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그만 하세요! 이러다 죽겠어요!”
하나가 다가와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우주는 그치지 않았다. 정철의 얼굴은 피멍이 들어서 그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정도임에도 때리고 또 때렸다.
“여기서 그칠순 없소! 저번에 한번 봐줬더니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쓰레기짓을 일삼다니 내 괘씸해서라도 안되겠소! 이번 기회에 아주 호되게 당해봐야 다음에 또 안그럴거요!”
“이제 충분하니까 적당히 해요 제발!”
이대로는 우주가 사람을 죽일것 같은 생각이 들자 하나가 더 악을 써서 말렸다. 그의 등을 힘껏 주먹으로 막 때렸다. 나중에는 총을 들고와 개머리판으로도 때렸다.
“우주 씨! 신우주 씨! 나 좀 보라구요!”
그럼에도 멈추질 않자 그녀가 땅바닥에 주저 앉은 채 크게 울부짖었다.
“야 인마아아! 그만하라구우우!”
처절하게 외쳐봤지만 소용없다.
그녀는 다시 일어났다. 그가 휘두르는 팔을 붙잡을 생각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만 우주의 팔꿈치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았다.
“꺄악!”
그녀가 나자빠졌다.
“낭자!”
깜짝 놀란 우주가 얼른 뛰어가서 그녀의 상체를 감싸안았다.
“하나 낭자 괜찮소? 많이 아프오?”
우주의 품에 안긴 하나가 아픈 이마를 어루만지며 울먹이고 말했다.
“그만 좀 하라구요. 그러다 사람 잡겠단 말이예요.”
우주는 표정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단단히 열받은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잡을놈 잡는건데 뭐가 어떠오.”
“누가 뭐래요? 근데 죽을 까봐 그러죠. 사람이 죽으면 우주 씨가 큰일난단 말이예요. 감옥에 간다구요!”
하나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겁탈 당할뻔했던 충격도 아직 남아 있었고, 우주가 죽일듯이 사람 패는 모습까지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그녀를 힘들게 했다.
하나가 우는 모습을 보자 우주는 더할 생각이 없어졌다. 게다가 어쩌다 그녀를 때리기까지했으니 무척이나 미안했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이제 안할테니 그만 우시오.”
“정, 정말이예요?”
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생이 매복하는 곳으로 함께 갑시다. 임무를 마칠때까지 내 안전하게 지켜주리다.”
하나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그래요. 알았어요. 빨리 가요.”
그녀가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살이 훤히 보이도록 벌어진 슈트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녀가 부랴부랴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그러고는 수줍은 표정으로 우주를 흘끔 바라보았다.
반사적으로 눈길이 갔던 그는 급히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한다.
“옷이 참. 크음!”
이어서 쓰러진 정철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게 다 이놈때문이오.”
두 사람은 곧바로 길을 나섰다.
그대로 숲속을 가로질러 걷는데, 허리에 찬 무전기가 치지직 울렸다.
[아아, 여기는 멧돼지 1이다. 팀원들에게 긴급히 전달 사항이 있다. 우리 팀원인 멧돼지 99와 13이 임무에 불만을 품고 멧돼지 2와 3을 폭행한 뒤 도주 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는 치정관계에 의한 99의 우발적 범행으로 보이며, 이에 팀을 이끄는 팀장으로서 모두에게 명령한다. 이번 사건은 명백한 근무법 위반과 더불어 상대는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 모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비상사태라고 판단해 즉결처형 권한을 발동하겠다.]
헤진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며 입을 틀어 막았다.
[따라서 지금부터 멧돼지 팀 전원은 매복 임무에서 추적 임무로 전환, 도주한 두 사람의 추격을 실시하도록 하며 발견시 즉각 발포를 허가한다.]
[멧돼지 4, 수신 양호.]
[멧돼지 7, 수신 양호.]
[멧돼지 15, 수신 양호.]
.....
...
.
하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름끼치는 생각이 밀려온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다 저 때문이예요. 그냥 참았으면 됐을텐데, 저 때문에 죄없는 우주 씨까지 휘말리게 만들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흑흑...”
“그런 말 마시오.”
담담하게 대꾸한 우주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짙은 어둠속에 군데군데 빛이 보였다.
얼마 안지나 모든 빛이 꺼졌다. 장비를 전부 챙긴 뒤 이제 본격적인 추격을 개시했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하나 낭자.”
“네...”
하나는 자포자기한듯 목소리에 힘이없었다.
우주는 그녀의 뒤로 가서 양겨드랑이에 팔을 넣고 번쩍 들어올렸다.
“어, 어쩌시려구요?”
헤진이 의아한 얼굴을 하며 다리에 힘을 주고 섰다.
“이럴때가 아니오. 얼른 안경부터 쓰시오.”
그는 팔뚝에 달린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각 팀원마다 소지하고 있는 선글라스는 야간투시경과 마찬가지였다.
“설마, 싸우시게요?”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오. 어차피 이 레지스트 쉴드 안에는 몸을 숨길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고.”
“예?”
하나는 한순간 멍했다.
“우린 겨우 두 명이고 상대는 스무 명이라구요!”
“그건 전혀 상관없소이다. 내 예전에는 1대 100으로도 싸워봤소.”
“허풍이 담긴 무용담을 듣자는게 아니예요!”
우주가 웃었다.
“나만 믿으시오. 내 저들을 뚫고 후방에 있는 다른팀을 만날 생각이외다. 만나서 우리의 무죄를 주장하겠소.”
“아무리 그래도 절대 뚫고 나갈 수 없을 거예요. 상대는 최첨단 장비와 무기를 가지고 있단 말이예요. 그러지 말고 우선 무전기로 타협을 시도해봐요. 네?”
우주는 준필이 자신에게 했던 짓들을 떠올렸다.
“이준필이가 우리 말을 들어주리란 생각은 전혀 안드오.”
하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예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잘못했다고 빌고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만 하면...”
그녀는 두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떨궜다. 끔찍한 생각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우주가 그녀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고 쳐다봤다.
“내 앞에서 다신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잘못한건 저들이지 절대 하나 낭자가 아니오. 낭자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야 한다오.”
하나가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봤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며 꽤 감동 받은 모습이다.
“우주 씨...”
그가 포근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나만 믿으시오. 소생이 꼭 지켜주리다.”
우주는 정말 자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계획을 구상하는데 딱 10초가 걸렸고, 뇌는 과거 수차례 겪었던 경험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충분했다.
“이것도 허풍이 담긴 무용담으로 치부될진 모르겠소만, 소생은 한때 적으로부터 악귀라 불린 적이 있었소.”
투투투투투!
아슬아슬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의 찰나였다. 두 사람이 서 있던 부근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위치가 발각된 것이다.
“꺄악!”
하나가 대뜸 머리를 감싸쥐며 우주에게 안겨왔다.
“몸에 힘빼시오!”
우주는 냅다 그녀를 얼싸안고 나무 기둥 뒤로 몸을 내던졌다.
밑에 깔린 그녀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여기서 몸을 피해 계시오. 금방 끝내리다.”
“가지 마세요. 죽을지도 몰라요!”
“염려 놓으시오.”
우주는 단호하게 말한 뒤 어깨에 둘러멨던 더블바렐 샷건을 꺼내들었다.
그는 홀로 나무 기둥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총을 쏘며 재빨리 이동을 했다. 적의 시선을 자신에게 끌어들일 속셈이었다.
그 예상대로 보이지 않는 적의 총구는 일제히 우주를 뒤쫓아왔다.
그러나 우주가 워낙 잽싸게 몸을 굴린 까닭에 멀리 세군데에서 튀기던 불꽃은 어느새 세 개에서 두 개, 한 개, 다시 두 개.
돌아가며 탄창을 가는 중인 것 같았다.
우주는 그틈을 놓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숲속을 가로질러 달렸다.
“크악!”
“윽!”
“헉!”
세 사람을 제압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죽이지는 않았다.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후려쳐 기절시켰을 뿐이다.
그들의 배낭과 무기를 죄다 뺏어서 하나에게 돌아왔다.
“다친 덴 없소?”
세 사람을 상대로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도 않았고, 놀라울 정도로 목소리가 침착했다.
하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대답했다.
“없, 없어요...”
이 남자는 대체? 하는 눈빛으로 우주에게서 시선을 뗄수가 없었다. 그녀는 심장이 두근 거렸다.
그 왜 있지 않은가 흔들 다리 효과라고.
적교 효과라고 불리는 이것은, 사람이 위험한 곳에 있으면 긴장을 하게 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더욱 빨리 친근해 진다는 심리학 용어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만나는 이성은 유독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는데, 지금 유하나가 딱 그러한 케이스였다.
“왠지 멋지다...”
그에게 반해버린 하나의 기분을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우주는 엎드려서 땅에 귀를 기울였다.
집중해서 무언가 듣는가 싶더니 그녀를 보고 말했다.
“나무 잘타시오?”
“나무요? 타, 타본적이 없는데...”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2개 조가 있었다. 우주와 하나는 일찌감치 나무 위에 올라가서 대기중이었다.
각 조가 뿔뿔이 흩어져 수색하길 잠자코 기다렸다. 총을 든 세 사람이 나무 밑을 통과할 즈음. 우주가 재빨리 나무 위에서 몸을 날렸다.
“아윽!”
“히익!”
“흐윽!”
후방에서 급습해 개머리판으로 각자의 뒷목을 한대씩 후려쳤다. 쓰러진 세사람을 보고 하나도 뒤따라 뛰어내렸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자신의 가슴을 주섬주섬 감추었다.
그런 뒤 활짝 웃었다.
“우주 씨, 정말 멋져요.”
조금 전까지 크게 걱정하던 표정은 이제 없었다. 그가 듬직해보였다.
우주는 아무것도 못느낀 채 그저 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나 씨는 소생이 꼭 지킬테니 염려마시오!”
“고, 고마워요...!”
쓰러진 팀원들의 무기와 배낭을 모조리 수거한 뒤 우주가 물었다.
“삽질은 잘하오?”
“삽질요? 중학생때 기르던 개가 죽었을때 묻어준거 빼고는...”
그녀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우주는 벌써 땅을 파고 있었다.
바닥을 깊게 파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위에 풀과 나뭇가지를 덮었다.
우주가 적으로부터 빼앗은 기관단총을 허공에 대고 세발쐈다. 얼마지나지 않아 덤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사주경계를 취하며 세 사람이 나타났다.
우주와 하나는 숨죽이면서 그들이 통과하길 기다렸다.
다행히 세 사람이 밑을 못보고 지나칠때, 우주가 물귀신처럼 한사람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으아악!”
놀란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양쪽에 있던 두 사람이 미처 아래를 보기도 전에 우주가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번쩍! 순식간에 세 사람을 간단히 제압했다.
그들은 바닥에 누워서 두 팔을 들고 우주가 내민 총구를 올려다봐야만 했다.
“무기와 소지품을 전부 꺼내서 저멀리 던지시오. 안그럼 쏘겠소.”
감정없는 눈빛에서 쏟아진 목소리는 얼음보다 차가웠다.
밧줄을 이용해 세 사람을 나무 기둥에 묶고나서 이동할 채비를 했다.
하나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혹시... 특전사 출신이세요?”
“특전사? 그런 말 모르오.”
“군대에 있는 특수부대 말이예요.”
“그런거라면 한때 김우진 장군 밑에 있던 적은 있었소.”
“김우진 장군요?”
“그렇소.”
하나가 이해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군인 출신이라 야전에 능하셨구나...”
◆
“으윽, 아악...”
쓰러져있던 정철이 몸을 뒤척이며 정신을 차렸다.
“아다다... 죽겠네 띠발...”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특히 얼굴에 멍이 잔뜩 들어 발음도 샜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세워 나무 기둥에 등을 편히 기댔다.
한순간 분한 기억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띤우쥬 개때끼...”
치지직!
땅에 떨어진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쪽으로갔다! 쏴! 쏴!]
[투투투투투!]
[어느쪽으로 갔나!]
[놓쳤다!]
가만히 무전기를 듣고 있다가 문득 입안이 불편해 혀를 움직이던 정철이 퉤 하고 부러진 이빨 다섯개를 내뱉었다.
“아 젇댔네. 띠발 내 이빨 어뜨카냐. 으윽!”
얼굴이 욱신거렸다.
머리를 뒤로 젓히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앉아 있는 것도 힘에 겨운듯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었다.
“띤우쥬 띠발때끼, 개띠발 호로때끼, 애뮈 창려때끼 걸리면 띠발 아쥬...”
부스럭.
근처에서 갑자기 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철은 그쪽을 돌아보며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띠발 어떤 때끼야! 슘찌말고 튀어나와! 주겨버리기 전에!”
그자는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철의 눈동자가 한순간 커졌다.
“땅년아, 안갔어?”
다름아닌 유하나가 알몸으로 서 있었다. 그녀라면 신우주와 함께 도망쳤을 터인데 어째서 여깄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알몸을 두 팔로 감싸고, 바로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때끼한테 따먹혔규나. 맞지?”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철이 피가 섞인 침을 질질 흘리며 킥킥 웃었다.
“그럴줄 알았어 개때끼. 지혼자 고상한척은 다하더라고. 원래 그런 때끼들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니까.”
그녀를 바라봤다. 팔로 젖가슴과 음부를 가린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거기서 뭐해 일루와.”
하나가 수줍어 하면서 천천히 다가온다.
정철은 그녀의 가슴 골짜기와 골반을 쳐다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하나 뛰는 나만 믿으면 돼. 으흐흐.”
피떡이 진 얼굴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하나가 허리를 굽히며 살포시 그에게 안겼다.
동시에 정철은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의 살을 파고드는 것 같은 큰 고통을 느끼며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달에 비친 하나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더니 상체는 개과 동물을 닮고 하체는 뱀꼬리가 달린 괴이한 모양으로 변했다.
“딸려줘어어어어!”
정철이 발악했으나 이미 늦었다.
돌연변이 동물은 그를 물자마자 한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
우주와 하나는 개울을 따라 걷는 중이었다. 물을 따라 걸으면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우주의 기지였다.
두 사람은 되도록 말수도 줄였다. 먼저 적을 찾거나 노출을 피하기 위해서 잡음을 없애고 필요한 말만 하기로 했다.
앞으로 가야할 곳은 정했다. 멧돼지 팀의 구역을 벗어나 다른 제네틱스 팀과 만날 생각이다.
밤하늘을 가리던 원시숲을 벗어나 사람 키 만한 갈대숲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앞서 걷던 우주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덕분에 벌어진 가슴을 신경쓰느라 잠시 아래를 봤던 하나가 그의 등에 머리를 툭 하고 부딪혔다.
그녀는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작게 말했다.
“아우, 아퍼라. 왜 멈췄어요?”
하나의 말은 우주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정면에 꽂혀 있었다.
“막내?”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막내야!”
“네, 오라버니.”
때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댕기머리를 한 막내는 먼발치에 서서 우주에게 살며시 웃어보였다.
우주가 환하게 웃었다.
“역시 살아 있었구나! 내 그럴줄 알았다! 그때 본게 환상이 아니었어!”
우주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막내야를 외치며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찰나였다.
“위험해요!”
갑자기 하나가 그의 등뒤에서 허리를 잽싸게 부둥켜 안고 옆으로 힘껏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엉켜서 갈대숲을 데굴데굴 굴렀다.
구르는 것을 멈추고 우주가 성을 내듯이 말했다.
“왜 그러는거요!”
“저거 안보여요?”
“뭘 말이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 그가 서 있던 자리가 폭격을 맞은듯 움푹 파헤쳐져 그야말로 엉망이다.
우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누가 그랬지...?”
하나가 급하게 소리쳤다.
“일단 일어나요!”
헐레벌떡 일어난 그녀가 빨리 손을 잡으라는 듯이 내밀었다. 얼결에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나는 그를 데리고 갈대숲을 가로질러 뛰었다.
상황을 전혀 이해 하지 못한 우주가 뒤에서 물었다.
“도, 도대체 뭔지 설명 좀 해보시오!”
하나가 앞을보고 뛰어가면서 대꾸했다.
“폭스네이크가 쫓아오잖아요!”
“폭스네이크?”
하나의 손에 이끌린 채 우주는 뒤를 돌아봤다.
“오라버니!”
하고 막내가 울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자신을 보고 도망가는 오라비를 보고 얼마나 서운할까.
우주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뛰는걸 멈추었다.
“난 동생을 만나야 하오!”
“우주 씨!”
하나가 얼른 되돌아가서 그의 손을 붙잡았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구요!”
“내 동생이오! 내 여동생이란 말이오!”
“왜 그래요. 대체!”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저건 폭스네이크라구요! 아직 몰라요?”
“폭스네이크?”
훈련 기간이 3주 뿐이라서 그가 모르는것 같다.
“여우의 몸에 뱀꼬리가 달린 돌연변이 동물이예요. 남자한테만 환영을 보이게끔 하죠. 어째서 저게 여기 있는거지?”
“뭣이오?”
우주가 깜짝 놀랐다.
허깨비를 보고 있다는 말에 그는 즉시 허리에 찬 컴뱃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것을 반대로 돌려 잡고는 자신의 엉덩이를 얕게 찔렀다.
“읏!”
비록 작은 상처지만 공기가 들어오니 따끔하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왠 괴물이 구불구불 기어서 쫓아오는 중이다.
그가 소리쳤다.
“이제 나도 보이오!”
머리와 몸통은 분명 여우다. 그러나 팔다리가 없고, 꼬리부분에만 비늘이 달린 것이 마치 뱀을 연상시키는 녀석이었다. 그 크기는 머리통이 사람 키만 하고, 전체 길이가 족히 20미터는 넘어보였다.
“손 잡아요! 빨리!”
하나가 내민 손을 잡고 다시 뛰었다. 어쩌다 그녀의 손을 잡고 뛰는지 몰라도 아무튼 우주는 이를 갈았다.
“감히 막내의 모습을 흉내내다니! 저런 요망한 괴물을 보았나!”
“앞에 낭떠러지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