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결혼식 (1)
* * *
한적한 시골에 편지가 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노인에게 무슨 볼 일이 있는 것일까.
전서구는 다리에 편지를 묶은 채 하늘을 날면서도, 그 한 점의 의문을 지우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넓은 호수에 홀로 배 하나 띠운 채 시간을 낚고 있는 노인, 아니. 그저 몇 시간 째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성이 난 노인이 마침내 전서구를 발견했다.
“뭐냐, 편지 줄 거면 이리 놓고 가라.”
척 봐도 살벌한 눈빛에 황급히 편지를 두고 날자,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노인이 천천히 편지를 집어 들었다.
편지에 새겨진 것이란 가시에 둘러 쌓인 방패, 제국의 3대 가문인 유리스의 문장이란 걸 확인한 노인이 퓌,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어디 보자, 애들이 태어났다는 건 저번에 들었는데.”
편지를 열자 보인 것은 그 의도가 꽤나 명확해 보이는 종이 한 장이었다.
커다랗게 ‘청첩장’이라 써져 있는 종이. 잠시 그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던노인은,이윽고 호수의 끝자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로페나! 유리스로 돌아가야겠다!”
나뭇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던 단풍이 호수에 힘없이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벌써 가을이던가.
종이를 조심스레 접어 품에 넣은 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에반과 아이린이 결혼식을 올린다는데, 자신이 빠지면 쓰겠는가.
노를 잡은 팔뚝이 잠시 부풀더니, 이윽고 굉음이 일며 호수에 커다랗게 물장구가 일었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요. 아빠.”
그 물에 흠뻑 젖은 로페나의 분노란, 아마도 곧 크리스가 받을 예정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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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앙
이제는 그 쭈글 거리던 몸이 언제 이렇게 통통해진 건지.
자그마한 침대에 누워 열심히 울어대는 두 아이를 바라보는 아이린이 옅게 미소 지었다.
이 아이들이 태어난 지가 벌써 2달이 되어간다. 검은 옷을 입은 게 아서, 하얀 색 옷을 입은 것이 로벨리아.
방금 막 밥을 먹고 우는 아이의 뺨을 저도 모르게 쿡 찌른 아이린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언제 이렇게 커졌지?”
분명 막 태어났을 때만 해도 자기 팔뚝보다 작았던 것 같은데,
두 달 만에 몰라볼 만큼이나 커진 아이들을 보는 감상은 꽤나 묘했다.
벌써 말을 하면 어떡하지?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 아이들이 걷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방금까지 울던 아이들이 금세 조용해지자, 아이린은 침대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아이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혼자 배시시 웃다가도, 곤히 잠든 아이들의 모습에 조금은 진지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오목조목 뜯어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으니, 잠시 아이들의 얼굴을 보던 아이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로벨리아의 머리카락은 에반을 닮은 금색이었다. 반대로 아서는 자신을 닮은 하얀색.
이왕이면 로벨리아가 자신을 닮았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에반을 닮을 것 같다는 생각에 괜스레 걱정이 피어올랐다.
에반의 성격까지 닮았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단단히 교육을 해두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하는 아이린의 뒤에서, 시녀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가주 님, 부군께서 찾아오셨는데요?
부군, 어색한 호칭이었지만. 아이린은 그게 누구를 칭하는 것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둘러 머리를 단장하고, 옷매무새를 고친 아이린이 시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끄덕여지는 고개, 서둘러 문을 연 시녀가 사라지자 그 너머에서 에반이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아이들이랑 계셨던 겁니까?”
“방금 재웠으니까 조용히 해요. 깨면 에반이 책임질 거예요?”
“저한테 안기면 조용해지더군요. 아마 저를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 아이들은 원래 엄마를 더 좋아하는 법이에요.”
에반의 말에 아이린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아이들은 에반을 조금 더 잘 따르고 있었다.
젖을 먹일 때 외엔 항상 우는 아이들이, 왜 에반만 보면 조용해진단 말인가?
허나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아서, 결국 한숨을 푹 내쉰 아이린이 에반을 바라보았다.
“왜 왔어요?”
“...이제는 왜 왔냐는 소리까지 듣는군요. 전 가보겠습니다.”
“아, 알았어요. 여기 앉아요. 애들 깨지 않게.”
에반은 그 말에 샐쭉하게 웃으며 몸을 다시 돌렸다.
아이린이 앉아있던 자리 옆에 걸터앉고는, 눈을 가늘게 뜬 아이린의 뺨을 양 손으로 쿡 누르며 입을 열었다.
“청첩장은 다 보냈는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겨울에 식을 올려도 전 괜찮습니다.”
“겨울엔 드레스를 못 입는데요. 난 한 번뿐인 식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요.”
몸도 괜찮아졌고, 출산 후유증도 점차 사라지는 중이라 아이린은 식을 아예 며칠 뒤로 잡아버렸다.
출산 한 이후에 우울증을 겪는 이들도 있었지만, 에반이 워낙 극성인 터라 다행히 그런 고비는 쉽사리 넘길 수 있었다.
그걸 단지 극성이라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린은 자신을 신경써준 에반이 고마울 뿐이었다.
아이를 낳고 지친 자신을 위해 식사도 차려주고...심지어는 열이 난다고 밤새 간호까지 받았다.
예전에 에반이 다쳤을 때 자신이 했던 걸 생각해보면, 과분하리만치 호사를 받은 것이 아니던가.
그런 것에 보답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보답해줄 것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보답을 해준다면...신혼 여행 때, 아마도 그때 해주는 게 옳지 않을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신혼 여행을 떠올린 아이린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몇 달 전부터 해온 준비란, 어쩌면 에반이 깜짝 놀랄 만큼이나 대단한 것들이었다.
아마 에반이 알면...아이린은 머릿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생각들을 애써 털어내며 에반을 바라보았다.
“혹시 누가 온다고 했는지 들었어요?”
“아, 일단 태자 전하가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카이셀의 이름을 떠올린 에반은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당겼다. 이제는 정식으로 교제한다고 했던가.
카이셀과 스칼렛이 동시에 고백했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그래도 이제는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절멸이란 조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간혹 흑마법사가 나오긴 했지만, 익스퍼트의 기사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
아마도 자신이 나서는 경우는 제국이 국난이라 불릴 정도의 위기에 처했을 때가 아닐까 싶었다.
이제 아이가 있는 만큼 일선에 나서고 싶지도 않았고, 게다가 호위 기사도 그만 두었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로페나랑 크리스 경에게도 편지가 갔을 것 같습니다.”
“로페나는 거기서 잘 지내려는지 모르겠어요. 사람 살기 좋은 곳은 아닐 텐데.”
“뭐, 그래도 자기 가족이랑 있는 게 조금 낫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했지만, 로페나는 새로 생긴 가족을 나름 잘 따르고 있었다.
이제는 아빠라고 부른다고 한다는 걸 떠올린 아이린의 입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고작해야 몇 달이었지만, 그래도 원체 크리스 경을 좋아하던 아이였으니.
가끔은 그곳에서 눌러사는 게 아닐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이린에게 로페나란 꽤나 특별한 존재였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시녀이면서, 이 공작저에서 몇 안 되는 꽤 친근한 사람.
가끔은 친구처럼 대하고도 싶었지만, 공녀와 시녀라는 신분차에 간혹 불만이 일기도 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거기서 행복하다니,
그것을 그나마 위안이라 여기면 될 거라 생각한 아이린이 다시금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잘 자는 모습이 기특해서, 아직 얼마 자라지 않은 머리카락을 쓰다듬곤 피식 웃어 보였다.
“걱정이에요, 아이들 때문에.”
“뭐가 그리 걱정이십니까?”
“아이들이 엄마를 먼저 부르면, 에반이 속상해할 거 아니에요. 그게 걱정이란 소리에요.”
에반은 아이린의 말을 듣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윽고 아이린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애들은 저를 더 좋아하는데, 아이린이 미리 준비해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책에서 봤어요. 아이들은 보통 ‘엄마’라고 먼저 말한다고요.”
“...만약에 절 먼저 부르면, 어쩌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소원 하나씩 걸고 내기할래요? 아빠를 먼저 부르는지, 아니면 엄마를 먼저 부르는지.”
“좋죠. 무르는 거 없는 겁니다?”
에반은 이 내기에 자신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아이린을 좋아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자길 볼 때마다 방긋방긋 웃어주는 건 자기를 더 좋아한단 소리가 아니던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자신이었으니, 소원 하나에 무엇을 빌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벌써 이긴 것처럼 굴지 말아요."
"...그러죠, 소원이야 느긋하게 생각해도 되니까."
물론, 자신이 있는 것은 아이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명색이 엄마였고, 직접 젖을 물려 키웠다.
그런 아이들이 자신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그렇다고 에반이 나쁜 아빠라는 건 아니었지만...어쨌든 아이린은 이 내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예쁘지 않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여전히 누워있는 아이들이란, 몇 번을 보더라도 예쁘게만 보였다.
주름이 자글자글했을 때도 귀여웠는데, 이제는 탱글탱글해진 피부에 중독될 것만 같아서.
아이들 뺨을 연신 쿡쿡 누르던 아이린이 싱긋 웃었다.
에반은 그런 아이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을 보라고는 했지만, 사실 시선이 더욱 가는 것은 아이린이었다.
아이를 낳은 뒤 조금 더 예뻐 보이는 건 자신의 착각일까.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에반은 그 심정을 담아 입술을 달싹였다.
"확실히, 예쁘시군요."
에반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아기가 아닌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두 초록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눈살을 찌푸림에도 떠나지 않는 시선, 아이린이 뺨을 붉히는 모습을 본 에반이 이어 조용히 어깨를 움켜쥐었다.
"아, 아기들이 여기 있는데요?"
"방은 많지 않습니까. 어차피 공작저인데."
"...이거 아기들 줘야 하는데."
가슴을 가린 채 입을 연 아이린의 말에 큭, 하고 웃은 에반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린의 팔을 천천히 떼어내며, 이제는 아이를 낳아 조금 더 성숙해진 아이린의 뺨을 매만지곤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빌린 거죠. 결국, 제 꺼 아니겠습니까?"
꿀꺽
순간 바람에 휘날린 커튼이 햇빛을 가리자, 아이린은 멍하니 에반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을 꼭 잡은 채 나간 두 사람, 적막만이 휘날리는 방에서 아이들은 조용히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옆 방에서 나는 이 소리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눈을 끔뻑거리던 로벨리아는 이내 그 묘한 소리를 들으며 눈을 다시 감았다.
평소보다 훨씬 얌전히 잠든 로벨리아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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