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38화 (38/285)

38화

우주와 현아가 찍은 스마트폰 광고는 말그대로 초대박을 쳤다.

하나 재밌던 사실은, 광고를 본 사람들은 정작 스마트 폰의 기능보다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유행을 선도해 나가는 것 같은 우주와 현아 커플의 세련되고도 섹시한 모습에서 구매 의욕을 느꼈다.

화이트 색상은 신우주가 쓰니까, 핑크 색상은 박현아가 쓰니까 라는 소비자의 심리가 구매욕을 자극했고, 방송을 탄지 하루도 되지 않아 오딧세이X는 초동 물량 200만대가 한국에서 매진되었다.

그리고 그 유행은 점차 동남아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까지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CF 신인으로서 모델료 10억이던 우주의 가치도 3달 계약 50억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반면에 이미지가 많이 소비된 상태에, 수라로서의 실적도 미비한 현아는 좀 더 오른 모델료로 20억을 받게 되었다.

한편, 언론과 팬은 두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회사가 다른 두 사람의 출근 날짜가 겹칠때는 전방주둔지 정문이 기자들과 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리고 전방주둔지에서 인기있는 수라의 경우, 기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되도록 그들과 만나야 하고 대중이 원하는 궁금증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규정 아닌 암묵적인 관례가 있었다.

그 말은 즉, 기자들 수십명이 몰려와서 인터뷰를 요청할때면 우주와 현아는 임무 출발 전이나 임무가 끝났을 때도 무조건 인터뷰에 응해야 했다.

만약 피한다면 다음날 험담 기사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쪽 봐주세요!”

검정 슈트와 붉은 슈트를 각각 차려입은 우주와 현아는 오늘도 기자들 앞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그 후에는 전방주둔지에 마련된 기자단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오빠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응. 현아 너도 수고했다. 다음에 밥 한끼 하자꾸나.”

“네~ 그럼 조심히 들어 가세요 오빠.”

우주와 현아는 함께 기자단실을 나왔다. 나오자 마자 매니저와 코디가 그들을 챙겨 주었다.

현아는 떠나기 전 못내 아쉬운듯, 우주를 향해 또 한차례 손을 흔들었다.

“오빠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빠 화이팅!”

“허허, 기특한 것. 알았다. 조심히 갈게. 너도 조심히 가렴.”

우주가 매우 기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내 제네틱스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웃고있던 현아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이마에는 힘줄이 생겼다.

쾅!

탈의실로 돌아온 현아는 슈트를 벗자마자 캐비넷에 내동댕이쳤다.

“아우, 신우주 진짜! 아우우!”

그녀는 브라와 팬티만 입고 씩씩 거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거야! 짜증나 죽겠어!”

매일 오빠~, 오빠~ 하다보니 어느새 진짜 오빠가 되어버렸다. 사실 동갑인 그녀로서는 너무나 화가나고 속상한 일이었다.

“나한테 관심도 없는거야? 인터넷으로 프로필도 검색 안하냐고! 신우주 이 나쁜 새끼야!”

쾅!

캐비넷을 발로 걷어 찼다.

전에 CF를 찍고나서 그 이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언론은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오딧세이X를 출시한 스마트 폰 회사에서는 CF 2탄 이야기가 솔솔 기어나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 결혼하면 어떨까요?’ 라는 모방송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의 가상 결혼 생활을 담고 싶다며 섭외 요청까지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덜컥.

여자 탈의실 문이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김수희가 속옷 차림으로 씩씩거리는 현아를 보고 조금 놀란 눈빛을 했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성질 부리는 와중에, 갑자기 들어온 김수희 때문에 현아도 내심 놀랐다. 탈의실은 2인 1실이었고, 두 사람은 탈의실을 같이 썼다.

“아, 아니예요. 아무일도 없어요. 언니 고생하셨습니다.”

현아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꾸벅 인사 했다. 그녀에게 있어 수희는 같은 회사 수라 선배이자, 연예계 선배였다.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멀리 가 있는 사람이었고, 평소 수희 앞에서 현아는 나름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응, 그래...”

수희는 일단 모른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써진 캐비넷으로 걸어갔다. 수라의 슈트며 임무시 본인이 한번이라도 사용했던 무기는 그 개인의 고유 장비로 지정된다. 슈트는 개인 캐비넷에 보관하도록 하고, 총기류는 임무 때마다 영점을 새로 맞출 필요없이 사용했던 그대로 개인 화기 보관 장소에 특별히 보관되었다.

“현아도 수고했다. 이번에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런데 너희 팀은 아까 끝나지 않았어? 우리가 막 전방주둔지에 도착했을때, 너희는 연봉협상이 끝난것 같았는데.”

그녀가 말하는 동안 현아가 얼른 다가왔다. 수희가 입은 슈트의 등 부분에 매달린 지퍼를 끝까지 내려주었다.

그러자 하얀 속살과 함께 보라색 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 끈이 내비쳤다.

‘이 언니 브래지어 예쁜거 입었네...’

현아는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밖으로 다른 말을 했다.

“그랬는데, 기자들이 신우주랑 같이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해서요. 그래서 늦었어요.”

“신우주? 하긴, 요즘 너희 쌍으로 자주 나오더라. 잘 어울려.”

수희가 웃어 보였다.

하지만 잘어울린다는 그 말에 현아는 울컥했다.

“사실 짜증나요.”

“왜? 그 사람 성격 안좋아?”

“아니 그것보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쏟아내려 할때였다.

하지만 문득 나이가 어쩌느니 하면 언니에게 왠지 속좁은 사람처럼 비춰 보일 것 같았다. 사실 현아는 수희와 같은 신라그룹 수라 라는 이유 때문에 자주 마주칠 뿐 실상은 서로 데면데면 했다.

속터놓고 이야기 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수희가 자신보다 몇년 더 빨리 연예계에 데뷔한 선배인데다, 그 인기는 아이돌 수준의 인기가 아닌 젊은층에서 부터 중장년층까지 사로잡는 전국민적인 인기이기에 차원이 달랐고, 그로인해 멀고도 범접할 수 없는 여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연예계는 어딜가나 입조심. ‘P양, 요즘 S군과 나이 때문에 속터져!’ 다음날 갑자기 이런 식의 기사가 터질수도 있는 일이었다.

현아는 말을 꾹꾹 쑤셔 넣었다. 연예인끼리는 서로 흉을 보기보다는 욕을 해도 기분 좋은 욕을 해야한다. 그래야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대중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 줄수 있을 테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

“남자인 주제에 저보다 얼굴이 작은 것 같아서요. 그래서 사진도 안받고 짜증나.”

현아는 투덜거리면서 자신의 캐비넷으로 걸어갔다.

수희는 허리를 굽히며 전신 슈트를 발목까지 끌어내렸다.

“그 기분 나도 알거 같아.”

“언니도 그런 적이 있어요?”

“많지~ 얼굴 작은 남자 연예인이 어디 한둘이니? 그런 애들은 여장해도 되겠드라. 너무 예쁘장하게 생겼어.”

“혹시 게이 아닐까요?”

“그러게.”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수희가 옷걸이에 슈트를 걸면서 말했다.

“신우주 잘하면 우리 드라마에 섭외될 것 같아.”

“어머. 언니 드라마에요? 언니가 주연인 경성의 여무사(女武士)에?”

“응. 오늘 감독님이 회의 시간에 그 말을 꺼내놓고는 스탭들 하고 배우들 반응 살피더라.”

“언니는 뭐라고 했는데요? 신우주 걔 연기수업도 받아본적 없을텐데?”

“나는 뭐 그냥...”

수희는 한달 전 일을 떠올렸다. 제네틱스 고릴라 팀이 전멸하던 그날 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던 광경을.

그녀는 그 이후로 우주가 차갑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첫인상 탓에 출근날 어쩌다 전방주둔지에서 우주를 마주쳐도 직접 다가가 인사를 건네본 적이 없다.

수희가 이어서 말했다.

“나는 그냥 감독님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

현아가 약간 실망한 듯 가늘게 눈을 떴다.

“드라마 주연 배우인 언니가 그리 말했으면 감독은 냅다 좋아라 했겠네요. 신우주 좋겠네. 아이돌 퀸인 나랑 CF 찍자마자 대박 터뜨리고, 대한민국 톱 A급 여배우랑 드라마도 찍고. 어휴.”

현아가 사뭇 답답한 한숨을 내쉬자 수희가 웃었다.

“신우주는 얼굴이 작은 탓에 우리 현아한테 미움을 많이 받는구나.”

현아는 캐비넷 안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심통이 난 표정을 지었다.

‘신우주는 인성이 아주 쓰레기인데! 그 지랄인데도 잘 나가네 재수없어!’

그러고는 금세 표정을 고쳤다.

“배역은 뭐래요?”

“만주에서 돌아온 독립운동가.”

“몇회짜리 조연이예요?”

“날 도와주다가 일본 경찰한테 칼 맞고 2회만에 죽는 역할이야.”

“하하, 아하하하! 하긴!”

현아가 배꼽을 잡고 크게 웃었다.

수희가 속옷을 벗고 알몸인 채로 수건과 샤워백을 챙기며 말했다.

“아이돌은 원래 조연으로 가능성을 본 다음, 다음 드라마에서나 주연급으로 캐스팅되니까 어쩔 수 없지.”

오딧세이X CF를 찍은지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우주는 연봉이 150억에서 200억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단칸방 원룸에서 50평 아파트로 료코와 함께 이사도 했다.

그에 반해 철수는 여전히 브니엘 원룸에서 살았다. 우주가 한번은, ‘연봉이 8억 씩이나 되면서 왜 큰집으로 이사가지 않소?’ 하고 물었더니, ‘혼자 살아서리 넓은 집보다 방 한칸짜리 원룸이 딱 좋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또, 우주의 코디인 강민은 여친과 함께 방배동 원룸에서 살았다. 그는 우주가 일정 없는 날에는 연예인 한 명과 중소기업 수라의 코디까지 겸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한명당 받는 금액 100만원. 강민은 월 300으로 맞벌이 여친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평소 강민은 중고 CBR 400을 애마로 타고 다녔는데, 우주는 쉬는 날을 잡아 석모도에 있는 산악바이크 연습장에서 그에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울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더워서 싫어요. 전 에어컨 바람이나 쐬면서 게임이나 할랍니다.”

철수도 함께 갔으면 싶었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집에서 휴일을 보내고 싶어했다.

“여자. 없어서 그래.”

통화를 마치고 나자 옆에서 지켜보던 강민이 짧게 말했다.

우주에게는 료코가 있고, 강민에게도 자신의 여자친구가 있으니 솔로인 철수가 오기 싫어하는게 당연하단다.

여차저차 석모도에 도착.

산악바이크 연습장은 며칠 전부터 우주가 반나절 빌리기로 미리 예약해둔 상태였다. 네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 하여 강민의 CBR을 타고 연습장에 있는 산악코스를 시원하게 내달렸다.

처음에는 지그재그로 울퉁불퉁한 산길을 덜덜하고 미끄러지지 않게 달리며 균형을 잡는데 주력했다.

그런데 산악바이크로 뒤따라오는 강민보다도 느렸다.

낑낑대는 것 마냥 살살 다루다 보니 우주는 내심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속력을 냈고, 그러다 결국 바닥에 깔린 나뭇잎 더미에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오토바이가 훌러덩 넘어가 버렸다.

오토바이는 산길에 튀어나온 굵은 나무뿌리와 암석에 부딪혀서 몇 군데가 파손되었다.

강민이 황급히 뛰어와 넘어진 우주를 부축했다.

“괜찮아?”

“난 괜찮소. 그런데 이거 수리비가 얼마요?”

“됐어.”

“아니오. 내 고쳐주리다.”

“비싼 부품 아냐.”

강민이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우주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했다.

“음.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사리다.”

“않그래도 돼.”

“아니오.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하오. 게다가 조심조심 연습하는 것보다 험하게 다루는 편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것 같고.”

“빨리 배울 수 있어?”

“그렇소. 조심조심 타다간 어느세월에 배우겠소. 이왕 배우는거 다 부숴질때까지 배워봅시다.”

”그럼 사.“

강민은 싸게 넘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주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들더니, 포탈 사이트로 들어가서 CBR 시리즈를 검색. CBR600을 찾아 강민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색상과 기종은 어떠하오?”

“설마, 새 오토바이 값으로 줄 생각?”

“그렇소. 거절 말고 받아주길 바라오.”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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