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강민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물만난 물고기 마냥 덥썩 물었다.
CBR400 중고가격이 많이해야 300선이다. 그런데 CBR600 가격은 1750만원. 우주는 그의 계좌로 1750만원을 냉큼 쏴줬다.
“만족해주면 좋겠소.”
“우주, 사랑해!”
“허헛! 남자끼리 이게 뭔짓이오! 남사스럽소이다!”
강민은 우주를 꼭 껴안고 크게 기뻐했다. 피부는 하얗고 차가운 인상의 그가 이렇게 펄쩍 뛰며 좋아해주는 모습은 또 처음이다.
우주가 원했던데로 그날 CBR400은 완전히 걸레가 되었다. 얼마나 험하게 다뤘는지 차체가 다 파손되서는 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내수용 CBR400은 시속 180km 속도제한이 걸려 있는데, 강민이 그것을 해제하자 최대 220km까지도 달려봤다. 그리고 리미트를 뛰어 넘는 최대 속도에서 우주는 고꾸라지기도 해봤다.
그러니 오토바이가 남아나겠는가.
산악바이크 연습장 대여시간이 끝나갈 즈음, 우주는 이제 바이크 정도야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이 찢겨지고 온몸에 상처도 나고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제네틱스의 슈퍼바이크를 몰기 위해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며 그는 내심 만족했다.
강민과 함께 출발 장소로 되돌아왔을때는 두 명의 여성이 꺄아 비명을 지르고 꺄르르 웃고 떠들며 바다를 배경으로 산악바이크를 몰고 있었다.
료코와 강민의 여자친구 이수영이었다.
저녁에는 숙박을 위해 펜션을 찾았다.
네 사람은 야외에 마련된 그릴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짝끼리 붙어 앉았다.
야외 바베큐 장소에는 활활 타오르는 숯불이 군데군데 꽤 많았다. 한 여름밤 석모도를 찾아온 연인과 가족 손님들이 많았다.
그들이 주변에서 하하 웃고 떠들때면 우주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뿔테 안경을 매만지며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바베큐 철망에는 여성 팔뚝만한 소세지가 두 개 올라왔다. 이어서 대하에 키조개, 먹음직스러운 장어까지 연이어 올려졌다.
강민이 그의 여친 이수영과 함께 가위와 집게를 들고 불판 앞을 자주 서성거렸다. 수영은 양념된 장어를 접시에 큼지막하게 잘라서는 앉아 있던 우주와 료코에게 내밀었다.
“여친분께 맛 좀 봐달라고 해주세요. 제가 집에서 만든 양념장으로 구운 장어인데, 가게에서 파는 장어구이보다 훨씬 맛있어요.”
수영이 웃으며 건네준 장어 접시를 우주가 받아서 탁자에 올려놓고는 옆에 앉아있던 료코를 바라봤다.
“(양념장은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고 먹어보고 맛 좀 평가해달래.)”
“(네, 주인님.)”
료코가 젖가락을 들어 장어를 집는다. 그대로 작은 입에 한입 깨물더니.
“아~ 오이시이!”
몸을 흔들며 좋아했다. 그 표정을 보고 우주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수영에게 말했다.
“맛있다고 하오.”
“그래요? 다행이다. 아, 우주 씨도 어서 드세요.”
“잘먹겠소.”
료코는 계속 맛있게 먹으면서 뭐라 뭐라 신이 난듯 떠들어 대더니 이어 우주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주가 모기가 물고간 다리를 살살 긁으며 수영에게 다시 말했다.
“비법 좀 가르쳐 줬으면 한다는구려.”
그 말에 수영이 정말로 좋아했다. 료코를 향해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서로 말이 통하진 않았지만 종일 같이 있으면서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수영이 이것저것 재료를 챙겨가더니 그녀 앞에 앉았다.
“이건 간장.”
“쇼우유(간장).”
“응. 이걸 이정도만 넣고, 그리고 이건 마늘.”
“닌니쿠(마늘).”
수영이 손짓과 몸짓으로 설명을 시작하자 료코가 이해하겠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늘을 잘게 썰어서...”
료코와 수영이 마주 앉아서 정신없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그릴 앞에 서있던 강민이 대하가 담긴 접시를 들고 우주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는 와인병을 집어 한잔 따른 다음 우주에게 건넸다.
우주가 받아들며 물었다.
“두 분 결혼은 언제 하는 거요?”
“결혼?”
“잘어울리고 좋소이다.”
강민이 씁쓸하게 피식 웃었다. 두 남자가 잔을 부딪히며 가볍게 목을 축였다.
“결혼, 아직.”
“돈이 없어 그러오?”
강민이 고개를 저었다.
“하고는 싶은데, 수영이를 위해서.”
“민형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소?”
강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하 껍질을 벗겨서 우주에게 하나 건넸다.
우주가 그것을 받아들며 다시 말했다.
“말하기 힘든 일이오?”
“아니.”
강민이 접시에 있는 대하를 집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껍질을 까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아퍼. 그러니까. 결혼해서 고생시키기도 뭐해서.”
우주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헤어질 생각이오?”
“몇번 말해봤는데, 싫대.”
우주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거릴 뿐,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이후에는 가끔 잡담이나 하면서 일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어느샌가 수영이 다가와 두 사람에게 핀잔을 주었다.
“으이구, 이 아저씨들은 여기까지 놀라와서까지 일 얘기나 하고~”
자정이 넘어서 바베큐 파티가 끝난 뒤에는 짝끼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료코는 인생 첫여행이 너무나 즐거웠던지 방에 들어와서도 내내 싱글벙글. 술에 취해 두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서는 침대에 함께 누웠다.
료코가 은은한 샴푸 냄새를 머리에서 풍기며 우주에게 안겨왔다.
인생 처음으로 낭만을 느끼며 행복하고 기분 좋은 오늘밤. 주인님이 자신을 안아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손이 살며시 우주의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묵직해지려는 고추를 살살 어루만지며 우주의 가슴을 혀로 핥았다.
료코가 대담하게 나오자 우주의 가슴도 점점 뜨거워져 왔다. 그동안 매일 서로의 육체를 숨김없이 봐왔기에 이제는 마치 서로의 육체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이윽고 우주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품에 안기 시작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은 전라의 료코를 더욱 윤기있고 농염한 육체를 가진 여자로 보이게 했다. 동글게 솟아오른 젖가슴. 분홍빛 유두, 호흡에 맞추어 조용히 율동하는 날씬한 배, 그리고 골반과 음모. 매혹적인 다리까지.
우주의 입술이 차례차례 그녀의 육체를 훑고 지나갈때마다 그녀는 나지막한 신음을 토해내며 점점 쾌감에 젖어들었다.
저녁에 먹은 장어처럼 커진 고추가 료코의 조갯살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주인님 아주 멋져요... 하윽!)”
료코는 천국을 보는 표정으로 그의 가슴을 꼭 껴안았다.
“최고예요.”
그렇게 그녀는 다시 말했다.
집을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줬고, 더할나위 없는 로맨틱한 밤을 선사해준 것 같았다.
우주의 근육진 엉덩이가 들썩거릴 때마다 료코의 조개는 힘센 물살을 뿜어대며 고추를 절대 놔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주둥이를 꾹 다물었다.
그런 료코의 기분은 전염되어 우주로 하여금 그녀를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게 했고, 고추는 엄청날 정도로 단단하게 발기해서는 그녀의 조갯살을 봐주지 않고 연신 강렬하게 헤집었다.
임신따위 고려하지 않은 사정의 순간이 닥칠때면 료코는 매번 아쉬웠다. 이 아름다운 밤이 더 길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
다음날 오후에는 철수와 함께 서울의 한 대학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는 일전의 김아라가 3주 전부터 입원중이었다.
7층 1인 병실에 입원한 김아라는 전신냉증 비슷한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한 여름에도 히터를 틀어놓았다.
30분 전, 우주를 복도에 남겨두고 혼자서 병실 안으로 들어갔던 철수가 면회를 마치고 나왔다.
상의를 탈의한 채 런닝셔츠 바람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는 땀을 비오듯이 흘렸고, 마치 사우나라도 다녀온 것처럼 헥헥 거렸다.
“아휴, 덥다 더워.”
“고생했소. 그래 몸은 어떻다오?”
“잠시만. 저기 앉아서 잠시 쉬면서 이야기합시다.”
철수가 한 손으로 열나게 부채질을 하며 다른 손으로 힘겹게 복도 의자를 가리켰다.
우주는 눈치껏 자판기 쪽으로 뛰어가서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냉큼 뽑아왔다. 그것을 건네받은 철수가 얼른 뚜껑을 따더니 숨도 안쉬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아후~ 이제 살것 같다. 휴~!”
“그리 덥더이까?”
“말도 마세요. 어찌나 더운지, 사람 살곳이 아니야.”
“얼굴은 좋아 보이오?”
“그럭저럭 잘지내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사다준 노트북으로 인터넷도 하며 나름 재밌게지내는 것 같아요. 뭐 하긴. 판잣집에서 빈 병 줍는 것보다야 편할테니까.”
철수의 투덜 아닌 투덜에 우주는 말없이 작게만 미소 지었다.
말하는 와중에 쓸데없는 잡담을 껴놓는 화법은 철수의 버릇이다.
우주가 먼저 일어섰다.
“여기서 쉬면서 에어컨 바람이나 좀 쐬다가 나오시오. 난 의사 선생님을 뵙고 바로 차로 가겠소.”
우주가 그대로 돌아서려는데 철수가 말을 꺼냈다.
“수술 방법도 없다는데 저렇게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방 하나 얻어줘서 히터 틀고 사는게 돈도 더 절약되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곁에 의사가 있어야 안심되지 않겠소. 게다가 혼자 살면 밥 챙겨 먹기도 힘들다오.”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철수가 옷으로 땀을 닦아내고는 다시 말했다.
“아무튼 여태 연락끊고 지내던 친엄마가 유족보상금 50억 준다는 소리에 뜬금없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면 김아라는 어떤 생각이 들까. 친어미라는 것이 보상금 몰래 받아처먹고는 재혼한 가족이랑 미국으로 이민간거 알면 진짜, 김아라 통곡하겠네. 우주 씨는 화 안나요?”
김일준이 생전, 그의 유일한 가족이라고는 여동생 김아라와 17년 전 사라진 친모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죽고 나서 제네틱스로부터 유족보상금이 나왔고, 현행법상 상속 1순위는 배우자, 2순위는 자녀이지만 미혼일 경우 부모 양측이 상속 1순위다. 양친은 이혼 여부와 상관없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김일준의 친모는 아들이 죽은 후 나타나 유족보상금 50억원을 수령해간 것이다.
우주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왜 화가 안나겠소. 아라 양이 미성년자 임을 이용해 어미가 그런 망나니 짓을 벌였다니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으면서도 현실이 그러하니 나도 답답해 죽겠다오. 내 이년을 잡아다 족치고 싶어도 잡을 수 없으니 더욱 미치겠소. 하지만 어쩌오. 내 그냥 아라 양 한테 편히 잘해주고 속으로 삭힐 뿐이외다. 하지만 언젠가 미국까지 찾아가서 꼭 잡아오겠소. 그나저나 아라 양은 살은 좀 붙었소?”
“예, 전보다 살도 찐것 같고 무엇보다 안색이 많이 좋아졌더라구요. 전에는 무슨 눈썹까지 얼어붙은 냉동인간이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보통 사람 같아요.”
우주가 흐뭇하게 웃었다.
철수가 심심풀이로 다 마신 음료수캔을 찌그리며 물었다.
“근데, 오빠가 외국 가 있는 동안 우주 씨가 돌봐준다고 하면되지 왜 앞에 안나서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궁금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