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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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 안에는 정부가 지정한 그린존과 블루존, 그리고 레드존이 있다.
그린존은 개척 지대를 일컫는 말로 기업의 본격적인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블루존은 아직 원활한 도로망이 깔리지 않은 미개척 지대, 레드존은 사탄이 서식하는 위험 지역을 일컬었다.
예부터 반달곰 서식지로 유명했던 금강산은 레드존에 속했다. 따라서 재규어 팀은 금강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전술 지휘 차량에는 최첨단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바깥의 지붕 중앙에는 너비 1m 크기의 생물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열 감지 레이더)가 있고, 그 뒷부분에는 넓은 범위까지 교신하기 위한 전파 수신기, 그 옆에 지면 음파 레이더 등 돌연변이 생물의 위치 추적에 도움이 되는 각종 첨단 장비들이 지붕에 장착되어 있었다.
차량 내부.
현주가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우주는 그 곁에 서서 시계 침처럼 빙글빙글 도는 모니터 화면을 그녀와 함께 바라보는 중이었다.
“탐지 범위는 어디까지 가능하오?”
“최소 반경 5m, 최대 반경 42km다. 파충류 같은 냉혈 동물이 아닌 이상 온혈 동물은 다 잡아낼 수 있어. 특히 초신성 곰 같은 경우에는 데이터가 없으니 미확인 생물로 표시되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찾기가 더욱 수월하다. 금강산이 아무리 미개척 지대라고 해도 한반도 지역에 서식하는 동식물 종은 뻔하지. 그런 점에서 미확인 생물로 표시되는 녀석이 있다면 초신성 곰으로 봐도 무방할 거야.”
그때 뒤에서 다른 모니터를 보며 앉아있던 하나가 긴장한 눈빛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우리가 계획한 이동 경로에 사탄이 세 마리나 표시되네요. 우주 씨, 조심하셔야겠어요.”
현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세 마리씩이나?”
우주가 말했다.
“괜찮소. 가능한 한 피해 갈 테니.”
두 시간여 도로를 달리던 차량은 그린존과 레드존의 경계선에서 멈춰섰다.
도로 가에 차를 주차한 성일은 운전석에서 내린 다음 곧장 지휘실 안으로 들어왔다. 우주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행운을 비네. 무사히 돌아와주게.”
“늦지 않게 돌아오리다.”
우주는 의욕이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 하나가 귀에 꼽는 소형 무전기를 건넸다.
“최대 반경 42km 지역을 벗어나면 무전이 불가능하니 주의하세요.”
“명심하리다.”
성일이 끼어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하나 씨, 딱딱한 말만 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키스라도 해주지 그래?”
“네……?”
하나는 금세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이더니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우주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현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내가 하지.”
“웁!”
현주는 다짜고짜 우주의 목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혀를 우주의 입안에 집어넣고, 짧지만 화끈하게 아주 진한 키스를 선사해 주었다.
성일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내가 가고 싶을 정돈데? 하하하.”
“지금 뭐예요?”
하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싫은 표정을 지었다.
“대장님 그만하세요! 남자한테도 성추행이 적용된다구요!”
현주가 이끄는 스컹크 팀에 자주 속하다 보니 하나는 그녀를 부를 때 대장님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있었다.
“대장님!”
“알았다, 알았어. 끝났으니 걱정 말라구.”
강렬한 키스를 마친 현주가 입술에 묻은 침을 혀로 핥은 뒤 히죽 웃으며 하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넌 뭐 없는 거냐? 우주를 이렇게 그냥 보낼 생각이야?”
“그, 그건…….”
현주가 킥킥 웃었다.
“나처럼 키스라도 하든지.”
“키, 키스는……!”
하나가 수줍은 듯 시선을 내렸다. 양손을 깍지 끼고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몸을 배배 꼬았다.
현주의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에 잠시 당황했던 우주가 황급히 입술을 닦으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외다! 괜찮소. 그나저나 현주 누님 갑자기 이러면 어쩌오. 당황했…….”
“꺄아~”
덥석!
하나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지르며 우주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의 다부진 가슴 근육에 얼굴을 파묻고는 행복한 표정으로 헤벌쭉하며 눈을 꼭 감았다.
“하, 하나 씨!?”
“몰라요, 몰라! 우주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걱정되니까 이러는 거예요!”
사생 팬이 자신이 반한 스타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듯이 한동안 그를 감싸 안고 도무지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다 지친 현주와 성일이 하나에게 달려들어서야 겨우 떼놓을 수 있었다.
차 밖으로 나온 우주를 향해 성일이 담배를 입에 문 채 손을 흔들었다.
“숙녀들한테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일도 잘 풀릴 걸세. 잘 다녀오라구.”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지붕 위로 올라가서 개틀링포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차량 주변으로 언제 접근할지 모르는 돌연변이 생물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였다.
장비를 챙겨 밖으로 나온 우주는 금강산 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높게 자란 풀숲을 헤치며 지도 한 장과 귀에 장착한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의 목소리를 길잡이로 삼아 길을 찾았다.
―500m 전방에 돌연변이 동물 발견. 살쾡이. 개체 수 셋.
“수신 양호.”
그로부터 5분 뒤.
우주는 총구를 앞으로 겨눈 채 숨을 죽이며 조용히 접근했다.
동물의 사체를 파먹고 있는 길이 2m의 거대한 살쾡이 세 마리를 발견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다다다다다다다!
총알 몇 발이 몸을 관통한다고 해서 돌연변이 동물이 쉽게 죽을 리는 없었다. 살쾡이들은 일제히 우주에게로 달려들었다.
우주는 요리조리 피해가며 총을 마구 난사하였다. 겨우 한 마리가 죽었을 때 찰칵찰칵, 총알이 다 떨어져 버렸다.
재빠르게 탄창을 교환한 그는 다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
또 한 마리가 죽었다. 남은 한 마리는 직접 장도를 꺼내서 시원하게 목을 잘랐다.
―저 돌연변이 살쾡이는 통풍에 아주 잘 듣는다고 하던데, 사골이라도 가져다 국물로 우려내고 싶군. 시장에서는 원체 가격이 비싸서 말이지. 100g에 20만 원이나 달라니 원.
아쉬워하는 성일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우주가 탄창을 갈면서 대답했다.
“이따 시간이 남거든 가져다주리다.”
곧바로 하나가 말했다.
―우측 200m에서 빅 허니비 열 마리 발견. 지금 즉시 떠나야 피해갈 수 있습니다.
“수신 양호.”
우주는 살쾡이를 죽인 장소에서 냅다 앞으로 달렸다.
금강산은 2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 높게 솟은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숲속을 헤쳐 나아갔다.
―발밑에 빅 두더지입니다! 피하세요!
어느 순간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보다 10초 더 빨리 땅 밑의 진동을 알아챈 우주가 잽싸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마자 곧바로 커다란 짐승의 코가 땅을 뚫고 나와 킁킁 하며 주변 냄새를 맡았다.
그대로 우주가 몸을 수그린 방향을 향해 몇 번인가 더 냄새를 맡더니 그를 먹이라 생각했는지 이윽고 땅속에서 육중한 몸을 이끌고 기어 나왔다.
길이가 무려 3m에 달하는 빅 두더지.
투다다다다다다다!
우주가 사정없이 총을 난사하자 빅 두더지는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그와 동시에 무전기에서 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시를 날릴 거야! 피해!
우주는 서둘러 뛰어가서 두꺼운 나무 기둥에 몸을 숨겼다.
수초도 지나지 않아 몸을 둥글게 만 두더지가 뾰족한 가시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푸슉, 푸슉, 푸슈슉!
퍽! 퍽! 퍼버벅!
화살처럼 날아온 가시가 나무 기둥에 세차게 박혔다. 가시를 다 날렸는지, 빅 두더지는 다시 웅크린 몸을 펴고는 코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때다!’
우주는 그 코를 향해 기관단총을 갈겼다.
투다다다다!
코에서 피가 터지고 빅 두더지가 괴로운 듯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몸을 또다시 웅크리려고 몸을 움츠렸다.
우주는 곧장 멜빵에 달아놓은 수류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곧바로 그는 안전핀을 뽑아 휙 던져버렸다.
우주가 재빨리 바닥에 몸을 엎드렸다.
콰앙!
빅 두더지는 한쪽 옆구리가 터진 채 싱겁게 죽어버렸다.
◆
전술 지휘 차량을 떠나온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길은 평탄한 편이었다. 20m나 자란 나무들은 그리 울창하지도 않았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돌연변이 생물 또한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금강산과 점점 가까워졌을 때, 산 하나가 시야를 가로막고 서있어서 위치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져왔지!’
우주는 배낭을 내려놓고 그 속에서 GPS를 찾았다. 바닥에 지도를 펼쳐놓고 앱플패드만 한 GPS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위성으로부터 위치를 송신받아 알려주는 GPS의 좌표대로 그는 지도의 위도와 경도를 손가락으로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두 점이 마침내 한곳으로 합쳐지자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우주는 그것들을 다시 쑤셔 넣고 천천히 배낭을 멨다.
밤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얼굴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그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지휘실과 무전을 했다.
“그쪽은 이상 없소?”
소리가 잠잠했다.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불쑥 현주가 응답했다.
―하나는 지금 커피 끓이는 중이라서 교신이 늦었다. 여긴 아무 이상 없다.
우주가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생도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구려.”
―그럴 줄 알고 가방에 몇 봉지 넣어놓았다. 잠시 커피 한잔하면서 쉬었다 움직이도록 해. 금강산에 가면 쉴 틈도 없을 거야. 야밤에 체력을 유지하려면 일정량의 카페인 섭취도 매우 중요하지.
우주는 교신을 마치고 가까운 장소로 몸을 숨겼다.
배낭을 뒤지니 미니 보온병과 인스턴트커피 세 봉지가 보였다.
그는 재빨리 커피를 탔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커피를 시원한 냉수를 들이키듯 한 번에 원샷했다.
“카페인 섭취 완료!”
기운을 북돋우듯 두 손으로 가슴을 팡팡 치고는 곧바로 일어나서 배낭을 정리했다.
그리고 금강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는 강둑에 올라서서 고민하는 눈초리로 강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코앞이 금강산이다. 만약 여기를 지날 수만 있다면 수백 미터 거리를 돌아가는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산에서 흘러온 물은 투명하게 맑았고, 바닥에는 돌과 자갈이 깔려있었다. 유속은 그리 세보이지 않았다. 강물의 잔물결에 비쳐 일렁거리며 퍼져나가는 달빛이 고상하게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으니까.
강폭은 50m 정도쯤인 것 같았다. 작정하고 덤벼들면 금세 건널 수 있는 거리이긴 했다.
그런데 그가 주저하는 이유는 방수 때문이 아니었다. 배낭은 당연히 방수가 되는 재질이었고 총과 무전기 또한 미리 준비해 온 콘돔이나 방수 비닐에 싸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그가 뛰어들기를 머뭇거렸던 것은 강 속의 돌연변이 생물 때문이었다.
달밤에 신이 난 듯 물고기 한 마리가 수면 위로 솟구치며 튀어 올랐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5m 길이의 대형 악어만 했다.
“큰일이군.”
우주는 생각에 잠긴 채 계속 고민했다.
“어쩌지? 어쩔까?”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한 마리가 아닌 수십, 수백 마리가 달려들지도 모른다. 더구나 한밤중이라 시야도 어두워서 물속 상황이 어떤지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그냥 돌아가자. 안 돼, 이건.
현주가 조금은 기운 없이 말했다. 뒤이어 하나가 걱정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강을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외계인뿐일 거예요. 절대로 건널 수 없어요. 포기해요, 우주 씨.
한성일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차 지붕 위에서 팔을 기대고 누워있기라도 한 것인지 왠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나이가 저 따위 걸 무서워해서 되겠어? 그냥 건너버리게.
―아저씨!
하나가 곧장 소리쳤다.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그때 우주가 딱 잘라 말했다.
“역시 건너는 게 좋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