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42화 (42/285)

42화

<3권>

소라는 창성에게 퇴근하라고 지시했다.

우주는 운전석으로 가기 위해 뒷좌석에서 내렸다.

창성이 떠나기 전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본부장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하는 도중에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소.”

“방해라니요. 오히려 좋기만 합니다.”

창성은 바로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아하는 눈치였다.

우주가 운전석에 앉자 조수석 문이 열리며 소라가 그의 옆에 앉았다. 우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임원들은 보통 뒷좌석에 앉기 때문이다.

“옆에 앉아도 되는 거요?”

“되죠.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닌데, 이렇게 둘이 나란히 앉으면 오해를 받을 수가 있…….”

우주를 바라보던 소라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정면을 보며 말을 잘랐다.

“그냥 가죠.”

부르릉.

우주는 그녀의 지시에 더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운전하는 내내 소라에게서 은은한 향기가 풍겼다. 우주의 마음은 까닭 없이 부풀고, 떨리고, 흔들렸다.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게 마치 그녀와 데이트하는 것 같았다. 의외였다. 한 번도 그녀를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녀도 향긋한 매력을 발산하는 성숙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로는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곳이 일전에 소라와 함께 갔던 한정식 집이었다.

서울 외곽의 전망 좋은 호숫가에 자리한 한정식 집으로, 분위기가 고풍스러웠다. 또한 객실이 나눠져 있어 편안하게 식사하기에 아주 좋았다.

한정식 집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우주는 모자와 안경, 회색 라운드 티 하나에 검정 반바지 차림이었고, 소라는 한복 차림이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하던 여성 종업원이 둘의 행색을 보고 호기심 담긴 눈빛을 보냈으나 곧바로 감추었다.

종업원이 조용히 미닫이문을 닫고 떠나자 소라가 약간 신이 난 듯 말했다.

“여긴 두 번째네요. 주인이 서로 사귀는 줄 알겠어요.”

한복을 입은 그녀가 엉덩이를 조심스레 내리며 사뿐히 방석에 앉았다. 검고 윤기 있는 긴 머리가 살랑 물결치며 흐트러지자, 그녀가 단정히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자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찰랑거렸다.

우주는 그 모습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감탄했다.

“정말 아름답소……!”

우주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소라가 짐짓 새침하게 대꾸했다.

“누구요?”

“물론 그대요.”

“겉으로만 그렇게 말하는 거죠? 듣기 좋으라고.”

“그럴 리가 있겠소? 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절대 아니외다. 정말 아름다우니까 아름답다고 하는 거요.”

소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예뻐요?”

“당연하오. 마치 양갓집 규수 같소이다. 당장 시집가도 되겠소.”

예쁘다는 칭찬은 한소라도 춤추게 한다. 당당한 자신감도 생기고 우주에게 없던 애정도 쑥쑥 자라났다.

그녀의 눈동자는 기쁨에 젖은 채 그가 하는 말마다 신기한 물건이라도 들여다보듯이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다 보니 식사 내내 서로 이야기도 잘 통했다. 소라는 가끔 쌈을 싸주며 우주를 살갑게 챙겼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항상 그러했듯 마무리는 심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슬슬 일어나야 할 때쯤, 우주는 초신성 곰에 관한 이야기를 슬며시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 소라는 말이 없었다. 표정도 굳어있었다. 조금 전 싱글벙글 하던 표정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막연히 빈 그릇만 쳐다보던 그녀가 시선을 들어 우주를 노려봤다.

“그래서 보자고 했던 겁니까? 제 생각이 나서 연락했던 게 아니고 그 초신성 곰인가 뭔가를 잡기 위해서?”

소라의 눈빛이 뾰족한 창끝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우주가 왜 소라를 만났는지 목적을 밝힌 게 잔칫집에 재를 뿌린 격이 된 셈이었다.

우주는 그녀의 반응에 착잡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부인은 하지 않겠소. 사실이오.”

“나쁜 놈!”

소라는 토라진 얼굴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분한 듯 숨을 씩씩거렸다.

“좋습니다. 그래요, 철저히 일로만 이야기하죠. 초신성 곰을 잡는 임무를 주는 대신 저도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굉장히 차갑고 사무적인 말투로 돌아온 그녀였다. 우주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되받았다.

“말해 보시오. 내 할 수 있으면 다 해주리다.”

그녀가 다시 우주를 매섭게 노려보며 억한 심정을 토해내듯이 말을 이었다.

“료코 씨를 집에서 내보내세요.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이 임무를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뭔가 받는 게 있어야겠죠? 우리 관계가 공짜로 무엇을 해주고 하는 그런 막역한 사이는 아니니까요.”

―이름 신우주. 팀명 재규어. 특수한 임무를 위해서 임시로 생성된 팀입니다. 당신의 번호는 1번이며 팀장입니다. 오늘 주어진 임무는, 없습니다. 팀장이 임의 판단하여 수행하십시오. 참고로 임무를 마친 뒤에는 사적인 임무이기에 연봉 협상은 없습니다. 지금부터 그에 적합한 장비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곰은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다. 초신성 곰의 서식지는 아무도 모른다. 1년 전 중국 기업에서 사냥했다는 정보가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우주는 장비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고심, 또 고심했다. 이번 임무는 선택한 장비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낭에 짐을 너무 많이 챙겨 가면 오히려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또 없어도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우주는 일반 곰의 특성을 참조해 가며 장비를 선택했다. 임무 당일 날까지 곰의 습성과 먹이를 구하는 방식, 서식지 선택과 관련된 서적들을 모조리 찾아 독파하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숙지하고 온 그였다.

라이터, 신호탄, 식량, 콘돔(만약을 위해 물주머니 대용으로 준비한 것으로, 하나에 1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다), 낚싯줄, 밧줄, 손전등, 물통, 지도 등 기본적인 장비를 비롯해 고도계, GPS, 무전기를 준비했다.

여기에 더해서 첩보 영화에서나 봄직한 최첨단 장비가 실린 특수 작전 지원 차량 한 대를 요청했다.

팀원은 우주 자신을 포함해 총 네 명. 임현주, 유하나, 그리고 일전에 문화재 수거 임무에서 만났던 40대 아저씨까지 참가했다.

“아차차, 우리 아직 통성명을 안 했던가? 연봉 25억 한성일이라고 한다네.”

성일과는 문화재 수거 임무 이후에도 몇 차례나 함께 임무를 수행하면서 서로 친분을 다졌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우주는 특별히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번 임무에서 회사 차원의 인력 지원은 없었다. 회사를 위한 일이 아니라 우주 개인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주의 부탁을 받은 성일은 쉬는 날임에도 무보수로 선뜻 나서주었다. 그것은 현주와 하나도 마찬가지였다.

장비를 챙긴 뒤 전방주둔지로 나오니 수라들이 한결같이 우주를 보고 수군거렸다.

초신성 곰을 잡는다는 우주의 계획이 어느 틈엔가 새어 나간 것 같았다.

“신우주가 200억 받더니 뵈는 게 없나봐. 혼자 레지스트 쉴드에 들어간다더군.”

누구는 멋지다며 치켜세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가 허무맹랑한 짓을 한다며 비웃기도 했다.

“돌았군, 돌았어. 열 명이 가도 위험한 곳인데 아주 허세 작렬이네.”

“제네틱스는 왜 허락했을까? 신우주가 죽을 수도 있는데, 거참 희한하군.”

“에이, 이보게. 하는 척만 하는 거겠지. 정말 하겠어? 두고 보게나. 끝내 못 찾아서 아쉬웠다, 하는 식으로 기사가 뜰 걸세. 최근 우연진한테 밀린다 싶으니까 회사가 나서서 더 띄우려고 저런 식으로 홍보하는 거지. 생각해 봐. 초신성 곰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찾아? 찾는다 해도 문제야. 지 혼자 무슨 수로 잡겠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걸세.”

우주는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재규어 팀의 집결지로 묵묵히 향했다.

“왔어요?”

하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긴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잘랐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한층 더 성숙해 보였다. 아주 잘 어울렸다.

우주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쉬는 날 나와줘서 고맙소.”

“아니에요. 어차피 할 일도 없는걸요. 그리고 어제 새로 찍은 커피 CF 보고 당장 마트에 가서 샀어요. 저, 잘했죠?”

우주가 조금 쑥스러워했다.

“뭘 그런 걸 다 사오.”

하나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팬심으로 샀죠.”

우주는 그녀와 마주보고 서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다.

곧이어 현주가 도착하고, 끝으로 성일이 왔다. 예정되었던 인원이 다 모이자 네 사람은 서둘러 출발 준비를 했다.

짐을 챙기는 와중에 현주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이것저것 물어왔다.

“배낭에 장비는 잘 챙겼나?”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만 골라서 알뜰히 넣기는 했소만, 제대로 챙겼는지는 직접 탐험을 해봐야 알 것 같소.”

“음, 그래? 줘봐, 좀 봐야겠군.”

“누님이 한번 봐주시오.”

현주는 우주에게서 배낭을 건네받고 그 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잘 챙겼어.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군.”

그러더니 그녀가 우주가 어깨에 멘 기관단총을 가리켰다.

“총은 그거 한 자루면 되나? 돌연변이 생물에 따라서 무기를 바꿔야 할지도 몰라.”

“그 생각도 해봤는데, 험한 산지를 헤매고 다닐 거라 되도록 가볍고 활동성이 좋은 녀석으로 한 자루만 가져가기로 했다오. 또 암벽을 타야 할지도 모르고. 여하튼 이 총 하나로 부족하거든 그땐 칼이라도 쓸 작정이오.”

우주가 허리에 찬 장도를 가리켰다.

현주는 힐끗 장도를 보고나서 다시 우주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그의 한쪽 어깨를 토닥였다.

“죽지 마라.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서 같이 술 한잔 하는 거야. 알겠지?”

“현주 누님 주량은 내 감당하기 힘들다오. 무사히 살아 돌아와 놓고 아마 술 먹다 죽을 거요.”

현주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술 먹다 죽으면 남자도 아니지!”

그때 저편에서 성일이 작전 지원 차량을 끌고 오고 있었다.

하나을 포함한 세 사람은 바닥에 내려놓았던 짐을 챙기며 차에 실을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등 뒤쪽에서 누군가가 우주를 불렀다.

“오빠!”

뒤를 돌아보니 금발에 포니테일을 한 현아가 붉은색 슈트를 입고 뛰어오고 있었다. 우주가 밝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늘 출근 날이었던 게냐?”

“그, 그게 문제가 아니라……!”

현아는 널따란 광장을 급하게 가로질러 달려오느라 무척 힘이 들었던지 잠시 가쁜 숨을 고르더니 이내 침을 꾹 삼키며 말했다.

“혼자 레쉴에 들어간다면서요?”

“아니다. 나 말고도 세 사람의 동료와 함께 갈 생각이야.”

“한 명이나 세 명이나 그게 그거죠. 미쳤어요?”

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어 말했다.

“고작 네 명 갖고 뭘 하게요? 이 오빠 미쳤어, 진짜.”

그 와중에 유명 아이돌 스타인 박현아가 제네틱스 구역으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된 제네틱스 수라들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둘이 있으니 화보다, 화보.”

“와, 쩐다.”

“박현아랑 신우주 또 만났네.”

“쟤들 너무 붙어 다니는데?”

구경꾼들은 크게 아쉬워했다. 전방주둔지에는 개인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갖고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예인이나 유명 수라에게 사인 요청도 절대 할 수 없었다. 규정을 어기면 감봉 조치는 물론, 5천만 원이라는 벌금도 물어야만 했다.

현아는 주변을 개의치 않고 우주의 눈을 마주 보면서 직설적으로 말했다.

“오빠 약 먹었어요? 제정신이면 자살하러 가겠냐고요.”

그녀는 곧 있을 오딧세이X CF 2탄이 아까웠다. 모델료가 25억 원. 1편 때보다 거의 두 배를 받을 수 있는데, 여기서 우주가 죽어버리면 말짱 허사였다.

어디 이것뿐인가. 방송국에서는 신우주와 박현아를 주인공으로 한 트렌디 드라마 이야기까지 솔솔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현아는 회당 드라마 출연료가 3천만 원이다. 20부작이면 6억 원. 우주가 죽으면 돈줄이 날아가는 셈이다. 보기 싫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그를 말리고 싶었다.

“지금 당장 한소라 찾아가서 못한다고 하라구요, 빨리.”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반해 우주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말거라. 내가 자원해서 하는 일이다. 꼭 해야 하는 일이고 멈출 수 없단다.”

우주는 그렇게 말하고 장난스럽게 엄지를 세웠다.

“시간이 없으니 이만 가야겠구나. 너도 고생하렴.”

우주는 그대로 뒤로 돌아섰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 남녀 유명인이 오래 이야기하고 있어봐야 자칫 스캔들만 날 뿐이다. 현아도 그것을 알기에 더는 말을 걸 수 없었다.

“…….”

현아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아냐, 그게 말이 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우주가 죽기 전 이것만은 꼭 그에게 알려야 했다.

단단히 결심한 그녀는 멀어져가는 우주의 등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야, 신우주! 나 스무 살이야! 너랑 동갑이라구, 이 짜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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