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7화 (17/285)

17화

침으로 질척한 사탄의 주둥이가 크게 벌어졌다. 짓뭉개진 영웅의 얼굴을 입안에 넣으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싹둑 하고 목을 잘랐다.

슈트를 입은 몸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사탄의 주둥이에서는 붉은 액체가 뚝뚝 흘러내렸다. 녀석이 우걱우걱 씹어대는동안 밑에서 갑자기 슈퍼바이크의 발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 기척을 들은 사탄이 3층 건물 옥상에서 단숨에 뛰어내렸다.

그 순간 수연과 우주를 태운 슈퍼바이크가 직선 도로를 질주해 나아가면서 점차 서로의 거리가 멀어져 갔다.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지켜보던 사탄이 땅에 네 발로 엎드렸다.

그리고 짐승처럼 뛰기 시작하였다.

수연은 카트리지 벨트를 풀고 늘려서 우주와 자신을 한데 묶었다.

방향은 남쪽. 왔던 길을 되찾아 도망치는 수 밖에 없었다.

4차선 도로에 진입한 수연은 아주 대담하게 속도를 올려 시속 200km로 곧장 개성시를 빠져나왔다.

어둠이 드리워진 숲. 그곳을 가로질러 만들어진 고속도로를 슈퍼바이크가 맹렬한 기세로 내달렸다.

그리고 불쑥 헤드라이트 빛줄기로 야생 노루 한 마리가 겁 없이 뛰어들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급제동을 걸면서 저도 모르게 핸들을 우측으로 꺾어버렸다.

그 때문에 슈퍼바이크가 도로 위에 미끄러지면서 빙글빙글 회전하다 가드레일과 충돌을 했다.

도로 밖으로 튕겨져 나간 수연은 한동안 정신을 못차리며 신음을 했다.

“콜록, 콜록!”

기침을 하자 역류한 혈액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카트리지 벨트를 풀고 아주 힘겹게 일어났다. 기절한 우주를 내려다 보니 엉망으로 처박혀 있었다. 양겨드랑이를 붙잡고 질질 끌어 제대로 눕혀 놓았다.

수연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바닥에 깔려서 많이 아팠지? 미안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조금씩 비틀대며 슈퍼바이크가 있는 도로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사탄은 그때 달려들었다.

한순간 수연을 덮치며 그녀를 도로 위로 쓰러뜨렸다.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

커다란 주둥이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수연은 녀석의 턱을 두 손으로 잡고 버티며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제발! 제발!”

그녀가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봤지만 소용 없었다.

수라의 힘은 사탄 앞에서 너무도 무력했다.

어느새 사탄은 그녀의 두 다리를 낚아채고 제 입으로 가져갔다.

가지런히 모인 두 발이 단두대처럼 날카로운 이빨에 차근차근 씹히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무릎까지, 무릎에서 허벅지로. 그녀의 두 다리를 갉아먹었다.

“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끔찍한 고통이 숲속에 메아리쳤다.

수연은 계속 땅을 치며 참담하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우주가 깨어났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잔인한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사탄이 수연을 도로 위에 눕혀놓고 잡아먹는 게 아닌가!

“이 괴물 새끼가! 으아아아!”

우주는 머리의 아픔도 잊고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같은 시간.

신라그룹 사막여우 팀이 임무를 마치고 전방주둔지로 복귀중이었다.

그들을 태운 백공트럭 2대가 어둠을 밝히며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화물칸에 앉은 팀원들은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없었다.

“이야, 수희 씨. 오늘 활약 대단하셨어요.”

“대단하기만 해? 역시 수백억대 연봉자 다웠지.”

“다음주 월요일에 그 드라마 첫방하는거예요?”

“저 본방 사수합니다!”

“누나, 오늘은 꼭 한잔 하고 가시는 거예요. 알았죠?”

두 대 중 앞서 달리던 백공트럭에서는 사막여우 팀원인 수희에게 남성 팀원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수희는 그것이 꽤 부담스러운지 애써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눈치였다. 일을 끝마치고 가는 길에는 눈을 감고 좀 쉬고 싶었을테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잘달리고 있던 백공트럭이 갑자기 급제동을 걸었다.

끼이익!

화물칸에 타고 가던 팀원들이 일제히 앞으로 쏠리면서 아우성을 냈다.

“아, 운전 똑바로 해!”

“뭔데 그래! 돌연변이라도 나타났어? 왜 그래!”

“수희 씨 괜찮으세요?”

“다치신데는 없으시죠?”

몇몇 호감을 사고 싶어하는 사내들은 그녀의 안전여부를 제일 먼저 챙겼다.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수희가 짐짓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운전병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는 다시 뒤를 돌아봤다.

“어이, 모두! 앞 좀 봐봐요! 이상한거 있어!”

곧 헤드라이트가 더 먼 곳을 비추었다.

화물칸에 타고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원 그곳으로 쏠렸다.

누군가 무심코 말했다.

“어라, 저거 검은색 슈트...”

“돌연변이 짐승이랑 제네틱스 녀석이 한판 붙고 있는것 같은데?”

그들은 도로 중앙에서 이상한 괴물과 뒤엉켜 싸우는 남자를 발견했다. 또 도로 한쪽에는 상체만 남은 여성이 시냇물처럼 피를 흘리며 널브러진 모습도 보였다.

“근데 저거 돌연변이 짐승 맞아? 희한하게 생겼네.”

“가까이 가봐야 알겠구만.”

문득 한 사람이 앞좌석에 타고 있던 연진에게 다가가 운전석 뒤쪽에 달린 창을 통해 말을 건넸다.

“저거 도와줘야 되는 것 아니야? 연진아 어떡할거야?”

곧바로 화물칸에 타고 있던 누군가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제네틱스 새끼들 도와주고 좋은 소리 들은 적 있었등가? 걍 내비두자고. 어차피 지금 도와줘봐야 돈도 안돼. 사체는 쟤들이 챙긴다고.”

“그나저나 저런 괴물은 처음보는데 마치 사탄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듣고 있던 수희가 불안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저러다 죽을 것 같아요! 빨리 도와줍시다!”

그러나 모두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제네틱스 새끼들 구해줘 봤자...”

“지난번에는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도 그냥 차 타고 쑥 지나가더라고 씹새끼들이. 놀리면서.”

“주둔지에서는 또 어떤데요. 술먹고 시비를 겁나 걸어대드라고요. 술먹고 사고치는 놈들 보면 전부 제네틱스야.”

그러나 개중에는 수희를 응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수희 씨가 원한다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당연히 도와줘야죠.”

“수희 씨는 마음 놓고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갔다오렵니다.”

수희가 일어나서 화물칸 앞쪽으로 달려갔다. 창을 통해 연진에게 말했다.

“모른척 지나갈 수는 없어요. 빨리 구해줘야해요.”

수희는 초조한 기색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묵묵히 전방을 주시하던 연진이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일단 대기한다.”

수희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지금 사람이 죽어가는데!”

“저 괴물은 저자가 죽고나서 잡는다.”

“제네틱스라서 그런거예요?”

연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건 신경안써. 걍 돈 때문이다. 저 괴물은 왠지 비싸보여. 어디서 나타났을까. 음...”

연봉 470억의 사나이 우연진. 그는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수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너무하네요! 그럼 저라도 가겠습니다!”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자신의 스파스 샷건을 집어들었다.

그런 뒤 백공트럭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곧이어 그녀의 신도 몇몇이 ‘수희 씨! 우리가 있어요!’ 하고 외치며 뒤따라 뛰어내렸다.

한편, 사탄과 싸우던 우주.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도로 위를 적셔가는 동안, 다가오는 사탄을 기다리면서 얼른 죽기를 바라야 했다.

이제 더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압도적인 사탄의 힘을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망연자실한 눈동자는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하체를 잡아 먹힌 채 끔찍하게 죽어있는 수연. 그 모습을 보며 터진 입술로 중얼거렸다.

“다 죽었다. 다 죽었어...”

쿨럭. 목구멍에서 피를 토해낸다.

사지에는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제야 죽나보구나...”

죽으려면 그때나 죽지 100여년을 건너뛰고 죽다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어렸을 적 추억이 그의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들... 저 곧 따라갑니다. 그리고 막내야. 혼자 남겨둬서 미안했다... 내가 사라지고 나서 많이 괴롭고 힘들었지... 이참에 저승에 가서 용서를 빌도록 하마...”

먼저 떠나 보내야 했던 그리운 사람들을 이제는 만나볼 수 있을테지.

이제야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며 우주는 살며시, 아주 살며시 미소 짓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오라버니!’

문득 아련하게 들려오는 막내의 목소리.

동시에 누군가의 손이 뺨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막내...?”

스치듯이 뺨을 어루만지는 그것은, 왠지 익숙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봐도 막내의 손 같다.

‘벌써 죽었단 말인가? 이렇게 빨리? 아무런 고통도 없이?’

믿기가 어려워 다시 눈을 떴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막내.

막내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녀는 포근한 미소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고, 몸 전체에서 광채가 나서 눈이 부셨다.

우주가 떨리는 입술로 나지막이 물었다.

“이 오라비는 죽은것이냐?”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럼 여긴 어디냐...?”

“지구.”

“지구?”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우주 오라버니. 조만간 또 보자.”

“또 보다니...?”

그 시각 한국항공우주연구소.

모니터를 들여다 보던 한 연구원이 벌떡 일어서며 급하게 소리쳤다.

“박사님 세이비어가! 세이비어가 전례없이 매우 강력한 빛을 방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지스트 쉴드 내 개성 시 인접지역.

총을 들고 뛰어가던 수희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어 놀란 나머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는 경악했다.

목을 비틀고, 두 팔을 잡아 뜯고, 배를 찢어 내장을 꺼내고 마치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을 잡아먹는 것처럼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수희를 뒤따라온 사내들이 흉측한 광경을 보는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윽, 뭐야 저거! 저 자식 일부러 약한체 했던거야?”

“수, 수희 씨 이리오세요! 빨리! 위험합니다!”

사내들이 그녀를 끌고 돌아가려했지만 수희가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그녀는 얼음처럼 굳어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도로에 홀로 있던 남자의 분노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는 말그대로 광인이었다.

괴물의 신체를 역겨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시키며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어질 때까지 찢고, 뜯고, 짓이겨 버렸다.

그가 있는 곳은 이내 누군가가 양동이로 핏물을 가져다 뿌리기라도 한 듯이 붉은 호수를 이루었다.

당일 발행된 조간신문 1면에는 고릴라팀에 관한 기사가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350억의 사나이 차영웅 사망!

인터넷 기사도 쏟아졌다.

-위기에 빠진 제네틱스. 차영웅을 이을 간판 인재로 우연진 낙점. 신라그룹에 거액의 이직료 제시.

-제네틱스,

“인재 영입에 돈 아낄 생각없다.”

-신라그룹 한소민 경영운영 본부장,

“우연진 절대 안판다.”

-제네틱스. 우연진이 아닌 김수희 영입설 솔솔.

-김수희, “신라그룹 떠날 생각 없다” 영입설 일축.

-제네틱스, “차영웅을 대신할 감춰둔 비밀병기 있다”익명의 관계자 폭로!

오늘 하루 증시를 달군 최고의 화제주는 단연 제네틱스였다. 확인 되지 않은 뉴스가 터질때마다 개미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며 종일 주가가 요동쳤다. 오전 중으로 우연진 영입설이 터졌을때, 당시 제네틱스 주가는 일일 최대 상한가 15% 가까이 껑충 뛰었다가, 곧바로 신라그룹이 진화에 나서자 주가가 순간 급락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각종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호도한 제네틱스는 결국 주가 방어에 성공하면서 전날과 비교해 낙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유능한 수라가 속한 기업은 그 수라의 신상에 변화가 올때마다 주가가 요동친다.

그 영향을 받는 이유는 이렇다.

레지스트 쉴드 안에는 다양한 자원이 존재하고 있고, 누구도 알 수 없는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수라의 실력이 형편 없다면 남들보다 더 좋은 자원을 선점할 수가 없으며 그에 따라 기업의 이익도 줄어든다.

일례로 ‘폭스네이크’ 라 불리는 돌연변이 생물이 있다.

여우의 상반신에 하반신은 뱀 꼬리를 닮았으며 그것의 표피는 고층 건물 외벽에 희귀하게 사용되는 자재로서 뱀비늘이라는 독특한 외관과 함께 태풍과 토네이도에도 잘견디며 방음 및 열을 차단하는 단열효과까지 가지고 있다. 또 폭스네이크의 표피는 숲속에 있는 것처럼 상쾌한 산소를 발생시킨다. 이 점을 착안해 어떤 이탈리아 기업에서는 한정 수량 최고급 명품 지갑으로 제작해서 전세계 갑부를 상대로 아주 고가에 판매하기도 했다. 그것은 휴대용 산소발생기를 들고다니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이처럼 폭스네이크는 기업에게 아주 소중한 돈줄이며 인간에게는 매우 유용한 자원을 제공해주는 돌연변이 생물이지만 잡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여태껏 폭스네이크를 잡은 회사는 단, 3개 기업 뿐이다. 국내가 그랬고 중국, 러시아에서는 1, 2기업에 불과했다.

국내 3개 기업이 폭스네이크를 독점함으로 인해 기업의 이익이 증대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능한 수라가 있기에 가능했고, 차영웅의 사례처럼 유능한 수라 한 명이 소속 기업의 주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명백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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