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58화 (58/285)

58화

드롭존(Drop zone).

레지스트 쉴드 내에 서식하고 있던 돌연변이 생물이 해안가와 인접한 도시들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정부에서는 각 회사로 공문을 보내 협조 요청을 하게 되는데, 연락을 받은 기업에서는 자사 수라 중에서 상위 연봉자 1위부터 30위까지, 베스트 30을 발탁해서 드롭존에 파견한다.

우주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료코가 초조한 표정으로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이리 서두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주인님,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회사 출근은 내일로 알고 있습니다만.)”

“(레쉴에서 돌연변이 생물이 넘어왔다네. 그래서 빨리 가봐야 해.)”

“(그 전에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요. 끼니를 거르시면 안 되시옵니다.)”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얼른 가봐야 해.)”

대충 입고 나가려는데 차 키가 보이지 않았다. 안방 책상을 뒤적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차 키, 어디다 뒀었지?)”

“(차 키라면 여기 있사옵니다.)”

원피스 같은 실크 잠옷을 걸친 료코가 황급히 안방을 뛰쳐나갔다. 이내 거실에서 차 키를 가져왔다.

우주가 방긋 웃었다.

“(고마워. 아, 그리고 수영 씨는 오전 10시쯤에 올 거야.)”

“(알겠사옵니다.)”

그대로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고 집을 나서면서 우주는 료코를 돌아봤다.

“(다녀올게.)”

료코가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말했다.

“(부디 무사히 돌아와 주십시오. 소녀, 기무치 만들어놓고 기다리겠사옵니다.)”

“(기대할게.)”

우주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료코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기분이 편안해졌는지 초조했던 그녀의 표정이 금세 가라앉았다.

우주가 떠나고 난 후, 료코는 텅 빈 거실을 둘러봤다. 넓은 공간, 적막한 정적이 감돌았다.

수상한 기운을 감지한 것은 그때였다.

거실 베란다 창문이 열린 채 하얀 커튼이 하늘하늘 바람에 휘날렸다.

료코는 열어놓은 기억이 없었다.

발소리를 낮게, 닌자처럼 빠른 걸음으로 조용히 흰 가운을 찾아 몸에 걸치고 언젠가 우주가 선물해 준 장식용 칼 받침대에 놓인 자신의 명검 세키가하라를 집어 들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천천히 베란다 쪽으로 다가갔다. 베란다 밖에는 한 남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물처럼 구멍이 촘촘한 커튼이 장막처럼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상대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계속 바닥을 내려다보며 공손한 투로 입을 열었다.

“(소인, 이시다 신타로. 다코오 하시도루 님의 명을 받아 쿠로가네 료코 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다코오?)”

마츠다이라의 얼굴이 선명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료코는 놀라는 기색을 감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코오 하시도루라 하면 다코오 마츠다이라 님의 후손인가?)”

“(후손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찌 알았느냐?)”

“(애당초 료코 님이 봉인되셨던 천안의 한 동굴에서부터 시작해 서울까지, 며칠간 두루 수소문하며 찾아 헤맨 끝에 결국 이곳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료코는 칼집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평온했던 일상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마츠다이라 님께서 생전 나에 관한 기록을 남겨 두셨더냐?)”

“(남겨 두셨습니다. 하시도루 님께서 100여 년 만에 깨어난 료코 님을 찾은 뒤 일본으로 정중하게 모셔 오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신타로는 우주를 죽이러 왔다는 말까진 하지 않았다. 그도 나름 신우주와 료코가 한 집에서 같이 산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던 중이었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적과의 동침을 한 이 여자가 과연 일본 제국의 부활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던 차였다.

신타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무언가를 떠받치며 공손하게 그것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밖에는 료코 님을 공항까지 모셔 가기 위해서 차가 대기 중입니다. 가짜 여권과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준비하였으니 받아 주십시오. 이 앞에서 대기 중인 사람이 하시도루 님이 사시는 자택까지 무사히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

료코는 살며시 그가 내민 여권으로 시선을 옮겼다.

노예처럼 사는 신우주와의 삶이냐, 아니면 대일본 제국의 부활을 위한 명예로운 삶이냐. 료코는 한동안 계속 고민에 빠져있었다.

전방주둔지에 도착한 우주는 자신에게 맞는 갖가지 장비를 챙긴 뒤 슈퍼바이크에 몸을 실었다.

제네틱스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수라 중에서 다섯 번째인 그는 오늘 작전을 위해서 5번 올빼미를 지정받았다. 그 말인즉, 제네틱스에서 연봉 200억 원 이상을 받는 사람이 우주 앞에 네 사람이나 더 있다는 소리였다.

현주는 연봉 70억 원, 하나 연봉 10억 원, 성일은 연봉 25억 원이었다. 평소 우주가 친하게 지내던 멤버들은 제네틱스 베스트 30에 끼지 못하였다.

그렇다 보니 오늘 임무에서 우주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제네틱스 종합 대책 상황실에서 나온 사람으로부터 브리핑을 듣기 위해 30명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서로 낯설어하면서도 간혹 우주보다 연봉이 낮은 사람이 말을 걸기도 했다.

“오늘도 활약 기대합니다. 멋진 모습 보여주세요, 우주 씨.”

“감사하오. 노력하리다.”

우주는 말을 걸어준 것에 반색하면서도 조금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개중에는 자신보다 연봉이 높은 몇몇이 그를 흘끗 쳐다보기도 했다.

10분 정도의 간단한 브리핑이 끝났다.

이윽고 제네틱스 베스트 30명은 슈퍼바이크를 타고 전방주둔지를 출발했다.

드롭존이 발발된 장소는 인천항이었다. 현재 인천 시민들은 대부분 방공호에 대피한 상태였고 돌연변이 새를 비롯해 수중 생물들이 육지로 올라와서 인천항을 습격 중이라고 했다.

제네틱스 팀이라는 깃발 아래 전술 지휘 차량이 도로를 앞서 달렸다.

슈퍼바이크가 줄지어 늘어서서 기운차게 달리는 가운데, 우주도 인천항을 향해 최대 속력으로 슈퍼바이크를 주저 없이 몰았다.

인천까지 이어진 도로는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처럼 속 시원하게 뻥 뚫려있었다. 군데군데 도로를 점거한 경찰들이 일반 차량을 모두 통제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신라그룹 우연진을 만났다.

제로머신을 타고 달리는 연진이 우주에게 가깝게 달라붙었다. 선글라스를 낀 연진이 우주를 보며 히죽거렸다.

“오늘만 기다렸다구.”

거센 바람에 거침없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우주가 그를 흘끗 쳐다봤다.

어쩌다 이 사람과 경쟁 관계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실력을 비교하는 기사를 매일 쏟아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우주와 연진이 함께 묶여서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세간이 그리 놀다 보니 우주도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누가 더 잘한다 더 못한다, 그런 식으로 매일 비교당하다 보니 연진 역시 우주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누가 최고점에 서고 싶지 않겠는가? 자신보다 높게 평가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그를 이기고 싶은 것이 사내의 마음이다.

우주는 슈퍼바이크의 속력을 더 냈다. 자신을 도발하기 위해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연진을 쳐다봤다. 참고로 그 뒤에는 수희가 말총머리로 묶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바람 소리 때문에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주는 연진을 쳐다보며 입 모양을 크게 뻐끔거렸다.

“따, 라, 와, 보, 시, 오.”

부아아아아앙!

우주가 액셀을 바짝 당겼다.

곧바로 연진을 크게 앞질렀다. 그 광경을 보며 연진이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이 자식 봐라. 해보겠다는 거냐.”

연진도 액셀을 더욱 끌어당기며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드롭존이라는 것은 전 세계에서 한국, 중국, 러시아에서만 주로 생긴다. 그럼에도 이것은 전 세계인에게 스포츠 경기보다 더한 스릴과 흥분을 만끽할 수 있는 대단한 흥밋거리였다.

따라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전 세계 방방곳곳에 드롭존에서의 상황이 생중계로 방영되었다. 인기 높은 수라와 수라 사이의 경쟁 말고도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후원하는 기업 간의 PPL(간접 광고) 마케팅 또한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렇다. 우주가 타고 있는 슈퍼바이크는 일본 회사 도코다가 개발한 제품이며 연진이 타고 있는 제로머신은 독일 바이크 회사 게른발츠가 생산한 제품이다.

두 회사는 제네틱스와 신라그룹에 연구원들을 파견해서 슈퍼바이크와 제로머신의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고 그 정보를 항상 수집했다.

지금 또한 그렇다. 도코다와 게른발츠의 관계자는 각각 제네틱스와 신라그룹 상황실에서 우주와 연진의 대결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제로머신을 타고 있는 연진이 어느새 우주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통해 자사 바이크의 성능을 관찰하고 있던 도코다 관계자는 직선 코스에서 만큼은 슈퍼바이크가 제로머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곧바로 코너가 나왔다. 우주가 코너를 돌자 우연진이 타고 있던 제로머신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시각, 신라그룹 상황실에 있던 게른발츠 관계자는 코너가 제로머신의 약점이라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제로머신 V1 버전에 이어 V2 버전까지 슈퍼바이크 X4에 밀린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했다.

이러한 사실은 전 세계 바이크 마니아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한 글들이 실시간으로 인터넷 바이크 커뮤니티에 올라오며 마니아들의 이목을 끌었다.

상공에는 여러 방송사의 헬리콥터가 떠있었고 전 세계 모든 시청자에게 생중계되었다.

할리우드 배우 아만다 로즈 또한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시청하던 중이었다. 팝콘을 먹던 그녀의 친구가 기쁜 듯이 말했다.

“{아만다! 신우주가 이기고 있어!}”

“{그것 봐, 내가 말했지? 우연진보다 신우주가 더 뛰어나다니깐!}”

그 시각 한국, 하나의 집.

우그신 총무 : 오빠 이겨라, 이겨! >ㅁ

우그신 부회장 : 심장 떨려서 못 보겠어요ㅜㅜ우그신 리더 : 제가 볼 땐 우주 오빠 컨디션이 평소보다 무척 안 좋은 것 같아요. 다른 때라면 저것보다 피부도 훨씬 깨끗하고 머리 빨도 잘 받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어딘가 상당히 피곤해 보이네요.

우그신 행동대장 : 그럼 우리 오빠가 지는 걸까요? ㅠㅠ우그신 리더 : 걱정은 되지만 아직 모르겠어요. 아무튼 카페의 모든 회원들을 결집시켜서 우주 오빠를 위해 응원하자구요.

공중파 방송 MBO의 음악 프로그램 <음악시대>의 생방송 현장.

박현아는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드롭존 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현아와 같은 팀인 러브걸스 멤버가 그녀를 불렀다.

“현아 언니, 우리 차례야.”

“벌써 우리야? 짜증 나.”

인천항으로 가는 도로.

우주와 연진의 경쟁을 뒤에서 지켜보던 수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다 바보 같아. 왜 벌써 기운을 빼는 거야. 이제 시작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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