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촬영장소에 도착해서 감독과 미팅을 하고 작가에게서 촬영 내용을 설명 받았다. 촬영 전까지 댄스 강사에게 춤을 배우며 대기 하는 중이었는데, 때마침 도착한 초코걸스가 활짝 웃으며 우주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초코걸스입니다!”
예쁘게 꾸민 요정 같은 소녀 네 명이 동시에 다가와서 인사를 하니 우주는 참 어안이벙벙했다.
“안, 안녕하시오...”
“오빠 팬이예요~!”
“오빠 멋있으세요!”
“오빠 짱!”
“와, 실물로 보니 정말 잘생기셨어요~!”
우주는 멋쩍어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깜찍하기 그지없는 초코걸스는 인사만하고 떠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면서 우주에게 갖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이 시대, 연예인 위에 스포츠 스타가 있었고, 그 위에 수라가 있었다.
연예인이 수라를 동경할 정도였다. 초코걸스는 심지어 사인 요청까지 했다. 우주는 고마워하며 네 명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는데, 갑자기 그를 가르치던 여성 강사가 그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얼른 연습해야죠.”
“아, 그렇지, 그렇지.”
춤이라고는 생전 춰본적 없는 우주여서, 댄스 학원에서 파견 나온 여성 강사는 애를 많이 먹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우주가 그렇게까지 몸치는 아니었다는 점. 댄스가수 5번 가르치면 될 것을 그에게는 10번 가르쳐야 했지만 제법 리듬을 타는 재주는 있었다.
우주가 정신없이 춤을 익히는 동안, 초코걸스는 옷 갈아입으러 대기실에 와있었다.
거울을 보며 자기들끼리 수근거린다.
“신우주 스물 아니야?”
“그러게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멤버 중 한 명이 열심히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했다.
“뭐야 스물 맞잖아~”
“그치? 스물이지?”
“현아 언니하고 동갑인데도 계속 오빠 소리 듣고 있던 거야?”
“어머, 어머!”
초코걸스에서 제일 나이많고, 인기도 많은 멤버인 박현아가 옷을 갈아입다말고 인상을 썼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씨!”
다른 세 명의 멤버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머, 동갑한테 오빠라고 해야 했으니 언니 기분 상했겠다.”
“그러게 먼저 아는 체 좀 해주면 좋았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패왕색기 박현아 프로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우주 오빠 너무 심했다.”
박현아는 자신의 프로필을 모르고 있던 우주에게 내심 화가 났다.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오빠~ 하니까 응~ 하고 순순히 받기만 하다니, 너무 하다고 생각되었다.
함께 일하기로 했으면 이런 건 사전에 숙지해둬야 하는 기본 사항 아닌가? 더구나 그녀가 몸 담고 있는 연예계라는 곳이 선후배 챙겨야 되고 나이도 칼같이 따지는 그런 곳이다 보니까 더욱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가 이번엔 참아. 다음에 혹시라도 방송국에서 마주치면 우리 그냥 무시하자.”
“매너 없는 남자는 딱 질색이야.”
“우릴 얕보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야? 진짜 기분 나쁘다 얘.”
멤버 세 명이 돌아가면서 현아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뱉어냈다. 한편으로는 초코걸스에서 제일 인기 많았던 현아를 시기하던 멤버들이다.
그러나 현아에게는 가장 친한 동생들이기에 그런 악담이 귀에 쏙쏙 박혔다.
“짜증나!”
거의 벗다시피한 옷을 입은 현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뒤 대기실을 먼저 나섰다.
“이것 좀 드셔보시오.”
한창 촬영준비로 바쁜 클럽 안으로 들어오니 우주가 불쑥 다가와서 과자를 내밀었다.
현아가 표정을 밝게 하며 과자를 받았다.
“오빠, 잘먹을게요. 고맙습니다.”
“혹시 이름이?”
“전 현아에요.”
“음, 그렇군. 예쁜 이름이오.”
현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곳으로 가서 우주가 건네준 과자를 먹지 않고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진짜 개념없어!”
일부러 '오빠' 라고 다시 불러봤건만, 고쳐줄 생각을 안했다.
“게다가 이름도 몰라? 나참 지~인짜 재수없어!”
제대로 심통이 난 현아는 자신을 무시한 만큼 댓가를 치르게 만들고 싶었다.
그를 어떻게든 하고 싶다.
어떻게 한다는 건 뭐랄까.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일까?
“그래. 그거야!”
집에 가서도 초코걸스 박현아가 생각나게끔 해주자고 그녀는 다짐했다. 그리고 사적으로 연락이 오거들랑 뻥 차버리자고.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남자 아이돌을 찬 적도 많다. 1, 20대 남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녀가 남자 하나 꼬시는 거야 식은 죽 먹기였다.
그를 뻥 차버린 무용담을 나중에 토크쇼에 나가서 요즘 한창 잘나가는 제네틱스 수라 이니셜 S가 대쉬한적이 있었다며 자랑스레 떠벌리면 그야말로 통쾌할 것 같았다.
구석에서 그녀는 사악한 마녀처럼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
“으흐흐, 두고 봐라 신우주.”
한편, 촬영이 시작되기 전 우주는 너무 긴장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철수가 함께 심호흡을 하자며 나설 정도였다.
CF촬영 때문에 긴장되는 것은 아니였다. 촬영 장소가 클럽이다 보니 옷을 입은건지 벗은건지 야한 차림의 여성들이 수두룩 했고, 더구나 상대역인 박현아 마저 옷차림이 야하다보니 우주의 심장은 내내 콩닥콩닥 거렸다.
촬영전 철수와 강민은 그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저기 현아 씨 오네요. 이거라도 갖다주면서 좀 친해져 보세요. 아, 싸인 받고 싶다...”
우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서 철수가 과자를 쥐어주면서 시켰다.
우주는 기계처럼 가서 그대로 했다. 관심도 없는 그녀의 이름 물어보기는 어쩌다 튀어나온 애드립이었다.
“큭큭. 우주 씨 긴장되요?”
창백한 그의 얼굴을 보고 관록있어보이는 CF 감독이 다가와 밝게 웃어 보였다.
그는 편안하게 미소를 지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잡아먹는 사람없으니까 긴장 풀어요. 원래 처음에는 다 무섭고 그래요. 지금 대스타인 권상오, 장둥건, 조인상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익숙치 않고는 사람 많은데서 연기하기가 힘들거예요.”
우주가 마른 입술을 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외다.”
“그럼 뭐가 문제예요?”
“처자들이 옷을 다 벗고 있어서...”
“하하하!”
CF감독 조현상이 크게 웃었다. 스태프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조현상 감독이 할일 하라는듯 손을 휘저었다.
모두의 시선이 떨어지고 나서 그는 말했다.
“남자로서 눈요기도 되고 좋은거 아닙니까? 멋지게 차려입고 왜 그래요.”
우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적응이 안되오.”
그 옆에 앉아있던 강민이 끼어들었다.
“우주는 여자 싫어해.”
뒤에 앉아 있던 철수도 한마디했다.
“아녜요. 좋아하는데 성격이 보수적이라 그래.”
“여자도 사람.”
“맞아. 여자도 사람이니까 떨지마요.”
조현상 감독이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우주를 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우주 씨. 연예계는 말이예요. 생기 넘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게 뭔말인가 하면 70대 할아버지가 와도 꼴릴 수 있다는 말이예요. 즉, 방송국 어딜가나 얼굴 예쁘고 엉덩이 크고 젖탱이 큰 여자들이 많아서 남자로서 참기 힘든 곳이 연예계에요. 또,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키크고 몸매 좋고 잘생긴 남자들 많은 곳이 연예계니까 70대 할머니도 질질 쌀 수 있다는 말이죠.”
우주가 고개를 돌려 조현상 감독을 마주봤다.
“지금 우주 씨가 느끼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겁니다. 왜냐?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섹시한 여자가 모인 곳이 바로 연예계니까. 하지만 말이죠? 연예계도 정글입니다. 감독, 스태프, 배우. 모두가 굶주려있고 살아남으려 애쓰는 곳이 바로 연예계에요. 그리고 이렇게 치열한 곳에서 제일 먼저 도태되는 사람은 성욕을 감당할 수 없는 아메바 같은 사람들이죠. 그걸 참아내는 사람은 톱스타, 못참아내는 사람은 그야말로 하류 인생이 되는 겁니다. 하류 인생이란 말그대로 3류를 말하고 아무데서나 부르면 꼭 가야하는 싸디싼 스타를 말하는 거예요.”
조현상 감독이 슬쩍 우주의 귓가에 입술을 댔다.
“저도 사실 초코걸스 따먹고 싶습니다.”
우주의 휘둥그레 졌다. 조현상 감독이 빙긋 웃으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현실을 봐야죠. 앞서 제가 말한 굶주렸다는 표현은 성욕이 아니예요. 배고픔이죠. 우리에겐 가정이 있고, 우리를 기다리는 여친이 있고, 날 믿어주는 부모형제, 또 자신만의 목표가 있으니 열심히 일 해야죠. 돈과 명예를 갖고 싶지 않아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겉치장만 요란할뿐 모두 제갈길 가기 바쁜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예쁘고 멋있어도 결국에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겁니다. 돈 벌러왔다는 거죠.”
조현상 감독이 또다시 귓가에다 소근댔다.
“우주 씨도 여기 돈 벌러 온거지 여자 꼬시러 온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다른 것 신경쓰지 말고 우주 씨는 우주 씨 일만 하면 됩니다. 저기 발가벗은 여자는 전부 신우주 씨와 하등 관계없어요. 지들 살아가기 바쁜 타인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주 씨는 자기 인생만 챙기세요.”
조현상 감독의 말은 그야말로 명강의였다. 우주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불끈 주먹을 쥐며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맡겨주시오!”
CF 촬영이 시작되면서 그 어떤 여성을 봐도 그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멋있게 클럽 중앙으로 걸어나가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현아와 몸을 부비부비했다.
처음에는 잘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갈수록 무언가 이상했다. 몸만 가볍게 비벼대기로 약속한 촬영일 뿐일텐데, 박현아가 엉덩이를 너무 들이댔다.
그녀는 우주의 음부에 엉덩이를 깊숙이 찔러넣고는 농염하게 춤을 추었다.
‘왜, 왜 이러는 거요...?’
‘시끄러. 니가 날 무시했다 이거지? 각오해.’
서로가 통하지 않는 교감을 나누면서 현아는 현란하게 몸을 움직여댔다. 남심을 녹이는 거야 그녀의 외모와 실력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우주가 속으로 크게 외쳤다.
‘어림 없소!’
살집이 통통하고 부드러운 엉덩이가 음부를 마구 공격하면서 고추가 묵직해지려 할때, 우주는 애써 참아가며 조현상 감독의 말을 되새겼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섹시한 여자가 넘쳐나는 곳이 연예계니까 그걸 참아내는 사람은 톱스타, 못참아내는 사람은 그야말로 하류 인생이 되는 겁니다.’
우주는 이 시대에 적응하며 살고 싶었고, 더 나은 삶을 원했다. 한낱 대수롭지 않은 계집이 자신을 꼬시려해봤자 그의 신념은 점점 더 확고해져만 갔다.
따라서 그의 고추는 점점 작아져만 갔고, 그녀의 허리에 손을 대면서 댄스 강사에게 배운대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소이다! 각오하시오 현아 낭자!’
박현아는 슬슬 짜증이 났다.
‘왜 고추가 커지지 않는 거야? 이 새끼 고자인가?’
이래봬도 패왕색기라 불리는 그녀인데, 우주가 쉽사리 넘어오질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흥분을 하며 우주의 동작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는 능수능란하게 춤을 추면서 그녀를 몸짓으로 유혹했다.
‘소생의 춤 실력이 어떠시오 현아 낭자. 후후. 내게 몸을 맡기시오, 자.’
‘이, 이거 왜 이래? 나 왜 이래?’
건방진 우주를 사로잡겠다는 그녀의 속셈은 어느새 물건너 갔다. 함께 춤을 추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이끌렸다.
“와, 저거 너무...!”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우주는 과감하게 몸을 밀착해 백허그를 했고, 현아는 그의 음부에 엉덩이를 비벼가며 놰쇄적인 눈빛으로 골반을 흔들었다. 그 밖에도 서로 입을 맞추려는 듯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기도 하는 등 두 사람은 농도 짙은 스킨십을 연달아 펼치며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러다 눈 맞는거 아니야?"
화면이 산다 싶은지 카메라 감독이 실실 쪼갰다. 꽤나 만족스러운 눈치다. 그것은 조현상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만 컷을 외칠때도 되었건만 씹던 껌도 잊은 채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