐야 할 문제이지 않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에반은 성을 바꿀 생각이었다.
그때쯤이면 프리드라는 가문 자체가 없어질 것 같기도 하고,
절멸과 관련 있는 가문의 성을 그대로 쓰기엔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을 터였다.
어차피 결혼 할 거, 아이린의 성을 그대로 써서 에반 유리스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도 괜찮으리라.
“아니면 아만은 어떤가요?”
“아만은 안 돼.”
에반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불길한 이름이었다.
꼭 절벽에 몰려 사람들의 비극을 지켜봐야할 것만 같은 이름이 아니던가.
에반이 고개를 젓자, 잠시 시무룩해하던 로페나가 이번엔 여자 아이의 이름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에실리는 어떤가요? 갑자기 생각난 이름인데, 왠지 느낌이 좋아요!”
“확실히 그렇긴 하네.”
에실리 유리스라, 에반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딸이 태어나면 아마도 아이린을 쏙 빼닮지 않았을까.
성격은 자신을 닮았으면 좋겠지만, 에반은 그저 태어나는 딸의 성격이 그 이름처럼 온화하고 부드럽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결국 이름을 정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 되었다.
애초에 이제 겨우 임신 5주차에 접어드는데, 벌써부터 이름을 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만으로도 에반은 꽤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나저나 아가씨는.”
“지금 주무셔요. 원래 임신하면 잠이 많아지거든요. 그래도 조금 뒤면 일어나실 걸요? 주무신지 조금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요즘 들어 아이린의 잠이 많아진 것이 임신 때문이었던 걸까.
조금 일찍 알아차렸으면 좋았겠지만, 허나 이제라도 잘하면 되지 않겠는가.
마음을 다잡은 에반이 로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탓에 혀를 살짝 깨문 로페나가 에반을 흘겨보았다.
“에윽.”
“난 아가씨한테 가봐야겠다. 넌 크리스 씨한테 갈 거지?”
“아, 혀 깨물었잖아요. 확 공작님한테 말할까요?”
“...미안.”
어쩌다 자기 신세가 이렇게 된 건지, 로페나의 타박에 입술을 삐죽인 에반이 뺨을 쓸어내렸다.
아이린이 자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몇 없지 않을까.
로페나를 뒤로 하고 에반이 향한 곳이란, 이전까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서재였다.
“무얼 그리 집중하면서 보는 거냐?”
크리스의 말에 에반은 대답대신 작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이린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책을 찾았건만,
역시 자신이 알던 지식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다.
동생이 태어날 때 어머니께 조금 도움이 되고자 지식을 찾은 적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그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좋을 성 싶었다.
“아가씨 몸관리나 도우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생각처럼 찾아지지는 않는군요.”
“당연한 게 아니냐. 책보다는 직접 아이를 돌본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법이지. 얘를 들어”
크리스는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에반이 멍하니 바라보자, 에반의 등을 세게 두드린 크리스가 민망한 듯 뺨을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기사로 지내며 수많은 전쟁터를 돌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어린 아이를 키운 적이 있다고.
심지어는 막 태어난 아이를 돌본 적도 있었으니, 그 얘기를 들은 에반은 크리스를 새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저 꽉 막힌 사람이 아이를 키운다, 라.
분명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애한테 검을 쥐어주려 한 건 아닐까.
에반의 시선을 느낀 크리스가 주먹을 쥐자 에반은 큭큭 웃으며 책을 내려놓았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얘기한다는 건 도움을 주겠다는 얘기가 아니던가.
에반이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짓자,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쉰 크리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쟁터에서 임산부를 만나는 건 꽤 흔한 일이지. 포로로 잡힌 사람도 있고, 마을을 지키는 과정에서 임산부를 만날 때도 있으니까. 난 심지어 출산을 도운 적도 있었다.”
“그렇습니까?”
“아직 네게 출산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임산 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는 거다. 적어도 배가 부풀기 시작할 때까지 네가 쭉 지켜봐야 할 거야.”
스트레스라, 에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한 장을 꺼내 크리스의 말을 적기 시작했다.
가볍게 들으려고 했는데, 의외로 꽤 도움이 되는 얘기였다.
스트레스야 당연하지만, 그외에도 조심해야할 음식을 얘기해주는 크리스의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새어나왔다.
꼭 손주를 보고 싶어하는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지 않은가.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크리스 경을 할아버지라 부르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할아버지? 뭐, 못 부르게 할 것도 없긴 한데. 할아버지라.”
“좋으면서, 그냥 할아버지라 부르게 하겠습니다.”
크리스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자그마한 아이들을 상상하니 어쩐지 가슴이 푸근해져서,
에반은 나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젖혔다.
이런 일로 크리스 경과 진지하게 토론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건만,
세상일 하나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는 일이 꼭 들어맞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도움이 되는군요.”
“어지간한 시녀들보다 내가 더 잘 알게다. 로페나와 가장 먼저 친해진 것도 나니까 말이지.”
“항상 궁금했던 건데, 어떻게 로페나랑 친해진 겁니까?”
크리스의 겉모습은 조금 험상궂게 생긴 편이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어린아이들이 무서워할 얼굴이었고,
순하게 말해도 착하게 생긴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 않던가.
로페나가 처음 공작저에 온 게 7살 즈음이었는데, 도대체 크리스와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 꽤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냥, 뭐. 간단했지. 단 걸 준 게 전부였으니까.”
크리스는 로페나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아이린의 손에 이끌려 공작저로 왔지만, 그 어떤 연고조차 없어 그저 홀로 떠돌던 아이.
크리스는 그런 로페나에게 품에 있던 초콜릿을 하나 건네주었고,
살짝 녹은 초콜릿을 건네받은 로페나는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초콜릿의 단맛에 눈을 크게 떴다.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영악하진 않았는데.
쓰게 웃은 크리스가 턱을 쓰다듬자, 에반은 그런 크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로페나가 초콜릿을 좋아하는 거군요. 크리스 경이 처음 준 거라서.”
“그렇지. 그런데 언제까지 크리스 경이라 부를 거냐. 이제 기사도 아닌데.”
“저도 가끔 헷갈려서, 이제 그냥 크리스 경이라 부를 겁니다. 불만이시면 다시 복직하셔서 호칭 바꾸라고 명령하시던가요.”
“건방진 녀석.”
“전부 크리스 경에게 배운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크리스가 껄껄 웃자, 에반 또한 따라 웃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책을 읽으러 온 건데, 어째 또 이렇게 만담만 나누게 되지 않았던가.
허나 그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서, 에반은 그저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
“갑자기 단 게 먹고 싶네요. 빵도 그렇고...돼지가 되려나봐요."
아이린의 말 한 마디가 떨어지면, 에반은 다급히 공작저를 빠져나가 단 것을 찾기 급급했다.
명백하게 나누어진 갑과 을, 아이린이나 에반이나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에반은 아이린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따르고 있었다.
‘내가 임신시켰으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요즘 들어 늘 피곤해하는 아이린을 보며 에반이 느낀 것은 가슴이 아릿할 만큼의 아픔이었다.
무엇이라도 조금 더 해주고 싶건만, 막상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어쩌겠는가.
제국에 단 둘 있는 마스터가 빵을 사러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 우습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에반의 모습에 풋풋하다며 웃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저, 빵이 다 떨어졌는데요.”
“그럼 케이크라도 구워주면 안됩니까?”
스스로 말하고도 말이 안 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린이 단 것을 먹고 싶다고 한 그 말만 머릿속에 가득 찬 에반은 아무렇지 않게 대뜸 그런 말을 내뱉었다.
아이린이 검을 휘두르려 할 때마다 로페나와 함께 아이린이 운동하는 것을 애써 말리고,
다즐링 또한 좋지 않다고 하여 마시지 못하게 했으니.
아이린이 먹고 싶어 하는 것조차 먹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터라,
에반은 최대한 아이린의 편의를 맞춰주고자 노력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괜찮습니다. 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아이린이 그런 에반을 미안하다는 듯 바라봐도, 에반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춰줘도 괜찮은 걸까.
평소 자주 마시던 다즐링을 마시지 못하게 된 것은 살짝 불만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에 다른 감정을 품고 있진 않았다.
아이에게 나쁘다니 마시지 않을 뿐,
게다가 과도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단 얘기를 들은 뒤부터는 스스로 자제하고 있지 않은가.
답답하긴 했어도, 아이린은 그런 것에 사소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설마 에반이 그런 것을 신경 써서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도 돌아오는 것은 미소뿐이라. 결국 피식 웃은 아이린은 아직 부풀지도 않은 배를 버릇처럼 쓰다듬었다.
언젠가는 이 안에서 심장 소리가 들려올까. 이 배가 조금 더 부풀어 풍선처럼 커진다면,
그 때에는 어떤 감정을 품게 될까. 쌍둥이를 낳을 생각을 떠올리면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 겪을 많은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 더 크게 느껴졌다.
“혹시 더 바라는 게 있다면”
“흠, 내가 뭘 바랄 것 같아요?”
“...글쎄요.”
배를 쓰다듬는 걸 멈춘 아이린은, 제 앞에서 딱딱한 자세로 서있는 에반을 보곤 푹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면 죄인인 줄 착각하지 않을까. 바라는 거라고 한다면,
아이린은 에반이 곁에 있는 것을 가장 바라고 있었다.
이제 겨울이 조금 더 깊어지면 함께 있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 테니,
이런 시간을 조금이나마 길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서있으면 아기한테 안 좋을 걸요.”
사실 아기는 아직 제 아빠나 엄마의 존재조차 모르겠지만,
그 말에 에반은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하기 그지없는 자세라, 그런 에반을 보며 웃은 아이린이 침대에 걸터앉아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앉아요. 나 팔 아파서 이거 못 먹으니까.”
에반이 사온 케이크 조각을 살짝 들어 올리자, 에반은 그제야 주춤거리며 아이린의 옆에 앉았다.
아이린이 에반의 손에 숟가락을 주고, 숟가락을 든 에반의 모습을 확인한 아이린이 작게 입을 벌렸다.
“아”
먹여달라는 듯, 아이린이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린 것을 본 에반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조금 경직되어 있던 몸의 긴장이 풀려 한결 편안해진 마음.
에반이 떠먹여준 케이크를 음미한 아이린은 혀에 감도는 달콤한 맛에 배시시 웃었다.
어쩌면 정말 달콤한 것은 케이크가 아니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아닐까.
입술에 묻은 생크림을 닦은 에반이 손가락을 핥자, 아이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제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걱정이긴 했지만...그래도 그것이 지금은 아니었으니까.
아이린은,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