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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44화 (44/285)

44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길을 돌아가다가는 한 시간이 소비된다. 사탄이 활동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뿐.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게만 느껴졌고, 태양이 뜨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다.

―우주 씨, 안 돼요!

―신우주!

―자네, 진짜 할 생각인가?

세 사람이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그 소리를 무시하고 우주는 묵묵히 침착하게 총과 무전기를 방수 비닐에 싸 넣었다.

그는 입수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기합을 넣는 것처럼 크게 외쳤다.

“걱정 마시오! 난 절대 죽지 않소!”

풍덩!

우주는 과감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전신이 물에 닿자 자릿하며 차가운 기분이 들어 순간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뽀그르르.

물속에 잠긴 그의 입안에서 방울방울 기포가 솟아올랐다. 개구리처럼 양팔과 두 발을 오므렸다가 펴는 것을 반복하며 위로 헤쳐 나왔다.

우주는 수면 위로 얼굴을 빼꼼이 내밀었다. 곧이어 단검을 뽑아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손과 발을 사용하여 건너편 둑을 향해 헤엄쳤다.

다행히 슈트와 신발이 정말 방수 처리가 잘 되어있었다. 물은 전혀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진즉에 그럴 줄 알았지만, 10m도 못 가서 식인 물고기들이 평소와 다른 물결 파동을 감지하고는 우주를 쫓기 시작했다.

우주는 입에 물고 있던 단검을 손에 쥐었다. 수영을 멈추고 그대로 잠수했다.

우선 한 놈.

제일 먼저 다가온 녀석의 대가리를 발로 차서 아가미를 위로 쳐올렸다. 망설임 없이 옆구리를 찌르고 세로로 쭉 그었다. 순간 붉은 피가 터져 나오며 아지랑이처럼 위로 피어올랐다.

우주는 일단 서둘러 몸을 피했다. 피를 흩뿌리는 식인 물고기를 남겨두고 앞으로 헤엄쳤다.

뒤쫓아 온 식인 물고기들은 피 냄새를 맡자마자 죽은 물고기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우주는 그 동안에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 생각이었지만, 그것들의 주둥이가 어찌나 큰지 사체를 삼키는 것도 금방이었다.

식사 같지도 않은 식사를 마친 놈들이 우르르 우주를 다시 뒤쫓았다. 개중에는 먹이를 먹지 못한 놈들끼리 서로 화가 나 싸우기도 했다.

찌르고 발로 차고, 다시 찌르고 발로 차며 식인 물고기들을 해치웠다.

그나마 녀석들이 단순해서 다행이었다. 식인 물고기는 우주를 따라오면서도 피 냄새만 맡으면 당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우주는 놈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듯 차례차례 한 놈씩 잡아 죽여서 넘겨주었다.

“푸학!”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우주는 무사히 강을 건넜다. 고생해 가며 단숨에 50m를 헤엄쳐 나온 그는 황급히 물 밖으로 몸을 빼냈다.

“헉헉……!”

네 발로 땅을 짚고 엎드린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때 배낭 안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다급하게 그의 생사를 확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주는 배낭에서 무전기를 꺼내 방수 비닐을 벗겨낸 뒤 지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살아있소…….”

―정말?!

―다행이에요!

―와, 진짜……. 자네는 와……. 정말 할 말이 없네.

모두가 그의 무사함을 기뻐했다. 특히 그 누구보다 하나가 더 펄펄 날뛰며 좋아했다.

우주는 몰랐지만 그녀는 평소 우주의 열혈 팬을 자청했다. 집에 있는 PC에는 멋지게 찍은 우주의 화보가 바탕 화면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방 안의 벽은 그의 브로마이드로 전부 도배된 상태였다.

쉬는 날에는 그녀가 개설한 신우주 팬 카페의 회장직을 맡으면서 회원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엔 오딧세이X로 휴대폰을 바꾸었으며 또 평소 즐겨 마시던 커피를 버리고 그가 찍은 브랜드의 커피로 취향까지 바꾼 그녀였다.

―후방에 적갈늑대거미 출현! 위험합니다!

물속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나가 긴급하게 소리쳤다.

“핫!”

뒤쪽 풀숲에서 기어 나온 거대 거미가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며 우주에게 냅다 달려들었다. 그는 재빨리 자리를 피하며 거미의 얼굴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투다다다다!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거미의 머리에서 체액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녀석은 꼬리를 우주에게로 향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슈슈슉!

거대 거미가 발악하듯이 거미줄을 마구 뿌려댔다.

“크읏!”

일순간 끈적끈적한 거미줄에 온몸을 포박당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총구를 계속 거미의 몸통을 향해 갈겼다.

투다다다다!

무수한 총알이 녀석의 몸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어 놓았다. 거대 거미는 계속되는 총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학, 학……!”

우주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비롯해서 온몸에 착착 달라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어찌나 끈적거리던지 떼면서 시간을 낭비할까 봐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 후 숲속으로 300m쯤 걸어 들어가자, 마침내 금강산 입구가 보였다.

예전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었을 때 세워진 건물들은 세월을 말해 주듯 이끼와 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우주는 대충 주위를 훑어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온정각이라고 써진 가게를 지나서 곧바로 외금강 호텔까지 갔다. 이곳저곳에 세워진 음식점과 높게 세워진 호텔은 콘크리트 벽이 크게 부서져 내려앉은 상태였다.

그때 문득 거리 한가운데서 이상한 흔적을 찾아냈다.

한 관광 상품 가게가 크게 파손되어 있었는데, 흘린 지 얼마 안 된 걸로 보이는 피가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는 조심스럽게 가게로 다가가 안을 살펴보았다.

무너진 콘크리트에 처박힌 돌연변이 동물의 사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흔적이 단순히 여기까지였다면 돌연변이 동물들끼리 서로 치고 박고 싸운 거라는 가정을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사람이 쏜 총알에 맞아 죽은 흔적이 보였다. 대략 20발쯤 되어 보였다.

우주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혹시 우리 말고 다른 기업이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정보가 있소?”

―글쎄요…….

하나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응답했다.

그녀 역시 우주의 슈트 목덜미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서 현장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참고로, 영상 공유는 가능해도 임의로 지우거나 조작은 할 수 없다.

그때 현주가 불현듯 손뼉을 마주쳤다.

―아, 하나 있다.

“누구요?”

―신라그룹. 요즘 우연진 팀이 금강산을 탐사한다는 소문이 있었어.

“초신성 곰 때문에 그렇소?”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걱정됐는지 우주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현주가 곧바로 대꾸했다.

―아니야. 녀석들은 아마 사탄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을 거다.

“그렇소이까…….”

우주는 안심이 되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서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진입할 때였다.

“뭐야, 너. 혼자 온 거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우연히 마주친 우연진이 다짜고짜 반말을 해왔다.

옆에는 김수희가,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사막여우 팀원들이 저마다 우주를 보며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그러다 개중에서 한 사람이 연진에게 다가와서 속삭였다.

“저거 혼자인 걸 보니 폭스네이크가 아닐까요? 미치지 않고서야 혼자서 여기에 올 리가 없잖아요.”

연진이 가볍게 대꾸했다.

“하긴 그러네.”

“그냥 쏴버릴까요?”

그가 우주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기다려 보세요!”

수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고 나서 옆에 서있던 연진에게 말했다.

“제 눈에 신우주로 비치는 거 보니까 폭스네이크의 허상은 아니에요. 여성들은 허상을 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일단 사정이나 들어봅시다.”

“허상이 아니면 왜 혼자 왔을까나…….”

연진이 느긋하게 중얼거리면서 총을 어깨에 기대듯 걸치더니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 신우주 맞지?”

“맞소만.”

우주는 내심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분 나쁘다는 눈빛으로 당당히 되받아쳤다.

“내가 신우주가 아니면 당신이 신우주요?”

연진이 피식 웃었다.

“증거는?”

“들어보시오.”

우주는 귀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건넸다. 연진이 그것을 받아 자신의 귀에 가져다 댔다.

―제네틱스 스컹크 팀의 팀장 임현주라고 합니다. 현재 재규어 팀이라는 임시 팀을 꾸려서 작전 중에 있습니다. 그는 진짜 신우주가 맞고…….

현주의 설명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연진이 도로 무전기를 건넸다.

우주가 받았다. 연진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 큭큭 대더니 이내 박장대소했다.

“너 미친 거야? 아하하, 하하하! 여길 혼자 오다니! 돌았군, 돌았어!”

우주의 미간은 더욱 좁아졌다.

그냥 이들을 지나치기로 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생을 많이 하는 바람에 몸도 피곤했고 봐줄 오지랖도 없었다.

그래서 나직이 말했다.

“처웃지 말고 그냥 갈길 가시오.”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연진을 지나쳤다.

그 순간.

“너 지금 우리 대장한테 뭐라고 했냐 시방!”

“이 새끼가 미쳤나!”

“감히 제네틱스 새끼가!”

“이 씨발!”

우주가 자신들의 대장에게 내뱉은 욕지거리를 듣고서 사막여우 팀원들이 발끈했다. 화가 난 그들이 재빨리 총을 빼 들면서 일제히 우주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우주 역시 그들이 총을 잡는 순간, 즉각 반응하며 멜빵에 달린 수류탄을 날렵하게 빼 들었다. 그는 대담하게 안전핀까지 뽑았다.

우주는 머리 위로 수류탄을 들어 올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엄중하게 선포했다.

“누구든 좋으니 어디 한번 쏴보시오. 이거 확 던져버릴 테니까.”

그러자 사막여우 팀원들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저 새끼 미쳤다며 저마다 사색으로 변했다.

그에 반해 우주는 천천히, 아주 느긋하게 수류탄을 한개 더 빼 들었다. 입으로 안전핀을 뽑고 그것을 내뱉으며 다시 말했다.

“쏘라니까.”

“쳇…….”

신우주의 기세등등한 말에 사막여우 팀원들은 짜증스럽게 혀를 차면서도 어쩌지를 못했다.

하지만 갈수록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며, 현장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지금 뭣들 하시는 거예요?”

동료들이 저지른 행동을 탐탁지 않게 지켜보던 수희가 나섰다. 그녀는 우주를 등지고 서며 모두를 쳐다보았다.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고 뭐하는 거냐구요! 당장 내려놓으세요!”

“하지만 수희 씨, 저 새끼가 먼저.”

“강삼수 씨!”

그녀는 따끔하게 호통 친 뒤 될 수 있는 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뭔가요? 다른 회사 사람에게 총을 겨누라고 회사에서 무기를 지급해 준 줄 아세요? 그리고 이 모습 하나하나가 카메라에 전부 녹화되고 있다는 것도 잊으신 거예요?”

“참, 그렇지!”

누군가 말했다.

그럼에도 사막여우 팀원들은 흘끗 우주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 꾸물거릴 뿐이었다.

수희가 뒤를 돌아봤다.

“우주 씨한테 아무 일 없도록 할 테니 부디 절 믿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수희는 허리를 숙였다. 바닥에 떨어진 안전핀 두 개를 줍더니, 우주가 쥐고 있던 수류탄 하나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우주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 봤다. 수희가 믿어달라는 듯이 그 눈빛에 신뢰를 내보였다.

‘예전에 동영상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생각이 그리 가벼운 여자 같지는 않군. 왠지 뚝심 있어 보여.’

우주는 사실 전부터 수희를 싫어했다. 그의 뇌리 속에는 그녀에 대한 나쁜 첫인상이 각인되어 있었다. 수천만 명이 죽은 참사를 두고 미소로 설명하는 그녀가 얄미웠기 때문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녀의 얼굴을 묵묵히 들여다보던 우주는 마침내 팔을 내리며 수류탄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막여우 팀원들 또한 긴장된 눈빛으로 조심스레 총구를 거두었다.

내내 잠자코 지켜만 보던 연진이 히죽거렸다.

“재밌는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이거 아쉽게 됐군. 이봐, 나중에 필드에서 보자구.”

연진은 그 말만 남기고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앞을 보고 걸으면서 뒤를 향해 손을 건성건성 흔들었다. 그를 뒤따라서 중무장을 한 사막여우 팀원들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필드?”

처음 듣는 말에 조금 의아해하며 잠시 서있었는데, 눈앞에 수희가 남아있었다.

우주는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소이까?”

수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혼자 오시게 된 것인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우주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알 것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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