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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32화 (32/285)

32화

우주와 하나는 일하다 마주칠때면 서로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격려 했다. 다행히 일하는 곳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기분도 좋고 편안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그리고 나중에 또 마주쳤을 때는 이번에는 하나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해요. 이곳에 마치 사람이 사는 것 같아요. 아까 어떤 방에 들어가봤는데 침구류도 잘 정돈되어 있었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어요. 부엌에 있는 식기도 잘 닦여 있었구요.”

현주는 스산하면서 넓은 절안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대나무숲을 등지고 있는 연못을 발견했다.

그녀는 근처에 놓인 큰돌에 앉아 지친 몸을 잠시 달래려 했다.

바람 한점 없는 열대야였다. 작은 바람도 없어 대나무잎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별안간 숲속에서 푸드득 하고 새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숲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오솔길에서 문득 인기척이 있었다.

“거기서 뭐하네?”

낯설은 북한 말투가 들려왔다.

서둘러 일어나 뒤를 돌아보면, 삿갓에 길다란 봉을 쥐고 있는 스님이 서 있었다.

레지스트 쉴드 안에서 난데없이 사람이 튀어나왔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핵폭발 이후 북한에서 살던 수라가 구조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스님은 돌연변이 동물의 다리를 한손에 쥔 채 바닥에 질질 끌고 있었다.

보아하니 사냥을 다녀온 듯 싶었다.

“스님.”

“대답 안하네? 어디서 온 가시나이네?”

주거지를 침입 받아서 그런지 목소리가 상당히 날카롭고 사람을 짓누르는 위엄이 실려 있었다.

더구나 스님이 보기에 이상한 복장을 입은 그녀는 괴상망측한 요녀나 다름 없었다. 윤기나는 검은 가죽이 몸에 딱 달라붙는 것이 노골적으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는 옷차림이었다.

“일단 오해말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남쪽에서 온 가시나이네?”

“그렇습니다.”

“날래 이야기해보라우.”

다행히도 조금은 말이 통할 듯 싶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절 안의 물건을 가지러 왔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해버리면 분명 스님에게 큰 화를 부를 것 같았다.

그러니 어떻게 설명해야만 그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저는 스님을 구조하러 왔습니다. 한국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말이 없었다.

“내보고 이남으로 가란 말이네?”

“아시다시피 북한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허리에 찬 무전기가 울려왔다. 이상한 기척을 감지한 스님의 시선이 그녀의 허리로 향했다.

[아아, 스컹크 3으로부터 1에게. 불상과 사리를 실은 차가 하산 준비를 마쳤다. 허가해주기 바란다.]

시간이 멈춘것 같았다.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 보던 현주의 시선이 불안한 눈빛으로 스님에게 향했다.

스님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사리? 방금 불상과 사리라고 한거 가시나이 니도 들었네 안들었네?”

“들,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시끄럽다우!”

당연한 일처럼 그의 얼굴이 즉시 일그러지며 대노했다.

쥐고있던 돌연변이 동물의 사체를 힘껏 패대기치고는 두 손으로 봉을 잡았다.

“이 가시나이가 절에 있는 물건을 훔치러온 도적 새끼들이었단 말이디! 내래 당장 따끔한 맛을 보여주갔어!”

“오해십니다! 부디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스님!”

“닥치라우!”

스님은 보는 이를 마비시킬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다.

그가 두 손으로 봉을 크게 휘두르자, 현주는 엉겁결에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앉았던 돌에 걸려 엉덩방아를 찌고 말았다.

그녀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크게 당황한 눈빛으로 스님을 올려다봤다.

스님이 머리 위에서 날렵하게 봉을 회전시키자 주변에 바람이 일면서 대나무숲이 울기 시작했고, 동시에 흙모래가 휘몰아쳤다.

현주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만 갔고, 흡사 삼국지의 관우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스님에게 자비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에미나이 이제 뒤진줄 알라우!”

스님의 대성일갈이 쩌렁쩌렁 천지를 뒤흔들던 그때였다.

무언가 지붕에서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그것은 미끄러지듯 현주의 몸을 부둥켜 안고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동시에 스님이 휘두른 봉이 땅바닥을 후려쳤다.

콰앙!

조금 전 현주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마치 대포알이 처박힌듯 큰구덩이가 움푹 패였다.

현주는 구르는 것을 멈추자마자 자신을 감싸안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달빛이 어둠을 밝혀주며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 신우주?”

“늦지 않아 다행이외다. 어디 다친데는 없소?”

서둘러 달려온 탓인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웃음을 짓는 우주가 그녀를 안고 누워 있었다.

“대체 몇놈의 아새끼가 이곳에 온거네?”

스님이 바닥에 누운 우주를 향해 무섭게 노려보았다.

현주를 향해 씨익 웃던 표정을 지우고 우주가 옷을 털면서 일어났다. 그녀를 등지고 서면서 무표정으로 스님을 마주보았다.

“계속 공격할 생각이라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소.”

스님이 콧방귀를 꼈다.

“이 간나새끼, 도적 새끼 주제에 말하는 싹수 좀 보라우. 네 지금 내한테 협박하는 거네?”

스님의 눈동자는 더욱 분노했고, 우주를 비웃는 듯 하기도 했다.

그 눈빛을 보고 우주는 말로해서는 될일이 아니라고 똑똑히 깨달았다.

“어디 한번 해볼테면 해보라우! 내래 산산이 박살내주갔어!”

쿠웅!

쿠웅!

타악!

세 차례 연달아 터져 나온 강렬한 타격음.

스님이 봉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단단한 흙바닥이 두부처럼 푹푹 꺼져들었다.

스님은 사람이 아니라 불교의 사천왕처럼 아주 매서웠다. 우람한 덩치에 커다랗고 툭 튀어 나온 눈동자는 아주 부리부리했는데, 주신을 닮은 그런 눈으로 우주를 집요하게 째려보면서 얼굴, 배, 다리를 노리고 매우 날카롭게 봉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사나운 기세는 우주에게 통하지 않았다. 총이나 칼을 꺼낼 필요도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벌이는 맨손 격투에 그는 자신 있었다.

단숨에 스님의 가슴팍에 파고 들어 짧게 끊어 치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다.

“으윽!”

스님이 그 충격을 못이겨 뒷걸음질쳤다. 우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이어 파고들면서 탁! 탁!

미간과 명치를 아주 빠르고 민첩하게 연속으로 때렸다.

급소를 맞은 스님은 눈앞에 마치 별이 보이는 것처럼 양눈을 사시처럼 뜨더니, 이내 두 손을 허우적대면서 뒤로 콰당하고 나자빠졌다.

예의 위압적인 기세와 달리, 맨땅에 꼴사납게 넘어져있는 스님을 보면서 우주가 조금은 안타까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까지만 합시다.”

이어 그는 바닥에 떨어진 봉을 집어서 허공에 장난삼아 한 번 휘둘러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건물 저편에서 소리가 났다.

“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괜찮으십니까!”

여러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때까지 넋을 놓고 우주의 실력에 감탄해 마지 않던 현주가 퍼득 정신을 차리고 팀원들을 마주했다.

“별일 아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신경쓰지 마라.”

“저기 쓰러져 있는 스님은 뭐에요? 수라입니까?”

“응. 여기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런데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일단 대화를 해봐야 될듯 싶다. 세 사람 정도 가서 저분을 부축해드리도록.”

누구 할 것 없이 곧바로 스님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기운을 차린 스님이 일격에 팀원들을 날려버리면서 훌쩍 지붕 위로 뛰어 올랐다.

화가 난 그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 간나 새끼들! 이제부터 지옥의 본때를 보여주갔어! 각오하라우!”

여전히 노기가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는 귀가 얼얼할 정도로 이 주변을 크게 뒤흔들었다.

말을 마친 스님이 지붕과 지붕사이를 뛰어넘으면서 어둠 속에 자취를 감추자, 현주는 서둘러 모든 팀원들을 시켜 그를 찾게했다.

팀원들은 저마다 무전기를 꺼내들고 이리저리 바삐 흩어졌다.

모두가 떠나간 후 잠시 멍하니 서있는 현주에게 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봉을 건넸다.

“이거 맡아주시오. 소생도 찾으러 가보겠소이다.”

현주는 묵묵히 가만히 서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궁리하는 눈빛으로 우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별안간 표정에 힘을 주면서 봉을 받아 들었다.

“고맙긴 하지만, 굳이 구해주지 않았어도 나혼자 상대할 수 있었다.”

현주는 굵직한 여성의 목소리로 쌀쌀맞게 말을 내던졌다.

그러고는 우주를 무심히 지나쳐 발걸음을 옮겼다.

“후... 어려운 여성이로다.”

우주는 냉정히 떠나가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절로 눈길이 가는 것을 어쩌랴? 과연 40대 중년 남자의 말대로 엉덩이가 크고 예뻤다.

이러니 불만이 나올래도 나올 수가 없었다.

이윽고, 사라진 스님을 찾았을 때는 대웅전 넓은 마당에서였다.

모든 팀원들이 스님을 둥글게 둘러 싸고 있는 와중에 현주와 우주도 급히 달려와 가세했다.

우주가 도착한 것을 보고 하나가 얼른 그 옆으로 뛰어왔다.

“저 스님 정말 기가 장난 아니네요. 말투부터가 막, 너무 무서워요. 북한 억양이 세서 그런지.”

다시 나타난 스님의 오른 손에는 기괴한 모양의 단소가 들려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면서 사방에 대고 크게 외쳤다.

“내래 쭉 둘러보니 이 육시랄 넘들이 절을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더구나! 부처님께 맹세코 절대로 용서하지 않갔어!”

쩌렁쩌렁한 호통을 친 뒤에 스님은 바로 단소를 불기 시작했다.

삐리리~

단소의 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자, 난데업이 우주를 비롯해 모든 팀원들은 시야가 10초 정도 흔들리는 증상을 겪었다.

잠시 후, 풍경이 정상적으로 보이게 되었을때는 스님이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불쑥 누군가 외쳤다.

“대웅전 뒷쪽봐봐! 좌불상 눈이 빨개지고 있어!”

그 말에 스컹크 팀 전원의 시선이 대웅전 뒤편에 절경으로 자리 잡은 청동 좌불상에 꽂혔다.

좌불상의 두 눈이 빛이 들어온 것처럼 붉은색을 띄었다.

그러다 순간, 눈을 떴다.

지이잉-!

100여미터의 거리를 단번에 좁힌 붉은 빛줄기가, 넋놓고 바라보던 두 사람의 허리를 가로로 잘라버렸다.

순식간에 신체가 이등분 되며 땅에 투욱 하고 상체가 떨어졌다. 하체의 잘린 단면에서는 피가 솟구쳤다.

“저, 저거 뭐야!”

“꺄아아악!”

좌불상은 멈추지 않고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 광선을 칼처럼 마구 휘둘러 댔다. 미처 피하지 못한 팀원들은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잘리는 등 사지가 절단되면서 이곳은 눈 깜짝할 사이에 토막난 신체가 즐비했다.

“하나 낭자! 하나 낭자! 이럴 수가!”

레이저 광선을 피해 우주를 뒤따라 달리던 하나 마저 악몽같은 현실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골반까지, 몸이 아주 깨끗하게 절단된 채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어째서! 어째서냐! 어째서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이냐!”

동료를 잃은 슬픔에 우주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눈감은 하나의 얼굴을 가슴에 부둥켜 안고 고래고래 울분을 토해냈다. 그녀의 상체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 피가 그를 금세 얼룩지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방에서는 동료의 비명소리가 쉴새없이 들려왔다.

“꺄아악!”

“살, 살려줘엌...!”

“으아악! 내 다리! 내 다리가 없어졌어!”

현장에 있던 22명의 팀원 중에 벌써 15명이 사망했다. 레이저 광선은 건물까지 깨끗히 절단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날카롭고 뜨거웠으며 그 사정 범위도 100미터 이상으로 길었다.

‘동료가 계속 죽어나가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텐가!’

우주는 자신의 뺨을 한대 후려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의 상체를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고 이를 꽉 악물었다.

“하나 낭자. 내 꼭 복수해주겠소!”

우주는 좌불상을 박살내기 위해 등에 메고 있던 더블바렐 샷건을 꺼내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전이 울려왔다.

[여기는 스컹크 1이다! 레이저 광선의 범위는 최대 120m로 관측되었다! 살아있는 팀원은 서둘러 절 입구로 빠져 나와라! 이곳에서 팀을 재정비한 뒤 녀석을 파괴하겠다!]

현주가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던 우주는 순간 멈칫하며 주저했다.

명령을 무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신우주. 내 눈에 넌 아직도 피래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100억원을 받는답시고 남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줄 생각에 치기어린 객기는 부리지 마라. 그건 오히려 과욕과 독선에 불과해. 명심해라.’

전방주둔지에서 현주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르며 그를 조여왔다.

“젠장할!”

우주는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를 추격하듯이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레이저 광선을 피해서 절 입구까지 빠져나왔다.

현주의 말대로 그곳에는 레이저 광선이 더는 닿질 않았다. 좌불상은 이제 빈 절만 마구잡이로 부시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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