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무전을 마치고 나서 준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는 이대로 물러날지 아니면 계속 가야할지 고민중이었다.
구인이 다가와 말했다.
“형님. 폭스네이크라면 여기서 그만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그놈 상대하려면 200억대 연봉자 하나 껴있으면 모를까 우리 실력가지고는 턱도 없어요. 더구나 우린 고작 일곱명뿐이고.”
“나도 알아.”
준필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구인은 계속 말했다.
“그냥 뒤로 돌아가서 사라진 정철이나 찾으러갑시다. 두 놈년이야 폭스네이크한테 걸려서 뒈졌겠죠. 이대로 계속 찾다가 잡것들을 잡기는 커녕 우리가 죽게...”
“좀 닥쳐!”
준필이 성질을 부리며 말을 잘랐다. 구인은 얼른 입을 다물었지만 내심 불만스러운 표정이 가득하다.
“그간 형님 같지 않은 놈 형님 대접 좀 해줬드만 마~이 컸네. 우리한테 그 따위로 밖에 못하겠는겨?”
불쑥 싹수없는 말투가 들리기에 준필이 돌아보니 또 상득이다.
그는 기가막혀서 콧방귀를 뀌었다.
“상득이 너 이 새끼. 드디어 실성했냐?”
“그래, 미쳤다. 어쩔겨? 꼽냐? 꼬와?”
험상궂은 표정으로 상득이 총을 겨누었다. 그에 준필도 잽싸게 총구를 맞대고 윽박질렀다.
“서로 죽자고? 그래 좋다! 어디 한번 쏴봐. 쏴봐 이 개새끼야!"
“너부터 쏴 씹새끼야!”
“두, 둘다 진정해. 자, 자꾸 왜 이러는데. 이럴때가 아니잖소 형님! 너도 그만해라 상득아!”
두 사람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하던 구인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를 부르는 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려왔다.
“구인아 이리와. 이리로 와 구인아.”
그쪽을 바라본 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니, 니가 어째서 여깄어?”
나무 옆에는 그의 동거녀가 서있었다. 오라고 천천히 손짓 하면서 웃고 있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아서 귀신이 보이나? 이 시간에 술집 나갔을 년이 왜 여기 있는거지?”
그때 누군가 구인의 어깨를 붙잡고 막 흔들어댔다.
“저 형님 왜 그러는겨! 누구 보고 저러는 겨! 말려봐 조옴!”
돌아보니 상득이다. 구인은 어이가 없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누구라니? 너가 갑자기 형님한테 총질해대니까 그러지!”
“내, 내가 언제? 내가 언제 형님한테 총질을 했다고 그러는 겨! 아이고 참나...!”
“참나는 내가 해야할 말이다. 이 씨발놈아! 형님이 그럼 미쳤다고 혼자 화냈겠냐? 형님 이 자식 하는 것 좀 보소. 참나...!”
구인은 답답한 마음에 준필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준필 주변에는 아무도 없건만, 그는 혼자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당황한 구인이 주춤거렸다.
“시, 시시팔! 이거 뭐야. 갑자기 이게 뭐야!”
“구인아 이리와. 같이 놀자. 이리와.”
저쪽에서는 동거녀가 계속 자신을 부르는 중이다.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혼란스러워했다.
“내가 죽을때가 됐나 씨발!”
또 그의 곁에 있던 상득은 상득대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서있었다.
“엄마?”
“상득아.”
“진짜 엄마 맞는겨?”
“그래 욘석아.”
“중학교때 죽은 엄마가 어떻게 여깄어?”
“이야기 해줄테니 어여 일루와봐.”
그때 뒤쪽에서 따라오던 여자 팀원이 먼 곳을 보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폭, 폭스네이크가 나타났어요! 저쪽에서 세 마리나 기어오고 있어요!”
하지만 어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도망은 고사하고 이 장소에 있던 일곱명 중 여성 두 명을 제외하고는 남성은 모두 각자 허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투투투투투투!
준필이 열받은 표정으로 무작정 총알을 갈겨댔다. 비명과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남성 팀원 두 명이 총을 맞고 사망했다.
곧바로 가까이 다가온 폭스네이크들에게 상득과 구인이 한꺼번에 잡아먹혀버렸다. 뒤이어서 총기로 난동 부리던 준필까지 입으로 낚아채 꿀꺽 삼켰다.
진작에 폭스네이크를 보고 달아난 여성 팀원들은 나름 열심히 도망갔지만 결국에는 헛수고였다. 어느새 바짝 따라붙은 폭스네이크에게 삼켜져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얼마 안지나 후방의 도로 건설 현장도 난리가 났다.
폭스네이크가 수라들이 쳐놓은 방어선을 깨고 파죽지세처럼 기세를 몰아 후방까지 덮쳐왔다. 총 8마리나 되는 폭스네이크가 한꺼번에 달려드니, 사방천지에서 광구가 쉴틈도 없이 날아와 이쪽저쪽에서 쉴틈없이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남자들은 엉덩이를 찔러 상처를 내라! 엔돌핀을 분비시켜야만 허상이 안보인다!”
굵직한 여성의 목소리가 허공에 바삐 울렸다.
전쟁터가 되어버린 현장에서 이번 임무의 총대장을 맡고 있는 임현주가 현장을 진두지휘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 개척 임무를 맡은 팀 중에서 고액 연봉자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고, 고액 연봉자가 적다는 말은 그만큼 실력있는 수라도 적다는 말이기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멧돼지 팀이 전멸된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함께 최전선으로 나갔던 돌고래팀과 쥐팀은?”
“몇몇 생존자가 있지만, 그 수가 너무 적습니다!”
“두 팀을 합쳐서 1개팀으로 만들라 전하고, 다른 여섯 팀에게는 각 팀당 한마리 씩만 맡으라고 전해라. 잡지는 못해도 발이라도 꽁꽁 묶으라고 해. 그런 뒤 우리 스컹크 팀이 한 팀씩 지원 해주면서 차례차례 각개격파해 나가겠다.”
“총 8마리 중에 7팀이 7마리를 맡으면 남은 한 마리는 어쩌시겠습니까?”
“한 마리는.”
현주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놔둘 수 밖에...”
솔직히 잡을 수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팀이 대형을 이뤄서 한마리라도 붙들고 있으면, 다른 쪽에서 광구 두세 개가 동시에 날아오는 등 사방에서 광구가 날아다니는 판국에 팀 대형은 금세 무너지기 일쑤였다.
심지어 현장에 남아 있기는 커녕 백공트럭을 몰고 혼비백산 달아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누군가 나서서 전황을 뒤집지 않으면...”
지금까지 가능한한 지휘에 집중하려 했던 그녀였지만 계속 뒷짐만 지고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모든 팀의 사기는 떨어지고 팀원들의 체력 고갈마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녀가 직접 나서서 폭스네이크에게 연신 총격을 가하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총대장님이 앞으로 뛰어가는 중이다! 모두 사격 중지!]
다급한 무전이 울려퍼지자 사방에서 울리던 총성이 일제히 멈추었다.
현주는 총을 마구 쏴 날리면서 힘껏 달려 나갔다.
그 순간에도 어디선가 날아온 광구가 수라들이 밀집해 있던 자리로 날아와 크게 폭발했다.
“으악!”
“큭!”
동시에 현주는 허공을 도약했다. 폭스네이크의 털을 붙잡고 목덜미 아래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녀석의 피부에 총구를 완전히 밀착시키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다다!
“죽어버려어어어어!”
그녀의 얼굴에 사정없이 피가 튀겼다.
나중에는 찰칵, 찰칵.
총알이 다 떨어졌다.
총알을 연신 퍼먹은 폭스네이크는 술통에 칼을 쑤셔 넣은 것 마냥 목덜미에서 피를 콸콸 쏟아냈다.
그녀는 폭스네이크의 피로 온몸을 샤워하다가 이내 손을 놓고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낙법을 구사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아, 하아...”
누운 채로 녀석을 올려다 봤다. 필사적인 공격도 역부족이었는지 아직 숨이 붙은 폭스네이크가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땅에 손을 짚고 일어서려는 순간, 꼬리가 그녀를 사사삭 휘감았다.
그대로 들어올려서 지면 이쪽저쪽에 수차례 내동댕이쳤다.
“저러다 과장님 죽겠어요!”
“난 도저히 못보겠어!”
“아, 우리 총대장님 어떡해!”
“일단 대가리만 계속 쏴봐!”
“아니요! 이렇게 멀리서 계속 쏴봐야 총알만 낭비하는 것 같아요! 저놈 털이 완충작용을 해서 최소 30cm는 가까이 대고 쏴야 그나마 총알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다들, ‘그걸 알아도 누가 갈건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따지듯 말했다.
“저렇게 거대한 녀석을 겁 없이 올라탈 수 있는 사람이 총대장 말고 이 자리에 있기나 해?”
그 직후 한 여성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기! 저기 있어!”
폭스네이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던 일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본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있네!”
“저놈 누구야!”
“우와!”
대책없는 판국에 어디선가 홀연히 우주가 나타났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폭스네이크의 등에 민첩하게 올라 타고 그 머리 위로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숙련된 사냥꾼처럼 더블바렐 샷건을 조준, 퍼엉! 퍼엉!
연달아 총구가 불을 내뿜었다.
순식간에 녀석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멋지다!”
“저 간뎅이 부은놈!”
사람들이 저마다 탄성을 자아내고 있을때, 하나가 급하게 달려왔다.
“이럴때가 아니에요! 누구 빨리 달려가서 총대장 님이 괜찮은지 살펴보세요! 그리고 다른 인원은 저와 함께 다른 팀을 지원하러 갑시다!”
결과적으로 우주의 맹활약과 하나의 신속한 대응으로 인해 혼란만 가중됐던 상황은 차곡차곡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사납게 날뛰던 폭스네이크 무리가 마지막으로 두 마리 남았을때, 우주는 체력이 고갈돼 탈진해버렸다.
그는 그대로 맨땅에 쓰러져 버렸고, 대신 현장에 남아 있던 70여명의 수라가 힘을 합쳤다. 그들은 짤짜여진 움직임으로 폭스네이크를 몰아세우며 그 마무리를 지었다.
◆
폭스네이크를 활용한 상품이 시장에 드물었던 이유는 그들이 무리를 이루어 서식하기에 잡기가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30명의 수라를 동원해야 하는데, 한마리를 잡다보면 금세 또 다른 녀석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으니 인력 또한 그 두배가 들었다.
자연스레 임금도 두배로 늘고 기업이 챙길 수 있는 이익도 적어졌다.
평범한 실력을 갖춘 보통의 수라로 잡기에는 인력 대비 효율이 좋지 못하자, 기업은 폭스네이크를 기피하게 되고, 그것을 이용한 상품에 희귀성이 생기는건 당연했다.
하지만 우수한 수라를 가진 기업은 다르다. 혼자서 30명분의 몫을 해낼 수 있으니 기업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신라그룹의 우연진. 생전의 차영웅. 그리고 지금 신우주처럼.
오전 8시. 폭스네이크 8마리의 사체를 싣고 전방주둔지로 복귀했다.
우주는 철제문 앞에서 검시관에게 연봉을 측정을 받았다.
배가 블록하게 나온 검시관이 활짝 웃었다.
“신우주 씨. 연봉 100억으로 올랐습니다. 축하합니다.”
“와우! 대박이다! 축하해요 우주 씨!”
곁에 있던 하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대뜸 우주의 두 손을 맞잡고 껑충껑충 뛰며 즐거워했다.
게다가 그 뒤에서 연봉 협상을 기다리던 다른 수라들까지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어처구니없는 연봉 상승이었다. 통상,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연봉이 최고 올라봐야 10억대였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노력여부를 떠나서 그날 운이 따라줘야 했으며 혼자서 거의 모든 돌연변이 동물을 독차지 하다시피 처치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연봉 상승은 그것을 월등히 상회하는 수준이 아닌가?
따라서 이는 결국, 초특급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다름 없었다.
레지스트 쉴드가 출현한 이래로 가끔 이런 놀라운 인물이 등장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그들은 온갖 매체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