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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28화 (28/285)

28화

“계시오~?”

안에서 기척이 없자 다시 두드린다.

“계시오~ 안에 누구 계시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철수가 자신의 수첩을 꺼내들며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네... 분명 이 집 주소가 맞을텐데.”

“뒤에 문이 있나 좀 살펴보고 오겠소.”

우주가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투박한 나무 판자로 가려져 있어서 안이 보이질 않았다. 그는 곧 집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동안 철수는 회사 인사지원팀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집 주소가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불쑥 들려온 소녀의 목소리에 철수가 무심코 전화를 끊었다.

겁먹은 표정을 짓는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네가 김아라니?”

“그런데요...”

“아, 잘됐다. 널 찾고 있었어. 우주 씨! 여기왔네 왔어!”

17살. 소녀의 얼굴은 너무나 하얗고 창백했다. 입술이 새파란 것이 추워보였으며 그간 굶어서 기운이 없는건지 눈빛이 불안해보이고 양손을 약간씩 떨었다.

집 뒤쪽에서 우주가 후다닥 걸어나왔다. 아라는 두 손에 큰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봉지 안에는 빈병이 잔뜩 모아져 있었다.

딱 봐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빈병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집 뒤편에서 우주가 튀어나오자, 아라는 흠칫 놀라서는 몸을 움찔했다. 두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을 띄웠다.

그런데도 철수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꼬마야.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 아니야.”

“다, 다가오지 마세요!”

제딴에는 최대한 다정하게 지어본 표정인데, 그것을 오해한 아라가 봉지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달아나려고 했다.

그 즉시 우주가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가지 마시오! 오빠의 친구요! 김일준!”

등을 보였던 그녀가 행동을 멈췄다.

우렁찬 소리에 놀란 것인지, 오빠 이름에 놀란것인지, 아무튼 간에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 곧바로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울먹였다.

“우리 오빠, 어딨는지 아세요?”

김아라에게는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한 여름인 7월임에도 불구하고 옷을 몇겹이나 두껍게 껴입고 털장갑에 털모자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신 콜록콜록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좀 춥네요...”

철수가 옷깃을 추스렸다. 벽에서 천장까지, 신문지로 지저분하게 도배된 방안의 공기가 싸늘하다.

“저 때문에 그래요. 콜록, 콜록.”

“예?”

“제가 아파서. 콜록!”

하긴 그녀 몸에서 냉기가 나오는 듯 싶었다. 가까이 있으니 오싹한 기분마저 들어 몸이 부르르 떨릴 것 같았다.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그녀 앞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우주가 물었다.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는데 냉증이오?”

“네... 전신 냉증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증세와 다르고 치료법도 안듣는다고 전에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콜록.”

철수가 끼어들었다.

“그럼 방에 난로 하나 없이 매일 이렇게 지냈어?”

“네...”

조금 전 첫인상 때문인지 아라는 철수를 조금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우주와는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하다가도 철수가 말을거니 슬쩍 시선을 피했다.

철수도 그걸 알고 방에 갖고 들어온 봉지를 앞에 끌어다 놓으며 웃으며 말했다.

“이거 같이 먹자. 떡볶이 좋아한다지?”

“아니예요. 저 싫어해요...”

아라가 에둘러대며 시선을 피했다.

‘아~ 이래서 애들은 힘들어~’ 하는 표정으로 철수가 우주에게 슬쩍 눈치를 줬다. ‘모르는 사람이 둘이나 눈앞에 있으니 애가 무서운가 봐요. 나 나가 있을게요.’ 라고 하는 듯싶다.

우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차 문을 잠그고 왔던가? 둘이 얘기 좀 하고 있어봐요. 잠시 나갔다올테니.”

“나가는 김에 마트가서 부탄가스 좀 사다 주시오. 떡볶이도 다시 끓여야 하고, 아 또 물도 좀 사오시오.”

방에 들어올때 허름한 부엌을 보니 도시 가스와 물조차 안들어오는 것 같았다. 빈 부탄가스 통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빈 생수통도 한쪽에 가지런히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 혹시 이 아저씨는 TV에서 봐서 그러니? 아니 오빠지 참.”

철수가 나가려다 말고 우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라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못봤어? 그때 사회봤는데.”

방긋 웃었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철수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철수가 방을 나와 부엌을 걷는데, 문득 밖에 나와 놀고 있던 바퀴벌레 세마리가 싱크대 밑으로 쑥 들어간다.

철수는 뜨끔 놀랬다가 미간을 살며시 찌푸리며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방안에 두 사람만 남게되자 우주가 입을 열었다.

“일준이는 지금 해외로 나가 있소.”

“해외요?”

“회사에서 파견 근무를 보냈다오. 그래서 당분간 연락이 힘들 것이오.”

“왜 저한테 말도 안하고 갔대요? 콜록. 콜록.”

“그래서 소생이 온거외다. 일준이가 전해달란 말이 있다오.”

“오빠 하고는 친한 친구분이세요?”

“음... 친하다는 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일전에 일준이가 그랬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요리가 떡볶이인데,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위해 배웠다고 소생에게 자랑을 하더이다.”

그 말에 아라가 고개를 숙이며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보고 있는 신우주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미소로 말을 이었다.

“일준이가 당분간 여동생을 부탁한다며 내게 돈을 맡기고 갔소.”

“얼마나요? 콜록!”

“내게 매우 큰돈을 맡겼는데, 그 돈으로 여동생을 병원에 입원시켜주면 좋겠다고 말하였소.”

“정말인가요? 오빠 돈 없을텐데...”

“아니오. 아니오.”

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 때문이오. 해외로 파견가면서 회사에서 돈이 많이 나왔다오.”

“힘든 일인가요?”

아라가 금세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렇죠? 힘든 일이니까 회사에서 돈 이렇게 많이 준거죠? 네? 솔직히 말해주세요. 제발...”

우는 그녀를 달래야만했다. 토닥여 줄 생각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놀라울 정도로 피부가 차가웠다. 사람이 과연 이런 냉기를 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수라?’

문득 떠오르는 단어를 애써 꾹꾹 눌러담았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철수가 갖다준 부탄 가스로 그녀와 떡볶이를 먹고 밖으로나왔다.

문앞에는 철수가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끝났어요?”

우주는 조금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간데?”

“간다고 하더이다.”

“잘됐네.”

철수가 차 키를 꺼내며 앞장 섰다. 그러다 뒤로 돌아 뒷걸음질하며 물었다.

“나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우주 씨가 어떤 성격인지는 아는데, 솔직히 한달에 4천씩 남한테 쓴다는 거 후회 안되요?”

“별로 후회 안한다오?”

우주가 양손바닥을 펼치며 농담을 하듯 밝게 웃어보였다.

철수도 덩달아 웃었다.

“하여튼 사람 좋다니까.”

그러면서 말했다.

“나도 천만원 보태줄게요.”

“괜찮소.”

“아니예요. 나도 우주 씨 덕에 연봉 6억 받는데 그 정도는 껌값이죠. 근데 하나만 물어봅시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왜 남의 가족까지 챙겨주는 거예요?”

철수가 걸음을 멈췄다. 우주도 따라 멈췄다.

우주는 상쾌한 표정으로 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날씨 쾌청하다. 햇빛이 강해서 눈을 찡그렸다.

“순리대로 갔으면 이런 돈 절대 못만졌을텐데, 갑작스레 운명이 어긋나 생긴 돈이라 그런지 소생에게는 전혀 아깝지가 않다오. 남에게 4천씩 줘도 배불리 먹고 살만 하다오.”

“철학자 나셨네.”

하하하, 엉뚱한 답변이었지만 철수는 웃고 넘겼다.

“오늘 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해요. 아, 료코 씨 있나? 남 돌봐주느라 바쁘네 바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소.”

“이건 뭐 유부남도 아니고, 졸지에 부인에 딸까지 생겨버렸네.”

“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오?”

그렇게 잡담을 주고 받으며 걷는 두 사람의 길에 태양이 밝게 내리쬤다.

오후 5시.

브니엘 원룸 앞.

에쿠스 한대가 서서히 멈춰섰다.

차에서 내리는 소라는 오늘 상당히 힘을 줬다.

평소 아끼고 아끼던 이탈리아 장인이 손수 수작업으로 만든 명품 옷을 꺼내 입었으니 말 다했다. 몸에 걸친 목걸이 팔찌만 해도 한화로 20억이 넘었다.

치마를 입고 늘씬한 각선미를 강조하면서 일부러 셔츠의 버튼을 세개 풀어 가슴골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그녀는 C컵이다. 같은 여성을 만나도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되게, 그녀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브니엘 원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나아갔다.

“여길 도대체 몇번이나 오는건지, 누가 보면 꼭 신우주랑 사귀는 줄 알겠네. 흥.”

우주가 사는 301호 문앞.

료코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번이나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보아도 집안에 사람이 없는 듯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뒤따라온 창성에게 물었다.

“안에 있는거 확실해?”

“네. 외출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소라는 눈썹을 찡그렸다. 혼자 팔짱을 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오른손으로 입술을 비볐다.

그러다 문득 일본어로 말했다.

“(신우주 씨와 관련된 일로 회사에서 찾아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철컥.

그녀가 일본어로 말하니 곧바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라는 내심 빙고라 외치며 본격적으로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실례합니다.)”

료코는 비좁은 문틈 사이로 소라와 그 뒤에 서있던 창성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흝어보았다.

“(무슨일이죠?)”

“(안녕하세요 료코 씨. 우리 한번 만난 기억이 있죠?)”

거의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두 여성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창성은 자켓 속으로 슬쩍 손을 넣어 권총을 매만졌다.

문 뒤에 숨어서 눈만 빼꼼히 비치는 료코의 모습은, 감정이 없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결코 숨길 수 없는 살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고 손대는 것을 거부하는 들짐승을 연상케 했다.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소라가 창성에게 복도에 대기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그가 눈빛을 마주치며 심상치 않다는 신호를 보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소라가 집안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료코의 늘씬한 볼륨 몸매였다. 핑크색 티셔츠에 동일 색상의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은 단출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수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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