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2화 (12/285)

12화

“아니오 신경쓸 것 없소이다. 제풀에 지치거나 언젠가는 스스로 할복할거요. 그게 왜놈 종자들이 잘하는 짓이니까 크게 마음쓰지 마시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갈곳이 어디요?”

우주와 료코의 사이를 곰곰이 생각해보느라 철수의 대답이 조금 늦는다.

“김대리?”

“아, 미안해요. 오늘은 함께 회사에 좀 다녀와야할 것 같습니다. 인사부장님으로부터 호출이 있었거든요. 우주 씨를 데려오라고 해서요.”

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럼 잘됐소.”

“뭐가요?”

“저 계집이 쫓아 올듯 싶으니 나 먼저 가야겠소. 회사에서 만납시다.”

그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우주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철수가 그 뒤에 대고 소리쳤다.

“잠, 잠깐만요 우주 씨! 버스비 있어요?”

“있소!”

우주가 여유롭게 교통 카드를 들어 보이며 응답했다.

뒤이어 건물 뒤편에 숨어서 두 사람을 훔쳐보고 있던 료코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를 황급히 뒤쫓았다.

저 멀리 뛰어가는 료코를 보며 철수가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산다니까. 혹시 사생팬이나 스토커 아냐?”

그는 곧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자신의 애마를 꺼낼 생각이었다. 그동안 우주에게 대중교통을 가르치느라 방치해둔지 일주일이나 지났다.

하지만 주차장에 도착한 철수는 자신의 BMW를 보자마자 곧바로 울상이 되었다. 누군가 차 앞유리창에 날계란을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정말 별의별 놈들이 다 있다니까...!”

다음날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하루 일과가 다 끝난 저녁 7시. 날씨는 흐리지만 여름인지라 여전히 밖은 환했다.

우주는 생활 상식 백과를 펼쳐놓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길래 현관으로 나가보니 집으로 철수가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서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그... 밖에 비도 오는데 저 여자 괜찮을까요? 방금 편의점 다녀오는데 아직 있더라구요. 아무것도 안먹은 상태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정말 죽을까봐서요. 여름감기가 무섭거든요.”

우주는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대리에게 해를 끼치진 않더이까?”

“예 뭐 아직은요. 걍 흘끗 쳐다보기만 하더라구요. 그런데 주변에 보는 눈도 있고 저러다 경찰까지 출동하면 어쩌죠? 괜히 우주 씨 불러달라 그러면 골치아파지잖아요.”

“그랬다간 아주 작살을 내버릴테요.”

“헐...”

우주는 말그대로 냉담했다. 철수의 눈길이 그런 그를 낯설게 바라보고 있었고, 이어 체념을 한 듯 돌아서 나가려다 문득 생각난 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구요. 저희 인사지원팀에서 우주 씨가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될수 있도록 필요한 서류와 자료 등을 법무부에 제출했습니다. 국적은 북한으로 신고했고, 우주 씨는 2004년 7월 13일 발생한 핵폭발로 인해 북한에서 피난온 피난민 신분입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특별 귀화로 인정받으니까 조만간 무난하게 승인되고 정식으로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될겁니다. 이제 진짜로 한국사람이 되는거예요.”

우주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맞잡았다.

“고맙소 김대리.”

철수가 돌아가고 나서 우주는 조용히 창가로 다가갔다.

슬슬 어둠이 내려 앉는 거리에는 가로등이 켜졌고,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땅을 뚫을 듯이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심 복잡해 보이는 시선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며 정신없이 일주일이 지났다.

소라의 특별지시로 우주는 6개월 훈련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도 않은 채 레지스트 쉴드로 바로 투입되어 본격적인 일을 하게 되었다.

오늘이 그 첫 출근날이다.

북위 38도 보다 그 아래, 파주시에 위치한 ‘전방주둔지’에 도착하자마자 혼잡함과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철수도 함께 와있었다. 그는 갑작스레 과장으로 승진하면 이곳으로 발령이 났고, 전방주둔지 내에 있는 제네틱스 지사에서 전반적인 관리 업무를 맡게되었다.

우주와 철수가 회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방주둔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세 명의 제네틱스 직원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전방주둔지에는 비단 제네틱스만이 지사를 둔 것이 아니다. 양대 산맥을 이루는 신라그룹이나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대거 자리잡고 있었다.

정부가 전방주둔지에 부지를 조성한 뒤 많은 기업을 유치했고, 일종의 산업단지와도 같았다.

그리고 전방주둔지는 돌연변이 생물의 남하를 막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 역할도 했다. 각 기업의 수라들이 대한민국을 사수하고 북진의 계기로 삼는 최종 한계선(Deadline)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우주와 철수는 따로 떨어져 각자 다른 사람을 따라갔다.

우주가 도착한 곳은 제네틱스 수라들이 임무 수행을 위해 각종 전투장비를 지급받는 건물이었으며 미래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실내 구조가 눈에 띄었다. 벽과 천장이 온통 흰색이었고 모든게 자동화 디지털화 되어 있었다.

[우측은 남성, 좌측에는 여성분이 입장해주십시오. 성별이 틀릴시 10초 이내로 기무팀이 출동합니다.]

기계음성의 지시대로 로비에서 오른쪽 방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에서 여성 음성의 기계가 옷을 전부 벗어달라고 또다시 지시했다.

우주는 속옷까지 벗고 알몸이 되었다. 그가 벗은 옷은 네 바퀴 달린 둥글둥글한 기계가 수거해갔다.

치이익!

흰 기체가 뿌려지며 그는 전신 소독을 받았다. 그러고는 기계 음성이 앞으로 걸어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대로 따르자 곧바로 붉은 레이저 광선이 자신의 몸을 스캔했다.

짧은 시간 키, 몸무게와 같은 신체사이즈를 측정하고, 그것이 끝나자 한쪽 벽면이 자동으로 열렸다.

우주의 신체에 적합한 슈트를 찾은 기계 팔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아주 타이트한 검은색 슈트였다.

우주가 어리바리 슈트를 입고나서 그다음은 장비였다.

허리 밑까지 오는 바퀴 달린 로봇을 따라 길다란 흰 통로를 지나 두 갈래길에서 우측으로 꺾었다. 그리고 새로운 방에 들어서자 이내 기계음성이 들려왔다.

[중앙으로 가서 서 주십시오.]

중앙에는 원통형 기둥에 50인치 모니터가 박혀있었다.

그 앞으로 다가가 섰다. 바퀴 달린 로봇도 따라왔다.

모니터에는 즉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기계음성이 직접 읽어주었다.

[이름 신우주, 팀명은 고릴라. 당신의 번호는 7번입니다. 오늘 임무는 식량 생산. 지금부터 그에 적합한 장비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말이 끝나자 사방의 벽이 뒤집히며 푸른색 전등에 감싸진 각종 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기에 관한 도움말을 듣고 싶으시면 무기를 고르신 후, 제네틱의 머리 위에 잠시만 들고 계셔주십시오. 제네틱에게서 해당 무기에 관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제네틱이란 우주를 따라온 바퀴 달린 로봇을 말하는 것 같았다.

우주는 일단 실내를 둘러보았다.

단검부터 시작해서 장도, 창, 도끼, 철퇴, 쌍절곤, 권총, 기관단총, 소총, 기관총, 저격총, 화염방사기, 휴대용 로켓포 등등 없는게 없었다.

우주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자신감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도통 알 수 없는게 많아 갈수록 혼란스러웠고, 겨우 입사 3주만에 전문성을 요구하는 정직원이 된게 그 원인이었다.

여튼, 제일 익숙한 칼을 골랐다.

개인화기는 다룰줄도 몰랐고, 그래서인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무기를 고르고 나서 이번에는 보조 장비를 고르는 방에 들어섰다. 밧줄부터 시작해 구급상자, 벨트, 무릎 보호대, 수류탄, 섬광탄 등등 생존과 사냥에 필요한 각종 보조장비가 전시되어 있었다.

도무지 뭐가뭔지 모르는 것들을 눈앞에 두고 우주가 무엇을 골라야할지 망설이는 동안, 기계음성은 계속 똑같은 말만을 되풀이했다.

[제네틱스는 항상 여러분에게 사냥에 필요한 최고의 장비를 제공할 것을 약속드리며, 추가로 원하는 장비가 있으시면 건물 밖 동쪽에 위치한 제네틱스 방위산업팀 접수원에게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제공되는 배낭에 아무거나 쑤셔넣었다.

마지막으로 반나절 분량의 식량과 물통, 간식을 지급받았다.

특수 포장된 그것들을 배낭 속에 쑤셔 넣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확 트인 장소와 맑은 공기.

이제야 숨 쉬는 것 같았다.

“후우~ 하아~”

잠시 심호흡을 하고나서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축구장 5배 크기의 드넓은 광장. 군데군데 천으로 지어진 막사와 그 뒤편으로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가로지르는 높이 50m의 거대한 벽이 웅장하고 드높게 가로막고 서있었다.

그리고 그 벽 너머 저 멀리 반투명 녹색 보호막. 돔 형태의 레지스트 쉴드가 보였다.

넋놓고 올려다 보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광장은 다양한 색의 슈트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서 시끌벅적 떠들어댔다.

자신과 똑같은 검은색 슈트 복장의 남녀 무리. 빨강, 노랑, 주황, 검정, 보라, 흰색 등등 제각각 다른 색깔의 슈트를 입은 사람들.

그건 그렇고 형형색색의 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때 문득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슈트 색깔은 회사마다 달라. 각자 고유의 색이 있어서 색만 봐도 어디 회사인지 알 수 있게 해주지.”

우주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슈트 덕분에 유난히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는 쇼커트 머리의 여성. 자신과 동일한 검정색 슈트를 입고 있었으며 약간 치켜 올라간 눈매가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MP5 기관단총의 총구로 자신의 우측 어깨를 툭툭 치면서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우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신입 같은데 어느팀?”

“팀 말이오?”

“말이오? 푸훕!”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너 말투가 되게 웃기다.”

허리까지 숙여가며 웃더니 다시금 말했다.

“사자, 호랑이, 고릴라, 원숭이, 토끼 등등 몰라?”

“그거라면 고릴라 라고 들었소만.”

“또다 또. 들었소만이라니. 푸웁!”

그녀의 웃음은 멈출줄을 몰랐다.

우주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자 괜히 미안해졌는지 억지로 웃음을 털어낸다.

“이거 우연이네. 난 고릴라 식스야. 반가워.”

그녀는 악수를 청했다.

우주가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난 고릴라 일곱이라 들었소.”

“푸하하하!”

도저히 못참겠나 보다. 그녀가 이번에는 배꼽이 빠질정도로 자지러지게 웃었다.

“고릴라 일곱이래. 일곱! 하하하!”

우주가 인상을 썼다.

“그게 뭐 잘못됐소?”

“아니 고릴라 세븐이면 모를까 일곱이라니 너무 웃겨서.”

그녀는 웃다가 찔끔 흘린 눈물을 닦고 이어 말했다.

“너 혹시 선수 아니야? 일부러 이러는 거지? 제법 센스있다 너.”

우주는 미간을 더욱 좁혔다.

“장난칠 기분 아니외다.”

그녀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우주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어라? 그새 삐졌어? 웃은 거 밖에 없는데 뭘 삐지고 그래. 화풀어. 그래야 남자지.”

우주가 차갑게 대꾸했다.

“가보시오. 난 다른 곳에 가보리다.”

우주가 등을 돌리려하자, 그녀가 재빠르게 다가와 그의 귓가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미안해. 후우~”

“으헉! 뭐, 뭐하는 거요!”

놀란 우주가 허둥지둥 떨어졌다.

그녀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그 모습을 재밌어하며 배 아파 죽겠다는 표정이다.

“수연이 너 또.”

문득 옆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연이라 불린 여성이 웃는걸 멈추고 정색하며 그쪽을 바라봤다.

“또라니 뭐가 또야?”

“어린애들 그만 잡아먹으라고.”

“그게 아니거든? 얘가 우리팀이라서 같이 어울린것 뿐이거든?”

“뭐야 우리팀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야?”

스포츠 머리에 검정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우주에게 다가왔다. 그가 배낭과 함께 어깨에 짊어진 무기는 바주카포였다.

그가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었다.

“이 누나가 괴롭혔어? 내가 혼내줄까?”

“뭐요?”

우주는 순간 울컥했다.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것 같아 심통이 났다.

“장난 치지 마시오!”

그때였다.

“거 둘다 그만해두지 그러나.”

질근질근 껌을 씹으며 또다른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앞서 두 사람과 달리 나이가 많아 보였으며 더블바렐 샷건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우주가 빤히 보는 동안 그가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자네 고릴라팀인가? 옆에서 들리길래 어쩔수 없었다네. 난 차영웅. 45세. 고릴라 원. 팀의 대장이지.”

우주가 얼결에 악수를 받으며 되물었다.

“대장?”

“그래 대장이라네. 내 밑에서 죽어간 친구들이 많긴한데, 믿어서 나쁠 것도 없지.”

스포츠 머리 남자가 킥킥 웃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믿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영웅은 너글너글한 미소를 지었다.

“엊그제 7번 친구가 죽고 온 모양인데 앞으로 잘해봄세. 이름이?”

“신우주요.”

수연이 끼어들었다.

“나이는?”

우주는 그녀를 보고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무살이오만.”

“어? 표정이 왜 그래? 이제 화 풀어. 더 안할테니까 응?”

그녀가 짐짓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가 딴죽을 걸었다.

“수연이 봐요. 스무살이라니까 또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네. 애교 부리는 것 좀 봐.”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다 보이는구만 뭘. 띠발 아다 킬러.”

“지랄도 풍년이네.”

수연은 들고있던 MP5의 총구로 남자의 배를 쿡쿡 찔렀다.

“계속해봐. 계속.”

“알았어 알았어 안해 안해.”

남자는 배를 어루만지며 우주를 마주보았다.

“조금 전에는 미안했다. 계란 한판 이태평이다. 팀에서는 고릴라 쓰리.”

“계란 한판? 그게 뭐요?”

수연이 대신 대답했다.

“30살 처먹었다는 소리야. 나랑 동갑이지.”

“한판에 25개 짜리도 있어.”

“그래서 니가 25살 처먹었다는 거야 뭐야.”

“그만하고 얼른 모이지.”

영웅이 기지개를 피며 나른한 투로 말을 던졌다. 그는 이어서 우주를 바라봤다.

“자네도 고릴라 팀이니 따라오게나.”

네 사람은 자리를 이동했다.

북쪽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출입문을 눈앞에 두고 고릴라 팀 16명이 인원이 모였다. 개중에는 운전병 두 명이 포함되었는데, 예전 육공트럭(K-511A1)과 비슷한 모양이면서도 돌연변이 동물의 뼈가 섞인 신소재로 만든 백공트럭(K-611AX)을 몰고왔다. 전보다 크기도 더 커지고 속도도 빨랐다.

모두가 3열 횡대로 차분하게 줄선 가운데, 영웅이 그 앞으로 나와서 인원 점검 및 브리핑을 했다.

한쪽에서 철수가 달려왔다. 오늘 막 발령되서 그런지 왠지 정신없어 보이는 기색에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그가 손에 쥔 서류를 영웅에게 보여주면서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사인을 받았다.

철수는 돌아가기 전 고릴라팀 속에서 우주를 찾더니, 이내 슬쩍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저쪽, 저쪽.”

“저쪽? 어디말이오?”

“저기 붉은색 슈트 애들.”

고릴라팀 우측에 따로 줄지은 무리를 가리켰다. 그들도 사냥을 떠나기 위한 브리핑이 한창이었다.

“선두 제일 우측에 서 있는 여자.”

우주의 시선이 붉은 슈트를 입은 여성을 찾았다. 뒷모습만 보이지만 검고 긴 머리와 힙업된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처자가 뭔데 그러오?”

“김수희 김수희 김수희...”

“그때 영상에 나왔던 그 여자란 말이오?”

철수는 급하게 끄덕거리더니 서둘러 사무실로 뛰어갔다.

“음...”

우주는 오른쪽 대각선으로 시선을 향했다. 붉은색 슈트를 입은 집단도 고릴라 팀과 마찬가지로 16명 가량의 사람들이 3열 횡대로 줄서 있었다. 철수가 가리킨 김수희는 제일 첫줄 오른쪽 끝에 서 있었다. 뒷모습 밖에 안보였지만, 앞에 나와 서 있는 사내가 말하는 것을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우주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며칠 전 영상을 떠올렸다. 동족 상잔의 비극과 수천만 동포가 사망했는데도 웃으며 말하던 모습.

그 첫인상이 강하게 남아서인지 그녀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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