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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악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148화 (148/181)

〈 148화 〉 신혼여행 (1) (악녀호위X로판용R)

* * *

신혼여행이라는 단어에 설레지 않을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태어나 죽을 때까지 보통 한 번 겪는 것이 신혼여행이었으니, 이런 들뜬 마음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리라.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항구로 향했지만, 마차를 타 서로의 눈을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이란 이 짧은 시간 동안 즐길 여행에 대한 기대감뿐이었다.

이 세상에 총 3개로 나뉜 대륙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대륙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이라 할 수 있었다.

제국 하나가 야만족과 일부 이민족이 가진 땅을 제외한 모든 곳을 점령하여 통치하는, 사실상 통일 제국의 형태를 지닌 것이 이 곳.

다른 대륙에도 마법과 기사가 존재하긴 했으나, 기본적인 틀만 같을 뿐 꽤 많은 곳에서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주먹을 쓰는 기사도 있다 들었으니, 자신들이 사는 대륙에서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아닐까.

다만 그나마 공통점을 찾자면, 3개의 대륙 모두가 한 번씩 큰 위기를 넘겨왔다는 점이었다.

에반과 아이린이 신혼여행을 가려는 에나데임 제국은 마물의 왕이라는 존재를 쓰러트렸고, 다른 한 곳은 대격변이라는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공통점으로나마 동질감을 느낀다면, 다른 대륙으로 간다는 어색함을 잊기에 충분할 거란 생각에 에반이 조용히 미소지었다.

마음 같아서는...남부로 가고 싶었다. 에반의 표정이 어두워진 걸 깨달은 아이린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남부는 보통 더운 기후다. 그렇기에 옷차림도 얇아지고,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영복 차림을 보고 싶은 에반의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이린의 한마디에 곧바로 기각되었을 따름이었다. ‘

더운 건 싫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이란,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북부에서 자고 나란 탓일까, 평소에 더위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이린이었다.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마스터가 아닌 이상 날씨에 완전히 저항할 수는 없었으니,

에반은 결국 신혼여행마저 북부로 가야한다는 참담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나중에 둘이서 남부로 가요. 이번에는 내가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뭐, 지난 일이지 않습니까.”

한 며칠 동안은 우울한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지만, 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깟 바다...그깟 수영복. 사실 그깟이라 하기에 아쉬운 감정이 피어오르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신혼여행인 만큼 에반은 아이린에게 최대한 편의를 맞춰주고 싶었다.

아이를 낳느라 고생하기도 했고, 결혼식 준비와 가주 승계식 준비를 위해 여러모로 바빴을 테니 말이다.

이번 신혼여행이 끝나면, 유리스의 가주는 아이린으로 바뀌는 가주 승계식이 진행될 터였다.

아이린은 유리스의 정당한 가주가, 그리고 자신은 아이린의 부군이 되리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럼.”

“가서 무얼 보게 될까. 하는 생각입니다. 꽤나 유명하지 않습니까? 유명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건 그래요. 나도 음유시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몇 번 듣곤 했으니가요.

휘시스 오르테어와 아딜룬 로데노프. 어쩌면 그쪽 대륙의 자신과 아이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우리처럼 동화책으로 따로 나오진 않았으나, 그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바다 건너의 대륙까지 넘어올 정도로 유명했다.

원수처럼 지내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정을 나누었다고 하니,

호사가와 음유시인들에겐 꽤나 단골 소재로 꼽히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일주일, 에반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아딜룬이라는 여인도 자신처럼 용의 특성을 타고났다던데, 자신은 하룻밤만 있으면 기절하다시피 잠들지 않던가.

실제로 기절하기도 했으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 그 상상에 에반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자기도 나름 그랜드 마스터라는 부끄러운 칭호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마물의 왕? 솔직히 말해 고룡 마베트가 조금 더 쌔지 않을까.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한 번 죽기도 했다. 그런데도 일주일은 거의 상상의 영역일진데,

어떻게...그 아딜룬과 휘시스라는 남녀는 그 긴 시간동안 버틸 수 있었던 건지 에반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아딜룬이라는 여인의 생김새가 조금 특이하다고 하더군요. 머리에 양처럼 생긴 뿔이 있다고...”

“...뿔, 뿔 말이죠.”

“네,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도 똑같이 용혈을 타고났는데, 눈동자 말고는 특이한 점이 없으니까요.”

에반이 지닌 용의 특징이란 마나와 눈동자가 전부였다.

용혈을 완전히 각성하면서, 마나를 사용할 때면 눈동자의 색이 금빛으로 변하는 것.

그리고 정화의 성질을 지닌 마나의 색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새하얀 색이라는 것.

뿔이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린의 모습이 의아하긴 했으나, 에반은 그저 신기해하는 것뿐이라 여기곤 창문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에반의 시선이 떨어진 뒤에도, 아이린의 시선은 여전히 에반에게 머물러있었다.

‘...옆 대륙의 공녀를 본 따 만들었다더니.’

자신이 산 머리띠가 정말 그 아딜룬이라는 여인의 뿔을 본 따 만들은 것일 줄이야.

에반이 그런 사실을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아이린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당겨졌다.

허나 에반이 그런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지금이 아닌 밤의 일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아이린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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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비공정이라는 건가 봐요.”

“...생각보다 훨씬 크군요.”

바다에 도착하자 보인 것은 마치 현대의 비행선을 떠올리게 만들법한 거대한 배였다.

위에 달린 것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구조물이었고,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바다 위로 올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거대한 배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이걸로 하늘을 날아 옆대륙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원래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타야 할 배였지만, 대륙에 단 5개가 운용되고 있는 비행선 중 하나를 완전히 유리스의 소유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 말인즉슨, 나와 아이린 단 둘이서 이 비행선을 타게 될 거란 이야기였다.

그렇게 한참을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비행선에서 내린 한 사람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며 이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턱수염 하나 없이 콧수염만 길쭉하게 기른 그 사람은, 물고 있던 파이프를 뱉어내며 우리를 향해 비행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오셨습니까. 저는 이 비행선의 선장이자, 옆대륙까지의 왕복 비행을 맡게 될 라이노스라고 합니다.”

“시간은 얼마 정도나 걸릴 것 같습니까?”

“배라면 며칠은 가야겠지만, 비행선은 인류가 만들어낸 마법공학의 정점이자 총아입니다. 아마 하루도 안 되어 도착할 거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하루라니, 나나 아이린이나 그 빠른 속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대였다면 비행기로 어디든 하루 안에 갈 수 있겠지만, 이 시대는 현대라기보다는 근대에 가까운 시대상을 띠고 있었다.

마법이 있다고 해도 조금 더 편할 뿐이었고, 그렇기에 대륙을 오가는 데 하루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일 따름이었다.

느긋하게 바다를 구경할 수 있나 했더니, 그런 건 또 힘든 모양이라. 나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선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착하면 우리를 맞이할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혹여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아, 그거라면...일단 비행선 내부로 들어가서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도로 보여드리는 편이 훨씬 편할 테니까요.”

선장이 비행선 내부로 향하자, 그를 따라 비행선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마법공학의 총아라는 말은 과연 거짓이 아닌 듯 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복잡한 기계장치,

그리고 마법으로 만들어진 ‘코어’라 불리는 보석들까지.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상당한 편이었기에, 도대체 그 마력을 어떻게 담았는지에 대해 일순간 의문이 일 정도였다.

그렇게 비행선 내부로 걸어가 선장이 머무르는 곳으로 향하자, 비행선의 정면이 환히 보이는 곳과 키, 그리고 커다란 지도가 2장 걸려 있었다.

하나는 커다란 대륙 전체를 표시한,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의 지도였으며. 나머지 하나는 어느 한 대륙의 북부만을 표시한 지도였다.

선장은 파이프를 질겅질겅 씹으며 북부만 그려진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두 분께서 도착하실 곳은 ‘동대륙’이라 불리는 곳에서 큰 세력을 지니고 있는 로데노프 공작령입니다. 아딜룬 로데노프의 출신지이기도 하고, 또한 오르테어 변경백과 꽤나 긴밀한 사이이기도 하죠. 아마 이 대륙의 유리스라고 생각하시는 편이 편할 겁니다.”

아딜룬과 휘시스가 아직 그 곳에 머무른다고 했던가. 어쩌면 마주칠지도 몰랐으니,

여러모로 준비하는 편이 좋을 성 싶었다. 나름 우리와 비슷한 면모를 여럿 지니기도 한 두 사람이었다.

당연히 성격도 어느 정도 잘 맞을 테고, 어쩌면 돈독한 사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허나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이란,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연유로 그쪽 대륙의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하는지 우리는 몰랐으니 말이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선장은 허허로이 웃으며 다시금 설명을 이어갔다.

“저도 정확한 건 그 근처로 가서 연락을 해봐야 겠지만, 아마도 로데노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체감은 못하셔도, 다른 대륙에서 두 분의 이야기 또한 꽤 유명하니까요. 동화책 나온 건 저희 딸도 읽고 있습니다.”

“...그건 굳이 말 안 해도 괜찮을 텐데."

아이린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예전에 아이들 앞에서 한 번 읽어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 책에선 내가 아닌 아이린이 고백한 걸로 나왔었으니, 솔직히 말해 부끄러워 할 법도 했다.

“그럼 사소한 것들은 가면서 확인하기로 하고, 이제 슬슬 출발하도록 하죠. 지금 출발해야 다음 아침에 도착하지 않겠습니까?”

“저쪽에 따로 준비된 공간에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바로 출발할 준비를 할 테니까요.”

그렇게 방에서 나오자, 한 쪽 텅빈 공간에 주변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창문 하나가 보였다.

항구의 끝자락, 비행선의 옆에 보이는 것은 그 넓고도 푸른 바다.

생각해보니 둘이서 바다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자그마한 창문 하나를 열자 짠내 가득한 바닷바람이 그대로 불어왔다.

겨울이 되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임에도 바닷바람은 나름 따듯해서,

신기한 듯 그 바람을 한참 동안 맞고 있던 아이린이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이번에 내가 가자는 곳으로 가줘서 고마워요. 바다라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해서...사실 조금 겁이 난 것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요.”

“...괜찮습니다. 여러모로 고생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차피 여행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우우웅­

천천히 떠오르는 비공정의 창문이 땅과 서서히 멀어지는 바깥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 삽화의 한 장면처럼, 갈색의 땅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그 풍광에 웃는다.

신혼여행마저 북부로 향하는 게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직도 한참 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건 아주 사소한 아쉬움에 불과했다.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줬으니까...나도 보답할게요, 에반한테.”

“...무엇으로 보답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비밀.”

작게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댄 아이린의 모습에 미소 짓고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이제는 완전히 푸른 바다만이 보이는 풍경 끝에, 아주 자그맣게 보이는 대륙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혼여행의 목적지, 그곳에서 경험할 것들을 떠올리는 내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두근 거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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