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5화 (25/285)

25화

우주 뒤에 서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솔직히 폭스네이크 정도면 100억원 받을만 해. 당연한 거야.”

당시 현장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뒤따라 수긍하기 시작했다.

“저 친구 오늘 완전 영웅이었지.”

“나 역시 저 친구 덕분에 우리가 살아 돌아온 거라고 생각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우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그런 찬사를 받자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벌써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듯 어안이 벙벙했다.

검시관이 RPDA에 무언가를 입력하자, 전광판에 적힌 신우주의 연봉이 4천 5백만원에서 100억원으로 즉시 바뀌었다.

[신우주 : 100억원↑]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정부가 관리하는 통신 채널을 통해 한 여성의 목소리가 전방주둔지 넓은 광장 안에 울려퍼졌다.

[새롭게 100억원대 연봉자가 또 한분 탄생하였습니다. 소속 제네틱스. 이름 신우주. 모두 그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신우주 씨. 조금 전 기획재정부 장관 님으로부터 축하메세지가 도착하였습니다. ‘당신의 땀과 노력이 있어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습니다. 앞으로도 건투를 빕니다.’ 이상 기획재정부 장관님의 말씀이셨습니다.]

동시에 와- 하는 환호성과 함께, 우주를 부러워하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 전방주둔지 한켠에 있는 연봉 협상대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의 탄생은 곧 기자회견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시대 운동선수와 연예인 이상으로 국민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 바로 수라다.

이들의 존재는 나라에 커다란 경제적 부흥을 가져다 주었고, 더 나아가 전쟁터에서 만들어지는 영웅처럼 각 회사의 주도면밀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기자회견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제네틱스 경영운영 본부장 한소라가 도착하고 나서야 시작되었다.

우주의 기자회견장에는 내외신 기자들 300여명이 모여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생애 한번도 이런 주목을 받아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광경이 우주를 경악케 만들었다.

진행은 우주와 친분이 있는 김철수 과장이 맡았다. 우주는 최대한 말을 적게 하면서 미소를 많이 짓고 대부분의 대답은 철수가 채워 나가라는 소라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출발선을 끊은 우주가 국민과의 첫만남에서 허술한 면을 보이면 결코 안된다고 생각했다.

첫인상은 오래간다. 선망의 대상인 수라는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운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가 봤을때, 우선 가장 거슬리는 것이 우주의 구시대 말투였다. 인터뷰 시작 전에 몇차례나 계속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대답이 길어질 것 같으면 아무말도 하지말고 그냥 웃으세요. 김과장이 대신 답변할 겁니다.”

“알겠소. 그런데 이걸 꼭 해야만 하는거요? 난 이제 막 일이 끝났고 좀 자고 싶소. 지금도 눈이 감긴다오.”

기자회견 대기실. 날씬한 몸매를 드러내며 타이트한 정장을 입고 나온 소라가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스마트 폰을 꺼내들더니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리고 대뜸 야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소라가 새침하게 말했다.

“이래도 잠이 와요?”

“......!”

서양 여성이 해변에서 젖가슴을 드러낸 채 노골적으로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다.

우주는 그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눈이 커졌다.

“이, 이럴수가!”

속옷 한 장만 달랑 걸치고 아찔한 자태를 드러내는 처자의 사진은 그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국에 생중계 되는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회견장에는 우주와 소라, 두 사람만이 나란히 함께 앉아 있었다. 사회를 맡은 철수는 그 옆에 따로 서서 진행을 했다.

“중간일보 김성태 기자입니다. 하룻밤새 연봉 100억원을 받게된 소감이 어떻습니까?”

우주가 조금 천천히 대답했다.

“좋습, 니, 다.”

“더 길게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철수가 나섰다.

“현재 우주 씨는 로또와도 같은 연봉을 받게되어 감개무량해 하고 있습니다. 차차 생활이 안정되면 사회 불우이웃을 돕고 싶다고도 밝히셨구요. 자, 다음 기자분. 네. 거기 손드신 기자분 질문해 주십시오.”

“폭스네이크를 공략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더불어 자신만의 특별한 공략법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그 전에 소라가 철수에게 이 질문은 끊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철수가 대신 나섰다.

“그 질문은 제가 대신 답변드리겠습니다. 공략법이란 회사의 기밀과도 같으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구요. 만약 난 죽어도 알고 가야겠다 싶으시거든, 내년 제네틱스 채용 공고때 입사 지원을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회견장에서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 기자가 손을 들었다.

철수가 손으로 가리켰다.

“네, 그쪽분 질문해주십시오.”

기자가 일어났다.

“한민족 신문의 소인갑 기자입니다. 제가 나름 알아본 결과 우주 씨는 1989년 북한 출생으로만 기록 되어 있고 다른 정보는 일절 찾기가 힘든데, 북한 어느 지역 태생이고 가족관계 및 학력까지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철수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우주 씨에게 질문드렸습니다만.”

또다시 철수가 나서자 기자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쪽에서는 ‘왜 계속 니가 대답하냐?’ 며 짜증내는 소리까지 나왔다.

장내가 조금 어수선해지자 우주가 나서서 또박또박 차분하게 말했다.

“개성 출생. 평양 대학교 졸업. 사남매 중 셋째. 됐습니까?”

“평양 대학교 졸업이라 하셨는데 그것 말고도 북한 특수부대 교육 같은 것은 받지 않으셨습니까?”

“때마침 북한에서 핵폭발이 발생하는 바람에 기회는 없었습니다.”

인적사항과 관련된 답변은 기자회견 전에 외운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기자들은 알겠다는 듯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과 노트북에 재빨리 기입하기 시작하였고, 구시대 말투 없이 잘 대답한 우주의 모습에서 소라는 내심 놀란 눈치였다.

“하야시가 경성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왜놈들의 주도하에 경성역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소. 그리고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서 경찰과 헌병들이 시내까지 쫙 깔렸다오. 그런데도 누님 혼자 괜찮겠소?”

월명관이라고 써진 기생집 앞. 일제시대 복고풍 모자와 양장 차림을 한 세련된 모습의 여성과 허름한 복장의 인력거꾼이 주변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고문과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이 나라의 독립은 꿈도 꿀수 없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하야시를 죽이겠어.”

“좋아, 컷!”

오전 10시쯤 오늘 첫씬이 끝났다. 숨죽여 지켜보던 촬영 스태프와 감독, 보조 연기자와 매니저들이 막 웅성대기 시작했다.

“수희 씨! 이번에 비장한 표정 아주 좋았어!”

“감사합니다.”

“수희 씨는 정말 어디 하나 빠지는게 없다니까. 천성 연기자야!”

감독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김수희는 양장의 자켓을 벗어 코디에게 떠넘기고 허겁지겁 달려온 매니저가 건네준 차가운 배즙과 부채를 받아 들었다.

빨대가 꼽아진 배즙을 빨며,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동안 차량에 가서 에어콘 바람이나 쐬려는데 문득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있는게 보였다.

보조 출연자나 코디, 매니저들까지 죄다 몰려서 의자에 앱플패드를 올려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시청 중이다.

그냥 지나칠까도 싶었지만 조금 전 자신을 칭찬해주던 감독도 후다닥 뛰어가더니 곧장 합류한다.

슬쩍 다가가 맨 뒷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다들 뭐보는 거예요?”

동료 연기자의 매니저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헉 하고 놀란 얼굴을 했다.

“기, 기자 회견중입니다.”

“누구요?”

“신우주라는 제네틱스쪽 수라인데 이번에 폭스네이크 표피가죽을 8개나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워서 100억원대 연봉을 받는다네요.”

“아, 그래요. 폭스네이크라면 그럴만 하지.”

수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밴으로 이동했다.

차안에서 배즙을 쪽쪽 빨면서 앱플패드를 만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옷을 정리 하던 코디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언니 그 사람 되게 잘생겼어요.”

“누구? 지금 티비에서 기자회견하는 사람?”

“네. 턱이 브이라인에다가 콧대도 높은게 진짜 멋있게 잘생겼어요. 마치 언빈, 헌빈, 장둥건, 정오성, 하수 저리 가라던데요?"

“너 내 연기는 안보고 이거 봤구나?”

수희는 피식 웃으면서 앱플패드의 DMB를 켰다. 곧바로 나온 영상에는 기자회견이 한창 진행 중이다.

마이크를 쥐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 비춰졌다.

[신라그룹에서 연봉 470억을 받는 우연진 씨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뒤이어 화면이 전환되면서 기자회견장 테이블에 앉은 우주가 마이크를 잡는 모습이 보여졌다.

잠자코 앱플패드를 주시하던 김수희가 조금 놀란 눈빛을 했다.

“어? 이 사람...”

“언니 알아요? 하긴 전방주둔지에서 봤을 수도 있겠다.”

같은시각 강남의 어느 헬스장.

우연진은 아침부터 운동 삼매경이었다. 헬스장을 하루 통째로 빌렸기에 실내에는 자신과 매니저 둘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현재 TV로 생중계 되는 신우주의 기자회견을 시청 중이다.

조금 전 기자의 질문을 받은 우주가 대답중이었다.

[실례지만, 전 우연진 씨를 모릅니다. 그러니 그에 관해 어떠한 말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가 조금 놀란 눈치다.

[예?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스타 우연진 씨를 모른다구요?]

[그렇, 예. 크흠! 예. 모릅니다.]

현장의 기자들이 조금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국민에게 사랑 받는 톱스타 우연진을 철저히 무시하는 답변이었으며, 잘못했다가는 수많은 안티팬을 대거 양산할 만한 순간이었다.

그에 한소라가 재빨리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신우주 씨는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주변을 잘 못보는 스타일입니다. TV라든지, 인터넷이라든지, 일절 보지 않고 자신의 임무와 동료만을 생각하죠. 왜, 야구 선수 중에도 그런 사람 있지 않나요? 세상과 단절한 채 하루 종일 야구만 생각하고 밤새도록 배트만 휘두르는 그런 노력파 분들. 우주 씨도 그와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심지어 여자를 사겨보거나 클럽에 가본적도 없고 술이나 담배도 안피우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요즘 인기있는 수라나 연예인도 모르구요.]

[오, 신우주 씨는 자기관리가 무척 뛰어난가 봅니다.]

기자들이 모두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야, 꺼.”

잠시 운동을 멈추고 TV를 보던 우연진이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과자를 손에 들고 의자에 앉아서 TV를 시청하던 매니저가 냅다 리모콘을 눌러서 TV를 껐다. 흡사 유도 선수를 닮은 체격의 그가 웃음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형, 기분 상하셨어요?”

“아니, 전혀.”

“에이, 표정보니 상했구만 뭘. 보면 몰라요? 제네틱스 놈들이 일부러 저렇게 대답하라고 시킨거예요. 이 계통 최고 연봉자인 형님과 비교해서 지들이 낳은 새끼 더 추켜세우려는 거잖아요. 이제 막 100억원 받기 시작한 넘이 뭘 알겠어요? 계약서에 잉크도 안 말랐겠네.”

“됐고. 오늘 스케쥴이나 불러봐.”

“오후에 스마트폰 광고 하나랑 남성 화장품 광고 있어요.”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려왔다.

마이야 히~♪ 하며 운동기구 위에 올려둔 연진의 휴대폰이 실내에 울렸다.

마이야 후~ 마이야 하~ 마이야 하하♪매니저가 얼른 달려가서 그에게 휴대폰을 건네 주었다.

액정에는 ‘한소민 본부장’이라고 떴다.

연진이 얼굴에 흘린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받았다.

“오늘은 제 휴일인데 어쩐 일이십니까? 이 화창한 날에 일 얘기 하려는건 아닐테고 돈 되는 정보라도 있어요?”

[연진 씨도 TV 봤겠지요?]

연진이 살짝 코웃음을 쳤다.

“TV에서 뭐라도 해요?”

[신우주.]

“신우주? 걔가 누구죠? 저 멀리 미국 LA에서 일하는 청소부 이름인가?”

[말투로 보아하니 보셨네요.]

연진은 바로 말을 돌렸다.

“그래서 무슨 일로?”

[다음 임무 때는 우리 사막여우팀에서 빅허니비(Big honeybee)를 사냥했으면 합니다.]

“빅허니비 말입니까? 폭스네이크 보다 쉽지 않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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