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한편, 소라는 정신병원에 와있었다. 고릴라 팀 15명중 13명이 사망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주는 크나큰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신라그룹 사막여우 팀의 도움으로 전방주둔지에 도착하자마자 수연은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특이하게도 아무런 내상과 외상이 없던 우주는 슬픔에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런 그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자고 제안한 것이 소라였다.
우주가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동안 소라는 복도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에 저장해놓은 동영상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그녀가 집중해서 보는 영상에는 고릴라 팀이 전멸 당시 우주의 시점에서 겪은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라가 입는 슈트에는 목덜미 부근에 초소형 카메라가 부착 되어있다. 그것은 임무 수행시에 항시 켜두어야 하는 장비로서 자동차 블랙박스처럼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는 용도로 쓰이거나 수라와 기업 간의 연봉 협상시 주로 이용되었다.
소라가 중얼거렸다.
“사람 키 만한 사탄이라... 믿을 수가 없군.”
“저도 처음보는 군요.”
그녀의 곁에는 창성이 서 있었다.
소라가 다시 말했다.
“궁금한건 한두 개가 아니야.”
그녀는 휴대폰을 내밀어 보여주며 액정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 봐보세요. 마치 수정을 닮은 이 보라색 돌 말이야. 심장 부분에 있는거.”
우주가 잔인하게 사탄을 죽이는 장면에서 영상을 멈추고 있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수정이로군요.”
“이게 무엇일까... 단순히 내장 기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단 말이지.”
창성이 대답했다.
“본부장님의 감은 언제나 특출나셨습니다. 본부장님이 보기에 예사롭지 않다면 예사롭지 않은 것입니다.”
소라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아부는 집어치우세요.”
“네.”
창성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수정 같은데, 정확한 것은 사체를 돌려받아야 알 수 있겠습니다.”
소라가 그를 올려다봤다.
“일은 어떻게 되가고 있답니까?”
“우리 회사 법무팀이 나서서 강도높게 반환 요구를 하고 있지만, 신라그룹 측에서는 줄곧 사탄을 닮은 사체에 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답니다.”
소라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휴대폰을 핸드백에 넣은뒤 말했다.
“무례한 것들. 내가 직접 한소민을 만나봐야 겠군요.”
창성이 물었다.
“앞으로 신우주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계속 일을 시키실 작정이십니까?”
“물론 계속 보내야죠. 레지스트 쉴드로. 별일 있었던것도 아니고.”
창성은 조금 주저하다 말했다.
“근데 과연 잘할까요?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기백 넘치던 눈빛과는 다르게 이제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고작 며칠 사이 사람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소라가 코웃음을 쳤다.
“처음엔 누구나 다 겪는 일이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돈 벌려면 이겨내야죠. 하물며 우리 기무팀 수라 24명을 때려눕힌 대단한 남자인데 이대로 쉽게 무너질리 있겠어요? 그리고.”
소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던 창성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당신도 그에게, 처. 참. 히. 깨. 졌. 죠.”
때마침 진료실 문이 열렸다.
안에서 우주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기운없는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이건 뭐 걸어다니는 송장도 아니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소라는 방긋 웃는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한번 안아주었다.
양어깨를 붙잡고 마주보며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겠지만, 이겨내세요. 전 우주 씨를 믿어요.”
정신병원을 나온 뒤 서울시 외곽을 빠져나갔다. 한적한 도로를 두 시간 달려 전망 좋은 호숫가에 자리한 한정식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보며 식사를 같이했다.
작은 입에 쏙쏙 넣는 소라와 달리 우주는 수저를 들지 않았다.
“우주 씨 입맛에 맞을 것 같아서 일부러 이곳을 골랐어요. 김철수 씨하고는 매일 햄버거만 사드신다면서요?”
우주는 밥상만 쳐다볼뿐 이렇다할 반응이 없다.
소라는 다시 향긋한 곰취로 쌈을 싸서 우주에게 내밀었다.
“이것 드셔보세요. 아주 맛있답니다.”
하지만 우주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소라는 쌈을 내려놓고 물잔을 집었다. 들어서 한 모금 가볍게 마셨다.
문득 그가 입술을 열었다.
“수연 누님은 어찌되었소.”
“수연 씨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게 아니잖소.”
사탄에게 먹혀 두 다리를 잃은 수연을 똑똑히 목격한 우주였다.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며 그는 고개를 떨궜다.
“염려마세요. 그녀는 조직재생공학연구소에 보내졌습니다.”
“병원 말이오?”
“병원일수도 있고, 정확히는 신체 재생을 연구하는 의학기술연구소입니다.”
“그곳에 가면 수연 누님은 어찌되는 거요? 완전히 회복될 가망성이 있다는 말이오?”
“국내 최고의 의료진들이 수연 씨의 훼손된 두 다리를 원상태로 회복시켜줄 것입니다. 아직 대중화된 기술은 아니지만, 연내 일반인에게도 시술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으니 성공 확률도 높다고 봅니다.”
우주의 눈이 커졌다.
“그것이 정말이오? 수연 누님은 전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이오?”
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 회사는 소속 수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즉사만 하지 않는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살려낼겁니다.”
이어서 말했다.
“행여 사망했더라도 그 유가족에게 수십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원해주죠. 그러니 안심하고 어서 드세요. 동료에 관한 것은 전부 저희에게 맡기시고 우주 씨는 그저 우주 씨 일만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세상은 100여년 전과는 많이 다르니까요. 그렇게 매정하지 않습니다.”
우주가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하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구려.”
하지만 우주는 결코 밥을 들지 않았다. 앞으로 삼일간은 죽어간 동료의 넋을 위로하며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식사를 마친 후 소라는 우주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곧 떠났다.
“아흐~ 재수없어!”
그녀는 차안에서 재수없어란 말을 연발했다. 차 뒷유리에는 브니엘 원룸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핸들을 부드럽게 돌리던 창성이 힐끔 룸미러를 보며 물었다.
“식사 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사람을 앞에 두고 고사 지내는 거야 뭐야. 밥 먹으러 왔으면 밥을 처먹어야지!”
소라는 혼자 밥을 먹어야했던 그 상황이 매우 자존심 상했던 것 같다.
창성이 티안나게 픽 웃었다.
“그래서 화나셨습니까? 힘드니까 그랬겠죠. 동료가 다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겠나요.”
“아무리 지딴에 힘들어도 그렇지. 숙녀를 앞에 두고 예의는 차려야 할거 아냐. 억지로 쑤셔 넣던가!”
그녀가 승질 부리는 것을 계속 듣고 있기도 뭐해서 창성이 화제를 돌렸다.
“식사하실 때 신라그룹 측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뭐라 그러든가요.”
“오늘밤 9시 이후로 만날 수 있으면 연락달라더군요.”
1980년대. 신라그룹의 선대 창업자 한용대에게는 늦게 낳은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한규일, 둘째가 한규만이다.
한용대의 생애 말년, 그는 두 아들에게 각각 재산을 분배하였는데, 그 당시 신라그룹에서 제일 규모가 큰 핵심기업들을 장남 한규일에게 맡기고 그외 다른 기업은 차남 한규만에게 물려주었었다.
한용대가 작고한 이후, 한규만은 신라그룹에서 계열을 분리하였다. 그때 생긴 기업이 바로 제네틱스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한규일의 자녀 한소민과 한규만의 자녀 한소민이 학교를 졸업하고 경영에 참여했고, 동갑이자 사촌 관계인 두 사람은 제각각 제네틱스와 신라그룹의 영업운영 본부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라그룹 소유 백제호텔 커피숍.
“오랜만에 보네.”
“반년만이지?”
소민이 먼저와 기다리는 중이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 팔찌와 귀걸이를 착용해 멋을 더하고 과하지 않은 화장은 한편으로는 그녀를 청순하게 보이게 했다.
소라도 그에 지지 않았다. 같은 피를 물려받아서 인지 이목구비가 아주 조금은 비슷한 두 사람이다. 이 시대 여왕다운 기품 있는 옷차림으로 다리를 꼬고 앉으면서 멋진 각선미를 드러냈다.
“곧 있으면 큰아버지 기일이지?”
“응. 기억하고 있었네.”
“그야 그날이 우리 회사 창립일이니까.”
새롭게 신라그룹을 이끌던 한규일 회장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의 아내인 이선주가 그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에 한씨 가(家)가 아닌 외부 핏줄이 신라그룹을 삼켰다고 생각한 한규만은 즉시 이에 반발하였다.
그는 신라그룹을 이선주로부터 되찾아오고자, 친인척이 운영하는 관계사들과 연합하여 지분 인수를 통해 수차례 공격을 시도하였다.
결국 신라그룹은 핵심기업 절반 이상을 빼앗기며 규모가 전보다 크게 작아졌고, 현재는 이선주 회장의 우호 지분을 이용하여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단, 몇개의 기업으로만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소라의 빈정대는 말에 소민은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뼈가 담긴 말투는 여전해.”
“어머,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해.”
소라는 전혀 미안한 얼굴이 아니었다.
잠시 후, 두 사람 사이에 은은한 커피향이 피어올랐다. 유리벽 밖의 야경이 근사했고, 실내 인테리어도 국내 최고급 호텔답게 훌륭했다. 아마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이곳이 한국이 아닌 파리의 어느 커피숍이라고 누군가는 착각했을 것이다.
소라가 말했다.
“널 만나자고 한 이유는 알고 있을거야.”
“연락이 올거란 예상은 했었어. 이번에 우리가 주운 돌연변이 사체를 돌려달라는 거지?”
“이해가 빠르니 잘됐네. 너도 알다시피 그 사탄을 닮은 사체는 우리 회사 소속의 수라가 잡은 거야. 너희는 그것을 강탈해갔고.”
“난 그렇게 생각 안해. 만약 우리 사막여우 팀이 너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사체가 있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 수 있었을까? 너희 수라들은 완전히 전멸했을테니 몰랐을거야.”
소라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돌려주지 않겠다는 거야? 그게 확답?”
소민은 미소를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초롱한 눈빛은 소라와의 기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으려 무척 애를 쓰는 모습이다.
소라가 커피숍 실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이 백제호텔의 지분을 좀 사볼까나. 나름 괜찮은 것 같네.”
“소용없어.”
“어째서?”
“백제호텔의 경영권은 이미 다른 기업에 넘어갔으니까.”
소라가 웃는다.
“너희 많이 힘들구나?”
“덕분에.”
그 말에 소라는 다리를 바꿔 꼬우며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댔다.
“좋아. 돌연변이 사체를 고스란히 돌려주면 제네틱스가 인수한 신라생명의 일정 지분을 너희에게 넘겨줄 수도 있어. 어떠니? 도움이 좀 될거라고 보는데?”
그에 소민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커피잔을 들어 입에 가져간다.
소라가 다시 물었다.
“싫으니? 내가 보기에 영광일텐데.”
“싫어.”
짧게 대답하고는 느긋하게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 태연한 모습에 소라는 조금 배알이 뒤틀렸다. 애써 얼굴에 평상심을 유지하며 물었다.
“꽤 자신 있다는 눈치네? 아직은 살만한가봐?”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론 나아질 수도? 기대해도 좋아.”
“혹시 그 사체에서 뭐 좋은 거라도 나왔니?”
“글쎄?”
소민이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소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응.”
소라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크게 내며 화장실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벽을 찼다.
“아우, 저 계집애가 진짜! 사람 열받게 하고 있어!”
몇분 후 화장실에서 돌아온 소라는 차분한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돌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굳이 날 만난 이유는 뭐야?”
“너한테 보여줄게 있어서.”
“뭐를?”
소민은 옆에 놓인 핸드백을 열고 사진을 몇장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사진속의 인물을 가리켰다.
“이 사람. 신우주라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