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그날 오후.
[신우주와 한소라, 신우주 집 앞 차 안에서 몰래 데이트]
[신우주, 한소라의 밀월여행 딱 걸렸네! 한식집 데이트 현장 포착!]
[신우주, 한소라 열애! 그들이 데이트할 때 타는 차는?]
[신우주, 한소라 열애? 한식집 주인 ‘둘이 자주 왔다’]
[신우주, 한소라 열애설! 네티즌 반응 각양각색]
[한 여성 네티즌, 한소라 안티 팬 카페 생성. 카페 이름이? ‘한소라 이 요물 같은 X’ 줄여서 ‘한요X’]
[제네틱스 측 공식 입장, ‘일 때문에 만났을 뿐 열애설은 사실무근’]
[한소라 제네틱스 경영운영 본부장, ‘회사가 힘든 시기에 무척 난감하다. 전혀 사실 아니다’ 열애설 부인]
[신우주 공식 입장, ‘자다가 화들짝 놀랐다. 오해일 뿐’ 열애설 일축]
우주가 초신성 곰을 잡았다는 기사는 순식간에 묻혔다.
하루 종일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는 우주의 열애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며 크게 화제가 됐다.
그리고 한소라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빗발치는 지인들의 안부 전화에 내내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축하합니다’ 하고 미국과 일본 협력 업체 관계자들까지 전화를 해왔고, 소라는 일일이 그들에게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버님, 소라입니다. 기사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열애설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왜 그런 기사가 나왔는지 저도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어리석은 녀석.
뚝.
한규만은 그 말만 뱉고는 냉랭하게 전화를 끊었다.
소라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연신 짓눌렀다.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제가 한번 알아볼까요?”
책상 앞에서 대기하던 유창성이 말했다.
소라는 대답 없이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우주를 떠올렸다. 곧바로 PC로 인터넷을 켰다. 우주는 과연 뭐라고 변명했을까. 왠지 궁금했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자다가 날벼락 맞은 기분]
[억측 자제 바란다]
[직장 내 상사일 뿐, 여성으로 생각한 적 없다]
우주가 공식 입장이라고 내놓은 기사를 보며 소라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한편으로는 괜스레 속이 상하기도 했다.
사실 우주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회사 소유의 소속사에서 대신 내놓은 공식 입장일 것이 뻔한데,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내심 화가 났다.
‘신우주는 날 여자라고 안 느꼈어?’
‘아니 그보다 내가 신우주를 좋아했나?’
‘그런데 신우주는 날 어떻게 생각하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언젠가 함께 갔던 레스토랑에서 우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대는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답소.”
소라는 또다시 속으로 말했다.
‘내가 마음에 들어서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아냐, 빈 말이겠지?’
‘남자 친구로 신우주 정도면 딱 이긴 해.’
와글와글, 지글지글, 뽀글뽀글.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라가 갑자기 사무실에서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우주의 생각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열애 기사가 뜨고 나서 이상하게 그의 얼굴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라는 짜증이 나 미칠 것 같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그녀의 기행에 놀란 창성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소라가 씩씩대며 그를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나가서 기사 터뜨린 기자 새끼 당장 고소하세요!”
“알겠습니다.”
창성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배터리를 빼 놓을까 하다가 액정을 슬쩍 보니 신우주였다. 그녀는 얼른 받았다.
“한소라입니다.”
―나요, 신우주.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소라 역시 더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지금 자고 계실 것 같아서 저녁에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초신성 곰 잡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고맙소. 그런데 소라 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거요. 내 생각에는 소라 씨의 공이 더 크다오.
“제가 뭘요. 그냥 승인만 해준 것밖에 더 있나요.”
그녀가 대답하고 나서 우주는 한 박자 쉬고 말했다.
―그나저나… 기사 봤소?
“기사? 무슨 기사요?”
―열애설 기사가 나와서 말이오.
“아하, 그거요. 저도 봤습니다. 우주 씨와 제가 연인 관계라니 말도 안 돼죠.”
―소생도 기사 보고 깜짝 놀랐다오. 그래서 혹시나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소이다. 이것 참 뜻하지 않게 소라 낭자에게 민폐를 끼쳤소.
“민폐까지라고 할 거 있나요. 전 괜찮습니다.”
소라가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우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그러더니 신이 난듯 떠벌리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 연인 관계라니 정말 웃겨서 말이 안 나왔다오. 그게 말이 되오?
“그렇죠?”
―정말로 기가 막혔다오. 차라리 료코와 연인 관계라고 기사가 나면 모를까 소라 낭자와 연인 관계라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지나가는 개도 안 믿겠소. 아하하하. 하도 웃겨서 기자에게 전화까지 걸었다오.
“뭐라고 말했는데요?”
-직장 내 상급자일 뿐, 여성으로 절대 생각한 적도 없다. 만약 진짜로 소라 씨와 사귄다면 신우주가 아니라 김우주로 성을 갈겠다 이랬다오.
“하하…….”
소라는 조금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까지 말했어야 했나?
―솔직히 생각해 보시오. 내가 소라 씨와 어울린다고 보오? 에이, 어림없소. 내가 어찌 감히 소라 씨의 짝이 되겠소이까. 하하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소라는 점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주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마침내 심통이 났다.
“하긴 그렇죠. 우주 씨가 저를 만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도 눈 높아요. 우주 씨 말고도 세상에 멋진 남자들이 많거든요.”
열애설이 터지고 나서 누구는 종일 자기 생각만 나서 괴로워 죽겠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 더 괘씸했다.
소라는 그가 얄미웠고 나름 사귀는 것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던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더 웃기고 창피한 것은 두 사람이 유럽의 한 성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에다가 널따란 대저택에서 아기 두 명을 낳고 오순도순 잘 사는 미래까지 상상해 봤다는 것이다.
“저 바쁩니다. 이만 끊어요.”
대답도 안 기다리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고 씩씩거렸다.
“나랑 사귄다는 게 그렇게 우스워? 씨발, 나쁜 새끼.”
◆
일본 도쿄.
스카이트리 근처에 고풍스러운 일본 전통 목조 기와집이 자리 잡고 있다. 색이 바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녹색의 정원 안에 작은 연못과 석등, 그리고 석탑 등이 세워져있어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주름진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앉아 한창 긴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한 사람은 이 집의 손님인 현 일본 총리 ‘나베 신쥬’요, 기모노를 입은 또 한 사람은 집주인이자 일본 재계의 거물 ‘다코오 하시도루’였다.
그들은 소라와 우주의 뉴스를 접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오늘 만났다.
왜냐하면 다코오 하시도루는 우주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비단 한국에서 유명한 수라이기에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주를 애초부터 잘 알았다.
솔직히 우주가 다시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정보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고, 미심쩍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주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제네틱스를 통해 일본에 사는 다코오 하시도루에게까지 전해졌다.
제네틱스에는 그의 지분이 상당량 있다. 더구나 제네틱스는 대일본 제국의 부흥을 위해서 다코오 가문의 신세기 프로젝트를 떠맡고 있는 한국 기업이다.
그런데 그 회장의 딸과 연인 관계라니,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신우주가 누구인가. 자신의 증조부와 숙적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신세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그런 위험한 인물을 결코 살려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한편, 일본의 우익 정치인인 총리 나베 신쥬는 하시도루의 하수견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시도루를 위해서 일본 최고의 수라 한 명을 그에게 데려왔다.
“(이시다 신타로!)”
“하!”
다다미 문이 열렸다.
정장을 입은 한 젊은 사내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우측에는 일본도가 놓여있었다.
신쥬가 하시도루를 쳐다봤다.
“(익히 알려진 용심검류의 마지막 후계자입니다. 최근 열린 일본 전국 수라 겨루기 대회에서 전 대회 우승자 미야토 무사시를 쓰러뜨리고 우승을 차지했으니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시도루가 신타로를 쳐다봤다. 신타로는 코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려 있었다.
하시도루가 엄중히 입술을 열었다.
“(널 한국에 보내는 목적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신우주를 암살할 것.)”
“하!”
“(둘째는…….)”
“하!”
하시도루가 소매에서 황토색 봉투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100년 동안 잠들어 계시던 쿠로가네 료코 님의 행방을 찾아서 이곳으로 모셔 와라. 최대한 정중히 모셔 와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하!”
“(그 봉투에는 100년 전 쿠로가네 료코 님의 사진 복사본이 들어있다. 복사본이지만 조금이라도 구겨지거나 훼손된다면 그날부로 네 녀석의 목숨이 요절날 줄 알거라.)”
“(하! 정성을 다해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신타로는 최대한 머리를 조아리며 일부러 얼굴 표정을 가렸다.
사실 그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내심 환희에 가득 찼던 것이다.
강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기쁨이자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였다. 한국 녀석들은 과연 어떨까?
‘기다려라, 신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