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갈대숲을 벗어나니 암석으로된 절벽이 나타났다.
하나가 재빨리 로프건을 빼들었다. 총구에 갈고리를 꽂았다.
넓고 깊은 낭떠러지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우뚝 솟은 나무를 향해 로프건을 쏴날렸다.
푸슈슉- 촤라락!
굵직한 나뭇가지에 갈고리가 휘리릭 착 잘도 감겼다.
그녀가 한 팔로 우주의 허리를 끌어서 안았다.
“우웁!”
그대로 로프에 몸을 실었다. 폭이 50미터나 되는 절벽과 절벽 사이를 단숨에 도약했다.
“웁웁!”
우주는 허공을 날아가는 동안 땀에 젖은 그녀의 가슴 골짜기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보들보들하고 통통한 감촉이 코와 뺨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두 사람은 건너편 절벽으로 착지와 동시에 고꾸라졌다.
“아윽!”
“푸아아! 헉, 헉!”
잠시 숨이 막혔던 우주가 엎드린 채로 숨을 박박 몰아쉬었다.
그동안 하나는 등에 멨던 PSG-1 저격총을 빼들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건너편 절벽에서 입맛만 다시는 폭스네이크를 상대로 앉아 쏴 자세를 취했다.
푸슉! 푸슉! 푸슉!
소음기가 장착된 PSG-1 저격총이 띄엄띄엄 단발씩, 간헐적으로 총구에서 불을 내뿜었다.
곧바로 녀석의 몸에 군데군데 총알이 처박히면서 동시에 피 튀기는 광경이 보였다.
하나의 사격 실력은 수준급이다. 훈련소 동기 중에서 단연 1위였다.
덩달아 한숨 돌린 우주도 더블바렐 샷건을 빼들었다.
그녀의 자세를 흉내내며 쏘려는 순간, 폭스네이크가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입 안에 빛을 모았다.
하나가 급하게 외쳤다.
“라이트볼이에요!”
“라이트볼?”
“광구(光毬)요!”
그녀가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우주를 끌어안고 왼쪽으로 크게 몸을 내던졌다. 그와동시에 건너편에서 쏘아진 광구가 이쪽 절벽을 강타했다.
콰앙!
광구와 부딪힌 절벽이 곧바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흙먼지와 나뭇가지를 온몸에 뒤집어 쓴 두 사람은 서둘러 일어나 아찔하게 무너지는 절벽을 피해 반대쪽으로 무작정 달렸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폭스네이크는 또다시 입 안에 빛을 끌어모았다.
“피해요!”
두 사람을 향해 무섭게 덮쳐오는 빛의 구슬을 피해 각자 좌우로 몸을 크게 날렸다. 그대로 두 사람 사이를 통과한 광구는 멀찌감치 날아가 땅과 충돌하며 굉장한 폭음과 함께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것 참 학문 좀 닦아야겠군!”
우주는 혀를 찼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이끌던 상황이, 이런 방면에 지식이 많은 그녀쪽으로 넘어가면서 얼결에 기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한편으로는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정말로 영리한 처자야. 이대로 양반 가에 시집가도 되겠어.’
그 후 폭스네이크와 점점 멀어지면서, 녀석의 시야에서 두 사람이 사라지자 곧 광구도 멈췄다.
광구의 폭격으로 숲이 활활 불타오르는 가운데 가끔 나무 기둥이 쓰러지는 것을 재빨리 피해야 하거나 불길이 옮겨 붙은 수풀을 맞닥뜨렸을땐 우회해서 돌아가야만 했다.
위험천만한 환경 속에서 하나 좋았던 점이라고는 슈트에 단열 기능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앞길에는 반전이 있었다. 먹이를 놓치고 건너편 절벽에서 발이나 동동 구르고 있어야할 폭스네이크가 또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뱀이 상체를 세워 궁지에 몰린 쥐를 내려다 보는 것 마냥 두 사람을 노려 보았다.
하나가 넋이 나간것처럼 녀석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애, 애초에, 여기가 녀석들의 서식지였나봐요...”
그에 반해 우주의 눈빛에서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멀리서 엄호 해줄 수 있소?”
“엄호... 라니요?”
하나가 고개를 돌려 우주를 쳐다봤다.
그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전혀 기죽지 않은 표정으로 폭스네이크와 눈을 마주치며 당당히 서 있었다.
‘세상에, 무섭지도 않은가봐!’
그녀는 그의 멋진 모습에 크게 감탄했다.
우주가 말했다.
“내 계속 지켜보니 하나 낭자는 총을 잘쏘시는 것 같구려. 멀리서 엄호만 해주시오. 상대는 내가 하겠소."
“상대를 하겠다구요?”
미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우주가 먼저 움직였다. 그만큼 시각이 촉박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무릎을 구부리더니 단숨에 튕겨 올랐다. 허공에 높게 뜬 상태에서 허리에 찬 칼을 날렵하게 빼들었다.
우주가 보여준 동작은 그 어떤 짐승보다도 빨랐고 폭스네이크조차 눈으로 따라 잡지 못하였다. 그는 최대한 몸을 반대로 구부리며 칼을 쥔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처들었다.
‘만약 네 눈앞에 너보다 큰 짐승이 있어. 너 같으면 어디를 먼저 공략할거야? 나보다 칼을 잘쓰니까 잘알겠지?’
‘(나 같으면, 제일 먼저 그 짐승의 눈이나 귀를 찌르거나 잘라서, 내 위치를 못찾게 만들거야.)’
‘(검의 파지법은?)’
‘(벨 생각이면 어깨근육과 연결되어 있는 엄지와 검지는 힘을 풀고 중지에 힘을 줘야지. 그래야 크게 자를 수 있을 테니까. 만약, 순간 찌르기를 하겠다면 그 반대로 하면 되고.)’
일전의 료코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나서 그는 힘껏 악을 내질렀다.
“네놈이 굳이 내 앞길을 막겠다면 나 역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아아아아아아!”
그 오기(傲氣)는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었다. 수없이 목숨을 내건 전장 속에서 몇차례나 죽음 앞에 섰던 자만이 부릴 수 있는 뚝심이었다.
폭스네이크는 허공에 뜬 우주를 뒤늦게 눈치채고 커다란 두 눈으로 마주봤지만 이미 늦었다. 우주는 녀석의 오른쪽 눈을 향해 대각선으로 날카롭게 휘둘렀다.
칼날은 각막을 갈랐고 들짐승의 그 안까지 무참히 찢어버렸다.
짧은 순간 한쪽 눈을 잃은 폭스네이크가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긴 몸통을 배배 꼬며 날뛰었다.
“큭...!”
회심의 일격을 날린 우주는 그대로 추락하면서 몇차례나 땅바닥을 뒹굴렀다.
“캐애애애액! 캐애애애액!”
폭스네이크는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꼬리를 휘두르며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꼬리를 내려 찍을 때마다 주변 나무가 사정없이 부러지고 먼지와 나뭇가지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우주는 냅다 자리에서 일어나 곧잘 그것을 피해다녔다. 하나는 그를 엄호할 생각에 한쪽 구석으로 피신한지 오래였다.
우주가 쥐새끼 마냥 잘도 도망다니자, 열이 오른 폭스네이크가 그를 더욱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슈트는 그야말로 최적의 전투복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났지만 통풍과 흡수가 잘돼 결코 젖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가벼우면서 신축성도 뛰어났다.
왜 여태 이걸 몰랐을까.
나한테 이렇게 멋진 장비가 있었다니!
우주는 신이 났다. 항상 제대로 잠도 못자고 배고픔을 잊어야하는 악조건 속에서, 죽어간 왜놈의 무기를 주워다 썼을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든게 체계적이며 지원도 완벽했다.
그러니 어찌 안 날아다닐 수 있겠나.
“엄호할게요!”
하나의 목소리가 가깝다.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한쪽 눈을 조준경에 갖다 붙이고 방아쇠에 손이 갔다.
퓩! 퓩! 퓩!
세발의 총알이 폭스네이크의 털을 뚫고 심장 부근에 파고 들었다. 구멍난 피부에서 곧바로 피가 솟구쳤지만 그리 치명상은 되지 못한듯 싶었다. 피해는 미미했다.
그녀는 몇발을 더 쏘고 나서 초조한 듯이 탄창을 갈아끼웠다. 마음과는 다르게 부들부들 멋대로 떨리는 손가락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순간 폭스네이크의 움직임은 멈추었고 별안간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이게 뭐지?”
우주는 위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폭스네이크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하나가 은신해 있는 방향으로 주둥이를 크게 벌린 채 주변의 입자를 뭉쳐 빛구슬을 만들고 있었다.
우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피하시오! 광구외다!”
하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지직하며 빛구슬이 발사되었다.
일순간 어둠이 걷히고 주변이 환해졌다.
“바로 지금이다...!”
우주는 얼른 칼을 집어넣고 더블바렐 샷건을 빼들었다.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칼보다 효과적인 것이 바로 이 대포와 같은 총이다. 그는 광구가 발사된 후를 노릴 심산이었다.
광구는 숲을 가르며 일직선으로 날아가더니 100여미터 날아간 지점에서 이내 큰 폭발을 일으켰다.
폭스네이크는 연기라도 잘못들이마셨는지 머리를 위아래로 크게 흔들면서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그 한순간의 틈을 타 우주가 녀석의 등으로 펄쩍 뛰어 올랐다. 그대로 몸통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면서 목을 지나 머리통을 밟고 올라섰다.
지체없이 더블바렐 샷건을 들어 그 뒷통수에 조준했다.
‘산탄총 종류가 원래 대충 쏴도 잘 맞는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숙련자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기본 자세는 잡아줘야 해요. 여러발의 총알이 한번에 뿌려지듯이 나가다보니 일정 범위의 탄착군 형성도 쉽고 소총과 달리 개머리판을 어깨에 고정 시킬 필요는 없지만서도 문제는 반동이에요. 반동을 줄이는게 제일 중요한 거죠. 자, 이렇게, 이렇게.’
광구를 피한 하나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곧 그녀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폭스네이크의 머리에 올라타 있는 우주의 모습은 마치 타고난 사냥꾼을 보는 것만 같았다.
강렬한 전율이 일어서 몸이 꼼짝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다 팬 되겠어!’
우주는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폭스네이크의 머리가 절반이 날아갔다.
우주는 멈추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녀석 때문에 떨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털을 잡고 매달렸다.
몸이 좌우로 대롱대롱 흔들리는 상태에서 구멍 뚫린 뇌속에 어거지로 깊숙이 총구를 쑤셔 넣었다.
동시에 녀석의 꼬리가 우주의 등을 강하게 후려쳤다.
“크악!”
순간 퍼엉!
두번째 발사로 녀석의 눈알이 뽑혀나가고 사방에 뇌조각이 후드득 튀겼다.
뻥뚫린 눈과 코, 귀, 입안에서 뇌수가 줄줄이 새어 나왔다.
폭스네이크가 마침내 쓰러졌다.
땅에 떨어진 우주는 등에 큰 충격을 받아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저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곁으로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으로 우주의 머리를 조심스레 떠받히며 감탄한 눈으로 물었다.
“우주 씨 연봉이 얼마예요?”
우주가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뒤 대답했다.
“연봉... 말이오? 연봉은 갑자기 왜 묻소...?”
하나가 급하게 두 손을 젓는다.
“아! 혹시 된장녀라고 생각치는 마세요! 실력이 너무 대단해보이셔서 그만...”
“아니오 괜찮소이다. 갑자기 이 상황에 연봉 얘기가 나와서 그런거요. 아무튼 난 현재 사천 오백 받고 있소.”
“사, 사천 오백? 에...?”
그녀의 예상과 달리 너무도 적은 금액이었다.
◆
그로부터 30분이 흘렀다. 그때까지 이준필, 유구인, 이상득 이 세 사람은 다른 네명의 팀원과 함께 여전히 우주와 하나를 이잡듯이 찾아다니고 있었다.
구인이 한숨을 짓고 준필을 향해 말했다.
“형님 괜찮겠소? 이거 너무 시간이 길어지는데.”
상득도 거들었다.
“사실 회사에다가 치정관계로 보고하기도 애매한 상황인디 말여. 증거가 충분할지.”
“만약 임무에 상관없이 멋대로 애들 부린거 알면 우린 좆되는 겨.”
구인과 상득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와 후회된다는 모습들이다.
묵묵히 앞서 걷던 준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두 놈년 못찾으면 니들도 나도 끝장난다는 것만 알아둬라. 이렇게 된 이상 기필코 찾아내서 죽여야 해.”
이어서 인상을 구기며 짜증을 냈다.
“씨발, 진짜. 이렇게 된것도 전부 니새끼들 때문이잖냐 이 개새끼들아. 앞으로 팀에 있는 계집 보고 좆대가리 굴릴 생각만 해봐, 바로 총살시켜 버릴테니까.”
상득이 떫은 표정을 지으며 바로 대꾸했다.
“아이구? 형님이 그런 말하면 안돼지. 이번 일이야 미안하게 생각하는디. 우리 덕에 그동안 꽁뽕해놓고 이러기유? 요즘 국내에 마약 들이기가 졸라 힘든 까닭에 가격도 비싼 거 아시면서 참나. 아마 형님테 꽁으로 바친게 어림잡아 10억치는 되겠수다. 주는 게 있음 받는 것도 서로 있어야지.”
“이 개새끼가!”
“흐미!”
화가난 준필이 상득의 가슴팍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상득은 저도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고, 놀란 구인이 다급하게 준필을 말리며 소리쳤다.
“형, 형님 진정하십쇼! 원래 이 새끼 말 실수 잘하잖습니까. 이딴 새끼한테는 총알도 아까운거 아시면서. 진정하십쇼 제발!”
그때 준필의 허리에 찬 무전기가 울렸다.
[여기는 돌고래 1이다. 팀 내 도주범은 잡았는가? 전방 30km 지점에서 폭스네이크의 활동이 감지되었다. 현재 그쪽 상황을 알려달라.]
준필은 조용히 총을 거두며 무전기를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입감 양호. 멧돼지 1로부터 돌고래 1에게. 폭스네이크는 보이지 않는다. 도주범도 아직이다. 이상.]
[수신 양호. 멧돼지 팀이 맡은 임무는 우리가 계속 수행하겠다. 조속히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