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화 (2/285)

2화

목청껏 크게 외쳤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지난날의 고통과 아픔이 서려있었다. 우주에게 살해당한 자신의 친구와 그를 죽이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했던 나날들.

마츠다이라는 잠시 생각을 하는듯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가 엄숙하게 말했다.

“(자네의 진가가 후대에 길이 전해지도록 내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다. 천년만년 세계를 주도할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소좌가 꼭 해줬으면 하는 임무가 있다. 아니, 소좌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자가 없다.)”

“(하! 무엇이든 맡겨주십시오!)”

“(오늘은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조약이 체결되는 날. 오늘을 기점으로 대한제국은 영영 대일본제국의 속국이 된다.)”

“(하!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마츠다이라 또한 팔을 번쩍 들며 강한 눈빛으로 만세를 외쳤다.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

그리고 말했다.

“(묻겠다 쿠로가네 소좌! 대한제국을 발판으로 삼아 이제 막 전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이때, 대일본제국의 영광이 신진루이의 방해로 고작 100년만에 끝나서야 되겠는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대일본제국의 번영은 천년만년 지속될 것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이 다코오 마츠다이라가 대일본제국의 신민과 천황폐하를 대신해 자네에게 막중한 사명을 내리도록 하겠다! 다시는 신진루이가 대일본제국의 미래를 막지못하도록 쿠로가네 소좌가 끝까지 쫓아가 처단하라!)”

“(하!)”

에...?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료코는 순간 의아했다.

쫓아가 처단하라니 그 뜻은 대체...?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답은 바로 나왔다.

마츠다이라가 강하게 외쳤다.

“(쿠로가네 소좌!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서 100년을 넘어 천년만년 신진루이와 함께 동굴 속에 영원히 봉인되어주길 바란다! 100년 후 봉인이 해제될 사이쇼오 신진루이(첫번째 신인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오직 다이니 신진루이(두번째 신인류)인 쿠로가네 료코 자네 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3일 후, 료코는 봉인에 갖혀 우주와 함께 나란히 동굴 속에 봉인되었다.

105년이란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다.

2010년 6월 20일 세종특별자치시 개발 지역.

안전모에 공사장 작업복을 입은 반장이 새로 들어온 인부들을 앞에 줄지어 세워놓고 교육 중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안전이구예~ 여러분들은 미분양 신경쓰지 마시고 걍 열심히 해주시만 하면 되입니더. 아셨지예?”

“예!”

한결같이 목소리가 우렁차다.

반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있을때 땀으로 후줄근한 인부 하나가 저편에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반장님! 반장님!”

“거기 안전모 벗겨진다 이놈자슥아. 천천히 뛰어오그라.”

“안전모가 문제가 아닙니다!”

“와? 와 그러는데? 색시가 도망가뿟나?”

그 앞에 서 있던 인부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아휴 씨발 우리 좆됐다구요!”

“또 뭐가 좆되는데?”

더운 날씨에 절로 찌푸려지던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반장이 한숨을 푸욱 내쉰다. 또 인부 하나가 사고쳤구나 싶었다.

그러나 달려온 인부가 급히 귀엣말을 하자 가만히 서서 듣고 있던 반장의 눈이 이내 휘둥그레지며 놀란 얼굴을 했다.

반장이 머리에 쓰고 있던 안전모를 땅에 패대기치고는 얼른 뛰쳐나갔다.

“이런, 씨팔!”

서둘러 공사중인 언덕으로 달려간 반장은, 모여 있던 인부를 비집고 작은 동굴처럼 생긴 그 안을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씨팔, 이게 뭐꼬? 이런게 왜 여깄어?”

반장은 눈으로 보면서도 못믿겠다는듯 인부들을 향해 물었다.

“문화재... 같구먼유.”

반장은 아니길 바랐지만 역시 그가 생각한 것과 같은 대답이었다.

다른 인부도 거들며 말했다.

“그제? 딱 보기에도 예사스럽지 않아보이는 것이 왠지 그 옛날 무슨 왕이나 양반들 무덤 같은디 말여. 저기 관 두 개 모양도 그렇고 주변에 있는 유물도 엄청 비싸보이는 구먼.”

반장은 참 골치아프다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일어나서 인부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여긴 작업중지하고, 주변에 말뚝박고 청테이프 갖다 감으슈. 어찌할지는 내가 위에 보고한뒤 말해줄텐게.”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제 공사 못하는거 아녀? 여기 그만두면 겨울까지 쉬는데 말여.”

“겨울이 뭐여. 요즘 일거리도 없어서 내년 봄까지 놀아야지.”

“하필 세종시 넓고 넓은 곳중에 여기서 문화재가 나오고 쥐랄이여 쥐랄이.”

공사장 인부들이 여기저기서 탄식을 토해냈다.

그도 그럴것이 건설 현장에서 문화재가 출토되면, 연락을 받은 문화재청 직원들, 문화재 위원들, 발굴단 및 여러 언론사에서 나온 취재기자들이 이곳에 들끓게 되고 공사는 당연히 중지되기 때문이다.

반장이 이제 그만하고 저리가서 일이나 하라면서 인부들을 쫓아냈다.

그러고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올 8월 제대를 앞두고 있는 큰 아들 2학기 대학등록금과 둘째 대학등록금도 준비해야 할판에 속이 타들어간다.

“이런 썩을.”

한 시간이 흘렀다.

허름한 컨테이너에 차려진 사무실 문을 열고 반장이 밖으로 나왔다. 오만상을 짓고 있던 좀전과는 달리 무언가 개운한 표정이다.

그가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인부 한 사람을 크게 부르며 손짓했다.

“김씨! 잠깐 나 좀 보소!“

김씨라고 불린 사내가 타박타박 뛰어온다.

그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에 비오듯 쏟아진 땀을 닦으며 반장 앞에 섰다.

“본사에서는 뭐랍니까?”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유물에 관한 이야기부터 먼저 물어왔다.

반장이 조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김씨 면허 있다고 했제?”

“예. 8년 됐습니다.”

“그람 이따 밤에, 박스카가 몰고 서울 좀 갔다온나.”

“서울을요?”

“응, 저거 본사에서 알아서 하겠다안카나.”

반장이 언덕쪽을 눈짓했다.

그곳은 유물이 발견된 장소였다.

그날 밤. 작업은 순조로웠다. 반장이 고르고 고른 몇몇 인부들이, 관 두짝을 포함해 함께 따라나온 유물들을 택배차 화물칸에 옮겨 실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동굴은 그다지 깊지도 않았다. 눈에 띄는 것들만 대충 날랐더니 오래걸리지도 않고 더 실을 것도 없어보였다.

후에는 흔적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포크레인으로 동굴을 아예 무너뜨려버렸다. 동굴을 이루던 암석들은 전부 트럭에 실어 멀리 갖다버렸다.

새벽 1시. 김씨가 모는 택배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는중이었다.

이날 보름달은 너무도 밝아서, 영롱한 달빛이 택배차 화물칸에 달린 컨테이너 박스를 유독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한적하고 오고가는 차도 뜸한 나머지 김씨는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며 차를 몰았다.

그러다 갑자기 뒤쪽에서 쿵쾅 소리가 나고 차체가 흔들리더니, 이내 한 남성의 울부짖는 듯한 고성이 들려왔다.

“네이놈드으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아아아아!”

차체가 몇번인가 더 덜컹거리고 이어서 쾅, 쾅 하며 주먹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난데없이 터진 벼락같은 소리에 놀란 김씨는 서둘러 속력을 늦추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갓길에 차를 정차 시킨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게 왠일? 고속도로는 여전히 한적하고 풀벌레만 요란하다.

손전등을 켰다.

김씨는 주변을 경계하며 컨테이너 박스가 실린 화물칸 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리고 곧 크게 놀랐다.

철로된 컨테이너 박스 옆부분이 시원하게 뻥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수, 수라가 한 짓인가?”

대뜸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성의 괴성이 들린것하며 유물을 노린 수라의 짓? 수라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신인류를 가리킨다.

아연실색한 김씨는 컨테이너 내부를 살펴볼 생각조차 못하고 자신의 휴대폰부터 주섬주섬 찾아 헤맸다.

그런 와중에 살며시 목쪽으로 서슬퍼런 칼날이 기어들어왔으니.

이어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네놈은 누구냐.)”

“허, 헉!”

김씨가 움찔거리며 항복한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떨리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여성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여성의 의상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나는 짧은 치마 기모노를 입은 여성.

그녀는 100여년만에 다시 깨어난 료코였다.

“(대일본제국의 신민인가? 아니면 조센징인가?)”

달빛보다 차가운 음색으로 그녀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김씨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일본말을 했기 때문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돈이 필요하면 다 드리겠습니다!”

“(조센징인가...)”

그의 말을 듣고 료코가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무심코 고속도로 건너편으로 시선을 향했다. 어두운 산속. 수십초간 말없이 그 쪽을 바라봤다.

다시금 김씨의 목을 겨눈 칼에 힘을 주었다.

“(일본말은 아예 할줄 모르느냐?)”

“히, 히익!”

“(모르느냐?)”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말이 통하질 않으니 몇차례 각자의 말만 주고받다가 김씨가 끝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에게 손짓으로 잠시 기다려달라는 신호를 보낸 후, 서둘러 일본어 동시 통역 어플을 다운받았다.

일본어 동시 통역 어플. 상대방이 한국어나 일본어로 말하면 그 음성을 즉시 알아듣고 문자로 번역해주는 어플이었다.

“이제 말씀해보십시오.”

동시에 그의 음성이 번역되어 디스플레이 화면에는 일본어가 출력되었다.

그것을 본 료코가 희미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표정을 원래대로 하며 차갑게 말했다.

“(오늘이 2005년도 몇일이지?)”

“2005년은 아니고 2011년 6월 21일입니다.”

“(2011년? 2011년이라고?)”

료코가 못믿겠다는 듯이 시선을 떨궜다.

‘105년이나 지난것인가...’

다시 시선을 들었다.

“(대일본제국의 영웅이시던 다코오 마츠다이라님을 아느냐?)”

“마, 마츠다이라요? 전혀 모릅니다. 한국 역사라면 모를까 일본 역사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서...”

“(뭐라고?)”

료코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후에도 몇차례 물음과 대답이 오고가며 그녀는 점점 표정이 어두워져만 갔다.

그러고는 마침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칼을 늘어뜨리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럴수가...! 천년만년 가야할 대일본제국의 번영이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졌단 말인가!’

또, 혼자남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한단 말인가...?

하지만 료코의 상실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해야할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료코는 바로 김씨의 뒷목을 후려쳐서 그를 기절시켰다.

쓰러진 남자를 놔두고 고속도로 건너편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적막이 깃든 어두운 산속.

높게 자란 풀숲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줄곧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내가 드디어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료코는 절대 그를 놓칠 수 없다.

하지만.

“윽!”

순간 제자리에서 발을 떼기도 전에 아랫배가 심하게 요동쳤다. 내내 차가운 표정을 짓던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지고 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100여년간 잠들어 있던 몸속의 장기들이 다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료코와 마찬가지로 100여년 만에 눈을 뜬 우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대변보는 일이었다.

처음 자신을 싣고 달리던 차량을 뛰쳐나왔을때, 느닷없이 배가 아파져왔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건너편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두캄캄한 풀밭. 아무데나 비집고 들어가 바짓가랑이를 끌어내리고 주저 앉았다.

그런 와중에 고속도로 건너편에서 어떤 남자와 대화하는 료코를 볼 수 있었으며 간간히 들은 적도 없는 소음이 날아와 귀를 찌르기도 했다.

도로를 뜸하게 오가는 자동차들.

환한 불빛을 켜고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놀란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저건 말보다 빠르지 않은가! 왜놈들의 새로운 탈것인가?’

네 개의 바퀴가 굴러가는 구식 자동차야 진작에 그도 본적이 있었지만, 색다른 외관과 함께 이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성능 자동차는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번쩍 드는 생각이, 일본인들이 백성들을 제멋대로 납치한뒤 저런 차량을 이용해 도망간다면 그땐 뒤쫓기도 힘들고 정말로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놈들 대신 애먼 우리 백성들만 전쟁터로 끌려가게 생겼잖은가! 이 사실을 빨리 동지들에게 전해야한다! 황급히 대책을 세워야만해!’

아직 우주는 1905년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가 주권을 빼앗기고 일본인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이 손으로 을사늑약을 막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게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볼일이나 보는 자신을 탓하며 울분의 주먹을 쥐었다.

그러는 한편, 귀찮은 료코가 따라붙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난생처음보는 도로하며 자동차로 보아 어쩌면 이곳이 일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혈혈단신으로 적장과 맞붙는다는 것은 무모하다. 그러니 훗날을 도모할 수 밖에.

배고픔을 참고 몇시간을 달렸을까. 쓰러진 거목을 넘고 풀숲을 헤치며 헤맨 끝에 곧 날이 밝았고, 우주는 마침내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커다란 도시 하나를 발견했다.

“천안이라...”

도시 외곽에 놓인 도로 위에서 차들이 쌩쌩 달렸고, 그는 우뚝 서 있는 표지판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그 주변을 기웃거렸다.

사방팔방 써진 한글. 이곳은 다행히도 대한제국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글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천안은 천안인데, 자신이 알던 천안과는 많이 달랐다.

어리바리 도시의 변두리 지역으로 걸어들어온 우주에게는 신식 건물을 포함해 출근하는 사람들의 옷차림까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저 신기하고 상당히 낯설기만 하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행인들은 하나같이 그를 피하기만했다.

“저, 낭자. 뭣 좀 하나 여쭤볼게 있소만.”

“어맛, 저리 가세요! 저 바뻐요!”

짧은 치마에 높은 굽을 신은 여성이 후다닥 도망치듯 뛰어가버렸다.

우주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자신의 행색이 얼마나 더럽고 초라한지 정작 그는 몰랐다. 거기에 조선시대때나 입을 법한 서민용 한복을 입고, 깔끔하면 모를까 때가 꾸질꾸질하게 껴있는 옷에다가 심지어 냄새까지 나버리니 사람들이 피하는게 당연했다.

그 이후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앞도 제대로 못보고 걸어가던때였다.

빠아앙!

“야이 미친새끼야! 죽을라고 환장했어?”

차 안에서 어떤 남자가 고개를 내밀고 꽥꽥 욕설을 퍼부었다.

“미, 미안하게 됐소.”

우주의 목소리는 비교적 차분했지만, 눈앞의 차를 보고도 어디로 피할지 몰라 잠시 몸을 쭈뼛쭈뼛 거리다 황급히 비키는 모습이 역시나 머릿속 가득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난감하군...”

그는 지금 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

횡단보도를 걷는 사람들을 보고 무심코 뒤따라걷다가 금세 신호가 바뀌며 중앙선에 홀로 갇혀버렸다.

우주를 사이에 놔두고 오가는 차량의 엔진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출근길에 바쁜 차들은 그 어느 하나 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양보해주질 않았다.

“어이, 총각! 어여 이리 오지 않고 거기서 뭐하는 거여!”

촤악- 대야에 담긴 물을 바닥에 흩뿌리며 어떤 아주머니가 건너편 식당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에게 당장 이리 건너오라며 손짓했다. 하지만 우주가 계속 머뭇거리자 아주머니가 직접 나섰다.

“사람 지나가는데 어디서 운전질이여 이것들아!”

아줌마 뚝심으로 차들을 막아 세우고 그를 구출해줬다.

인도로 올라온 우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뭔놈의 탈것이 저리도 빠른단 말이오. 덕분에 살았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정말로 감사하오.”

“은혜는 무슨, 됐구먼. 그나저나 차 댕기는데 거기 버티고 서 있으믄 우짜. 담부턴 그러지 말어~ 그러다 죽는다니께.”

“아주머니 말이 맞소. 내 꼭 명심하리다.”

“가만. 근데 총각 말투가 왜그랴? 나이도 어려보이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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