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6화 (26/285)

26화

빅허니비란 사람 머리만한 거대한 꿀벌이었다. 이들은 수백마리씩 집단으로 레지스트 쉴드에 서식하고 있었다.

보통의 꿀벌과는 달리 사람을 마비시키는 독침까지 가지고 있었으며, 마비된 사람을 꿀벌집으로 데려가서 애벌레의 식량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런 빅허니비에게 상당한 가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로얄제리다.

일꾼인 빅허니비는 방사능으로 인해 몸집이 커지고 작은 짐승이나 벌레를 잡아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벌꿀을 더는 생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빅허니비 여왕은 계속 꽃잎과 꿀을 섞어 로얄제리를 생산해내는데, 다음 여왕벌로 선택된 애벌레에게 일벌이 물어오는 짐승이나 벌레 대신 여왕이 만든 로얄제리를 두 달간 먹이면 그 애벌레는 일벌이 아닌 여왕벌이 되었다.

그 로얄제리는 사람에게도 원체 효능이 좋아서, 1년을 매일 같이 먹은 사람은 신체 나이가 최대 20년은 젊어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그것은 그저 기분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제 피부의 잔주름도 없어지고, 검은 머리가 솟아나거나 체력도 20년 전 시절로 되돌아가는 등 확연히 눈에 보일정도로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껏 1년을 매일 같이 먹어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잡기도 힘들거니와 그 양도 적었다. 꿀벌집 한개에 들어있는 로얄제리의 양은 사람이 먹기에 딱 일주일 분량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빅허니비 여왕벌을 잡아서 국내로 들여와 양봉하겠다는 빅허니비 프로젝트가 한때 제네틱스에서 시도되기도 했지만 실패로 끝이 났었다.

제일 먼저 레지스트 쉴드와 똑같은 방사능 환경 조성이 인위적으로 어려웠고, 어찌저찌 된다고해도 사람 머리만한 일벌 수백마리 관리도 문제였으며, 여왕벌이 쉽게 윽엑하고 죽어버렸다.

[가만히 있으면 연진 씨 몸값도 슬슬 떨어질걸요? 제네틱스의 새얼굴 신우주가 광고도 다 뺏어가겠죠. 여자인 제가 봤을때도 꽤 호감가는 얼굴에다 화면빨도 잘받게 생겼더군요. 더구나 광고계에서도 이미지 소비 없는 뉴페이스를 원할테구요. 돈 좋아하는 연진 씨 아닙니까? 이대로 호락호락 왕좌를 넘겨주실 거예요?]

레지스트 쉴드에서 생산활동을 아예 안하거나 수라가 속한 기업과 관련 없는 제품을 취급하는 기업들은 다른 기업 수라를 데려다 CF를 찍었다.

“그건 분명 안되는 일이긴 한데, 그런데 제가 광고 못 찍으면 회사가 망할까봐 그래요? 신우주란 놈한테 다 뺏기면 돈 없어져서?”

수화기 건너편에서 피식 웃음이 들려왔다.

[다른 회사 광고 한편 못 찍는다고 우리 회사가 망할리는 절대 없겠죠. 하지만 연진 씨 얼굴이 TV에 한번 나올때마다 우리 회사 가전제품이 1초에 한대씩 팔리는 걸 감안하셔야죠. 다른 기업 제품도 홍보해주고 덩달아 우리것도 팔리면 일거양득이니까. 어쨌든 농담 그만 하시고 얼른 결정하세요.]

“흐음, 어쩔까나...”

연진이 전화를 받으면서 고추를 북북 긁었다.

“다녀올테니 깔끔하게 130억만 올려주십쇼.”

[600억을 달라구요?]

“예. 안그럼 빅허니비도 안잡고 추후에 있을 재계약도 안합니다. 아시죠? 앞으로 반년 남은거. 그리고 로얄제리 팔면 최소 1조는 받을거 아닙니까.”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요. 500억에 스톡옵션으로 신라 테크놀로지 주식 20만주로 하죠.]

“신라 테크놀로지 주식이라..,”

연진이 조용하게 매니저에게 손짓을 하자, 그가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증권가 어플을 키고 연진에게 액정을 보여주었다.

“신라 테크놀로지 20만주면 대략 10억인데 왜 이리 짜게 나오시나.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 우주항공 테마주는 돈 꼬라박기 딱 좋은데.”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만간 10억이 100억이 될 수도 있어요.]

연진의 눈이 커졌다.

“확실한 정보? 설마 그때 그 수정같이 생긴 돌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참고만 해두시고, 아무튼 제안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저도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콜. 콜콜, 받아들이죠 여왕님.”

만약 상대가 우연진이 아니었다면 경영운영 본부장의 말한마디에 무조건 예 하며 통화는 짧게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연진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신라그룹 에이스로 활약하는 그의 영향력은 기업의 간부에게 대놓고 노골적인 요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력했다.

당장 신라그룹을 떠나도 아쉬울 것 없는 사내였다.

정신없던 기자회견이 끝난 후, 우주는 소라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집에 돌아가서 빨리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가 점심을 함께 먹자고 권하기에 성격상 거절하기도 그렇고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함께 했다.

전에도 그랬듯이 장소는 소라가 골랐다. 그녀는 이번에는 고급 레스토랑을 찾았다.

메뉴판을 펼치고 잠시 혼자 고민하더니, 우주의 메뉴까지 그녀가 알아서 골랐다.

“웨이터가 음식을 나르고 나면 웃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팁을 주세요.”

“팁?”

그녀는 고급스러운 장지갑을 꺼내 우주에게 10만원을 건넸다.

“특히 웃을때는 윗니가 드러날 정도로만 웃고 아랫니는 안보이도록 아랫 입술로 가리세요. 마치 하회탈이 방긋 웃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왜 이걸 줘야하는 거요? 밥값만 주면 되는 거 아니오?”

“우주 씨를 위한 이미지 메이킹입니다. 100억원대 사나이로서 통큰 배포를 보여주자는 거죠.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나쁜걸 가르치는 건 아니니 절 믿고 요즘 시대에 맞게 행동하세요.”

‘요즘 시대에 맞게’ 라는 말이 걸려서 우주는 군말없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얼마 안지나 웨이터가 요리를 나르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떠나기 전 우주가 그를 잡았다.

“이것 쓰시오.”

어색하게 웃으며 돈을 건네는 그 모습이 상당히 안어울렸지만 웨이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돌아간 뒤 ‘냅킨은 펴서 무릎 위에 까세요’, ‘포크와 나이프는 바깥 쪽부터 사용하면 됩니다’ 라는 소라의 지루한 강의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녀가 대충 설명을 마치고 음식을 입안에 넣으려는 찰나, 음식을 코앞에 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우주가 보였다.

소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간을 좁히면서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똑똑 작게 두번 두드렸다.

우주가 놀란듯이 껌뻑 깨면서 입술에 묻은 침을 닦았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서도 냉랭하게 말했다.

“여성과 식사를 할때 자는 건 실례겠죠?”

“미,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그만 눈이 감겼소이다.”

“절 눈앞에 두고도 긴장하지 않는 사람은 회사에서 우주 씨가 처음입니다. 통이 큰 남자라서 그런가 아주 대단하네요.”

소라는 그에게 쏘아붙이듯이 말하고는 포크와 나이프를 우아하게 쥐고 스테이크를 썰었다.

“조만간 CF를 하나 찍을거예요.”

그녀가 하는 모습을 따라하던 우주가 물었다.

“CF라면 TV에 나오는 광고 말이오?”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주부터 철수 씨가 우주 씨의 로드 매니저를 맡을 거예요. 쉬는 날 밖에 나가실땐 가능한 그와 함께 다니도록 하시고, 곧 코디도 붙여줄 테니 옷도 좀 멋있게 입고 다니세요. 솔직히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은 정말, 되게 센스 없어 보여요. 길거리에 있는 거지나 좋아하겠어요.”

우주는 자신이 입은 옷을 흝어보았다. 청바지에 흰티, 운동화. 철수가 추천해준 패션이었다.

“그런데 김과장은 일이 바뀐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또 옮기는 거요?"

“우주 씨와 김철수 과장은 베스트 잖아요? 서로 좋아 죽겠다는데 어떡합니까. 상급자로서 업무 효율을 높이려면 친한 직원들끼리 붙여주던가 해야지.”

그녀가 하는 말마다 팅팅, 독설을 쏴대는 것이 조금 전 우주가 졸았던 일때문에 완전히 기분 상한듯 싶다.

“김과장의 일을 전방주둔지로 옮겨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오?”

“예. 그 편이 우주 씨한테 위로도 되고 좋잖아요? 모르는 사람만 있는 것보다 안심이 될테고.”

“아하, 과연.”

우주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탄성을 자아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가 문득 칼질을 하다 멈췄다.

우주의 접시를 쳐다보더니 이내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밥. 안먹을거예요? 또 저혼자 먹을까요?”

“아니오 먹소. 먹어. 나도 지금 배가 고프다오.”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것처럼 그 시선이 하도 뜨겁길래, 우주는 부랴부랴 포크를 들어 스테이크를 통째로 찍어 올렸다.

그대로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우걱우걱 씹어먹는데, 소라가 난데없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교양을 모르는 우주의 행동이 약간 어이없으면서도 재밌다는 눈치다.

“왜 웃으시오?”

“가, 갑자기. 추노라는 드라마에서 봤던 장혁이 떠오르네요. 얼굴에 잔뜩 때가 묻어서는 울면서 밥 먹는 모습이 아주. 푸훕.”

그녀는 입안에 음식을 문 채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우주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그간 가식적인 웃음을 벗어나 진솔하게 보여서 매력적이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소라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답구려.”

그 말에 소라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무방비상태에서 카운터 펀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가 던진 뜻밖의 말은 가슴이 셀레일 정도로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한 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냅킨을 집어 조심스레 입을 닦았다.

물론 그러한 기색을 우주가 모를 리 없었다.

“혹시 내가 오해를 살만한 실언을 내뱉었다면 용서해주시오. 그대에게 다른 뜻이 있어 그런건 아니외다.”

“아니, 아닙니다. 오해 안해요.”

그녀는 되도록 담담하게 표정을 관리를 하며 말을 이었다.

“별로 신경 안쓰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제가 원래 예뻐서 남자들한테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 그렇소?”

“예. 그리고. 앞으로 세금 다 제외해서 1억 2천 8백만원씩 매주 주급을 받게 되실텐데, 그 돈으로 연예인들 다니는 미용실 가서 머리도 새로 하시고 피부 관리도 받으세요. 지금 그 푸르딩딩한 수염자국 하고 덥수룩한 머리는 꼭 우주 씨가 산적처럼 보이네요. 이왕이면 면도기도 값비싼걸로 바꾸시구요.”

“그래 보이오?”

우주는 턱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이 식사를 끝마친 후, 우주는 남은 음식을 싸갈 생각에 지나가던 웨이터를 붙잡아 음식을 담을 비닐을 갖다달라고 요청했다.

“뭐하는 거예요?”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뜬금없이 해버린 행동에 대해 소라가 크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집에 고양이라도 키워요?”

우주는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크음. 뭐, 그렇소.”

“어쩔까요 손님? 싸드릴까요?”

“됐어요. 가보세요.”

소라는 웨이터에게 퉁명스럽게 말하고 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핑크색 장지갑을 오른손에 쥐고 혼자서 성큼성큼 계산대로 걸어나갔다.

정오가 지난 시각.

우주를 집앞에 내려 주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리 무식할 수가 있어! 정말 답답해 죽겠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입니까?”

창성이 운전 중이었다. 뒤쪽에 앉은 소라가 가슴을 쿵쿵 쳐가며 아주 난리였다.

“어떻게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할 수가 있어? 쪽팔려서 미치겠네. 다음부터는 거길 가지 말아야지 진짜.”

“동거녀한테 갖다 줄려나 보죠.”

창성이 웃음을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소라가 정색하며 귀를 기울인다.

“동거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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