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8화 (8/285)

8화

우주가 옷을 갈아입긴 했는데 기장이 많이 작다. 팔을 걷어 올리고 바지 밑단도 무릎까지 올린 채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붉은색 모자를 쓴 여성 점원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어서 오십시오. 주문하시겠습니까?”

“모닝 버거 세트 두 개 부탁합니다.”

“네, 모닝 버거 세트 두 개 주문하셨습니다. 가격은 8600원입니다.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예.”

그 와중에 우주가 옆에서 감탄을 한다.

“오오.”

여성 점원이 왠 기계를 타닥타닥 몇번 누르자 기계가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종이를 내뱉는 것이 우주는 신기했다. 거기에 더해서 처음보는 지폐와 동전도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잔돈을 거슬러 받은 철수에게 물었다.

“이게 요즘 시대 화폐요?”

“예. 설마 이것도 모르는거예요?”

“그렇소.”

“희한하네.”

철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우주와 함께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오전 10시가 넘은 패스트 푸드 점은 한가했다.

“이게 10원, 이게 100원, 이게 1,000원, 이게 1만원짜리, 이게 5만원짜리 화폐입니다. 어때요?”

“요즘 화폐는 종류가 다양하구려. 복잡하기 그지 없군.”

“익숙해지면 별로 안복잡해요. 그리고 이건 10만원짜리 지폐인데 자주 쓰진 않아요.”

철수가 지갑에서 꺼낸 10만원권 지폐를 우주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건 모양이 좀 다른 것 같소.”

“비싸서 그래요. 함 봐봐요.”

10만원권을 건네받은 우주가 이리저리 살피며 구경하는 동안 철수가 말을 이었다.

“난민 생활을 오래하셨으니 은행 계좌는 당연히 없으실테고, 당분간 주급은 현금으로 갖다드려야 겠네요.”

“주급? 그건 또 뭐요?”

“회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돈을 줘요. 교육생은 100만원씩 돈을 받고, 그걸 주급이라고 합니다. 이번주부터 나올거예요. 그걸로 옷 하고 신발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 사서 쓰세요.”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를 마친 뒤 철수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우주가 먼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길가에서 왠 할머니가 땅에 주저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주변을 오가는 행인들은 시선을 잠깐씩 주면서도 묵묵히 제 갈길을 갈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에게 우주가 다가갔다.

“어머님 왜 그러십니까?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려, 그려. 크닐났어 크닐.”

할머니는 이빨도 많이 빠져서 발음도 좋지 않았다. 옷은 또 어떤가. 허름하기 그지 없다. 옆에는 설탕이 뿌려진 꽈배기가 스테인리스 대야에 가득 담겨 있었다.

시장 바닥에 쭈구리고 앉아 나물을 파는 어머니. 우주에게는 너무 익숙한 그림이었다.

‘시대는 변했어도 바뀌지 않는 모습이 있구나.’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제게 말씀해 보십시오. 무엇이든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니 글씨 낵아. 아까, 아까 죠기서 어떤 사램을 하나 만난능디 말여.”

아침 직장인들이 오가는 길에 앉아서 꽈배기를 파는데 갑자기 어떤 젊은 남자가 다가왔단다. 그러면서 천원짜리가 가득 담긴 할머니의 허리 지갑을 보면서, 하루 종일 돈 들고 다니면 무겁다며 만원권 단위의 지폐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했단다.

그 말에 할머니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가지고 있던 천원권 지폐를 총 11만원어치 바꾸었고, 나중에 지폐를 자세히 본 할머니가 무언가 이상한 나머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어봤더니 그것은 지폐가 아니라 그냥 종잇조각이라는 것이다.

“그놈은 사라진지 오래구. 난 집에서 가져온 돈하공, 오늘 아침에 벙돈까지 다 잃어버링겨. 에구, 어뜨카노. 무식항게 왠수지. 흑흑.”

“음, 제게 한번 보여주십시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돈이길래...”

“여기 이봐봐.”

할머니가 가짜 돈 두 장을 건네줬다. 한장은 ‘P2P 다운로드 100,000원 상품권’ 이라고 써있었고 다른 한장은 ‘1만원어치 다운로드 상품권’ 써져있다.

아까 철수가 가르쳐준 지폐들과 비슷하면서도 재질과 그림이 확연히 달랐다.

그때 차밖으로 담배 태우러 나온 택시기사가 끼어들었다.

“할머니 이런 걸로 당했어요? 이거 분명 가짜 돈이네. 에고 저런. 조심하시지.”

우주가 건네받은 가짜 돈을 함께 들여다 보더니 그런 말을 했다.

“이런 못된 놈...!”

가짜 돈이 확실해지자, 우주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것을 구기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어머님께서 하루 종일 벌어야 얼마나 버신다고 이런 못된 짓을 하다니! 내 이놈을...!”

구겨진 종잇조각을 땅에 힘껏 패대기쳤다.

“어머님! 그놈 인상착의를 나한테 냉큼 말해주시오! 내 당장 잡아오리다!”

검은색 모자에 녹색 반팔티를 입은 청년. 왼팔에 깁스를 했단다.

“저쪽으루 가더라공.”

할머니가 손으로 그자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우주는 주저않고 무작정 달렸다.

그때 등뒤에서, 지금 막 패스트푸드점을 나온 철수가 당황한 얼굴로 그를 크게 불렀다.

“우주 씨! 우주 씨 어디갑니까! 이봐요!”

사람 숲을 뚫고 주변 시장 골목을 이잡듯이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발견되지 않자 우주는 전신주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보게 청년! 위험하니까 빨리 내려와!”

우주는 마치 영화속 타잔 같았다. 이 일대는 타잔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정글이었고, 그는 주택 지붕을 뛰어 다니거나 5층 빌라, 심지어 16층 아파트까지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서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다 보니 날렵하면서도 아슬하게 벽타기를 시도하는 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디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촬영 나왔나? 달인 같은거 말야. 허참 신기하네.”

“으메, 저러다 떨어질것 같아서 못쳐다보겄구만.”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우주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아파트 외벽을 원숭이처럼 기어올라가다 한중간에서 멈춰섰다. 손을 이마에 대고 밝은 햇살을 가리며 먼곳을 둘러보았다.

검은색 모자에 녹색 반팔을 입은 청년, 보였다. 왼팔의 깁스까지 확연히 보인다. 참고로 수라는 일반인보다 시력이 좋다.

“우오오!”

우주가 아파트 높은 곳에서 확 뛰어내리자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저 사람 수라였나 보네!”

우주는 달렸다. 도로를 건넌 다음 경사길을 걸어 올라가다 망설임없이 왼쪽 건물로 들어갔다.

하이테크 PC방.

마침내 건물 2층의 PC방에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신 맞지!”

“나 아닌데요?”

자리에 앉아 게임을 하려던 청년에게서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물론,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이야 있으니까 일단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할머니가 있는곳으로 같이 가보자고 했다.

그러나 청년은 안가겠다고 끝까지 우기며 버티기만 했다.

“바빠 죽겠는데 내가 거길 왜 갑니까!”

“바쁜데 여기 앉아서 뭐하는 거요?”

“게임 접속해서 거래해야되니까 그렇죠!”

그런 식으로 성을 내는 청년과 수십분간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어느덧 인상을 구긴 PC방 사장이 다가와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분 자꾸 여기서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경찰? 뭐든 좋으니 신고해주시오.”

우주가 대답하자 청년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알았어요. 갑시다 가. 뭔 할망구한테 가라는 거야 참나.”

우주에게 한 팔을 붙잡힌 채 청년이 구시렁대면서 앞장섰다.

“그 전에 화장실이나 들렸다 갑시다. 이 팔 좀 놔주쇼.”

“문앞에서 지킬테니 어여 싸고 오시오.”

우주가 순순히 놔주자 청년이 뻐근한 팔을 돌리더니, 돌연 근처 손님 자리에 있던 종이커피를 집어 들고 우주의 얼굴에 흠뻑 뿌렸다.

“으윽!”

“에라이 씨발 조까라!”

이어서 우주의 배를 힘껏 발로 찼다. 그가 뒤로 자빠지자 청년이 쏜살같이 도망쳤다.

그대로 PC방을 빠져나온 청년은 허겁지겁 1층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 건물 입구에서 크게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코앞에 우주가 서 있었다. 아무래도 2층에서 뛰어내린 모양이다. 그리고 철수에게 빌려입은 체육복 상의에는 커피 자국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우주는 상당히 열받은 표정으로 청년에게 말했다.

“이거 빌린 옷이니 댁이 책임져야 겠소. 만약 책임 못지겠다면 복날 개패듯 어디 한번 죽도록 맞아봅시다.”

찰칵 찰칵 찰칵!

사방에서 플래쉬가 연방 터졌다. 우주는 시종일관 긴장한 표정으로 서울 시장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며 취재진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날 오후 5시 뉴스에서는 우주가 나왔다.

[오늘 오전 11시 반쯤 강남구 도곡동의 한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꽈배기를 파는 할머니를 속여 현금 11만원을 가로채 달아난 남성이 있었습니다만, 한 용감한 시민이 무려 5km 이상을 추격해 이 남성을 붙잡았습니다. 경찰은 이 용감한 시민을 표창하기로 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울시에서는 서울 시민에게 귀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서울시장 표창장도 함께 수여했습니다. 다음은 신우주 씨의 인터뷰입니다.]

‘22살 / 신우주 씨 / 무직’ 이란 자막과 함께 우주의 얼굴이 TV에 나왔다.

“범인을 찾아다니면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한가지뿐이었소. 어머님의 눈물을 꼭 웃음으로 바꾸어 드리고 싶다는 그 일념 하나로 최선을 다했다오.”

쿠로가네 료코는 천안에 있었다.

그녀는 사흘째 굶주림에 지쳐 있었다. 돈이 없기에 산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고, 산속에 그나마 먹을 것이라고는 쑥이나 칡 뿐이었다. 하지만 풀만 먹다 보면 자연스레 고기를 씹고 싶고 산속에서 맷돼지나 여우를 잡아 구워먹으면 그 참을 수 없는 역겨운 누린내는 물론이거니와 나중엔 속이 니글거리다 못해 더부룩하기까지 해서 두세입 처넣다 마지못해 버리기 일쑤였다.

얼마 안가 산을 내려왔다. 여차하면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라도 주워먹을 작정이었다.

식량을 얻을 생각에 빈 그릇을 들고 집이나 식당을 찾아 다니면 쾅 하고 문이 닫히기 일쑤였고, 그녀에게 내밀어지는 손길이란 무릇 건달이나 역주변 창녀촌 인간들 뿐이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경찰과도 마주쳤다. 지저분한 그녀를 보고 가출했냐며 물어왔다. 물론 료코가 알아들을리 없었다. 경찰을 보고 조선 헌병대라 착각한 그녀는 바로 도망쳤다.

그런 힘겨운 상황 속에서 료코는 다시 우주를 만났다. 그것도 전자제품 가게앞 100인치 TV 안에서.

100여년 전 일본이 이 땅을 지배하던 시대와는 정반대의 상황. 녀석은 자신과 달리 때깔도 고와 보였다. 그것을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으면서도 왠지 힘이 났다. 혼자 남은 세상에서 적어도 목표는 있으니까.

자신의 숙명. 바로 신우주를 죽이는 일이었다. 더욱이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고난과 역경의 길은 전부 우주와의 악연에서 비롯되었으니 료코는 그가 죽도록 원망스러웠다.

과연 료코는 한국말을 전혀 모를까? 완전히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녀는 100여년 전 이 땅에서 한국인들과 섞여 살았다. 게다가 일을 위해서라도 한국말 몇개 정도는 필수로 알고 있어야 했다.

료코는 도로 한중간으로 뛰쳐나가 지나가던 차를 급히 막아세웠다.

“뭐여 이 썅...!”

욕설을 지껄이려던 운전자에게 품속에 감추고 있던 칼을 꺼내서 목에 들이댔다.

“어헉!”

“난, 저 조선인이, 사는 곳으로, 간다.”

“예...?”

“저기, 간다.”

그녀가 한 손으로 전자제품 가게를 가리켰다.

가게의 투명한 유리 안, 100인치 TV속에 우주가 인터뷰 중이었다.

제네틱스 본사 55층.

소라는 저녁 뉴스를 시청하다 우연히 우주를 보게 되었다.

순간 그녀의 미간이 좁혀지며 즉시 인사부장에게 전화를 걸고 호통을 쳤다.

“당신 미쳤어? 일 이따위로 할거야!”

소라는 전화기에 대고 계속 언성을 높였다.

“이부장! 교육도 덜된 수라를 언론에 노출시키다니 말이나 됩니까? 이런 일 한두 번 해봐요? 관련자 전부 징계 처리할테니 그리 아세요!”

수라가 세상에 알려진 후, 기업과 기업 간에 능력있는 수라 빼가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가진 대기업의 횡포와도 같은 무분별한 수라 빼가기를 점점 경계하기 시작했으며,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돼 경제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특정 대기업에만 우수한 수라가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고, 신천지라 불리는 레지스트 쉴드에서 생산되는 특정 상품은 우수한 수라를 보유한 하나의 기업이 독점하며, 이윤이 극대화된 가격으로 그 시장 전체를 지배하게되면서 구매자를 농락하는 형태로까지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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