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51화 (51/285)

51화

다음 날.

우주는 아침 일찍 철수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우주가 나타나자 병원은 활기차고 시끄러워졌다. 유명인이 왔다며 복도를 오가는 간호사들이 꺄아 소리를 질렀고, 빠르게 연락을 받은 병원장은 로비로 직접 마중을 나왔다.

우주는 김아라의 퇴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장실로 차를 마시러 갔다.

환자들은 그가 온 줄도 몰랐다.

철수가 웃는 얼굴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환자복이 아닌 반팔 칼라 티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아라는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화사한 아침 햇살과 다름없을 만큼 기분이 좋은 얼굴이었다.

“준비는 끝났니?”

“아즉 쪼매 더해야 돼요”

아라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세면도구나 우주에게 선물받은 인형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철수는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았다. 손에 쥔 부채로 부채질을 했다.

“웅담이란 게 좋긴 좋구나. 어떻게 하루 만에 나을 수 있는지.”

짐 정리를 하던 아라가 철수를 쳐다봤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있었다.

“혹시 그걸 오빠야가 주신기라예?”

“TV 봤니?”

“인터넷으로 봤어예.”

“레쉴에서 얻은 것들은 전부 회사가 가져가기 때문에 우주 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냐. 네 친오빠가 회사에다 돈 주고 산거야.”

“얼매에 샀다캐요?”

“글쎄다. 그건 나한테도 말 안 해줘서 모르겠어.”

그리 둘러대고는 철수는 한동안 창밖을 구경하다 이야기를 이었다.

“이제 너도 학교 다녀야지. 지금 열일곱 살이지? 열일곱이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네.”

“그란데 지는 중학꾜 중퇴인데 우짜는 기라예? 바로 고등학꾜에 갈 수 있능교?”

“바로는 못 가지. 대신 중졸 검정고시라고 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그 시험에 합격하면 고등학교에 갈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와, 그라믄 다행이네예.”

아라가 신이 나서 머리를 흔들었다.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머리가 대롱대롱 흔들거렸다.

“해외에 나가 고생하고 있을 오빠야를 위해 꼭 합격할랍니더.”

철수는 퇴원 수속을 밟고 나서 아라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승용차에 그녀를 태웠다.

두 사람은 근처 식당에 들려서 갈비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곧바로 노량진으로 향했다.

미리 계약해 두었던 노량진 역 근처 여성 전용 오피스텔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여기가 니가 살 집이다.”

“진짭니꺼? 믿기지 않아예.”

아라는 무척 감탄한 눈으로 건물을 올려다봤다. 빨리 올라가서 방을 구경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눈치다.

“울 오빠야 외국에서 돈 마이 번답니꺼?”

“그럼.”

철수가 밝게 대답한 것과 달리 아라는 금세 풀이 죽은 얼굴로 다시 물어왔다.

“그란데 와 전화를 한 번도 안 해예? 지가 안 보고 싶다 카던가요?”

“그건 글쎄다……. 아마 바쁜가 보지.”

“아재한테는 연락카잖습니꺼?”

“…….”

철수는 조금 곤란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아재요, 머 숨구고 있지예?”

“숨기다니? 없어, 그런 거. 하하……. 빨리 올라가 보자.”

철수는 대충 얼버무리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차문을 열었는데 아라가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아재요, 지 눈치 100단이라예. 인자 말 쫌 해주이소? 처음부터 이상했어예. 병실에 누워 있는데도 먼가 이상했고예. 오빠야가 집을 비우는 날엔 하루 열 통씩 지한테 전화했심더. 그란데 어느 날부터 연락을 끊었뿌더니 갑자기 해외 나갔다 카고, 그기 말도 안 되고 먼가 이상하단 생각 안 하십니꺼?”

“바쁘니까 그랬겠지.”

철수는 애써 차분하게 에둘러 대답했지만, 당황한 표정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아라는 계속 물어왔다.

“혹시 오빠야가 스폰서 구한기라예?”

“스폰서? 에이, 말도 안 되지 그런 건. 남자가 스폰서가 어디 있어.”

“지 말은 그기 아이라예, 지 스폰서 말이라예. 그카지 않고 단기간에 이래 큰돈이 어데서 생개요? 여자 연예인들 그란 거 있잖아예. 스폰서한테 돈 받고 몸 주는 거. 지 오빠야가 돈 많은 갑부한테 지를 팔았뿌랬으니까 이런 큰돈이 생긴 거잖아예. 맞지예? 맞지예!”

으아아앙! 아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철수는 옆에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이걸 그냥 말해 말아? 어쩌지?’

그때 불쑥 한 경비원이 나타났다. 그는 차 앞 유리를 통해 슬쩍 안을 기웃거리더니 다가와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여기 사는 분이슈?”

“전 아니고 여기 이 아이가 오늘부터 살 겁니다.”

“아하, 오늘 이사 온다던 그 여학생?”

“네네.”

“그런데 왜 울고 계슈? 혹시 원조 교제 그런 건 아니지?”

“설마요!”

아라는 옆에서 계속 울고 있고, 철수는 진땀 흘려가며 경비원을 설득해서 겨우 돌려보냈다.

철수는 차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어디론가 전화했다. 짧은 통화가 끝난 후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다.

훌쩍이는 소리가 여전히 차 안에 가득했다. 얼마나 울어댄 건지 눈물도 안 나오는데 계속 훌쩍거리고 있었다.

철수는 앞을 쳐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널 지금껏 돌봐준 사람이 네 오빠가 아닌 건 맞아.”

“우주 오빠지예?”

아라가 대뜸 그렇게 물었다.

철수는 내심 놀랐지만 표정 하나 안 바꾸고 간신히 대꾸했다.

“아냐. 우주 씨는 이번 일과 전혀 상관이 없어. 그땐 단지 병원을 알아보기 위해서 평소 친분이 있던 우주 씨에게 연락을 해서 도와달라고 했던 것뿐이야. 네가 입원했던 병원의 원장과 막역한 사이거든. 게다가 서울에서도 아주 큰 병원이고.”

아라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철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널 돌봐주는 그분의 이름은 밝힐 수 없어.”

“우째서예?”

아라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분이 밝히지 말 것을 특별한 조건으로 하고 계시니까. 하나 밝힐 수 있다면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은 더 많다는 거.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구를 도와준다는 것에 관해 네가 아직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사회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 자신이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며 한평생 남들을 위해 기부를 하는 사람도 있지. 그분도 똑같은 거야. 자신이 어렸을 적에 희귀병에 걸려서 고생했던 시기를 떠올리며 널 도와주고자 마음먹으신 거지.”

“…….”

“네 학비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그때부터 학교에 납부해 주실 거고, 식비와 생활비는 매주 50만 원씩 용돈 겸 보내 주시겠다고도 하셨다. 그 정도면 괜찮겠지?”

“50만 원씩이나예? 너매 마이 주시는 거 아입니꺼…….”

“막 쓰지 말고 남는 건 저축하도록 해. 요즘 여자가 너무 헤프면 된장녀 소리 듣는 데다 옷 예쁘게 입고 다녀봐야 변태들만 따라붙는다. 하긴 뭐, 넌 아직 학생이니까 그런 데 돈 쓸 일도 없겠지만.”

울음을 그친 아라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물어왔다.

“그분의 직업도 알 수 없어예?”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어. 그게 그쪽의 조건이니까.”

한편, 우주는 철수와 아라가 병원을 나갔다는 연락을 받고 강민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병실을 찾았다.

강민과 어머니,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 이수영이 진심으로 감격해했다. 세 사람은 우주 앞에서 행복에 겨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민은 우주를 위해서라면 앞으로 뭐라도 다 하겠다는 굳은 각오와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그는 우주를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그 자리에서 맹세했다.

기뻐하는 세 사람을 두고 혼자 병원을 나온 우주는 그의 승용차인 흰색 아반떼에 올라탔다. 회사에서는 그 이상의 국산 차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우주가 극구 사양했다. 철수의 말대로 가격이 싼 차로 운전 연습을 더하다 바꿀 계획이었다.

우주가 병원을 빠져나와 향한 곳은 ‘조직재생공학연구소’였다. 그곳에는 한때 고릴라 팀의 동료였던 오수연이 입원해 있었다.

사실 오수연을 찾아가는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였지만, 그녀는 여태껏 우주를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

연구원의 말에 의하면 두 다리를 잃은 상실감에 우울증에 대인기피증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늘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재생 기술 덕에 두 다리가 점점 자라나 종아리까지 생겼다는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수연을 만날 수 없어서 안타까운 심정을 가슴에 안고 터벅터벅 연구소 건물을 나가는 길에 문득 한 연구원이 자신을 불러 세웠다.

“제 방에 가서 차라도 한잔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수연 누나에 관한 이야기요?”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가끔 팬이라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그를 붙잡아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의 연구원은 달랐다. 우주 앞에서 그는 귀가 번뜩일 이야기를 꺼냈다.

“전 고릴라 팀의 팀장인 차영웅 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주는 당장 그를 따라갔다.

박준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 연구원은 조직재생공학연구소에서 수석 연구원 겸 홍보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이윽고 박준이라는 문패가 걸린 연구실 안으로 두 사람은 들어갔다.

우주는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박준이 새콤한 유자차를 내오더니,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흰머리가 보이고 안경 낀 그가 넉살좋게 웃었다.

“저희 연구소는 국가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능력 있는 수라분들의 투자를 받고 있습니다.”

그 말에 우주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

‘이 연구소에 투자해 달라는 이야기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우주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필요 없소이다. 차영웅 대장에 관해서나 빨리 말해 주시오.”

박준이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바쁘신 것 같으니 직접 봐야 이야기가 빠르겠지요.”

그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리모컨을 집더니 눌렀다. 방안 한쪽에 놓인 여러 대의 모니터 중에서 중앙에 있던 모니터 하나가 켜졌다.

“생전에 차영웅 씨도 저희 연구소에 투자를 하셨지요. 모니터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우주는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물이 담긴 커다란 원통형 시험관 안에 알몸으로 들어있는 한 소년. 입에는 산소 공급 장치 같은 것이 물려 있었다.

박준이 자신이 키운 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안에 있는 아이가 바로 차영웅 씨 입니다.”

우주의 눈이 단숨에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장난치는 거요?”

“지금부터 속사정을 설명해 드릴 테니 흥분하지 마십시오. 저 시험관 속의 아이는 정말로 차영웅 씨입니다.”

“냉큼 말하시오!”

“영웅 씨는 죽기 전 저희 조직재생공학연구소의 평생회원이셨습니다. ‘평생회원’이란 년마다 50억 원의 연구 비용을 투자해 주는 대신 본인이 병에 걸려 체내의 장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또는 신체가 훼손될 때, 심지어 사망했을 때라도 저희 연구소에서 책임지고 재생이나 복제를 해드리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회원을 일컫지요. 물론, 인간 복제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2년 내에 곧 완성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우주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저기 있는 아이가 복제된 영웅 대장이란 것이오?”

“예, 하지만 인간 복제 기술은 아직 완벽한 것이 아니라서 어떠한 부작용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뇌를 비롯해 간이나 콩팥 같은 내장 기관이 제 기능을 못 할 수도 있고요. 넘어야 할 산이 많지요.”

“그럼 저 아이는?”

“현재까진 아주 좋습니다. 완벽하게 영웅 씨를 복제한 것과 다름없지요. 이게 다 레지스트 쉴드 덕분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성체줄기세포 복제 방식이 아닌 체세포 복제 방식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거든요. 배아줄기세포 복제 방식이라면 더 쉬웠을 테지만요.”

“체세포 복제니 배아줄기세포 복제니 그런 말은 난 모르오. 차영웅 대장이 생전 모습 그대로 돌아올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말해 보시오. 외관이나 기억, 그런 것들 말이외다.”

우주의 말에 박준이 턱을 어루만졌다.

“음……. 사망 당시 영웅 씨 나이가 45세. 생전의 영웅 씨께서 저희 연구소와 상담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자식의 해외 유학 때문에 한국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이 비참하다, 홀로 외로이 일하며 돈만 보내주면 만족하는 아내와 딸에게 서운하다, 기러기 아빠로 더는 살기 싫다, 이런 인생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요.”

“……?”

우주는 그 사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갸우뚱하는 그에게 박준이 웃어 보였다.

“인간 복제 기술이 완성되면 그때는 자신을 스무 살 청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시더군요.”

============================ 작품 후기 ============================

소설 속에서 브라질 여자 엉덩이 닮은 임현주 엉덩이 실물로 구했어요 작품설정란에 사진으로 올렸습니다! 다음화 연재될때까지만 올려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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