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복수혈전! (2/6)

◊ 목차 ◊

복수혈전!

“끄으…”

죽을 것 같다. 허리가 반으로 똑 부러져 작살난 느낌인데, 그 부근이 날카로운 이빨에 자근자근 씹힌다면 이런 기분일까? 밑에 둔부는 또 어떻고, 하도 고간으로 철썩철썩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얻어맞아 멍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얼얼하고 아픈데 스스로는 볼 수 없는 부위이니 추측만 할 뿐이고, 혹사당한 구멍은 열이 올라 발씬거리고 있었다. 이곳만큼은 보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찢어졌어. 분명히 찢어졌어.

허벅지 사이로 피가 비치지는 않다만 레시는 작열하는 제 구멍이 틀림없이 찢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고통이 느껴질 리 없으니.

“개씨발 새끼… 흐윽… 지가 아빠? 어쩌고 저째? 개,씹, 흐엉…”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서러워 찌질이처럼 눈물이 뚝뚝 흘렀다. 사나이가 돼서 애처럼 우는 것도 존심 상해 죽겠는데… 무력으로 인해 깔렸다는 사실이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상상의 여지조차 둔 적 없는 노팅을 생으로 받아냈다. 아니, 자신이 누군가에게 깔려 헐떡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노팅? 진짜 기가 차서… 아직까지도 아랫배 깊숙한 곳에 잔뜩 뿜어진 정액이 뭉쳐 덩어리져있는 게 좆같이도 잘 느껴졌다. 덕분에 배가 살살 아픈 건 전혀 달갑지 않은 덤으로 따라왔다.

끄흑, 평소 사나이라면 절대 해지 않을 행동 중 ‘쭈그려 앉기’를 몸소 시전 중인 레시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얼마나 깡다구 조진 거친 삶을 살아왔는가. 이렇게 열심히 살다 언젠가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얻어 알콩달콩 소박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소망을 웬 개변태발싸개 같은 놈이 와장창 깨부쉈으니 화딱지가 끌어 오를 수밖에!

참으려고 해봐도 악문 잇새로 멍텅구리 같은 쉰 울음만 새어 나왔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을 꼽자면 자신이 살던 동네 길바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만약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봤다면 너처럼 덩치도 크고 사나운 게 눈물도 흘릴 줄 아냐며 질겁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분명 멋지고 포악하고 씩씩한 맹수야… 그러니까 울면 안 된다고… 사나이는 우는 거 아니다가 내 인생 모토잖아… 그치만, 그치마안… 개새끼!!! 흐어어어엉!!! 내가, 내가 아프다고 했는데!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수컷,이라고 했는…흐윽…!’

무릎을 끌어안은 채 한참 동안 고개를 박고 울던 레시는 끅끅대다가 굳은 결심을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복수할 거야, 복수, 끄읍, 할 끄어햐…”

후회하게 해 준다… 진짜야. 진짜로 씨이… 흐윽… 존나 무식하게 크기만 한 게… 왕 변태 싸이코 새끼… 그딴 걸 처넣으면 안 찢어질 리가 있냐고… 지는 지꺼 안 넣어봐서 모르겠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그런데 거따 대고 노팅까지 해?! 그 높은 콧대를 아주 철저하게 자근자근 짓밟아 주겠어…

복수를 꿈꾸면서 훌쩍임은 어째 더 커져만 갔다. 피에타의 능글거리는 얼굴이 눈앞에 둥둥 떠다녀서 허공에 대고 빠르게 주먹질도 했다. 그런데 눈앞에서 사라지기는커녕 ‘그걸로 되겠어? 솜방망이라 하나도 안 아프다 아들.’ 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끔찍한 환상이 보였다.

“하아… 흑…”

온몸이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 곤죽이 된 기분이다. 첫 번째, 손가락으로 마구 쑤셔댄 덕분에 여린 혀 밑의 살이 아릿하고, 두 번째 적으로 하도 물어뜯어 불어 터진 오른쪽 가슴이 뒤지게 아프다. 그리고 얼마나 세게 쥐어댄 건지 옆구리는 손자국이 그대로 남은 상태이며, 고간으로 얻어맞은 엉덩이, 가시 좆이 파고든 구멍부터 그 안쪽 아랫배 깊숙한 곳까지 전부 다 아파서 죽을 맛이었다. 배는 정액으로 가득 차서 욱신거려 아랫배를 부여잡게 만들었다.

한참을 쭈그려 아이처럼 울던 레시가 마카롱 덩이처럼 부은 눈을 힘겹게 끔뻑였다. 평소 흘리지도 않는 눈물을 몇 년 치 한바탕 빼고 나서야 겨우겨우 흐느낌이 멎었다.

“하아… 흐, 진정… 진정하자. 세수라도 좀…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레시야. 정신 차리…”

무거운 몸으로 욕실에 들어간 레시는 커다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마주했다. 웅얼거리던 혼잣말이 뚝 그쳤다. 겨우 멎은 울음을 다시 터질 것 같았다. 하도 울어서 빵빵하게 부은 얼굴이 볼썽사납게 찌그러졌다. 코가 꽉 막힌 상태인지라 낮고 굵었던 목소리는 비음으로 물든지 오래였다.

거울 속에는 멋지고 잘생긴 레서 판다 수인 대신 찌질하고 눈두덩이나 퉁퉁 부은 찌질남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레시의 멘탈을 직격타로 때린 것은…

“지짜… 지짜 짝짜기야… 흐어어엉…!!!!”

한쪽만 선홍빛으로 오동통하게 부풀어 보기 싫을 정도로 짝짝이가 된 가슴이었다. 가슴이 짝짝이라고 히죽대던 미친놈의 얼굴이 다시금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이 호텔에 들어오고 나서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다 눈물 바람이었지만, 레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크고 서럽게 울어젖혔다.

좌찌와 우찌는 한눈에 보기에도 차이가 컸다. 원래도 조금 크기가 컸던 가슴이 한눈에 보기에도 부풀어서는 울혈 자국을 동반했다. 얼마나 맹렬하게 물고 빨았는지 오른쪽 가슴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부푼 유두는 아직도 얼얼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 우찌야…’

오른쪽 가슴을 부여잡고 엉엉, 눈물을 흘리던 그는 허리를 부여잡고 어렵게 소변을 보다가도 다시 울었다. 엉덩이 골 사이로 흘러내리는 정액의 느낌이 선연해 설움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흐어어어엉, 서럽게 꺽꺽거리는 울음이 물줄기 소리에 맞물려 묘하게 어우러졌다.

“씹새끼… 코오… 코는 또 왜 딸기코 아저씨가 됐는데에에에…! 주정뱅이 같잖아… 씹,내 가슴… 내 엉덩이… 흡, 내… 구,구, 흐어어엉…”

‘구멍’이라고 나오려던 단어가 먹혀들어갔다. 징글맞은 얼굴로 ‘구멍? 무슨 소리니. 이건 보지야.’ 제멋대로 떠들던 동굴 같은 목소리가 이명처럼 울렸다. 어느 날 불쑥 자신의 인생에 개입한 개미친또라이싸이코패스왕변태 새끼는 귀신처럼 자신을 따라다녔다.

비척비척 욕실을 빠져나온 레시는 곧장 홀로 남겨진 방구석에 웅크려 앉아 어젯밤 일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이를 으득으득 갈며 복수를 다짐하고 다시 울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들이랑 이딴 짓 하는 아빠가 어디 있냐고 울부짖던, 바야흐로 어젯밤.

육중한 덩치에 묵직하게 눌린 몸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레시는 꼼짝없이 노팅을 받아내야 했다. 아랫배 깊숙한 곳의 점막을 때리는 뜨거운 정액 물길을 느끼다 결국 반쯤 기절할 때 즈음에야 노팅이 끝났다. 축 늘어진 몸을 몇 번 더듬고, 콱 물었던 뒷목을 계속해서 핥아대던 피에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좆에 들러붙는 여린 점막을 즉,즉 후비며 후희를 즐겼다. 질겁한 레시가 쉬어버린 목으로 ‘아, 안 돼 안 돼…’ 웅얼거리며 뒤로 손을 뻗어 그의 장골을 밀어내려 애썼다.

‘히익, 그만, 그만해!’

‘으응, 좋아서 그래 아들… 우리 아들 보지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아빠가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리겠네…. 아아 달다…. 너무 달아서 고추 아파.’

‘씹변,태새끼… 으윽!’

그의 마음 같아서는 노팅을 받아내고 뭐고 쫀득하게 물어오는 구멍에 몇 번이고 좆질을 하고 싶었다. 다만 거의 죽어가다시피 쌕쌕 숨을 뱉는 작은 몸뚱어리를 보자니 그건 안될 듯싶어 아쉽지만 포기를 택했다. 아직 시간은 많고 앞으로는 제 곁에 두고 살며 입맛대로 길들일 수 있으니 유한 마음이 든 것도 한몫했다.

‘흐으… 하아…’

이쯤 할까. 힘차게 쏟아져 나오던 정액의 줄기가 얕아지고 마지막 몇 방울까지 안쪽 깊숙한 곳에 모두 싸지른 피에타가 나른한 숨을 내쉬고선 허리를 뒤로 물렸다. 노팅이 끝난 직후라 가시가 덜 가라앉은 상태였다. 즈즈즉, 꽉 맞물려 있던 내벽이 억지로 벌려지며 수많은 가시가 후끈한 점막을 긁어내렸다.

‘흐아악! 아!’

‘자지 좀 그만 물어주라. 네가 자꾸 이러면 빼기 싫어지잖니.’

‘끄,으…’

잔뜩 부푼 전립선을 직격타로 긁힌 레시가 눈을 까뒤집으며 크게 경련했다. 자신의 아랫배와 침대 시트에 눌린 좆의 끄트머리가 토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두 차례 넘게 절정을 맞은 온몸이 땀과 체액으로 끈적끈적하다. 번들거리는 나신을 짓누르고 있던 육중한 몸이 드디어 떨어져 나갔다. 뜨거운 열기를 품은 몸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자극한다. 침이 번진 입가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발작처럼 토해졌다.

‘우으…… 아흑!’

아직까지 부피가 덜 줄어든 귀두가 구멍에서 퉁- 튕기듯 빠져나갔다. 좆을 따라 내려온 끈적하고 하얀 정액이 구멍 입구에서 엉겨 붙어있다가 주르륵, 골을 적셔 흘러내린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구멍이 옴죽거릴 때마다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보기 좋은 광경이군.

만족스러운 듯 피에타의 입꼬리가 위쪽으로 걸쳐졌다. 레시의 전신이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견딜 수 없는 쾌락의 정점을 이기지 못한 강렬한 여운이었다. 땀으로 인해 목덜미에 들러붙은 뒷머리카락을 끈덕지게 바라보던 피에타가 느릿하게 다시 몸을 겹친다.

‘아빠 좆 물을 이렇게 질질 흘리면 어떡하니. 이렇게 하면 아기를 밸 수가 없잖아.’

떨어트렸던 상체가 식기도 전에 재차 바짝 붙인 그가 미끈거리는 좆덩이를 엉덩이 골 사이로 밀어 넣었다. 축 늘어져 경련하던 몸이 일순 경직되었다. 새액 새액- 숨을 고르던 레시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구멍을 뭉툭하고 매끈거리는 귀두가 찔러오고 있었다.

‘히익! 하지, 하지 마…!’

새된 비명이 애처롭게 그를 밀어냈다.

‘아빠가 준 좆 물 못 흘리게 막아줄게. 응?’

‘아,아니야! 아니야! 으,아! 흐아…’

‘기껏 배부르게 먹여줬더니 보지가 칠칠맞게 다 흘리고 있지 뭐니. 아빠가 슬퍼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헉! 아, 안…!’

‘우리 아들 아빠 좆 물 먹자.’

꾸지직, 하얗게 일어난 거품이 짜그라지는 소리와 함께 반들반들한 귀두 끝이 가차 없이 퉁퉁 부은 안쪽을 파고들었다. 몸을 딱 붙이고 엎드려 뭉근하고 느릿하게 안쪽을 몇 번 쑤셔주자 숨넘어가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간질였다. 땀에 전 목덜미가 예뻐 쪽- 가벼운 버드 키스를 남긴다.

‘하윽, 흑, 아, 으윽!’

‘우리 아들 보지 좋다…’

‘개색…’

상스러운 욕지거리가 나오려다 멈췄다. 순간적으로 좆에 달려있던 가시가 세워지는 느낌이 들어 숨이 턱 막혔다. 여린 점막이 두터운 좆덩이를 억지로 받아내고 있는 터라, 이대로 가시가 선다면 정말로 내장이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몸이 망가진다는 두려움에 잠식되어 뜨거운 눈물만 펑펑 흘리는 레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아,아빠…’

‘그래그래. 좋지? 아빠도 매우 좋아. 우리 예쁜 아들.’

‘흐어엉… 아파요… 빼,빼 주세요…’

‘예쁘게 말했으니 빼줄게.’

마침내 레시에게는 길고 길었던 섹스가 끝이 났다. 더 이상 접붙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져 나온 피에타가 땀에 젖은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레시를 품에 안아들었다. 관계 내내 얼굴을 파묻고 있던 베개에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한 그가 하하하, 웃자 축 늘어져 흐끅거리던 레시가 울음소리를 키웠다. 구겨지고 더럽혀진 침대 시트가 자신의 상태처럼 몹시 엉망이었다.

‘진짜, 나쁜,나쁘은 새끼. 나를, 막, 흐윽…’

‘많이 힘들었구나 아들. 울 정도로 아팠니? 아빠가 힘 조절을 잘 못했네.’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냐? 1년 치 눈물은 전부 쏟아낸 기분이다 이 개새꺄!

목소리가 잠겨 나오지 않아 더 억울하다. 욕실로 가는 중, 품에 안겨있던 레시가 되지도 않는 힘을 쥐어짜 내 버둥거렸다. 정말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일격이었다.

‘흐,으… 그 재수 없는 점잖은 말투 집어치워! 씨발! 아까는 보,보… 씨발 뭐가 어떻다느니 입에 담지도 못할 쓰레기 발언들만 해놓고 이제 와서…’

피에타가 속절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보지라는 단어 하나 입에 못 담아 돌고 돈 게 겨우 욕이다.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인 말투는 몹시 거칠어서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원석 같았다. 이렇게 입만 열면 욕이던 입에서 ‘아빠 잘못했어요. 자지로 마음껏 혼내주세요.’라던가 ‘으응, 아빠아… 제 보지 허전해요… 아빠 자지로 막아주세요… 네?’라던가 ‘아빠 자지 빨면서 자위할래요.’ 같은 말을 스스로 하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

‘너는 지짜… 지짜… 대가리도 없는 나쁜 놈이야… 흑, 뭐? 아빠랑 이딴 짓 하는…’

대가리도 없는 나쁜… 하하. 우리 아기 화가 많이 났네. 그렇듯 레서판다의 습성 중 하나인 ‘몸집을 부풀려 두 팔들고 강한 위협’은 오히려 피에타에게 솜방망이의 깜찍 발랄한 애교로밖에 다가오질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위협의 효과는 아주 미미했으나 사람을 애교로 끔뻑 죽게 만드는 효과라면 만빵이었다. 레시가 버둥거리든 말든 깨끗한 욕조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는 곧 엉망인 몸에 손수 거품 칠을 해주기 시작했다.

‘머, 끄읍… 하는,하는 거야!’

‘우리 아들 씻기는 중인데, 왜?’

‘내가, 내가 알아서 할게! 나 아기 아니거든! 아니라고! 무서운 맹수란 말이야! 이딴 건 혼자서도 할, 수 이써!’

‘그래그래. 우리 아들 아빠 닮아서 무서운 맹수구나. 그런데 어쩌지? 무서운 맹수여도 아빠한테는 그저 작은 아기일 뿐인데?’

‘으악! 짜증 나! 놔!’

‘가만히 있으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무슨.’

가벼운 티격태격이 오고 갔다. 그 와중에 배 안 가득 채워준 좆 물이 흘러나올까, 뒷구멍을 막은 채로 씻겨준 피에타는 레시가 감기에 걸리지 않게 머리까지 뽀송하게 말려주고 난 후에야 몸을 놔주었다. 허리에 감겨있던 묵직한 팔이 떨어지자마자 빠르게 떨어져 나온 레시가 씻는 사이 교체된 깨끗한 시트 위로 꾸물꾸물 기어 올라가서 이불을 휙 뒤집어썼다.

아까와는 달리 뽀송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의 감촉에 또 서러워진다. 허리가 두 동강 난 것처럼 아프다.

끄흡, 흐윽, 흐어어어엉.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내며 엉엉 울던 레시의 몸이 펑! 소리가 나며 줄어들었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레서판다가 눈물을 찔끔 달고 엎드려 이불 안을 파헤치고 돌아다녔다. 가장 편한 자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꾸물꾸물 하얀 이불이 도톰하게 솟아오르고 곧이어 중앙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섬이 하나 생긴다.

‘개새끼…’

웅얼거리며 눈물 맺힌 눈이 가물가물 느리게 감겼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피에타가 물기 있는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겼다. 같이 있을 때만 해도 꽥꽥대던 레서 판다가 조용하자 불안해서 몸도 제대로 닦지 못하고 나왔다. 평소 깔끔한 성격인지라 바닥에 물이 떨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예외였다. 가운을 두르고 욕실을 나오자 널따란 침대와 조용한 공기가 반겨주었다.

‘아가 어디 있니.’

낮은 목소리가 레시의 부재를 찾았다. 동그랗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세로로 길게 좁아졌다. 어두운 침실 속에서 레시를 찾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곧 그의 두 눈에 하얗게 볼록 솟아오른 침구가 보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그가 발소리를 죽여 느릿하게 침대로 다가간다.

‘아가, 자?’

진동이 예민한 오감을 자극했다. 조용한 적막 속 진동이란 소음은 꽤나 파동이 크다. 제 재킷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기민하게 알아챈 그가 혹여나 진동소리에 레시가 깰까, 빠르게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진 재킷을 주워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수신인을 확인한 그가 한쪽 눈썹을 삐딱하게 올린다.

-보스.

‘영재야. 근무 시간 아니잖니.’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근무 시간 외 권영재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뜻은 카지노에 사고가 터졌다는 일이다. 그것도 권영재의 선에서 정리되지 않는.

하얀 침대 위로 볼록 솟은 물체를 바라보던 피에타의 표정이 차게 가라앉았다.

‘읊어봐.’

-VIP 룸에 야생 늑대가 출몰해 쑥대밭을 만들어 놨습니다. VIP 룸에서 호명한 딜러 세 명이 다치고 VIP 고객 한 분이 중상을 입어 앰뷸런스에 실려갔습니다. 신속하게 대피가 이루어져 인명피해는 한 명으로 그쳤으나 중상을 입은 고객님의 비서가…

‘포획은.’

-죄송합니다.

‘이 개새끼가 자꾸 어디서 기어 나오는 걸까… 내려갈 테니 기다려. VIP분들께는 내가 직접 사과드린다고 전해, 전용 접객 실로 안내드리고.’

-예 알겠습니다.

쯧, 혀를 찬 그가 침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방을 나섰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레서 판다는 아주 끔찍한 복수를 꿈꾼다! 레시의 눈이 투지로 활활 불타올랐다.

그깟 대형 고양잇과 맹수! 이겨보자!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던 레시는 허리 쪽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격통에 악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파이팅 하자는 의미에서 지른 악 소리가 고통에 찬 비명소리로 탈바꿈했다.

“아이고 허리야…”

아씨… 복수보다 요양이 먼저인가… 이 짓도 몸이 멀쩡해야 해먹지… 일단… 요양을 하면서 어떻게 조질지 계획을 짜 보자. 계속 움직이다가는 허리 뽀개지겠어. 허리가 뽀개지면 복수 계획도 물거품이 될 테니까… 배운 건 없지만 머리를 잘 굴려서… 그래도 잔머리는 좀 굴린다고.

느릿느릿 한 움직임으로 어디선가 종이와 볼펜을 찾아온 레시가 침대 위로 조심히 기어 올라가 엎드려 누웠다. 폭신한 침대에 엎드려 있으니 좀 나은 기분이다. 레시는 솜이 빵빵한 베개를 끌어안고 ‘흐음…’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새하얀 백지에 뭐라도 써보려 점을 콕, 찍었으나 펜은 전혀 나아가지를 않았다.

‘복수 계획서가 나을까, 복수 리스트가 나을까. 리스트라고 써야 더 있어 보이려나… 외국어는 능통하지 않지만 간단한 단어 정도는 쓰잖아.’

하등 쓸모없는 고민에 몰두하여 시간을 투자하던 레시가 이내 마음을 결정한 듯 한자 한 자 감정을 눌러 담아 글자를 써내렸다.

『맹열하고 무서운 레서 판다의 복수 계획서!』

솔직히 글자만으로는 밋밋해 앞뒤로 별 모양이라도 그려 넣고 싶었지만 사나이로서 면이 서질 않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명색이 복수 계획서인데 너무 휘황찬란하거나 반짝반짝하면 멋없잖아?

겨우 제목만 적었을 뿐인데도 레시는 몹시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자그마한 머리통 속에서는 벌써부터 울고불고 질질 짜며 제 바짓단을 붙잡고 늘어지는 피에타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제발 살려줘! 평생치 대나무 과자를 상납할게! 그뿐이야? 이제 네 아빠 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내 아들 하지 마!’ 엉뚱한 상상으로 점철된 머릿속에서 엔도르핀이 마구 분출되었다.

으하하! 아주 계획적이고 철저한 복수를 할 테다! 어디 한번 울고불고 매달려 보라지! 내가 거들떠나 보나! 나 22년 인생 풍파란 풍파는 다 겪은 레시, 어제의 수모를 잊지 않고 제대로 돌려주겠어!

행복한 망상에 빠진 것도 잠시, 잘난 얼굴로 볼썽사납게 질질 짜는 피에타의 얼굴을 보겠다는 일념을 하나로 각 잡힌 몸짓으로 펜을 끄적거렸다. 우선적으로 레시는 고양잇과의 특성을 적어내렸다.

‘적을 알고 또 적을 알아야 전투에서 승리하는 법이지.’

어디서 주워들은 문장을 제멋대로 떠올리며 어떻게 해야 그 덩치 큰 변태 왕고양이가 겁을 먹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꼬르륵.

“아 배고파…”

그러나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눈치 없이 울어대는 배가 밥을 달라며 주인을 재촉한다. 어젯밤 침대가 박살 날 정도로 떡을 쳤는데 허기지는 건 당연지사다. 주린 배 밑으로 손을 집어넣은 레시가 괜스레 묘한 느낌에 손을 후다닥 거두었다. 아직까지 배 안이 진한 정액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됐어. 적진에서 무슨 배를 채울 생각을 해. 정신 차리고 아주 처절하게 복수한 다음에 그릭 아저씨 네로 가서 축하주와 함께 맛있는 밥을 먹자.’

허기에 무너지려는 정신을 다잡으려 고개를 휘휘 저은 레시가 곧 개발새발 글씨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감히 잠자는 레서 판다의 코털을 건드렸다 이거지? 나 22세의 건장한 청년, 아주 무시무시한 복수를 해주지…’

「1.정면으로 맞서기

-마짱을 까자고 한다

-마짱을 깐다

-내가 진다」

아니?! 결과가 왜 이렇게 나오는 거지?! 제가 써놓고도 화들짝 놀란 레시가 목록을 응시하다 또다시 고개를 빠르게 내저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출된 결론이 상당히 자신에게 불리했다. 되레 자신이 복수당하는 길이 아닐까. 본능이 이성을 짓누르고 질 거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어젯밤 엘리베이터에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구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여 주먹을 죄다 피하는 모습이라던가, 주먹을 쥔 손에 힘 하나 안 주고 가볍게 막아선다던가.

‘젠장 싸움은 승산율이 없는 건가…’

배움이 짧은 그는 맞춤법이 틀렸는지도 모른 채 첫 번째 계획을 빠르게 버리고 새로운 계획을 짜는데 몰두했다. 집중한 눈이 종이에 콕 박혀 떠날 줄을 모른다.

‘역시 정공법은 안 돼. 그 미친 새끼는 엄청나게 잽싸니까 나한테 불리할 거야. 내 전광석화 같은 매서운 주먹을 다 피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잖아?’

그렇다면…

「2.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위협 가하기

-맹열하게 두 팔을 들어 달려들기

-날카로운 송곶니로 팔뚝 물기

-발톱 세워서 할퀴어 혼쭐 내주기」

샤샥 빠르게 글씨를 읽은 레시가 혀를 빼꼼 내민 채 의아한 표정으로 종이를 집게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어지러운 악필의 향연에도 태연한 표정으로 애매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구긴다.

‘이것도 좀 그런가? 그 망할 녀석 내가 몸집 부풀려서 달려들면 번쩍번쩍 들어 올린단 말이야… 흠… 일단 이건 차선으로 하고 하나 더 짜보자.’

얌전히 종이를 내려놓은 레시는 세 번째 계획을 적어보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항목이었다.

「3.뒤지게 골탕 먹이기」

‘오 이거 뭔가 좋은데? 딱 보니 가구들은 죄다 비싸 보이고 한탕 해먹을 수 있겠어…’

급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레시가 버릇처럼 혀를 빼꼼 내밀고 자신만만하게 목록을 적어내려갔다.

「-침대 내 털로 저지레하기

-티비 뿌수기

-욕조에 물 가득 받아놓고 샴푸 뿌리기

-냉장고 뒤져서 맛있는 거 다 먹어버리기」

“이거다…”

킬킬킬. 뿔난 악동의 미소가 만면에 번졌다.

사나이는 꾸물거리지 않지. 당장 몸을 일으킨 레시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펑! 소리와 함께 수화한 레시가 한참 작아진 몸으로 풀썩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웠다. 곧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널따란 침대 위를 뒹굴뒹굴로 종횡무진하며 털이 잘 빠질 수 있게 비비적거렸다.

‘하… 뽀송한 냄새… 우리 집은 반지하라 이불 널면 이런 냄새 안 나는데…’

벌써 10년 된 꽃무늬 애착이 불을 떠올린 레시가 쩝, 입맛을 다셨다. 이미 해질 대로 해진 이불이라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면 본인이 직접 기워서 다시 덮고 자고는 했다. 이불에서는 뽀송한 냄새 대신 어쩔 수 없는 반지하의 눅눅한 냄새가 나고는 했다.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살아왔던지라 그게 당연한 걸로 줄만 알았는데 이곳의 이불은 10년을 함께한 애착 이불이 생각도 안 날 만큼 아주 편안하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졸음을 불러왔다.

분명 복수를 하려고 하는 행동인데 자꾸만 나른해진다.

‘안돼… 아직 1번이란 말이야…’

이불 곳곳에 레서 판다의 붉은색, 주황색, 검은색, 각색의 털들이 다닥다닥 들러붙는다. 이맘때쯤이면 털갈이 시즌이라 아주 끔찍할 정도로 털이 빠진다. 숭숭 뭉텅이로 잘도 빠지는 기특한 털을 보며 레서 판다는 개구진 웃음소리를 흘렸다. 기다란 털 뭉치 꼬리가 기분 좋은 듯 살랑이다가 탁,탁 침대를 내려친다.

‘이대론 부족한데…’

곧 벌떡 몸을 일으킨 레시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베개를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득득득득, 천이 갈고리에 긁히는 소리와 함께 펑! 터져 솜이 우르르 삐져나왔다. 하지만 레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 개의 베개를 더 터트려 놓았다. 터진 솜을 작은 두 손으로 마구 뽑아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신난 뭉뚱한 꼬리가 붕붕 활개쳤다.

침대를 엉망으로 잡아 뜯어놓은 레시는 짧뚱한 몸으로 손을 허리에 올린 채 콧방귀를 뀌었다.

‘역시 비싼 침구도 내 무시무시한 발톱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구만.’

자신의 용맹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 작은 레서 판다가 가슴을 한껏 펴고 위풍당당하게 방을 나섰다. 뭐, 위풍당당이라고 하기에는 끊어질 것 같은 허리 때문에 걷는 모양새는 어기적거렸으나, 마음만은 현재 그 누구보다 위엄 있는 맹수 그 자체였다. 수화한 상태로는 맞이한 문은 더럽게 커다랬기 때문에 상체를 쭈욱 길게 펴고 문고리를 잡아당긴 레시는 허리 쪽에서 올라오는 저릿한 충격에 헉, 숨을 들이켰다.

찌릿찌릿, 말도 못 할 고통을 느끼며 속으로 몇 번이나 ‘복수할 거야. 복수할 거야…’ 곱씹다가 어느 정도 고통이 잔잔해질 무렵 느적느적 걸어 나오던 몸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환한 햇살이 들어오는 광활한 거실의 자태에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은 것이다. 커다란 통창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거실 안쪽까지 늘어져 있었다. 태어나서 한평생을 반지하에서 살았던 레시에게는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항상 우중충하고 불을 켜놔도 어두웠던 자신의 집과는 다르게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아도 밝고 환하기만 하다. 게다가 아무리 환기를 시켜봤자 쿰쿰하고 습하던 공기가 이곳에서는 아주 쾌적하고 뽀송했다. 그중 레시의 오감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홀린 듯 슬금슬금 유리창으로 향한 레시가 통통한 젤리 모양 발바닥을 유리에 붙이고 드넓은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새카만 눈에 반짝반짝한 하늘의 색, 건물의 빛깔, 도심의 다채로운 이채가 돌았다.

화려한 카지노호텔의 주위에는 온통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했다. 어디든 이 건물보다 높지는 않은 것인지 죄다 머리 꼭지가 보인다. 태어나 가장 높은 곳에 와본 레시는 연신 터져 나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느 때보다 가까운 푸른 하늘과 몽실몽실한 구름에 이대로 손을 뻗으면 구름을 잡아볼 수 있을까라는 다소 실없는 상상도 해본다. 레서 판다의 높은 세상 구경에 앞발의 젤리는 뽀작- 유리창에 잔뜩 눌린 채였다.

‘옛날에는 구름을 타고 날아보고 싶던 시절이 있었지… 그때는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새들이랑 새 수인들이 굉장히 부러웠었는데… 걔네들은 이런 세상을 보고 있었구나… 하긴 교통법이 있어서 새 수인들도 함부로 날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부럽다.’

어느새 자신의 목적을 잊고 한참을 유리 밖 세상을 구경하던 레시는 뒤늦게 제가 왜 거실에 나왔는지 목적을 상기해냈다.

아차! 이게 아닌데! 지금 감상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라고! 눈앞의 아름다운 장관에 잠시 넋을 놓았던 자신을 엄하게 꾸짖으려 머리를 유리에 콩, 하고 박는다. 복슬복슬한 털이 짓눌렸다.

‘젠장! 정신 차려! 겨우 이깟… 이깟 아름답고 끝내주는 풍경에 넋 놓지 말란 말이야! 네가 할 일을 떠올려! 실행해!’

우격다짐식으로 높은 세상을 더 구경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레시가 번뜩 눈을 치켜뜨고는 몸을 후다닥 돌렸다. 유리창에 남은 자신의 발바닥 자국을 통과하여 비치는 햇살에 따라 레시의 뭉뚱한 그림자가 거실로 길게 늘어진다. 쫑긋, 커다란 귀가 바짝 섰다. 몸을 쭈욱 펴고 마치 미어캣처럼 거실을 둘러본 작은 생물은 곧 벽면에 붙어있는 커다란 티브이를 보며 휘둥그레 눈을 떴다. 슬림 하고 각진, 한눈에 봐도 아주 고가의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기 또한 자신은 구경도 못 해볼 정도로 아주 널따랬다. 너무 커서 벽인 줄 알았던 게 TV였다니…! 과장 조금 보태서 골목대장 시절 달동네에 딱 하나 있던 허름한 영화관의 화면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우와… 이걸로 동물의 왕국 보면 쩔겠다…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집에 있는 아날로그식 꾸진 TV를 떠올려 비교하던 레서 판다는 해이해지는 마음을 다잡고선 긴장한 채로 몸집을 키워 사람으로 돌아왔다. 나체 상태인 그가 흐음, 숨을 내쉬며 심각하게 티브이 주변을 서성였다. 먼지 하나, 흔한 손자국 하나 없이 아주 반들반들 깨끗해서 손대기 뭐한 상태다.

“존나 비싸 보이는데… 부숴도 되나…”

부수고 도망가서 꽁꽁 숨어버리면 못 찾으니까 물어줄 필요 없지 않을까? 하지만 걸리면… 안 그래도 큰 빚이 더 큰 빚이 되겠지… 이거 굉장히 심각한 선택의 기로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호떡 뒤집듯 뒤집힌다고…

자본주의는 사나이도 주춤거리게 만든다. 이미 자신의 인생이 호떡처럼 뒤집힌 걸 모르는 모자라지만 용맹한 레시는 결심한 듯 입술을 꾹 닫았다.

하지만 나! 사나이 레시!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한다!

자신의 도망 실력은 동네에서 내로라할 정도로 굉장히 뛰어나다. 어릴 적부터 다져온 실전에서 우러난 실력이랄까. 자신을 아주 잘 믿는 레시는 고개를 굳건하게 끄덕이고는 뭘로 이 요망한 고급 티브이를 부술까 거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모던한 거실은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 데다 필요 이상으로 가구가 없다. 있는 거라고는 화초 몇 그루, 깔끔한 디자인의 검은색 소파, 러그, 테이블이 전부다. 때려 부술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레시는 사나이는 역시 주먹이다!라는 꽤나 주먹구구식의 논리를 펼쳤다.

‘용맹한 레서 판다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돈이 얼마나 많은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큰 티브이를 부숴놓으면 당연히 마음이 아프겠지?! 질질 짜면서 흩어진 파편들을 주워 담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 이미 부서진 걸 품고 전자제품 병원으로 데려갈 걸 생각하면… 아, 속이 다 시원하네!

우드득, 뻐근했던 손으로 주먹을 쥐자 뼈 소리와 함께 시원한 감각이 근육 언저리를 배회했다. 걱정이 다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잘난 얼굴이 일그러질 걸 생각하면 뵈는 게 없어진다.

그래 고가의 TV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재수 없는 미친놈 얼굴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화면 위로 능글거리는 낯이 그려졌다. 낯짝이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자 주먹질할 힘이 솟아났다. 욕실에서 타월 하나를 들고 나와 대강 손에 동여매고서 허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살짝 낮춘 그가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이건 내 허리 값이다! 망할 고양이 새끼야! 하하!”

겁도 없이 검은색 화면에 맨주먹을 날리자 쩌적-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순간 엄청난 쾌감을 느낀 레시는 두어 번 더 주먹질을 해댔다. 검은 화면 위로 떠올랐던 피에타의 잔상에 균열이 가고 곧 와장창 사방으로 금이 가 버렸다. 비싼 걸 깨부수니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는 기분과 함께 아주 명쾌해져 엔도르핀이 몸속을 활개쳤다. 덕분에 타월로 감쌌다고는 해도 살짝 올라온 주먹의 고통도 몰랐다.

거실 테이블 위에 있는 리모콘으로 화면을 키고 확인사살까지 하고 나서야 2번, 무려 ‘티비 뿌수기’는 끝이 났다. 레시의 계획은 생각대로 착착 잘 진행되었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샴푸와 바디워시를 이곳저곳 마구 뿌렸다.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집을 더럽히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을 때 조금 주춤하긴 했었다. 평소 매우 깔끔한 성격의 레시가 무언가를 어지럽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질러져 있는 것만 보면 치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데, 남의 집이라고 다를쏘냐. 그래도 복수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청소 욕구는 조금씩 사그러든다.

그래! 내 집이라면 절대 이렇게 안 하지! 하하! 이제 스트레스 좀 풀리네! 으럇!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냉장고 뒤져서 맛있는 거 다 먹어버리기’를 위해 냉장고 앞에선 레시가 후후 웃으며 두 손을 비볐다. 그의 옆에는 하얀 침대 시트가 구겨져 있었다. 가방이 없으니 보따리라도 만들어서 모두 가져갈 심산이었다. 자신의 임기응변을 자화자찬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어젯밤에 그런 짓을 당해놓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다 먹어치워 버리자. 살림살이를 살벌하게 개박살 내는 거야! 감히 먹을 걸로 나에게 수치를 줬단 말이지? 어디 한번 나처럼 배고픔에 잔뜩 떨어보라고.’

심히 악당 같은 말을 속으로 뱉으며 냉장고 손잡이를 잡은 레시가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문을 확 열어젖혔다.

“밥!!!”

이 없…잖아… 예상과는 달리 텅 빈 냉장고가 반겨주자 레시는 실망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들어갔다.

‘이 인간은 밥을 안 처먹고 사나…’

광활한 집 치고 작은 냉장고에는 TV에서 광고 때리던 고급 생수와 육식 수인이 즐겨먹는 간단한 육포가 전부였다. 아무리 레서 판다가 아아아주 가아아아끔 소동물을 잡아먹기는 한다 쳐도 채식을 주로 하는 레시로서는 꺼려지는 게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초식 수인을 위한 식품이라던가 과자가 있을 거란 조금 바보 같은 예상을 했던 레시는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낫다는 파워 긍정 회로를 돌리며 룰루랄라 침대 보따리에 물병과 육포를 쓸어 담았다.

침대 보로 보따리를 싸서 어깨에 걸친 레시가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곧장 온갖 문을 열어 드레스룸을 찾았다. 자신의 옷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으니 내키지는 않아도 왕 변태 미친놈 옷을 입을 수밖에.

잘 정돈되어 깔끔한 드레스 룸을 눈으로 스윽 훑은 레시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죄다 셔츠 셔츠 셔츠… 왜 편한 옷이 없는 거지? 셔츠는 불편한데… 활동성이 떨어진다고. 도망갈 때는 통기성 좋은 활동복이 좋은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나체로 나가면 이목이 쏠릴 테니까… 일단 뭐라도 주워 입자.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려있는 하얀색 셔츠를 대충 잡아당겨 꿰어 입는다. 각이 살아있는 잘 다려진 셔츠는 피에타의 체격에 맞춤이라 레시에게는 한없이 크기만 했다. 허벅지 반쯤을 가리는 커다란 셔츠는 레시가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오히려 옷이 레시를 잡아먹는 것 같은 형태였다.

아, 존심 상해… 나도 어디 가서 한 덩치 하는데… 무식하게 등치만 큰 새끼…

답답한 건 딱 질색이라 윗 단추 두어 개는 잠그지 않고 기다랗기 짝이 없는 소매를 불만스럽게 걷어붙인 그가 휑한 허벅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밤새 혹사당했던 지난밤의 치욕이 떠올라 귓가가 화끈해진다. 두근두근, 열이 오르는 귓바퀴를 애써 무시한 레시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노팬티는 좀 그런가? 속옷이…

두 손으로 보이는 서랍을 뒤져 온갖 옷들을 집어던지던 레시가 마지막 서랍장의 문을 열고선 미간을 찌푸렸다. 속옷 칸을 발견했는데 어째 영 표정이 이상하다. 불만스러운 집게손가락이 꾸물거리며 속옷 하나를 집어 조심스레 들어 올린다. 잘 정돈되어 접혀있던 검은색 드로어즈가 사라락 펼쳐졌다.

“윽… 삼각 모양 빤스…”

이 딱 달라붙는 걸 어떻게 입어. 왜 이렇게 조이는 걸 좋아해 이 왕 변태 놈… 속옷은, 속옷은… 도저히 못 입겠다… 오늘만 노팬티 하자. 어차피 이 건물만 벗어나면 도망가는 건 금방이다.

그렇게 겁도 없이 피에타의 하얀 와이셔츠를 걸치고 보이는 바지 하나를 주워 입은 레시는 허리가 맞지 않아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부여잡았다.

“아 바지 존나 기네 진짜.”

덩치 차이 값이 이렇게 크게 날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다. 벨트 하나를 무작정 집어 허리에 맞춰 조였다. 상체를 숙여 바지 밑단을 접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끄응, 저릿한 허리를 부여잡고 옷 입기를 마친 레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직면했다.

씨발…

그러니까 이건… 멋을 내려 아빠 옷을 입은듯한 청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빠 아빠 하더니 진짜 아빠 옷을 입고 다니고 있었네 왕변태개싸이코놈… 아 왜 이렇게 커! 어쨌든, 자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여길 영영 뜨는 거야! 당분간 땡구네 집에서 신세 지면 괜찮겠지!

“젠장. 안 열려…”

절그럭절그럭, 손잡이를 위아래로 아무리 흔들어봐도 문이 열릴 기미가 없었다. 현관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은 레시의 뒷목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마지막 계획은 분명 ‘도망’ 이었다. 이게 계획의 마지막 정점인데 도망을 가지 못한다면…? 엉망이 된 침실과 욕실은? 와장창창 깨진 값비싼 티브이는? 냉장고에 있던 고급 생수를 훔친 자신은?!!!

머리와 함께 시야가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좆 됐다… 좆 됐다… 좆 됐다 좆 됐다 좆 됐다…’ 커다란 낭패감이 뒤통수를 얼얼하게 후리고 사라진다. 이윽고 레시는 문을 쾅쾅 두드렸다.

“미친 새끼 문에다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왜 안 열리냐고 이게!! 으아악! 열어줘!!! 아무도 없어요?!!!!”

문이 안 열린다. 씨발. 아주 가둬놓기로 작정한 건지 아무리 몸통 박치기를 해도 묵직한 문은 움찔하는 기색도 없었다. 또한 로열층에 문은 단 하나, 출입하는 사람이 없는 복도에는 레시의 희미한 외침만이 홀로 울려 퍼졌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집 문이 안쪽에서 안 열린다는 것이 있을 수나 있는 상황이냐고! 자신이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건지! 분명 혼자 쭐래쭐래 나가면서 문에다 뭔 짓을 한 게 틀림없다. 치밀하고 치졸한 새끼… 사람 자는 사이에 감금을 해?!

‘하… 핸드폰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땡구한테 전화해서 조언을 얻었을 텐데… 아니지. 그 녀석 내가 없어진 건 알고 있으려나? 아무것도 모르고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고 있겠지… 역시 개 팔자가 상팔자야…’

하긴, 그 녀석이 알 리가 없다. 그랬으면 벌써 신고했을걸.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믹스견 수인인 땡구의 천진하고 멍청한 웃음을 떠올리던 레시가 휴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땡구는 레시의 소꿉친구다. 어릴 적 머리를 크게 다쳐 안 그래도 바보 같은 게 더 바보가 된 안타까운 놈이었다.

그래도 애는 착해…

헤헤. 자신만 보면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는 제 친우의 얼굴을 떠올리며 핸드폰의 행방 또한 찾는다. 아마 핸드폰은 제 집의 차가운 바닥에서 쓸쓸하게 배터리나 먹고 있을 것이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레시는 깡통 같은 머리를 쥐어짜냈다. 이 막막한 상황을 타도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 모색하는 것이다.

‘일단 계획을 변경하자.’

어떻게 하지?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방법…

아, 좋은 생각이…! 왕 변태 싸이코 녀석이 들어올 때까지 은신하다가 깜짝 놀래켜 정신을 흩트려 놓는 거야. 그럼 나는 그 틈을 타 열린 문으로 달려 나간다. 아쉽지만 짐덩이는 도망칠 때 정말 짐만 될 뿐이니까, 물이랑 육포는 두고 가자.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중요하잖아? 생각해 보니 그럼 난 옷도 입을 필요가 없어. 수화하면 훨씬 작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잡기 힘들지도 몰라. 차라리 옷을 포기하고 레서 판다 형태로 이 집을 탈출한다. 음… 완벽해.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깡통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생각이라고는 역시 ‘몸빵’ 하나뿐이다.

아주 까무러칠 정도로 놀래켜주마… 흐흐. 음침하게 웃은 레시는 피에타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전에… 뭔가 좀 부족해…’

아쉬움을 느낀 레시는 곧장 수화해 거실의 카펫에 발라당 넘어져 온몸을 비비적거렸다.

‘털 공격 더 받아라!’

제 털의 모직이 카펫 여기저기에 박히면 얼마나 청소하기 힘든 줄 알기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집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현관문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에 레시의 귀가 쫑긋거렸다. 지루함에 하품을 하며 배를 벅벅 긁던 행동을 멈추고 사사삭 민첩하게 자세를 고쳐 잡는다. 기다란 현관의 꺾이는 부근에서 한참을 피에타를 기다리던 레시는 뻐근한 몸을 억누르며 근육을 꿈틀거렸다.

저벅저벅, 곧 들리는 발소리와 함께 낮은 저음이 조용한 집안에 섞여들었다.

“아들. 아빠 왔는데 반겨주지도 않는 거니.”

능글거리고 징그러운 여상한 목소리였다. 레시를 찾는 듯 한 톤 더 커진 목소리로 ‘아들-.’ 부르면 모서리각에 숨어 있던 레시는 아주 호승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 무거운 덕분에 천천히 닫히는 문. 절호의 기회였다.

뒤졌어 이 망할 변태 색골 새끼. 아주 놀라서 나자빠져보라지.

레시가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선 이제 막 모서리 쪽에 가까워진 인영에게로 쿠왕! 맹렬하게 튀어나와 거침없이 기습 위협을 가했다.

쿠와아아앙!!!

짧뚱한 몸으로 뒤뚱뒤뚱 뛰어오는 레서 판다를 목도한 피에타는 능청맞게 미소 지으며 가죽 장갑을 벗어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VIP실 일을 처리하느라 피곤했던 기색이 단박에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을 열자마자 복도 모서리 끝에서 빼꼼, 보이는 꼬리에 그때부터 입꼬리가 근질거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헐레벌떡 꼬리가 안쪽으로 숨고, 긴장했는지 살짝 거칠어진 숨소리가 귀에 담겼다.

단지 그는 레서 판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싫어 숨어있는 걸 모르는 척 시침을 뗀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반겨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레서 판다의 모습으로 뒤뚱뒤뚱 뛰어올 줄은 몰랐다.

“아아, 아들 거기 있었구나? 세상에나…”

인자한 미소를 걸친 그는 허리를 숙이고 두 팔을 벌려 레서 판다가 제품으로 쏟아지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두 팔을 들고 위협적인 자세로 피에타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던 레시의 동그란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뭔가 기시감이…

“어어…?”

이게, 이게 아닌데! 분명 깜짝 놀래키려는 아주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피에타는 매우 태연하게 달려드는 레시를 안아 들고 털이 난 뺨에 제 뺨을 부빗거렸다. 복슬복슬한 털이 포근하고 귀여워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사람의 형체일 때보다 훨씬 작은 몸이 낑낑, 품 안에서 버둥거렸다.

“아빠는 매우 기뻐. 아빠를 위해 까꿍을 준비한 거지? 레서 판다들은 반갑거나 친밀한 상대에게 이렇게 까꿍 한다는데. 우리 아들 아빠가 반가웠구나.”

“악 씨발! 치어! 너한테 하는 건 친밀감의 표시가 아니라 위협이야! 위협! 당신 겁먹으라고 하는 행동이라고!”

“흐응, 매정하네… 이 아빠는 마음이 매우 아파요.”

“지랄하지 말고 나 내려나라! 죽기 시르면!”

“어쩜 이렇게 지랄 맞고 귀여울 수가 있을까…”

은회색 빛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짙은 시가 향이 나는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레서 판다의 거부에도 상관없이 가까워진다. 잘 관리된 입술이 다가오자 앞발을 뻗어 말캉한 젤리로 탁, 막은 레시는 실패해버린 계획에 대차게 씩씩거렸다. 통통한 앞발 젤리로 그의 머리를 퉁탕퉁탕 내려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개새끼야! 좆까…!”

그 순간 피에타의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지며 위험한 희열로 번뜩였다. 순간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레시는 삽시간에 온몸을 휘두르는 강렬한 페로몬을 느끼며 다급히 말을 바꿨다.

“지마!!”

“하하….”

“좆까지마! 좆까지마! 너 까기만 해봐! 좆 여물어! 좆 까지마! 좆 닫아! 좆 닫아!”

얼마나 다급한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레시를 지켜보던 피에타가 정말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귀여운 생명체를 더 놀리고 싶은 마음에 몸을 더욱 밀착해 비비적거렸다. 복슬복슬한 털이 피에타의 뺨에 마구 비벼졌다. 교태 섞인 목소리가 기분 좋은 듯 음율을 섞어낸다.

“으응 싫어. 아빠 좆 깔래… 나 좆까는 거 구경해? 응?”

“안 해! 안 한다고! 당신 좆까는걸 왜 구경해 내가!”

“아쉽네… 스트립쇼도 해줄 수 있는데…”

하 이 미친 새끼. 이 새끼는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돌아있었을까?

“사람들이 왜 애완동물을 키우나, 궁금했었는데. 이런 맛인가 보구나. 나쁘지 않네…”

“지랄! 난 동물이 아니라 수인이거든! 인간이라고! 애완동물 취급하지 마!”

“자고 있는 거 구경하러 왔는데… 깬 상태로 아빠를 반겨주니 좋다.”

“이건 반긴 게 아니라 위협한 거야! 너 무서우라고!”

“으응 무서워.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아파… 어쩌지…?”

피에타가 두 눈썹을 축 늘어트리고 목을 조이며 말하자 씩씩 거리던 레시가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자신의 공격성이 먹힌 것인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저,정말? 무서워?! 나 무서워?! 쫄았어?!”

묻는 것에 표정을 유지한 채 끄덕여 주면 레서 판다는 더없이 기분이 치솟았다.

내 시간차 공격…

역시 나는 맹수였던 거야!

“얼마나 무서웠어? 땀이 줄줄 흘렀어? 심장이 아팠어? 응?!”

레시가 신이 난 듯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눈썹을 추욱 늘어트린 채 레시를 바라보던 그가 더욱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으응. 심장이 아팠어… 지금도 무서워서 심장이 아픈데 가슴 마사지해 줄래? 그럼 안 아플 것 같아… 아들 때문에 아픈 거니까 아들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

“그래! 까짓 거 뭐! 나 때문에 아프다는데 큼, 해줘야지.”

레서 판다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내가 이 미친놈을 쫄게 했어! 심장이 아플 정도로!’ 속으로 외치며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진한 레서 판다를 가벼이 속여먹은 피에타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시지를 않았다.

“근데 말이야. 지금 상태 말고 인간일 때 모습으로 만져주면 안 될까? 아빠는 우리 아들 인간일 때 손이 아픈 가슴을 만져줄 때 좋을 것 같아… 지금은 발톱이 길잖아, 아빠 가슴에 상처 내면 어떡하니…? 그냥 인간일 때 손으로 부드럽게 만져주고 입으로 빨아주면 조금 나을 것 같은데…”

……이거 듣다 보니 상당히 변태 같은 발언인데?

“자지도 좀 아픈 것 같아. 보지로 빨아줄래?”

“이 미친놈이!! 악!!!”

레시는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걸 알자마자 열이 뻗쳐 뭉툭한 발톱으로 와다다다 얼굴을 긁었다.

“너, 너 때문에 뒤,뒤에가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씨발 존나 쓰리다고!”

“그래? 그럼 아빠가 아빠가 우리 아들 찢어진 보지에 약 발라줄게. 아들은 아빠 가슴 마사지해 주고, 아빠는 아들 밑에 약 발라주고… 우리 엄청 사이좋다, 그치?”

“사이가 좋기는 개뿔… 아,안 찢어졌어! 내가 얼마나 튼튼한데, 멀쩡하다고!”

“쓰리다며.”

이거 진짜 어디서 굴러 먹다 온 왕 변태 싸이코 미친놈의 새끼지?

캭! 성질을 부린 레시가 발톱을 구부려 크게 휘둘렀다. 피에타의 뺨을 스친 발톱 끝이 기다란 상처 세 개를 그렸다.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 뜨거운 느낌을 즐기던 피에타가 달래는 것처럼 몸을 토닥였다.

“응 그래그래. 아빠를 할퀴고 싶었어?”

“이그 놔아! 이그나!”

“우리 아들은 수화했을 때 당황하면 발음이 뭉개지는구나. 구강구조가 동물이 되어서 말하기 어렵지?”

“캬아악!”

“너는 판다 주제에 왜 자꾸 고양이 소리를 내니. 교육을 덜 받아서 그런 거야? 아, 아빠 아들이라서 그런가…”

“캭!!!”

“아빠를 할퀴는 건 좋은데 침대에서 해줄래? 그럼 아빠는 무척이나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샐쭉 웃는 꼴이 침대에 깔려 등을 긁어대는 저질스러운 상상을 한 게 분명하다.

“생각보다 털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네. 머리카락이 까슬해서 털도 까슬할 줄 알았는데.”

“노라고! 나!”

“자, 이제부터 침대로 갈 건데 빨리 인화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럼 이 상태로 박을 거니까“

으아아악!! 개 변태 새끼!!!! 씨바아알!!!!

피에타의 말은 도저히 무시하기 어려운 협박과도 같았다. 이 상태로 박는다고? 진심으로 이 새끼는 돌아버린 게 분명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눈을 감은 레시의 몸이 펑, 소리가 나며 인간의 형태로 돌아왔다. 떨어질까, 재빠르게 팔을 뻗어 목에 두른 뒤 고목나무 매미처럼 품에 맨몸으로 안겨있자 슬금슬금 커다란 손바닥이 맨살인 엉덩이 위로 움직였다.

“만지,만지지 마!”

“그러게 옷은 왜 벗고 있어. 꼴리잖아….”

“아니 수화했을 때는 당연히 옷을 안 입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피에타는 레시가 자신의 옷을 입었다는 발칙한 정황을 발견했다. 소파 위에 널브러진 하얀 와이셔츠와 바지, 그리고 카펫 위에 아무렇게나 구르는 벨트까지. 이 조그마한 게 꽤나 귀여운 짓을 저질러 놓았다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상태다. 장렬하게 깨진 TV, 소파 등받이의 뒤에는 하얀색 침구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 사이로 생수통 꼭지가 빼꼼 보였다. 대충 상황 정리를 해보면 이곳에서 탈출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아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감히 도망치려고 했다, 라… 이걸 어떻게 잡아먹을까.’

쫀득하고 탱탱한 엉덩이 살을 쥐어 잡아 주물 거리며 피에타는 고심에 잠겼다.

‘다시는 도망갈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 놓으면 되려나.’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살벌한 고심이 몰아치는지도 모른 채 레시는 자신의 엉덩이를 끈덕지게 주무르는 손을 떼려 안간힘을 쓰기 바빴다.

“아가, 집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놨네…. 심심했니?”

“아, 뭐, 뭐야 흐윽! 아파!”

뱀처럼 스르륵 움직인 중지가 퉁퉁 부어올라 꼭 닫힌 입구를 꾸우욱 눌렀다. 굵다란 손가락 끝이 다물린 곳을 억지로 비집고 열자 레시가 피에타의 목을 끌어안으며 괴롭게 신음했다.

“으아악, 아!”

“생각보다 더 부었네. 다행히 찢어지지는 않았다.”

“아파아! 빼! 빼라고… 흐윽!”

오늘은 더 하기 무리인가. 품에 안긴 레시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감흥 없이 안쪽을 후비던 그가 중지를 빼내고 엉덩이를 단단히 받쳐 들었다. 삽입이 불가하다 해도 먹을 방법은 많았다. 레시의 털로 가득한 러그 위로 몸을 조심히 내려주자 잠깐의 손가락 삽입만으로도 힘이 풀린 몸이 풀썩 내려앉았다.

“아빠 옷도 함부로 꺼내 입고…”

피에타가 중얼거리면서 널브러져 있던 벨트를 주워들었다. 탄탄한 가죽으로 제작된 검은색 벨트는 허리에 둘러져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손에 쥐여져 있으면 꽤나 위협적인 물건이다. 특히나 그게 피에타라면 더더욱. 주저앉아 벨트를 집어 든 커다란 손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본 레시는 겁먹은 듯 보였다. 손가락으로 잠시 헤집힌 구멍이 쓰라리고 후끈거린다.

“엎드려.”

“…뭐?”

“엎드리라고.”

“왜,왜…!”

“아빠가 약 발라준다고 했잖아.”

약 발라 주는 게 아니라 그 벨트로 내 엉덩이를 후릴 것 같은데…

“아프게 안 할게.”

“정,말…?”

“으응 정말.”

미심쩍은 듯 한쪽 눈썹을 구겼으나 일전에 굴종한 몸은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체 상태로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자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은밀한 곳을 훤히 드러내는 수치는 평생 적응 따위 되지 않을 성싶었다.

‘아주 병 주고 약주고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씨발….’

몇 시간 전보다는 고분고분한 레시가 마음에 드는지 만지작거리던 벨트를 소파 위에 올려놓은 피에타는 천천히 그의 뒤에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였다. 덕분에 탱글한 엉덩이가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아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앞쪽을 보고 있던 레시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살짝 벌려진 허벅 다리 사이를 통해 피에타를 바라보았다. 무릎을 꿇은 다리와 단정한 재킷 차림의 상체가 보이는데, 정작 얼굴은 보이지 않아 다급해졌다.

“진짜 약 발라주는 거 맞지? 어? 그치?! 대답해!”

“으응 맞아 맞아. 아빠 침이 아들 보지한테는 약이지 않겠어.”

“무,뭐? 읏!”

순식간에 봉긋한 엉덩이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피에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레시가 어깨를 움츠렸다. 커다란 두 손이 엉덩이를 꽉 쥐고 양옆으로 잡아 벌렸다.

“히익…! 뭐, 뭐 하는…”

“엉덩이를 벌려야 약을 발라주지 않겠니.”

“그렇,긴 하지만… 너무 가까우니까 좀 떨어져…”

지척에 있는 얼굴 덕분에 엉덩이 살결 위로 뜨거운 숨결이 여과 없이 닿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빡빡하고 멀쩡했던 구멍이 불그스름하게 부어올라 뻐끔거린다.

“진짜 약 발라주려는 맞지…? 손가락,이나 좆… 넣는 거 아니지?”

“걱정 마렴.”

아빠는 손가락이랑 좆 말고 혀를 넣을 거거든. 뒷말은 일부러 삼킨 피에타가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내밀었다. 움칠거리는 통통한 구멍에 입술을 묻자 얼굴이 엉덩이 골에 깊이 파묻히는 꼴이 되었다. 분명 약을 발라줄 거라던 인간이 갑작스레 엉덩이에 얼굴을 들이대니 레시는 크게 숨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경악한 레시가 허리를 꺾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 피에타를 바라보았다.

“으아, 뭐! 뭐해!”

“가만히 있어.”

“야,약 발라준다고 분명…! 흐아! 하, 하지 마! 더러워!”

날름, 끝이 뾰족한 뭉툭하고 습윤한 살덩이가 구멍을 쿡 찔렀다. 뜨거운 살갗과 뜨거운 혀 뭉텅이가 만난다. 흐이익! 숨을 집어먹는 소리와 함께 레시의 허리가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기대했던 반응이라 조금 더 골려주려는 마음으로 혓바닥을 넓게 펼쳐져 구멍을 사아악 핥아올린다. 까칠한 가시가 민감한 구멍의 부어오른 점막과 고간의 살을 긁었다.

“흐아악, 거기를! 왜, 왜 핥…!”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한쪽 손을 뒤로 뻗은 레시가 들러붙어 있는 머리통을 밀어냈다.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 있던 손이 레시의 팔목을 잡아채고 강하게 쥐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압박적인 행위였다. 슥,슥 까슬한 혀가 여린 피부 살을 핥는 소리가 레시의 신음에 섞여들었다. 뜨거운 게 스쳐 지나간 자리는 알게 모르게 묘한 간지러움이 남았다.

“흐으으…”

꽉 쥐었던 주먹이 풀리자 그제야 피에타도 팔목을 놔주었다. 기우뚱, 한쪽으로 넘어가려는 상체 때문에 레시는 성급히 풀린 팔을 바닥으로 뻗어 몸을 지탱했다. 그 장면을 느긋하게 응시하던 피에타가 다시금 혀를 뾰족하게 세워 구멍으로의 침입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뻐끔거리는 틈을 살피다 살짝, 벌어졌을 때 혀를 쿡- 찔러 넣었다.

“흐악! 아아!!”

가시가 민감하게 부어오른 구멍 입구를 자극하며 안쪽으로 침범했다. 쮸웁, 자연스레 수축된 구멍이 피에타의 혀를 더 안쪽으로 잡아끌었다.

“하으으으! 으! 아아!”

혀를 조이는 구멍의 감촉이 좋아 느릿한 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살결이 엉덩이에 닿으면 파들파들 근육이 떨리며 안쪽이 조여들었다. 엉덩이가 얼른 더 큰 자극을 달라고 유혹하는 행태에 피에타는 나른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 혀끝을 뾰족히 세워 내벽 윗면을 문질렀다.

“크,읏! 아! 흐…!”

타액으로 인해 축축이 젖은 접합부에서 찔걱찔걱 야한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아응, 으읏! 아!”

어느새 축 늘어졌던 레시의 성기가 반쯤 발기되어 있었다. 즐거운 눈빛으로 눈을 번뜩인 그가 한쪽 팔을 뻗어 붓기가 가시지 않은 레시의 오른쪽 유두를 꼬집었다.

“하으윽!!!”

레시가 허리를 굽히고선 엉덩이를 바짝 조였다. 안쪽에 파묻힌 혀가 마구잡이로 빨아먹힌다.

“가슴, 아,파! 아파… 만지지… 흐,윽… 아!”

하지만 가슴 만지면 우리 아들 구멍이 아주 환장을 하고 조여드는걸. 말을 전하지 못해 안타까운 피에타가 유두를 콱 꼬집었다. 또다시 반사적으로 아랫구멍이 강하게 수축된다. 동시에 혀로 민감한 내벽 위쪽을 살살살살 긁었다. 아쉽게도 부풀어 오른 전립선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잔뜩 달아오른 몸이 주체하지 못하고 곳곳을 발갛게 물들였다.

‘역시 아픈 걸 좋아하네…’

성기도 조금 더 부풀었다. 한동안 내벽을 음미하던 피에타가 가슴에서 손을 치우고 혀를 즈즈즉, 빼내었다. 천천히 뒤로 빠지면서 긁어대는 가시에 내벽이 움칠거렸다.

“하윽, 으으… 느리게 빼지 마아…”

귀엽기는. 뺄 때도 느끼는 편이군.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지은 피에타가 벌름거리는 구멍 밑으로 고개를 살짝 내려 뒷구멍과 음낭 사이에 있는 가느다란 줄 부분을 집요하게 코로 찍어 눌렀다. 보드라운 피부가 딱딱한 콧대에 마구 짓눌렸다.

“흐악!!!”

“여기, 기분 좋지…? 말캉해… 좋은 냄새…”

“변,변태 새끼야… 거길,거길 왜…힉, 으악…”

콧대에 짓눌렸던 여린 살이 이번엔 뜨겁고 질척한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쯉- 츄웁, 질척이는 소리에 민망하고 또 수치스러워서 뒤져버릴 것만 같았다. 남들에게 보여준 적 없는 곳을, 심지어 자신조차도 씻을 때 말고 만져본 적 없는 아주 은밀한 곳을 엊그제까지만 해도 일면식도 없던 사람에게 빨리고 있었다. 가느다란 선을 빨고, 크게 빨아올리면 음낭이 자연스레 피에타의 밑 입술에 들러붙었다. 말캉하고 끈적한 타액으로 젖은 입술에 눌린 음낭은 젠장맞게도 굉장히 흥분되었다.

츕,츕 음낭 밑을 변태처럼 빨아대던 피에타가 슬몃 고개를 뒤로 빼 그곳의 상태를 확인했다. 울긋불긋 울혈 자국이 남았다. 피에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희열이 들어찼다.

“여기 아빠 거라고 표시해놨어. 이제 다리 벌리면 우리 아들 누구 거인지 다른 사람들 다 알겠다. 그지?”

히죽, 웃는 모습이 여간 변태가 아니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급하게 은밀한 곳에다 입술을 파묻었다. 구멍 빨리는 것도 미치겠는데 여린 살을 집요하게, 도착적으로 빨아대고 있었다. 레시의 음낭 밑이 온통 피에타의 흔적으로 물들어갔다. 개처럼 아래를 빠는 혀와 입술의 감촉에 정신이 점차 하얗게 휘발되었다.

한참을 쪽쪽 빨고 깨물던 이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이제는 넓게 펼쳐진 혓바닥이 살 위로 부드럽게 뭉그러진다. 혀 자체의 감촉은 그랬으나 세워진 가시 돌기는 가차 없이 표면을 긁어댔다. 레시의 성기가 빳빳하게 서서 아랫배를 톡, 건드렸다. 발개진 얼굴 위로 생리적인 눈물들이 흘러내린다.

“으아, 아! 하으! 이상, 이상해! 헉…!”

“으응, 맛있어 맛있어 아들…”

“아흑, 하으응, 으…! 아, 따,따가워…”

쮸우웁, 츕, 찌걱찌걱, 말로 형언하기에도 어려운 민망한 소리가 널따란 거실을 가득 채웠다. 맛있다며 중얼거리는 습윤한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고양되어 있었다.

이제는 선액을 카펫 위로 뚝, 뚝 흘리는 성기를 부드럽게 그러쥐고 앞뒤로 살살 흔들어 쾌락을 고조시켰다. 자신의 밑에서, 자신으로 인해 쾌락에 녹아내리는 몸뚱어리가 사랑스러워서 실없는 웃음이 픽,픽 터진다. 음낭 밑을 한참 괴롭히던 그의 혀가 살갗을 짓누르며 위로 주욱 올라왔다. 요철이 화끈하게 데워진 피부를 훑고 자극했다.

그는 전보다 풀어진 구멍의 근육 사이로 혀를 집어넣고 추삽질을 하듯 고개를 움직였다. 동시에 성기를 쥔 손도 피스톤 질을 시작했다. 성기와 뒷구멍에서 번진 쾌감이 점차 크기를 부풀려갔다. 전립선에 혀가 아슬아슬하게 닿아 오히려 더 흥분이 고조되었다. 레시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고, 아,아, 탁한 신음만 터트린다.

“아,아윽 아…! 아으윽!!”

퓨붓, 퓻- 성기 끝에서 하얀 정액이 쏟아졌다. 절정을 맞이한 구멍이 주책맞게 꾸득 조여왔다. 그럴수록 내벽의 점막으로 가시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 눈이 뒤집어졌다.

“끄으…”

우리 아가, 아빠 혀도 맛있게 잘 먹네. 코끝에 살이 깊게 팰 정도로 깊숙이 혀를 묻은 피에타가 혀를 위아래로 움직여 내벽을 찌른다. 허리가 휜 채로 발발 떨던 레시가 곧 상체를 무너트렸다. 입가로 끈적한 타액이 흘러나와 러그를 적셨다. 옆으로 돌아간 채로 바닥에 엎어진 얼굴이 엉망이어서 꽤나 볼만한 광경이었다.

곧 뒤집혔던 눈이 차츰 제자리를 잡았다. 꺼떡거리는 성기에서 좆물이 모두 흘러나올 때까지 쥐어짠 피에타가 뒤늦게 혀를 빼내었다. 마지막까지 안쪽을 긁어대며 주우욱 빠지는 혀에 레시는 몸을 무너트려 엎드린 채 결국 커다란 울음을 터트렸다. 파들파들 흥분감에 떠는 몸을 느릿하게 옹송그리며 다리 사이로 팔을 넣어 미친 듯이 옴죽거리는 뒷구멍을 손바닥으로 막는다.

“하…”

“흐어어어엉! 개새,끼! 왜, 흐윽…”

“아들 지금 모습 절경이다, 울 만큼 기분이 좋았어? 보지가 아직도 발씬거려?”

“씨바알, 보,보, 그거 아니라고오…!”

헐떡이는 숨소리와 애처롭게 떨리는 몸, 음심을 자극하는 몸의 자세.

아, 이대로 눌러서 꼼짝도 못 하게 처박아 버릴까…

고민하는 사이, 잔뜩 엉엉 거리며 우는 레시의 울음소리 사이로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권영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키신 음식들 가져왔습니다.”

“세팅해.”

나른하게 읊조린 그가 이불 보따리를 아무렇게나 잡아당겼다. 우수수 쏟아지는 육포와 생수병을 바라보며 짧게 웃다 나신의 레시에게 둘러 안아들었다. 곧 방 안으로 유유자적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권영재가 뒤에 있던 직원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네 명의 직원이 준비해 온 음식들을 집 안으로 부지런히 날라 식탁 위로 세팅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식사 준비를 마친 직원들이 나가고 권영재까지 나간 뒤 육중한 문이 닫혔다. 우는 레시를 품에 끌어안고 흥미롭게 구경하던 피에타가 그제야 방에서 나와 식탁으로 그를 옮긴다.

“놔! 안 먹어! 니가 주는 것 따위 안 먹어! 매번, 끄흡! 나를 속이는데! 내가 이거,이거를 어떠케 먹어! 흐으윽… 독 탔을지, 누,가 아냐고오! 흐어엉…”

“내가 언제 그렇게 속였다고 엉엉 울고 있니.”

“약 발라,발라준다 해놓고 흐윽, 핥고, 빠,빨았잖아!”

“아빠 침이 약이라니까…”

“그게 무슨 약이야!”

빼액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귀여워 피에타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레시의 객기는 끝이 났다. 꼬르륵, 힘찬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잠시간의 정적 뒤에는 레시의 손에 피에타가 쥐여준 시원 달달한 사과 한 조각이 들렸다.

사각사각-.

사과 씹히는 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중간중간 훌쩍이는 소리는 덤이었다. 이불을 두르고 두 손으로 사과를 쥐고 먹는 모습은 레서 판다라기보다는 아기 다람쥐에 가까워 보였다.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 피에타는 생각 없이 레시의 뺨을 잡아 늘렸다. 축 늘어져 있던 몸이 파드득 떨렸다. 경계심 어린 눈은 날카롭게 번진다.

“머하느 거야!”

날카로움의 의미를 아는 피에타가 턱을 괴고 레시를 향해 나긋하게 묻는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끄덕.

“알겠어 알겠어.”

그가 피식, 웃으며 만질 거리던 뺨을 놔주었다. 물론 놔주면서 검지로 톡 쳤다가 깔끔하게 손을 거둔다. 손이 멀어지고 나서야 레시는 사각사각, 꿀 사과를 빠르게 먹어치웠다. 눈앞의 진수성찬에 훌쩍임은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사과를 다 먹은 뒤에는 대나무 찜을 먹고, 그다음에는 망고로 만들어진 디저트도 먹고 싶었다. 마지막 사과 한 조각을 씹어 삼킨 레시의 눈동자가 힐끔 피에타에게 향했다.

“더 먹고 싶어?”

“…이거 다 내놔.”

“아빠한테 말버릇이 좋지 않은데…”

실상 이미 대접한 음식을 먹는 것에 허락 같은 건 받지 않아도 된다. 남의 집 물건을 함부로 부수고 냉장고를 턴 좀도둑 주제에 앞에 있는 음식을 먹어도 되냐는 눈빛을 한다. 정말 보면 볼수록 신기한 생물체였다. 으레 놀려먹기 위해 주기 힘들다는 듯이 나오자 레시의 사나운 기운이 한층 누그러졌다.

“…줘.”

“아니지.”

“주세요…”

“착하다. 우리 아들.”

근사한 식사였다. 어리고 굶주린 판다를 홀리기에는 너무도 알맞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아주 시의적절하지 않은가. 이미 물고 빨아 지칠 대로 지친 레서 판다는 음식 앞에서 무너져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물론 레시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깔끔하게 치워진 환경을 끄으응! 영차영차! 열심히 저지레 해놓았고, 지저분해지는 것에 자신의 청소 욕구가 뿜어질 때면 ‘뭔 상관이야! 내 집도 아니고!’라는 말로 열심히 잠재웠다.

그 다음날도 전과 같이 깨끗해진 집에 레시는 포기하지 않고 복수혈전을 계속했다. 문이 열릴까 몸통 박치기도 매일 열 번씩은 꼭 했다. 또 피에타가 씻는 동안 욕실 불 끄기, 수화하여 피에타의 비싼 구두 물어뜯어 놓기, 잘 때 대머리 되라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뽑기 등등 아주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피에타는 외려 그런 레시의 복수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매일 집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사고를 하나씩 쳐놓으니 이제는 또 어떤 앙탈을 부려놨을까, 기대까지 되는 것이다. 어질러진 집을 확인한 피에타가 활짝 웃으면서 경계하고 있는 레시에게로 다가갔다.

“아빠를 위해 이렇게 만든 거니?”

“악 ! 뭐 하는 짓이야!”

잡히는 순간 레시는 볼을 쭈웁 빨아먹혔다. 입속으로 연하고 보드라운 살결이 부풀어 느껴질 정도로 아주 뺨아리를 죽죽 빨아놓는다.

“아악!!”

치덕치덕 침이 묻은 뺨을 신경질적으로 피에타의 어깨에 비벼 닦는 모습마저도 귀여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꽉 안고 목덜미와 어깨를 자근자근 씹었다. 며칠 새에 레시의 몸에는 피에타의 흔적으로 가득해졌다. 그 이후로 다행히 떡치는 일은 없었지만 레시는 저 미친개변태왕싸이코놈이 언제 돌변해 자신의 뒷구멍에 흉물을 집어넣을지 몰라 항시 긴장했다. 그리고 레시는 자신이 자는 사이 직원이 들어와 집을 치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로는 집을 어지르는 복수 따위는 접었다. 이건 피에타에게 복수를 하는 게 아니라 애꿎은 직원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직원이 오는 시간을 파악한 뒤 탈출을 감행했지만, 놀랍게도 문밖에는 보초를 서는 가드 두 명이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때문에 레시의 탈출 계획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결국 탈출도 지금 상태로는 힘들고, 골탕 먹이는 것도 소재가 떨어져 간다.

그런 레시가 며칠을 고민하다 떠올려낸 묘안이 있었다. 그리고 레시는 매일 청소를 하러 오는 직원에게 은밀한 부탁 하나를 했다. 부탁한 물건을 들고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레시가 호기롭게 웃었다.

이건 희대의 복수다. 지금 나는 미친 변태 색골의 집에 갇혀 있으니 갇힌 기분을 느껴보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시 방식이었다.

그건 바로…!

“하하하! 어떠냐!”

“레시… 아빠를 위해 쉴 수 있는 보금 자리를 마련해 준 거니? 아빠는 매우 감동이야. 어디서 이런 폐지를 구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피에타는 속으로 레시의 부탁을 들어준 직원을 떠올리며,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했다.

레시의 최대의 복수는 피에타가 들어갈만한 커다란 박스를 구해와서 방치하기였다. 본디 고양잇과 수인이라면 고양이의 습성이 강할 테다. 그렇다면 좁은 공간에 낑겨 있는 걸 좋아할 테지. 박스에 넣는 순간 뚜껑을 덮어버린다! 완벽한 계획을 상기하며 팔짱을 끼고 킬킬 웃는 레시를 응시하던 피에타가 느릿하게 박스 안으로 몸을 옮겼다.

역시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야!

커다란 몸이 박스 안에 구겨지자, 오랜만에 머리를 잘 굴렸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한 레시가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손이 분주하게 박스 뚜껑을 덮으려 피에타의 머리 위로 꾸욱꾸욱 눌러댔다.

“갇혀 있는 맛이 어떠냐! 괴롭지! 답답하지! 어!”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불쑥 나온 팔이 레시의 팔목을 잡고 박스 안으로 잡아당긴다.

“으악! 이거 놔!”

“이리 와. 아빠랑 같이 안에서 쉬자.”

“싫어! 놔!”

답답한 기분을 느껴보라고 했더니 그는 오히려 그릉거리며 레시를 품에 안고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 따뜻한 온기가 품에 꽉 차는게 좋아 피에타가 풀어진 미소를 지었다. 전에 없던 편안함을 느낀 몸이 본능적으로 그르릉 그르릉 울렸다.

결국 레시는 박스 안에서 장장 여섯시간동안 피에타의 품에 안겨 골골송을 들어야 하는 불상사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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