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46화 (46/285)

46화

황소는 더 크게 울부짖었다.

우주는 땅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닥에 떨어진 그는 데굴데굴 구르며 충격을 최소화한 뒤 재빨리 일어섰다.

“헉헉……!”

우주는 지친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장도를 빼 들었다.

눈앞에는 두 눈을 실명한 황소가 아무 데나 들쑤시고 다니면서 몸을 잇달아 처박아댔다. 녀석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두 눈은 물론, 군데군데 상처 난 등에서는 피를 질질 흐르고 있었다.

―우주 씨, 힘내요!

하나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마주 잡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와 함께 모니터를 주시하던 현주는 사뭇 심각한 눈빛으로 숨죽이며 지켜볼 뿐이었다. 또 차 지붕에서 사주 경계를 취하던 성일은 그저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로만 우주가 처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주가 날뛰는 황소를 향해 쏜살같이 질주했다.

슥삭! 싹둑! 싹둑!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며 앞발, 뒷발 순으로 네 다리를 모조리 잘라냈다. 118cm 길이의 장도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최적의 방법이었다.

출혈이 심했던 황소는 이내 쓰러졌다.

승자의 기쁨을 여유롭게 만끽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현재 시각 새벽 1시 30분. 7월 말의 해 뜨는 시각은 대략 새벽 4시 30분쯤. 남은 시간은 단 세 시간.

우주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것은 차에서 지켜보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일이 무전기를 통해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딱 50분만 더 탐색하고 돌아가자. 여기서 전방주둔지로 복귀하는 데 한 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데다, 자네가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전술 지휘 차량까지 돌아오는 데만 해도 대충 한 시간이 소요될 거야.

―그 말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기로 해요, 우주 씨.

현주도, 하나도 잇따라 공감했다.

우주는 땅바닥에 버려진 총을 주우며 물었다.

“탐지 레이더에는 아직 반응이 없소?”

현주가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미확인 생물은 아직 감지되지 않았다. 전부 다른 녀석들뿐이군.

금강산.

동서 길이 약 40km, 남북 길이 약 60km로 가운데 옥녀봉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일출봉, 월출봉, 채하봉, 비로봉이 있고, 동쪽에는 중관음봉, 상관음봉, 상등봉, 수정봉, 대자봉 등이 있다.

재규어 팀이 가져온 전술 지휘 차량이 주차된 곳에서 생물 탐지 레이더로 관측할 수 있는 범위는 최대 42km, 즉 옥녀봉 서쪽 지역까지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쩌면 초신성 곰일 수도 있는 미확인 생물이 레이더로 전혀 탐지가 되지 않는다면 우주로서는 방법이 하나뿐이었다.

“남은 시간은 둘째 치고, 동쪽 지역을 수색하겠소.”

―가지 마!

현주가 소리쳤다.

―그곳에 가면 서로 연락이 불가능하다! 위험하단 말이다!

“누님, 동쪽 지역으로 간다 한들 교신만 할 수 없을 뿐이지 위험한 건 여기도 매한가지요.”

―여기는 하다못해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잖아요!

하나가 소리쳤다. 이어서 성일도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

그러나 우주는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 발걸음은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정확히 오전 3시까지 돌아오겠소이다. 만약 그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거든 염려 말고 전방주둔지로 복귀하시오. 모두 날 위해 애써줘서 고마웠소. 늦더라도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맹세하리다.”

―신우주! 내 말 들으란 말이다! 신우주! 신우주!

치지직.

무전이 즉시 두절됐다. 최대 교신 반경 42km를 결국 넘어서고 만 것이다.

현주는 무전기를 들고 있던 팔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옆에서는 하나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차 지붕에 앉아있던 성일은 답답한 마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허, 그 친구 참…….”

투다다다, 투다다다다다!

우주는 산행을 하다 마주친 거대한 새를 향해 기관단총을 마구 갈겨댔다.

퓩! 퓩! 퓨퓩!

여러 발의 총알에 난자당한 거대한 새가 허공에서 툭 떨어졌다.

“끼에엑! 끼엑! 끼에에…….”

암석으로 된 바닥이 붉은 피로 작은 호수를 이루었다.

녀석은 죽었다.

우주는 배낭을 확인했다. 남은 탄창은 60발짜리 다섯 개. 앞으로는 가능한 한 총질을 자제해야만 했다.

우주는 길 없는 산길을 헤치며 뛰어다녔다. 곰의 동면 굴, 곰에 의하여 손상된 나무들, 아니면 분변, 또는 발자국 모양 등, 그런 것들을 조급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찾아다녔다.

곰은 이동 시 한 번 지나다닌 곳을 계속 고집하는 습성이 있다. 그곳이 경사나 암반이 많은 절벽 등 열악한 지형 조건이라 해도 무시하고 최단 거리를 골라서 직선으로 이동한다.

특히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여름에 높이 천 미터쯤에서 자라는 버찌나 산딸기, 도토리 등을 즐겨 따 먹는다고 한다.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우주는 달리고 또 달렸다. 간혹 떼 지은 돌연변이 동물을 만나면 피해갔고, 홀로 돌아다니는 것은 칼로 사정없이 베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버찌와 산딸기, 도토리 등이 많이 자라는 곳! 더해서 계곡물이 흐르면 금상첨화!”

한 번은 바닥에 깔린 잎사귀를 잘못 밟았다가 밧줄처럼 발목이 꽁꽁 묶인 채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적도 있었다.

그러자 길이 7m의 돌연변이 식물이 먹잇감을 발견해서 신이 난 듯 잎사귀를 연신 흔들어댔다.

착, 착. 착! 싹둑. 싹둑. 싹둑!

잎사귀가 잘도 잘려서 칼을 사용하기가 참 편한 녀석이었다. 더구나 잘린 줄기에서는 시원하고 신선한 물이 콸콸 쏟아졌다.

마른 목을 축인 후 우주는 칼집에 칼을 쑤셔 넣고 다시 이동했다.

지휘실과 교신이 끊긴 뒤로는 배낭에서 지도와 GPS를 꺼내 자주 위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우주는 배낭에서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펼쳤다. GPS에 표시된 좌표를 봐가며 지도에 표시된 등고선을 손가락으로 쭉 훑어갔다.

이내 지도에서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현재 이곳인가.”

그는 눈앞의 깎아지른 절벽을 올려다봤다.

“저곳을 넘으면 계곡이다!”

우주는 배낭을 질끈 동여매고 절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한 손이나 한 발씩 움직였다. 두 팔, 두 다리 중 나머지 세 부분은 항상 바위에 닿아있도록 하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절벽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절벽 꼭대기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그의 눈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사, 사탄?”

코앞에 있는 것이 처음에는 순백의 민둥산인 줄 알았다. 그랬는데 그 둥글둥글한 것은 산이 아니라 사탄이었다.

어찌나 컸던지 그 덩치는 달을 가릴 정도였다. 그 거대한 사탄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한편으로는 신이 지상에 내려와 석고를 깎아 만든 성스러운 조각상처럼도 느껴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얗다. 밤의 어둠을 순백의 매끄러운 피부로 몰아내는 것만 같았다.

도롱뇽 머리를 닮은 사탄의 두 눈은 잠이 든 것처럼 감겨있었다.

압도적인 위용에 우주는 잠시 몸이 굳었다. 긴장감이 배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무심코 손으로 사탄을 만졌다. 인간의 복숭아뼈에 해당하는 부위.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을 만지는 느낌이 등줄기를 오싹하게 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손 안의 감촉을 확인하였다. 하얗지만 말랑말랑한 피부. 인간의 피부와 감촉이 똑같았다.

그러나 하나 다른 점이 있긴 했다. 척추동물이라면 있어야 할 뼈의 감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느낌은 악몽과도 같았던 두 달 전 기억을 상기시켰다.

“총알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가…….”

우주가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그는 불쑥 기분 나쁜 기척을 느꼈다. 우주는 사탄의 다리에서 무심코 손을 떼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위를 올려다봤다.

사탄이 눈을 뜨고 있었다.

신우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어떠한 살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매는 날카롭지만 흰자위에 굵은 점 하나만 달랑 찍어놓은 것 같은 심심한 눈동자. 사탄은 유유히 신우주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잠을 방해해서 살의가 담겨있는 것도 아니고 호기심을 가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한 잔물결처럼 차분했다.

그와 반대로 우주는 긴장된 눈빛으로 칼집을 움켜쥐었다. 작은 사탄의 그 엄청난 속도를 이미 눈에 새겨둔 경험이 있다. 언제, 어디서 공격해 올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사탄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주가 숲으로 사라질 때까지 사탄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우주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계곡을 뛰어 내려갔다. 사탄이 쫓아오는 기척은 없었다.

그때 문득 나무 한 그루가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잣나무였는데 껍질이 너덜너덜하게 까져있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서 여러 번 긁힌 자국 같았다.

“곰이다!”

우주가 쾌재를 불렀다. 아마 초신성 곰이 발톱으로 나무 기둥을 갈기갈기 찢은 다음 그 안의 애벌레들을 잡아 먹은 것 같았다.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환하게 웃었다. 기운을 더 내기 위해서 레몬 맛 사탕을 하나 까서 입안에 넣었다. 새콤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말라붙어 있던 입안에서 침이 돌았다.

우주는 주변을 샅샅이 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계곡 아래에서 초신성 곰을 만났다. 물가에서 식인 물고기를 사냥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투다다다다다다!

서로 주고받을 인사도 없고, 통할 리도 없었다.

우주는 초신성 곰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서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투다다다다, 투다다다다!

총격을 받은 초신성 곰이 그가 서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러더니 짧은 다리를 힘껏 차며 높이 뛰어올랐다.

엄청난 점프력이었다. 3m 길이의 신장과 육중한 체중을 가진 곰 주제에 정말 말도 안 되는 묘기를 부렸다.

우주는 침착하게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서 제자리에 떨구고는 재빨리 물가로 뛰어가 몸을 날렸다. 3초 전까지 그가 서있던 자리에 초신성 곰이 착지하자마자 동시에 콰앙 하고 수류탄이 터졌다.

수심이 깊은 계곡물 속으로 피신했던 우주는 식인 물고기 생각에 후다닥 헤엄쳐서 다시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한순간 어둠이 걷히며 엄청나게 밝은 빛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우주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빛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갑자기 동공이 축소되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했다. 암순응이 되려면 몇 초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몇 초 동안 우주는 무력했다.

갑작스러운 어둠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 물가에 널린 자갈이 밟히는 소리. 무언가 들어 올리는 움직임.

그때 우주는 몸을 던지며 낙법을 구사했다. 그와 동시에 휙 날카로운 곰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동공이 확대되고 시야가 다시 돌아오자 우주는 다시 기관단총을 갈기며 민첩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초신성 곰은 수류탄에 의해 이미 한 발이 날아간 상태였다. 그러니 우주를 잡으려 해도 잡기가 힘들었다. 녀석은 생쥐처럼 뛰어다니는 우주를 잡기 위해 재차 몸 전체에서 엄청난 빛을 발광하기 시작했다.

우주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빛이 나타났다 바로 사라지자, 그는 다시 초신성 곰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덩치가 워낙 큰지라 60발이 든 탄창 하나로는 부족했다. 그는 재빨리 탄창을 다시 갈았다.

“벌써 3시예요.”

하나가 2시 55분을 가리키는 전자시계를 보고 가슴을 졸였다. 그것은 현주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다 할 말도 없이 그저 의자에 앉아서 턱을 괸 채 모니터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위에서는 개틀링포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탄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성일이 주변에 나타난 돌연변이 동물을 잡는 중이었다.

현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잠깐 위로 가서 상황 좀 보고 오겠다. 모니터 잘보고 있도록.”

“3시가 되면 출발하실 거예요?”

하나의 초조한 물음에 현주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내려다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천천히 말했다.

“우주의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너와 나, 성일 씨의 생명도 소중해. 묻지 않아도 답은 뻔하다.”

그렇게만 말하고 현주는 돌아서더니 앞좌석으로 가서 사다리에 올랐다.

우주는 마침내 초신성 곰을 쓰러뜨렸다. 가죽을 찢고 쓸개를 찾아서 가져온 비닐 팩에 넣은 뒤 약간의 얼음으로 주변을 감쌌다. 그것을 배낭에 넣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현재 시각 3시 20분. 해가 뜨기까지 한 시간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우주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어둠 속을 달렸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돌연변이 멧돼지가 우주를 향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이어서 뒤를 돌아보니 대여섯 마리가 뒤쫓아 달려오는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돌연변이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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