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그녀는 낯을 심하게 가렸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자주 머뭇거리며 말을 골랐다. 그래서 일까. 스컹크 팀의 남성 팀원들은 그녀를 보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는 눈치였다.
강한 여성들이 대부분인 이 전방주둔지 안에서 어쩌다 드물게 만나게된 이 유약한 여성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신선했을 것이다.
하나가 말을 마치고 나서 누군가 바로 외쳤다.
“남자친구 있어?”
“없, 없습니다!”
다른 쪽에서 외쳤다.
“첫 섹스 언제?”
“없, 없습니다!”
“키스도 안해봤어?”
“키, 키스도 못해봤습니다!”
푸하하하!
눈을 꽉 감고 수줍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고 모두가 재밌다는 듯이 웃어댔다.
“시끄럽다! 다들 그만 웃고 주목해!”
한 손에는 지휘봉을 들고 있는 임현주가 양손을 허리에 집고 씩씩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한 마디에 모두의 웃음이 뚝 멈췄다.
“하나 양은 수고했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도록. 이어서 다음은 신우주. 이쪽에 서라.”
우주와 하나가 서로 잠깐 눈을 맞췄다. 우주가 잘했다는 눈신호를 보냈다. 하나가 고마운지 살짝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맨 뒷줄로 들어가고 우주는 열중 쉬어 자세로 팀원들 앞에 섰다.
우선 임현주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여기 서 있는 신우주 군은 오늘 스컹크 팀 내에서 98번을 맡게되었다. 나이 22세. 고향 개성. 제네틱스 수라 교육생 훈련교육 전무. 이 밖에 100억의 연봉을 받는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경력 및 특기도 없다. 한마디로 돈 많이 받는것 말고는 특징도 없는 초라한 사내다.”
상당히 시큰둥한 소개였다. 듣는 팀원들조차 저렇게 무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임현주의 표정은 전과 변함없다.
“신우주. 스컹크 팀원이 된 소감 한마디 해라.”
“네.”
정작 우주는 개의치 않고 팀원들을 바라봤다.
“반갑습니다. 신우주입니다.”
그는 비교적 차분한 얼굴로 여유롭게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과 이렇게 같은 팀으로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앞에 서 계시는 늠름한 분들과 오늘 하루 함께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모를 긴장감이 들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의욕이 솟아나기도 합니다. 믿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비록 임시로 스컹크 팀에 들어왔긴하지만, 여러분들은 제 소중한 동료입니다. 여러분도 절 잠깐 지나가는 친구가 아닌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료라고 생각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우주는 집에서 료코를 세워 두고 연습한대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잘해냈다.
그가 ‘이상입니다.’ 라고 하며 말을 끝마쳤을땐,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전원에게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역시 100억대 연봉자는 말도 잘하네!”
“고놈 참 남자답고 멋지다!”
“우주 씨 이따 집에 갈때 사인 한장만 해줘요!”
구시대 말투 없이 잘해냈다는 뿌듯함에 우주는 기분이 좋아졌다. 표정도 한껏 밝아졌다.
현주가 옆으로 다가오며 그를 똑바로 보고 마주섰다. 모두가 그를 반겨주는데 반해, 오직 그녀만은 표정이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신우주.”
“네, 팀장님.”
“지금 미리 경고하겠다.”
그녀의 뜸금없는 선포에 우주는 눈이 커지며 구시대 말투가 절로 나왔다.
“무엇을... 말이오?”
“연봉 100억원 받는답시고 깝치지 마라. 알겠나? 여긴 너보다 경험많은 수두룩 하다는걸 명심해주길 바란다.”
험악한 눈초리로 노려보는 것이 한여름에 무슨 겨울이 온줄 알았다.
뭘까? 이 사람은.
팀장은 왜 이런 말을 할까?
우주는 잠시 대답을 주저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계속 말했다.
“난 가식이나 허세 부리는 놈들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들로 인해 팀 내 분위기가 망가지고, 팀 전체가 피해를 본적도 수두룩 하다. 너도 그럴텐가?”
“소생이 허세를 부린단 말이오? 설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외다.”
현주가 콧방귀를 꼈다.
“나이 22세. 아직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를 나이다. 그런 나이에 100억원대 연봉자라니. 부디 자만은 하지 않길 바란다. 더구나 넌 훈련생 교육조차 제대로 수료하질 못했다는 것을 상기해라. 그런 주제에 뭘 할 수 있지? 또 네놈이 이 일에 관해서 뭘 알지? 낙하산 인사가 아니고서야 하찮은 경력가지고 어떻게 100억원씩이나 받는단 말이냐.”
우주가 잠시 깊게 생각해본뒤 물었다.
“실례지만, 낙하산 인사란 말이 무슨 말이오?”
순간 팀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주는 단지 순수하게 물었을 뿐인데, 마치 비아냥대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주가 조금 전보다 더 열심히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전문 지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학연, 지연, 인맥을 통해 임명된 바로 너 같은 놈을 말하는 거다. 알겠나?”
분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누군가 일부러 외쳤다.
“어이, 대장! 실력이 있으니까 100억씩이나 받지! 얼른 출발 하자구!”
현주가 팀원들을 쳐다봤다.
“돈이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 정말로 실력이 있는 건지, 혹은 이 미디어 시대에서 마케팅에 의해 조작된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거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하룻밤새 유명인이 된 자를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그녀가 다시 우주를 돌아봤다.
“신우주. 내 눈에 넌 아직도 피래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100억원을 받는답시고 남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줄 생각에 치기어린 객기는 부리지 마라. 그건 오히려 과욕과 독선에 불과해. 명심해라.”
현주는 그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다. 그녀가 떠나려는 순간 한 팀원이 외쳤다.
“지난 임무때 대장을 구해준 것도 우주잖아!”
“나도 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현주는 딱 잘라 대답한 뒤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
이번 문화재 수거 임무에는 팀원을 수송하는 백공트럭 한 대와 장비 및 문화재를 실을 25톤 화물트럭 두 대가 동원되었다.
전방주둔지를 떠나 도로를 달렸다.
문득 우주의 우측에 앉은 40대 초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까 대장이 너무 심했지? 이해하게나. 대장도 입장이 입장이다 보니까 그러는 거야. 자네도 한번 생각해보게. 자네가 어느팀의 팀장이고 새파랗게 젊은 놈이 밑으로 들어왔는데 연봉도 세고 유명인이야. 자네 같으면 어쩌겠나? 부담 안돼? 이 녀석이 과연 내 말을 잘들을지 말지 그런 생각도 들고. 행여나 말도 안듣고 딴청이나 피워봐, 열받을게야.”
“그럴것 같소. 소생도 아마 그럴 거요.”
현주에게 직접 갈굼을 당한 당사자인 우주는 평화롭게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보살과 다름 없었다.
그러나 우주는 100여년 전에 이미 한 집단을 이끌던 우두머리였다. 그 복잡한 심정을 이해못할리도 없었다.
남자는 담배를 한모금 빨더니 말을 이었다.
“초반에만 군기 잡는거야. 나중에 서로 자주보고 익숙해지면 그렇게 깐깐한 대장도 아니야. 일 할때는 확실히 일하고 풀어줄때는 확실히 풀어주는 그런 스타일이거든. 의외로 저런 성격을 좋아하는 놈도 많아. 그리고 자네도 아까 봤지? 그 궁둥이.”
그때 우주의 왼편에 앉아서 잠자코 대화를 듣기만했던 하나가 조용히 귀를 곤두세웠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남자를 바라봤다. 고개를 갸웃했다.
“대장 궁둥이라니 무슨 말이오?”
“왜 딱 남미스타일이잖아. 브라질 여자 궁둥이 봤나?”
“글쎄올시다. 본적이 없소.”
“한번도?”
“그렇소.”
“허어, 답답한 친구네. 혹시 아는 사람들한테 답답하다고 욕먹는 건 아니지? 그 많은 돈, 여자 따먹는데 안쓰고 뭐하는 겐가. 요즘 추세를 모르네 몰라. 자, 이것 보게나.”
남자는 자신의 배낭 안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이내 사진을 한장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 사진에는 구릿빛 피부에 육감적인 몸매를 한 남미 여성이 크고 두툼한 엉덩이를 보란듯이 들이내밀고 있었다.
“봐봐, 엉덩이 엄청 큼지막 하지? 보는 것만으로도 꼴릿하지 않아? 한국 여자는 얼굴 고치는데 집착하지만 브라질 같은 남미 여자들은 엉덩이에 집착해서 엉덩이 커지게 하는 수술을 그렇게 받는다더군.”
“음...”
우주가 주의깊게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잘익은 수박처럼 둥글둥글하고 정말로 크고 탐스럽게 생긴 엉덩이었다. 그 엉덩이 볼륨감이 일반 여성을 훨씬 뛰어넘는 모습이어서, 그 사이에 남자 얼굴이 파묻히면 숨도 못쉴 것처럼 보였다.
우주가 침을 꼴깍 삼켰다.
“대, 대장 엉덩이가 진정 이렇게 생겼단 말이오?”
“그렇다니까. 거기다 엉덩이 성형도 안한 100% 자연산이야. 이따 내려서 한번 봐보라구.”
“지금 그런 이야기가 아니였잖아요. 아저씨.”
그때까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던 하나가 불쑥 쏘아붙이듯이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우주가 색을 밝히는게 싫다는 표정이다.
“우주 씨는 이런 여자가 좋아요?”
“아니, 아니 소인은 뭐...”
우주가 사진에서 시선을 떼며 딴청을 피워댔다. 중년 남자는 피식 웃음을 짓고 사진을 가방 안에 도로 넣으며 말했다.
“대장은 군바리 출신이야.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을때 소령까지 진급했다가 북한이 사라지고 나서 제대했지만.”
“그래서 말투에 씩씩함이 묻어났던거요?”
“그렇지 뭐. 그게 어디가겠어? 어쨌건. 이제그만 도착할때까지 눈이나 좀 부치자구. 가서 이것저것 나르려면 꽤나 힘드니까.”
남자는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다.
두 대의 차량은 도로 한중간에서 멈춰섰다. 주변에는 높은 산지가 많았고, 어디선가 기이한 짐승 울음 소리도 들려왔다.
스컹크 팀원들이 잇따라 백공트럭에서 뛰어내리고 전원이 다 내리자, 현주가 그들 앞에 섰다. 그녀는 가까운 산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산 중간에 절이 존재한다는 정보가 있다. 우리는 그 절을 찾아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이번 임무는 절에 있는 불상, 불감, 청자나 그림 등을 옮기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 뒤에 짐칸이 달리고 특수개조된 산악용바이크 5대가 동원되었다. 그것을 다섯 사람씩 나눠탄 뒤, 일렬로 좁은 비포장 도로를 지나 험한 산길에 들어섰다. 덜컹덜컹.
가는 길에 간혹 홀로 돌아다니는 돌연변이 생물이 보이면 발견한 팀원들이 한 방에 죽여버리기도 했다.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바이크에서는 팀원 중 몇명이 얼른 뛰어 내려서 그 사체를 커다란 포대에 집어 넣고 뒤에 매달았다. 그런 상태로 계속 산을 오르다가 포대가 가득차면 그들은 다시 산을 내려갔다.
다른 팀원들은 산 중턱에서 부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표시이자 절의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 불이문, 그리고 대웅전 마당에 도착했다.
대웅전 뒤편에는 한폭의 그림처럼 거대한 좌불상이 보였는데, 높이 34m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홍콩 란타우섬에 있는 빅 부다(Big Buddha) 청동 좌불상과 그 크기가 맞먹을 정도였다.
“세상에, 절경이 따로 없구려.”
우주 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던 팀원 모두가 좌불상을 보느라 넋놓고 감탄하던 와중에, 현주가 유독 그에게만 대놓고 딴지를 걸었다.
“이봐 신우주.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딴짓하지 말고 어서 일이나 해.”
“알겠소.”
우주는 무심코 대답하고는 대웅전을 등지고 돌아섰다.
아까 차량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40대 중년 남자가 슬쩍 다가와 귀띔을 했다.
“군대 스타일이 아직 남아서 그래. 군대에서 신병은 일단 잘해도 못해도 무작정 갈구거든. 그래야 정신 바짝차리고 말도 잘들으니까. 자네가 다음에 또 우리팀으로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주면 더는 말 없을테니 안심하게나.”
남자는 등을 토닥이더니 곧 다른 곳으로 자리를 떠났다.
애초에 우주는 현주의 태도에 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굴러들어온 돌로서 그녀가 리더를 맡고 있는 이 팀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무거나 꼬투리 잡거나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딱 지킬것만 지켜주고 할일만 하면 그녀는 더는 말을 안했다.
문화재를 옮기는 작업은 순조로우면서도 반복적인 작업이었다.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이곳저곳 둘러보며 제법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일단 하나를 찾게되면 그것을 조심스레 들고 대웅전 마당에 정차된 ATV 바이크의 짐칸에 실으면 그 뿐이었다.
[스컹크3으로부터 1에게. 불화(佛?)와 잡기(雜器)를 실은 차가 하산 준비를 마쳤다. 허가해주기 바란다.]
[스컹크1 수신 양호.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운전하고 무사히 다녀오길 바란다.]
ATV 바이크의 짐칸이 꽉차면 운전자는 그를 호위하는 팀원 세 명과 함께 산을 내려가서 그것들을 25톤 화물트럭에 상차하고나서 다시 절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